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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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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괴곡성은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일대에 위치한 성으로, 신라 시대에 축조되어 백제의 공격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신라는 한강 유역 진출을 위해 괴곡성을 축성했으며, 미추 이사금 재위 기간에 백제의 공격을 받았으나 정원과 양질이 이를 막아냈다. 현재 정확한 위치는 불분명하며, 괴산군 괴산읍 일대로 비정하기도 한다. 괴곡성은 자연 환경을 이용한 방어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삼국 시대의 유물과 6.25 전쟁 관련 일화가 전해진다.

2. 괴곡성의 위치

충북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원대리, 계란리, 다불리 등지의 접경인 두무산, 옥순봉, 청풍호반의 주능선에 있으며, 좌표는 N36 56.394 E128 12.218이다.

3. 괴곡성의 역사

괴곡성은 삼국시대 성으로,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신라 시대 괴양군(槐壤郡)이 현재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일대로 비정되기도 하나[3] 확실하지 않다.[4]

신라 경덕왕(景德王)은 고구려 잉근내군(仍斤內郡)을 괴양군(槐壤郡)으로 개명하였는데, 경덕왕의 재위 기간은 742~765년으로 괴곡성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5]

606년(진평왕 28) 신라 장수 찬덕(讚德)이 가잠성(椵岑城)에서 백제군에 맞서 싸우다 자결한 후, 태종 무열왕이 그의 뜻을 기려 괴산이라 부르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나[6], 이 역시 괴곡성과는 관련이 없다.

3. 1. 삼국시대

신라 미추 이사금 17년(278) 겨울 10월, 백제 군사가 괴곡성(槐谷城)을 포위하자 정원(正源)이 군사를 이끌고 가서 막았다.[7] 미추 이사금 22년(283) 겨울 10월에는 백제가 다시 괴곡성을 포위하자 일길찬 양질(良質)이 막았다.[9] 신라죽령(竹嶺)을 개척하여[8] 한강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괴곡성을 축성하였다.

3. 2. 현대

충주댐 수몰로 괴곡리 본동은 전부 물에 잠겼고, 수산천 합수머리에 있던 옛 가헤진 나루터와 진도(津渡) 유역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1] 청풍호반에는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 중 괴곡성벽길이 있는데, 이 길은 두무산과 옥순봉의 주능선을 따라 이어진 자연성벽으로, 둘레는 약 8km이다.[2]

4. 괴곡성의 구조 및 특징

수산면 부용벽 서쪽 아래 괴곡성[10]은 옥순봉 부용벽 밑에 괴곡리와 마을을 에워싼 자연성벽을 말한다. 조선시대 청풍부 원남면 괴곡리[11]의 마을 이름은 천년 이상의 괴목(槐木)에서 유래하며, 괴곡(槐谷)[12]을 도식하였다.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의 청풍호반은 가파른 천혜의 절벽으로, 붕괴된 참호와 침식된 토축(土築)의 흔적이 뚜렷하다. 다불리를 경계로 괴곡리를 감싸는 산맥은 두무산(474m)의 기암석봉에서 동쪽으로 약 350m 지점의 안부에 일자형 성축이 약 100m에 걸쳐 분포하여 수산면 원대리로 진격하는 적군의 진격을 막았던 차단성으로 알려져 있다. 괴곡리 내동으로 통하는 산마루의 도로를 가로질러 동쪽 괴곡리 초입, 해발 370m 고지에 원형(지름 6m, 높이 50cm)의 참호가 있다.[13]

5. 괴곡성의 자연환경

괴곡성은 충북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원대리, 계란리, 다불리 등지의 접경인 두무산, 옥순봉, 청풍호반의 주능선에 소재하며, 좌표는 N36 56.394 E128 12.218이다. 지리적으로 신라백두대간의 죽령대로에 근접한 청풍강 옛 가혜진 괴곡나루를 건너 가은산 가혜성으로 통하는 수륙(水陸)의 요충지이다.[1]

두무산에서 동남동향에 계란치(230m), 동쪽에 옥순봉(283m)과 구담봉(343m), 강 건너 가은암산 석토성과 가은산 가혜성이 있으며, 두무산에서 남쪽으로 군사이동을 한 눈에 관망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망대가 솟았다.[1]

괴곡리 강안(江岸)에 토축(土築)의 성적(城跡)과 마을을 둘러싼 능선은 천혜의 방수지역(防守地域)이며, 원대리 가삽평은 목책 설치를 의미하며, 계란치 언저리에 벌평은 군사지명이다.[1]

6. 괴곡성 관련 유물


  • 괴곡리 구수골의 옥순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는 논밭의 건천에서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토기류가 출토되고 있다.
  • 괴곡나루의 격강에 있는 관탄(串灘)과 내매탄(迺邁灘)은 가은산 강변에 정박하여 가혜성(加兮城)으로 진입하는 옛 가헤진(加兮津)이며, 괴곡성과 마주하는 조포리에서 삼국시대 철제화살촉이 발견되었다.

7. 괴곡성 관련 인물

신라 파진찬(波珍湌) 정원(正源)[14]일길찬(一吉湌) 양질(良質)[14]백제 군사의 괴곡성 포위 총공세를 방어했다.

6.25 전쟁 당시 인민군 주둔지였던 괴곡성 성안 괴곡리에서, 훗날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이세호(1925~1979) 대위는 민가 뒤주 속에 숨어 생존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13]

참조

[1] 서적 三國史記 卷第三十七 雜志
[2] 서적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4
[3] 논문 역주 삼국사기
[4] 간행물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5] 서적 三國史記 卷第三十五 雜志 第四
[6] 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7] 서적 三國史記 卷第二 新羅本紀 第二
[8] 서적 三國史記 卷第二 新羅本紀
[9] 서적 三國史記 卷第二 新羅本紀 第二
[10] 서적 제천군지 1969
[11] 문서 여지조서
[12] 지도 대동여지도
[13] 보고서 충북지방 성곽의 보존 및 활용방안 2013
[14] 서적 三國史記 卷第二 新羅本紀 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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