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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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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상불해는 전한 초기의 인물로, 고제 6년에 태복에 임명되었다. 고제 10년에는 정위를 겸임하여 임치 옥사를 심리했으며, 이듬해 진희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급후에 봉해졌다. 이후 조나라의 태부를 지냈으며, 혜제 원년에 사망했다.

2. 행적

고제 6년(기원전 201년), 태복에 임명되었다.[1]

고제 10년(기원전 197년) 8월 경신일, 태복 겸 행정위사(行廷尉事)로서 임치의 옥사(獄史) 난(闌)에 대한 논죄를 심리하여, 난을 경형·성단용에 처하고, 나머지는 보고서대로 치죄하라고 명하였다.[1]

고제 11년(기원전 196년), 진희의 반란 진압에 종군하여 공적을 인정받아 급후에 봉해지고 식읍 1,200호를 받았다. 이후 조나라태부가 되었다.[2]

혜제 원년(기원전 194년)에 죽으니 시호를 종(終)이라 하였고, 아들 공상무가 작위를 이었다.[3]

2. 1. 태복 임명

고제 6년(기원전 201년), 태복에 임명되었다.[1]

2. 2. 정위사 겸임 및 임치 옥사 심리

고제 10년(기원전 197년) 8월 경신일, 태복 겸 행정위사(行廷尉事)였던 공상불해는 (胡令) 상(狀)·호승(胡丞) 희(憙)로부터 임치의 옥사(獄史) 난(闌)에 대한 논죄 보고를 받았다. 공상불해는 심리 결과 난을 경형·성단용에 처하고, 나머지는 보고서대로 죄를 다스리라고 호색부(胡嗇夫)를 통해 명하였다.[1]

2. 3. 진희 반란 진압 종군 및 급후 봉해짐

고제 11년(기원전 196년), 진희의 반란 진압에 종군하여 공을 세워 급후에 봉해지고 식읍 1,200호를 받았다.[2]

2. 4. 조나라 태부 역임 및 사망

고제 11년(기원전 196년), 진희의 반란 진압에 종군하였고, 그 동안의 공적을 인정받아 급후에 봉해지고 식읍 1,200호를 받았다. 이후 조나라태부太傅|태부중국어[2]가 되었다.

혜제 원년(기원전 194년)에 사망하였고, 시호를 종(終)[3]이라 하였다. 아들 공상무가 작위를 이었다.

3. 출전

참조

[1] 서적 장가산한간(張家山漢簡) 주언서(奏讞書)
[2] 문서
[3] 문서
[4] 서적 사기, 한서
[5] 문서
[6] 서적 사기
[7] 서적 사기, 한서
[8] 서적 사기, 사기색은
[9] 서적 사기, 한서
[10]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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