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쿠마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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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쿠마촌은 1889년 이치하라군에 설치되어 1955년 야와타정과 합병하여 소멸한 일본 지바현의 옛 촌이다. 현재의 이치하라시 북동부에 위치하며, 기쿠마, 쿠사카리, 후루이치바, 오오마야의 4개 구역으로 구성되었다. 메이지 시대 초 기쿠마번이 설치되었으나 폐번치현으로 상업 발달은 미미했다. 주요 산업은 농업과 임업이었으며, 한때 양잠업이 권장되기도 했다. 교통으로는 지바현도 14호선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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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쿠마촌 - [옛 지명]에 관한 문서 | |
|---|---|
| 개요 | |
| 자치체 명칭 | 기쿠마촌 |
| 한자 표기 | 菊間村 |
| 가나 표기 | きくまむら |
| 행정 정보 | |
| 폐지일 | 1955년 3월 31일 |
| 폐지 이유 | 신설 합병 |
| 폐지 상세 | 야와타정, 기쿠마촌 → 이치하라정 |
| 현재 소속 | 이치하라시 |
| 도도부현 | 지바현 |
| 군 | 이치하라군 |
| 면적 | 10.52 km² |
| 인구 | 3542 명 (1950년 국세조사 기준) |
| 인접 자치체 | 지바시, 야와타정, 이치즈촌 |
| 위치 | 이치하라군 기쿠마촌 기쿠마 |
2. 지리
이치하라군의 북동부에 위치했던 마을로, 당시 군역은 현재의 이치하라시와 거의 겹친다. 1916년(다이쇼 5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무라타강과 쿠사카리 언덕을 경계로 지바군의 오바마하마노무라(후의 오바마정) 및 시이나촌과 인접했다. 북동쪽에서 동쪽으로는 이치히가시촌 및 시메즈촌과 접했고, 서남쪽으로는 야하타정 및 이치하라촌과 접했다.
(내용 없음)
1916년에 편찬된 『지바현 이치하라군지』에 따르면, 기쿠마촌은 키쿠마(기쿠마), 쿠사카리(쿠사카리), 후루이치바(후루이치바), 오오마야(오오마야, 당시 기록에는 '오호우마야'로 표기됨)의 4개 구(모두 정촌제 시행 이전의 옛 마을에 해당하는 오아자)로 구성되었다.
3. 역사
3. 1. 전사
1889년 4월 1일 정촌제 시행에 따라 이치하라군 기쿠마촌이 성립되었다. 이후 1955년 3월 31일 야와타정과 합병하여 이치하라정의 일부가 되면서 소멸하였다.
3. 1. 1. 메이지 초기부터 정촌제 시행까지
대정봉환 이후 메이지 원년 (1867년)에 이 지역은 아와카즈사현 지현사의 관할이 되었다. 곧이어 스루가의 누마즈번 영주였던 미즈노 가문이 스루가 내 영지를 대신하여 가즈사국에 영지를 받고 이전해 왔으며, 기쿠마를 번청 소재지로 삼아 '''기쿠마번'''이 성립되었다. 기쿠마의 도쿠나가다이 지구에는 무사들의 저택과 나가야(長屋, 길게 이어진 집)가 지어졌고, 주변의 오오마야, 야마키, 쿠사카리 등지로 번사들이 이주하면서 인구가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고 전해진다.
메이지 4년 (1871년) 폐번치현이 시행되면서 기쿠마번은 기쿠마현이 되었고, 같은 해 말 현 통합 정책에 따라 기사라즈현에 편입되었다. 1873년 (메이지 6년) 6월 지바현이 발족하면서 지바현 소속이 되었다.
대구소구제 시행에 따라 1873년 7월에는 지바현 제5대구 제3소구에 속하게 되었다. 1874년 (메이지 7년) 9월에는 기쿠마촌을 포함한 36개 촌의 행정 사무를 처리하는 취급소가 기쿠마촌에 설치되었다. 1876년 (메이지 9년) 3월 구획 재편으로 제5소구 소속이 되었고, 기쿠마촌 외 4개 촌의 취급소는 계속해서 기쿠마촌에 유지되었다.
1878년 (메이지 11년) 군구정촌편제법이 시행되면서 이치하라군청의 관할 아래 놓였고, 기존의 4개 촌을 포함한 연합호장역장(連合戸長役場)이 기쿠마촌에 설치되었다.
3. 2. 촌사
1889년 정촌제 시행에 따라 이치하라군에 기쿠마촌이 성립되었다. 1955년 3월 31일, 기쿠마촌은 야와타정과 합병하여 이치하라정이 되면서 소멸하였다.
3. 2. 1. 연혁
4. 경제·산업
메이지 시대 초, 기쿠마에는 번이 설치되었을 당시 증가한 인구를 예상하고 상가도 늘어섰지만, 폐번치현과 지록처분으로 상인들이 떠나면서 상업적인 발전은 좌절되었다고 한다.
『지바현 이치하라군지』에 따르면, 마을 내에는 은행이 없었지만 인접한 시이나 촌 후루이치바에 시이나 은행이 있었고, 마을 내에도 크고 작은 자본가가 많았으며, 야와타정이나 지바시가 가까워 금융은 원활했다고 한다.
농업 외에도, 구사카리・오오우마야 지역에서는 소나무・삼나무 등의 임업이 이루어졌다. 메이지 20년대(1887년 - 1896년)에는 구 기쿠마 번사의 사족수산 사업으로 양잠이 권장되어 지역에 뽕밭이 개간되고 잠업이 보급되었다. 그러나 사족의 전출과 낮은 수익성으로 인해, 『지바현 이치하라군지』가 편찬된 1916년(다이쇼 5년) 시점에는 쇠퇴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5. 교통
(작성할 내용 없음)
5. 1. 도로
『지바현 이치하라군지』에 따르면, 후루이치바구와 쿠사카리구에는 하마노와 카츠우라를 연결하는 현도(모바라 가도, 현재의 지바현도 14호 지바모바라선에 해당)가 지나갔다. 이 도로는 에도 시대부터 중요한 교통로였으나, 철도(소토보선)가 개통되면서 차량 통행량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쿠사카리・키쿠마를 거쳐 야와타정으로 가는 시골길이나, 시쓰 방면에서 오마야를 거쳐 야와타정으로 가는 시골길 등이 통행량이 많은 도로로 언급되었다.2023년 9월 기준으로, 옛 기쿠마촌 지역을 통과하는 국도 및 지바현도는 다음과 같다.
- 지바현도 14호 지바모바라선 (모바라 가도)
- 지바현도 126호 야와타키쿠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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