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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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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포교는 1932년 낙동강에 건설된 최초의 교량으로,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과 강서구 대저동을 연결하여 부산과 서부 외곽 지역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다리였기에 낙동장교로 불리기도 했다. 1990년 구포대교가 건설되면서 김해 방면 일방통행 승용차 전용 교량으로 사용되다가, 노후화로 인해 1995년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되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교각이 유실되어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고, 2008년 완전히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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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교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구포교(龜浦橋)
공식 이름구포교(龜浦橋)
횡단낙동강
위치부산광역시 북구~강서구
관리부산광역시
길이1,060m
2007년의 구포교 모습. 일부 구간이 유실되었다.
2007년의 모습. 일부 구간이 유실되었다.
건설
착공일1930년 9월 13일
완공일1932년 3월 7일
폐쇄 및 철거
붕괴2003년 9월 14일
완전 철거2008년
제원
너비9.8m

2. 역사

1932년 낙동강 최초의 교량으로 개통된 구포교는 부산과 서부 외곽 지역을 잇는 대표적인 다리였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다리였기 때문에 '''낙동장교'''(洛東長橋)라는 이름이 붙었다.[2]

1980년대 교통량이 급증하면서 1990년 9월 30일부터 구포교를 대체하는 구포대교가 건설되기 시작하여 1993년 12월 31일에 개통되었다. 구포대교 개통 이후 구포교는 김해 방면 일방통행 승용차 전용 교량으로 사용되었으나, 노후화로 인해 1995년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되었다. 이후 철거 논란이 계속되다가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교각 일부와 상판이 무너져 내리면서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3]

붕괴 직후 철거가 검토되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4] 그러나 2004년 안전진단에서 E급 판정을 받고,[5] 2005년에는 추가 붕괴 사고까지 발생하였다.[6][7] 부산시의 예산 부족으로 철거가 지연되다가, 결국 2008년 말에 완전히 철거되었다.[9]

2. 1. 건설 배경

1932년 당시 동래군 구포면(현재의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과 김해군 대저면(현재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을 잇는 형태로 낙동강 최초의 교량으로 개통되어, 부산과 서부 외곽 지역을 잇는 대표적인 교량이었다. 당시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다리였으므로, '''낙동장교'''(洛東長橋)라는 명칭이 붙었다.[2]

2. 2. 건설 과정

상판은 게르버교 판형교이며, 교각은 56개였다. 공사에는 총 7,760명이 투입되었고, 공사비는 700000KRW이 소요되었다. 공사비는 정부 보조금 400000KRW, 지방비 190000KRW, 지방 지원 부담금 110000KRW으로 충당되었다.[2]

2. 3. 개통 및 운영

1932년 동래군 구포면(현재의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과 김해군 대저면(현재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을 잇는 낙동강 최초의 교량으로 개통되어, 부산과 서부 외곽 지역을 잇는 대표적인 교량이였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다리였으므로, '''낙동장교'''(洛東長橋)라는 명칭이 붙었다.[2]

1980년대 교통량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1990년 9월 30일부터 기존 구포교를 대체하는 왕복 6차로의 구포대교가 건설되어 1993년 12월 31일에 개통되었다. 구포대교 개통 이후 구포교는 김해 방면 일방통행 방식의 승용차 전용 교량으로 사용되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노후화되어 1995년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되었다. 이후 철거 논란이 수차례 빚어졌다가 2003년 9월 14일 오후 2시 50분경, 태풍 매미로 인해 다리의 19번째 교각이 유실되고 15m 길이의 상판 4개가 무너져 내리면서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3]

붕괴 직후 철거가 검토되었으나, '교량 철거는 너무 성급한 결정'이라며 관광 명소로 보존을 주장하는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4] 그러나 2004년 안전진단 용역 결과 E급으로 분류되어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재확인되었고,[5] 2005년 9월 17일 오전 8시 50분경에는 22번째 교각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져 상판 17m가량이 추가로 붕괴하였다.[6][7] 시 예산 부족으로 철거가 지연된 채 교량은 계속 방치되었고, 2006년까지 강변대로(다대항 배후도로) 시공을 위해 2005년 7월 구포 쪽 125m 구간을 철거한 것이 전부였다.[8] 결국 구포교는 교통 통제 5년 만인 2008년 연말에 완전히 철거되었다.[9]

