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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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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 말제는 금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다. 금 태조의 후손인 완안 쭝린은 금 애종의 신임을 받았으며, 1234년 몽골의 침략으로 차이저우가 포위되자 애종으로부터 양위받았다. 그러나 즉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몽골군에 저항하다 전사했고, 재위 기간은 12시간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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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말제
기본 정보
휘 (이름)완안 호돈 (完顏呼敦)
시호소종(昭宗), 말제(末帝), 후주(後主)
묘호소종 (昭宗)
생애
출생1202년
사망1234년 2월 9일 (31–32세)
사망 장소채주 (현재의 뤄난 현, 허난성)
재위
즉위일1234년 2월 9일
이전 통치자금 애종
가족
씨족완안
왕조금나라
존호 및 연호
연호성창 (盛昌) (논쟁 중, 1234년)
기타 정보
한식 성명완안 승린 (完顏承麟)

2. 생애

아구다의 형인 우야수의 후손으로 금나라 가계의 방계에 해당되며 생년은 알 수 없다. 애종의 치세 기간 동안 황제의 호위대장을 하고 있었다. 1234년 애종은 채주(蔡州, 오늘날의 루난 현)만 남게 되자, 몽골군에 동조한 남송 군인에게 살해되어 시신은 몽골군에게 이송된 후 효수되었다.[3]

2. 1. 즉위 전

금 태조의 아버지 아구다의 후손으로, 금나라의 무장으로 복무했다. 금 애종은 그의 용기와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완안 쭝린의 형 완안 쭝이 (完顏承裔)는 재상으로 재직했으며, 1232년경 몽골과의 푸청(蒲城) 전투에서 전사했다.[3]

1232년, 몽골 제국이 금나라를 공격하자, 애종은 수도 변경(汴京, 현재의 카이펑, 허난성)을 버리고 차이저우(蔡州, 현재의 루난현, 허난성)로 도망갔다. 완안 쭝린은 황제를 수행하며 여정 내내 그와 함께 했으며, 많은 대신들과 장교들이 도중에 황제를 버린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차이저우에 도착하자 완안 쭝린은 애종에게 중앙 지휘부를 설립하고 몽골의 공격에 대비해 적극적으로 방어 태세를 갖출 것을 조언했다.[3]

2. 2. 즉위와 최후

1234년, 애종남송과 연합한 몽골 제국에 의해 채주(蔡州)만 남게 되자, 자신이 뚱뚱하여 빠르게 달아날 수 없음을 알고 젊고 민첩한 완안승린에게 양위하려 했다. 애종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함과 동시에 승린에게 금나라의 재건에 대한 희망을 걸었다.[3] 승린은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애종은 금나라의 재건을 위해서라며 승린을 설득하여 황위를 넘겨주었다.

황제가 된 승린은 곧바로 포위된 채주성을 탈출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몽골군에 동조한 송나라 군인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시체는 몽골군에게 이송되어 애종과 같이 효수되었다.[4]

결과적으로 그의 재위 기간은 12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는 중국 역사상 가장 짧은 재위 기간이다. :zh:续资治通鉴에 따르면 그를 따르던 친족들과 병사들에 의해 '''소종'''(昭宗)이라는 묘호가 부여되었다고 하며, 정식 추승은 이후 등장하는 그 어떤 왕조에서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4]

3. 평가

금 말제는 정식 묘호나 시호를 받지 못했다. 續資治通鑑에 따르면, 그를 따르던 친족들과 병사들이 '소종(昭宗)'이라는 묘호를 부여했다고 하지만, 이는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이후 어떤 왕조에서도 추승되지 않았다.[3]

3. 1. 묘호와 시호

續資治通鑑에 따르면 금 말제를 따르던 친족들과 병사들이 '''소종'''(昭宗)이라는 묘호를 부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식으로 추승된 것은 아니며, 이후 등장하는 어떤 왕조에서도 추승하지 않았다.[3] 금 애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금 말제는 남은 추종자들을 모아 애종을 애도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애종에게 묘호를 추서했다.[3]

4. 연호

금 말제는 1234년에 연호를 알 수 없다.

연호원년
서력1234년
간지갑오
연호미상


참조

[1] 웹사이트 Emperor Modi of Jin http://history.cultu[...] 2011-10-12
[2] 웹사이트 History of Jin Dynasty http://www.travelchi[...] 2011-10-12
[3] 서적 Imperial China 900–1800 Harvard University Press
[4] 서적 続資治通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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