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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19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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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인식은 1947년생으로, 선수 시절에는 투수로 활동했으며, 이후 야구 지도자로 경력을 시작했다. 배문고등학교, 상문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거쳐 1986년 해태 타이거즈 수석 코치를 역임했고, 1990년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두산 베어스 감독 시절 한국시리즈에서 두 차례 우승했으며, 한화 이글스 감독, 국가대표팀 감독 등을 역임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강,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우승 등 국제 대회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KBO 규칙위원회, 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2019년부터 김인식TV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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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1947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인식
한자 표기金寅植
로마자 표기Gim Insik
출생일1947년 5월 1일
출생지서울특별시
포지션감독
타격우타
투구우투
선수 경력
아마추어배문고등학교
크라운맥주
해병대
한일은행
지도자 경력
코치해태 타이거즈 (1986년–1989년)
감독쌍방울 레이더스 (1990년–1992년)
OB / 두산 베어스 (1994년–2003년)
한화 이글스 (2005년–2009년)
국가대표팀 감독대한민국 (2002년, 2006년–2009년, 2015년–현재)
수상 경력
한국시리즈 우승2회 (1995년, 2001년)
기타 경력
일구회부회장 (2010년 ~ 현재)
KBO총재 특별보좌 (2017년 ~ 현재)
한국독립야구연맹위원장 (2017년 ~ 현재)

2. 선수 시절

김인식은 배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일은행에서 투수로 뛰던 중 어깨 부상을 당해 일찍 은퇴하였다.[1] 선수 경력은 1965년 크라운맥주, 1966년부터 1968년까지 해병대, 1969년부터 1972년까지 한일은행에서 활동한 것이다.

2. 1. 아마추어 야구

김인식은 1965년부터 1972년까지 크라운맥주와 한일은행 아마추어 야구팀에서 투수로 활약했으나, 지속적인 팔과 어깨 부상으로 1972년 시즌 후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김인식은 배문고등학교, 상문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역임한 후, 1986년 해태 타이거즈 수석 코치로 프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1990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여 프로 감독 경력을 시작했으며,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두산(OB) 감독을 맡아 1995년2001년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한화 이글스 감독을 역임했으며, 부산 아시안 게임,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프리미어 12,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등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특히 프리미어 12에서는 한국 대표팀을 국제 대회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9년에는 아프리카TV와 유튜브에서 김인식TV 채널을 개설하여 활동하고 있다.

3. 1. 아마추어 야구

1965년부터 1972년까지 크라운맥주, 해병대, 한일은행에서 아마추어 야구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로 전향하여 1973년부터 1977년까지 배문고등학교 감독을,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상문고등학교 감독을,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동국대학교 감독을 역임하였다.

3. 2. 프로 야구

1986년 해태 타이거즈 수석 코치로 프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0년에는 쌍방울 레이더스의 창단 감독으로 프로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1991년~1992년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으로 93승 155패 4무를 기록했다.[4] 1992년 시즌을 끝으로 쌍방울 감독에서 물러난 뒤 2년 동안 야인으로 지냈다가, 1994년 선수단 집단 이탈 사건의 여파로 사임한 윤동균의 후임으로 1995년 OB 베어스의 사령탑을 맡아 1995년2001년 팀을 두 차례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한화 이글스의 감독을 맡았고, 2010년까지 한화 이글스의 고문을 맡았다.[5][6] 2006 시즌 종료 후 한화 이글스와 역대 감독 최고액인 계약금, 연봉 각 3.5억, 총액 3년 14억에 재계약했다.

2009년 한화 이글스가 시즌 최하위를 기록한 후 계약이 만료되어 한대화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김인식 감독의 프로 야구 통산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순위정규시즌 순위(※1)경기승리패전승률게임차(※2)
1991쌍방울6612652713.42528.0
19928812641841.32929.5
1995OB
두산
1112674475.607-
19968812647736.39724.0
19975512657645.47216.0
19984412661623.49618.5
19993113276515.598-
20002213376570.57116.0
20011313365635.508-
20025513366652.50417.0
20037713357742.43523.0
2005한화4412665611.51211.5
20062312667572.5406.5
20073312667572.5407.5
20085512664620.50819.0
20098813346843.35435.0
통산: 16년2057980103245.487


  • ※1 1999년, 2000년은 2리그제 하의 리그 순위임. 두산 베어스는 드림리그 소속이었으므로, 여기서는 드림리그 순위를 표기함.
  • ※2 정규시즌 1위와의 게임 차.

