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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시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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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라시아스는 스페인어로 "감사"를 뜻하며, 온두라스 렘피라 주에 위치한 도시이다. 1536년 스페인 탐험가들이 험준한 지형을 지나 감사함을 표현한 데서 유래되었으며, 1536년 곤살로 데 알바라도 이 차베스에 의해 설립되었다. 한때 경계 지역 왕립 법원의 소재지였으며, 근현대에는 내전과 반란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현재는 관광 산업이 발달하여 온두라스 국민들이 많이 방문하는 도시 중 하나이며, 농업과 관광 산업이 경제의 주요 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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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시아스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별칭시우다드 데 로스 콘피네스 (Ciudad de los confines)
메르세드 교회
17세기 메르세드 교회
지리
위치온두라스 렘피라 주
좌표14°35′20″N 88°34′55″W
해발고도800m
면적449km²
기후
기후열대 사바나 기후(Aw)
행정
국가온두라스
렘피라 주
설립1536년
인구
인구 (2023년 예상)61,421명
기타 정보
웹사이트그라시아스 공식 웹사이트

2. 어원

'그라시아스'는 스페인어로 "감사"를 뜻한다. 스페인 탐험가들이 험준한 산악 지형을 지나 피로한 나머지 "''Gracias a Dios hemos llegado a tierra plana''"라고 말했는데, 이는 "하느님, 평지에 도착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다.[1]

2. 1. "Gracias a Dios"

스페인어로 '감사'를 뜻하는 ''gracias''는 그라시아스 시에 도착한 스페인 탐험가들이 험준한 산악 지형을 지나 피로한 나머지 "'Gracias a Dios hemos llegado a tierra plana'"라고 말한 것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이는 "하느님, 평지에 도착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다.

3. 역사

1863년, 호세 마리아 메디나 장군은 총선거 후 인근 목장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그라시아스 시에서 온두라스 대통령직을 맡았다.[3]

1949년 12월 11일, 그라시아스 시에 공공 식수 서비스가 개시되었다.[3]

3. 1. 도시 설립

1536년 10월, 페드로 데 알바라도의 사촌인 곤살로 데 알바라도 이 차베스(Gonzalo de Alvarado y Chávez)가 에스파냐어로 '신에게 감사'를 뜻하는 "그라시아스 아 디오스"(Gracias a Dios)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설립했다. 그는 히기토 강(Higuito River) 강둑 근처의 오포아(Opoa)라는 지역에 도시를 건설했다.[1] 부왕 시대 동안 그라시아스는 스페인에게 매우 중요한 도시였으며, 안티구아 과테말라와 코마야과에 의해 쇠퇴하기 전까지 수년간 번성했다.[1]

1539년 1월 14일, 그라시아스 아 디오스 시는 돈 후안 데 몬테호(Don Juan de Montejo)에 의해 시(Municipality)로 지정되었다.[2] 당시 온두라스의 주교였던 크리스토발 데 페드라자(Cristóbal de Pedraza)가 그곳에서 미사를 집전했다.[2]

3. 2. 경계 지역 왕립 법원

1543년 9월 3일 바야돌리드 (카스티야 왕국)에서 발급된 왕실 칙령을 통해 1544년 5월 16일, "과테말라니카라과의 경계 지역 왕립 법원 및 사무국"으로 공식 명명된 경계 지역 왕립 법원의 소재지로 지정되었다.[3] 초대 법원장은 알론소 데 말도나도 이 솔리스(1543-1548)였으며, 법학을 전공한 여러 명의 오이도르가 함께했다. 임명된 판사들은 디에고 데 에레라, 페드로 라미레스 데 키뇨네즈, 돈 후안 록셀 등 모두 스페인 사람이었다.[3] 이 법원은 스페인에서 발효된 법률을 적용하고 토지 소유권 주장, 엔코미엔다 및 세금과 관련하여 왕실의 권리를 대변하며, 다양한 심급에서 사법을 집행하고 기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했다.[3]

1549년 법원은 산티아고 데 과테말라 (오늘날의 안티구아 과테말라)로 이전되었다.[3] 이 결정은 중앙 아메리카의 통합에 불운한 결과를 초래했을 수 있는데, 이는 최고 권력 기관의 본부를 과테말라 왕국의 동쪽 끝에 위치시킨 반면, 그라시아스는 북부 및 남부 지방 사이에 훨씬 더 중앙에 위치한 장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3]

3. 3. 근현대사

그라시아스 렘피라 요새.


1919년 내전 당시 빈센테 토스타 카라스코 대령, 플라비오 델시드 대령, 그레고리오 페레라 대령은 나티비다드 페레즈 대위와 함께 "서부 혁명군"을 이끌며 온두라스 서부에서 전쟁 작전을 시작했다. 8월 11일 오전 5시, 그들은 그라시아스 시를 공격했다. 방어군은 호세 레온 카스트로 장군이 지휘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침략군은 광장과 정부 사무실을 점령한 후 산타 로사 데 코판으로 떠났다.[1]

1924년 내전 당시 2월 7일, 그라시아스 시는 빈센테 토스타 카라스코 장군과 그레고리오 페레라 장군이 지휘하는 반군에게 함락되었다.[2]