구포교 개통을 앞둔 1932년 1월, '지는 쪽이 다리 난간 조명등 전기료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동래군 구포면 주민들과 김해군 대저면 주민들 간 다리 위 줄다리기 시합이 벌어졌다. 당시 동래군 구포면 주민들은 지역 경제 쇠퇴를 우려한 반면, 김해군 대저면 주민들은 다리 개설에 적극적이었다. 시합 결과는 동래군 구포면 주민들의 승리였지만, 패배한 김해군 대저면 청년들이 몰려와 조명등을 부수는 바람에 수년 동안 구포교에는 조명등이 하나도 없었다.[1]

2. 4. 구포대교 건설과 역할 변화

1990년 9월 30일부터 기존의 구포교를 대체하는 왕복 6차로의 구포대교가 건설되어 1993년 12월 31일에 개통되었다. 구포대교 개통 이후 구포교는 김해 방면 일방통행 방식의 승용차 전용 교량으로 사용되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노후화되어 1995년에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되었다.[3] 이후 철거 논란이 수차례 빚어졌다가 2003년 9월 14일 오후 2시 50분경, 태풍 매미로 인해 다리의 19번째 교각이 유실되고 15m 길이의 상판 4개가 무너져 내리면서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3]

붕괴 직후 철거가 검토되었으나, '교량 철거는 너무 성급한 결정'이라며 관광 명소 보존을 주장하는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4] 그러나 2004년 안전진단 용역 결과 E급으로 분류되어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재확인되었고,[5] 2005년 9월 17일 오전 8시 50분경에는 22번째 교각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져 상판 17m가량이 추가로 붕괴되었다.[6][7] 시 예산 부족으로 철거가 지연되는 동안 교량은 방치되었고, 2006년까지 강변대로(다대항 배후도로) 시공을 위해 2005년 7월 구포 쪽 125m 구간만 철거되었다.[8] 결국 구포교는 교통 통제 5년 만인 2008년 연말에 완전히 철거되었다.[9]

2. 5. 노후화 및 붕괴

1990년 9월 30일부터 기존 구포교를 대체하는 왕복 6차로의 구포대교가 건설되어 1993년 12월 31일 개통되었다. 구포대교 개통 이후 구포교는 김해 방면 일방통행 방식의 승용차 전용 교량으로 사용되었으나,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노후화되어 1995년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되었다.[3]

2. 5. 1. 철거 논란

1995년 구포교는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되었고, 이후 철거 논란이 수차례 빚어졌다. 2003년 9월 14일 오후 2시 50분경, 태풍 매미로 다리의 19번째 교각이 유실되고 15m에 달하는 상판 4개가 무너져 내리면서 구포교의 교통은 전면 통제되었다.[3] 붕괴 직후 철거를 시도했으나, '교량 철거는 너무 성급한 결정'이라며 관광명소로 보존을 주장하는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4]

그러나 2004년 안전진단 용역 결과 E급으로 분류되며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재확인되었고,[5] 2005년 9월 17일 오전 8시 50분경에는 22번째 교각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져 상판 17m가량이 추가로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6][7]

시 예산 부족으로 철거가 지연된 채 교량은 방치되었고, 2006년까지 철거된 곳은 강변대로(다대항 배후도로) 시공을 위해 2005년 7월에 구포 쪽 125m 부분을 철거한 것이 전부였다.[8] 결국 구포교는 교통이 전면 통제된 지 5년 만인 2008년 말에 완전히 철거되었다.[9]

3. 구조

상판은 게르버교로 판형교이며, 교각은 56개였다. 공사에 동원된 총인원은 7,760명, 공사비는 700000KRW(정부 보조 400000KRW, 지방비 190000KRW, 지방 지원 부담 110000KRW)이 소요되었다.[2]

참조

[1] 뉴스 구포다리 추억 속으로… http://news20.busan.[...] 부산일보 2008-02-26
[2] 웹인용 구포다리 http://www.busan.go.[...] 부산광역시 2012-07-27
[3] 웹인용 태풍 `매미` 여파로 구포교 붕괴 http://article.joins[...] 조인스 2010-07-20
[4] 뉴스 구포대교 철거 반발 http://news20.busan.[...] 부산일보 2003-09-22
[5] 뉴스 구포다리 철거.보존 두고 논란만 거듭 http://news.naver.co[...] 연합뉴스 2004-10-27
[6] 뉴스 구포교 또 무너졌다 http://news20.busan.[...] 부산일보 2005-09-20
[7] 뉴스 구포다리 추가 붕괴 http://news.sbs.co.k[...] SBS 2005-09-17
[8] 뉴스 구포교 3년 넘게 '흉물' 방치 http://news20.busan.[...] 부산일보 2006-11-13
[9] 뉴스 '76세' 부산 구포다리 나머지 상판 내달 제거 http://news.naver.co[...] 연합뉴스 200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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