3. 3. 국가대표팀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금메달을 획득했다.[4]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4강 진출을 이뤘으며,[5] 같은 해 한화 이글스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이후 다시는 국가 대표팀 감독을 맡지 않겠다고 언급했으나, 2008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 이후 감독 선임에서 잡음이 크게 일었던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 감독을 다시 맡아 대한민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다.[6] 하지만 같은 해 한화 이글스가 시즌 최하위를 기록한 후 계약이 만료되어 한대화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이후 KBO의 규칙위원회, 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15년 프리미어 12 대회의 감독을 맡아 국제 대회 첫 우승을 이끌어 냈다.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감독을 맡았으나, 성적 부진으로 1라운드 탈락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4. 지도 스타일

김인식은 온화하고 겸손한 인물로, 감독으로서 한국에서 "믿음직한 야구"라고 불리는 지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냉철함도 겸비하고 있어, 한번 마음을 정한 선수에 대해서는 온정적인 배려는 없으며, 팀에 얼마나 기여해 온 베테랑이라도 그대로 2군에서 생활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야구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2009년 WBC 개최 전 인터뷰에서 "일본은 베이징 올림픽과는 전혀 다른 선수를 선출할 수 있는 등, 강한 팀을 여러 개 만들 수 있지만, 우리는 이 한 팀밖에 만들 수 없다."라고 답하며, "참가국 중 일본이 가장 강하다."라고 언급했다.[1]

프로 야구 감독으로서는 한국시리즈를 두 차례(1995년, 2001년) 제패하여 한국 프로야구계에서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한국 프로 야구에서의 통산 성적은 승률이 높지 않다. 이는 감독으로 처음 지휘한 팀이 창설 초기 쌍방울이었고, 선수 구성이 부실하여 재임 기간 내내 많은 패배를 기록했던 것과, OB/두산에서 우승한 다음 해에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져 순식간에 최하위로 추락하는 등 팀 순위가 급격하게 변동한 사정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실제로 쌍방울 시절 2년을 제외하면, 그 이후로는 성적의 기복은 있었지만 승률이 높았다.[1]

정규 시즌 성적과 비교하여 포스트시즌에서는 전력상 열세라는 평가를 뒤엎고 팀을 승리로 이끈 경우가 많았으며, 이것이 그를 명장으로 인식하게 된 원인으로 보인다. 2001년 우승 당시에도 정규 시즌은 3위였고, 승리한 경기도 많지 않았다. 이러한 단기전에 강한 특성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데 발휘되어, 일본, 대만에서 개최되어 조건적으로 불리하다고 여겨졌던 2015년 WBSC 프리미어12에서 한국의 우승으로 이어졌다.[1]

5. 기타 활동

2019년 아프리카TV와 유튜브에서 김인식TV 채널을 개설하여 활동하고 있다.[7] 2022년에는 MBN의 ''땅으로 돌아와''에 감독으로 출연했다.[2]

6. 수상 내역


참조

[1] 뉴스 KBO manager's collapse shows how stressful the job is https://koreajoongan[...] Korea JoongAng Daily 2020-06-28
[2] 웹사이트 '빽 투 더 그라운드' 야구 레전드, 한 팀으로 뭉쳤다…범접불가 아우라 https://entertain.na[...] News1 2022-03-24
[3] 뉴스 호적상 1947년 5월 1일 출생 https://sports.news.[...]
[4] 뉴스인용 한국체육 이대로 좋은가 (58) 프로선수 빛과 그늘〈9〉툭하면 해임'파리목숨'감독 https://newslibrary.[...] 한겨레신문 2019-05-31
[5] 뉴스인용 「빙그레 이글스」코치陣(진)구성 어떻게되나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2019-06-12
[6] 뉴스인용 하위4球團(구단) 감독 경질說(설)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2019-06-12
[7] 문서 진라면 CF에서는 2탄을 그의 제자인 류현진과 공동으로 촬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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