그레고리오 페레라|그레고리오 페레라es 장군의 반란 당시, 그는 호세 레온 카스트로 장군("엘 레온 데 오시덴테")이 레오나르도 델 시드 장군 및 콘셉시온 페랄타 장군과 함께 크고 조직적인 군대를 지휘하고 있음을 깨닫고 도시 공격을 포기했다.[3]

1959년에는 온두라스 제3군사지구 사령관들 사이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며, 코판, 렘피라, 오코테페케, 산타 바르바라 지역이 포함되었다. 본부는 산타 로사 데 코판 시에 있었지만, 반군 장교들은 그라시아스로 이전하여 산 크리스토발 요새를 방어 기지로 삼았다. 짧은 전투 끝에 병사 2명이 사망하고 반란은 실패했으며, 평온을 되찾고 아르만도 플로레스 카리아스 대령이 새로운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4]

그라시아스 거리


그라시아스 시는 온두라스 국민들에게 가장 많이 방문하는 관광지 중 하나이며, 지난 10년 동안 식민지 시대의 유물인 메르세드 교회(Iglesia de la Merced)와 같은 역사적 건물 복원과 같은 인프라 개선을 경험했다. 2018년 그라시아스 시의 예상 인구는 54,404명으로, 남성 26,520명, 여성 27,885명이며, 도시 지역에 15,490명, 농촌 지역에 38,915명이 거주한다. 그들 대부분은 초등 교육 수준(초등학교 6학년까지)이며 농업, 축산업, 임업 및 어업에 종사한다. 가구의 78%가 장작으로 요리하며, 11%가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다. 인구의 26%가 렌카 민족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그라시아스 시에는 여러 은행 지점, 레스토랑, 시장, 후안 마누엘 갈베스 박사 병원, 대학교, 중·고등학교, 초등학교, 콜센터, 라디오 방송국, 지역 UHF 텔레비전 방송국, 케이블 TV, 다양한 수공예품 상점들이 있다. 이는 국내외 관광객의 사회 경제적 개선 덕분이다. 또한 2013년 10월 28일에 개통된 1,300미터 길이의 항공기 활주로도 갖추고 있다.

4. 지리

고도는 시내 광장의 약 800m에서 셀라케 산(Cerro Las Minas라고도 함) 봉우리의 2870m까지 다양하다. 기후는 고도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저지대 지역은 우기-건기(몬순) 패턴을 보인다. 셀라케 산은 온두라스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가장 큰 구름 숲이며, 셀라케 산 국립공원을 통해 보호받고 있다.[1]

5. 인구

2013년 온두라스 인구 조사에 따르면, 그라시아스 시의 인구는 47,622명이었다. 인종 구성은 다음과 같다.

인종비율
메스티소71.11%
아메리카 원주민 (렌카)26.74% (렌카족 26.41%)
백인 라틴 아메리카인1.40%
아프로-온두라스인0.74%
기타0.01%


6. 경제

농업은 자급자족과 수출을 모두 기반으로 한다. 농작물은 고도와 기후에 따라 다르며, 옥수수와 콩은 저지대에서, 과일/채소는 고지대에서 재배된다.

관광 산업은 경제 발전을 이끄는 동력으로 여겨진다.

6. 1. 관광 산업

관광 경제의 발전은 그라시아스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동력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관광은 식민지 시대 교회, 셀라케 산 및 온천을 포함한 도시의 역사적, 자연적 명소에 기반을 두고 있다.

7. 교통

그라시아스는 인근 지역의 교통 요지 역할을 한다. 이 도시는 포장된 2차선 고속도로를 통해 북쪽의 산타 로사 데 코판과 연결되어 있으며, 라 에스페란사로 향하는 포장된 2차선 고속도로 건설이 수년 동안 진행 중이다.

8. 현대 도시



그라시아스 시는 온두라스 국민들에게 가장 많이 방문하는 관광지 중 하나이며, 지난 10년 동안 메르세드 교회(Iglesia de la Merced)와 같은 식민지 시대 유물을 복원하는 등 인프라 개선을 경험했다. 2018년 그라시아스 시의 예상 인구는 54,404명으로, 남성 26,520명, 여성 27,885명이며, 도시 지역에 15,490명, 농촌 지역에 38,915명이 거주한다. 주민 대부분은 초등 교육 수준(초등학교 6학년까지)이며 농업, 축산업, 임업 및 어업에 종사한다. 가구의 78%가 장작으로 요리하며, 11%가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다. 인구의 26%가 렌카 민족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그라시아스 시에는 여러 은행 지점, 레스토랑, 시장, 후안 마누엘 갈베스 박사 병원, 대학교, 중·고등학교, 초등학교, 콜센터, 라디오 방송국, 지역 UHF 텔레비전 방송국, 케이블 TV, 다양한 수공예품 상점들이 있다. 이는 국내외 관광객의 사회 경제적 개선 덕분이다. 또한 2013년 10월 28일에 1300m 길이의 항공기 활주로가 개통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Population of departments and municipalities in Honduras https://www.citypopu[...]
[2] 웹사이트 Population of cities in Honduras https://www.citypopu[...]
[3] 웹사이트 Honduras: A Country Study http://countrystudie[...] Tim Merrill for the Library of Congress 2011-03-20
[4] 웹사이트 Instituto Nacional de Estadística (INE), bases de datos en línea https://www.ine.g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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