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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장군 사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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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이 장군 사당제는 조선 시대 남이 장군의 넋을 기리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약 300년 전부터 시작된 제사이다. 이 제사는 남이 장군이 용산에서 모병하고 훈련을 했다는 점, 그리고 한강변 새남터에서 참화를 당했다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용산구 일대에서 열린다. 사당은 용산구에 위치하며, 남이 장군을 비롯해 다양한 무속 신앙의 대상들을 모시고 있다. 제례는 4월 1일과 10월 1일에 열리며, 특히 10월 1일에는 전야제를 포함한 큰 굿이 열린다. 제사는 걸립, 유식제례, 무굿, 사례제 등의 절차로 진행되며, 현대에는 지역 공동체의식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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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장군 사당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남이장군사당제
유형무형문화재
지정 번호20
지정일1999년 7월 1일
주소서울특별시 용산구 용문동 106
시대조선시대
추가 정보

2. 역사

남이장군사당제는 마을굿이 사라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으며,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로 축제성을 띤 마을 제의로 자리 잡고 있다. 사당제가 시작되면 걸립패들이 농악을 울리며 집집마다 방문하여 당제와 당굿에 소요되는 경비를 마련하는데, 이는 단순한 걸립이라기보다는 무녀가 참여하여 집집마다 축원을 해주는 마을돌기굿에 해당하는 신앙성이 강한 의례이다. 예전의 당굿에서는 꽃을 당집에 모셨다가 본당으로 모셔오는 영신의례로 꽃받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꽃등렬 행사로 발전하여 산천동 당집에서 사당까지 행진하고 사당에서 제를 올린다. 남이장군사당제는 악공들의 제례음악에 맞추어 유식제례로 지내고 이어 무굿이 진행되는데, 강릉단오제나 은산별신제와 그 형태가 비슷하다. 다만 장군행렬은 신꽃을 들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이 사실상 신의 마을 행차에 해당되는 것이다.

2. 1. 사당 건립과 사당제 유래

남이 장군은 세종 23년(1441)에 태어나 17세에 무과에 합격하고, 26세에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을 격퇴하여 병조판서에 올랐으나 유자광의 모함으로 27세의 젊은 나이로 참수를 당하였다. 남이장군사당제는 남이의 기개를 펴보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장군의 생을 안타깝게 여겨 그의 원혼을 달래주고, 충절을 기리고자 약 300년 전에 사당을 지은 후 해마다 지내는 제사이다. 특히 10월 1일에는 전야제를 비롯하여 큰 굿을 벌이면서 주민들이 근심, 걱정 해소와 쾌복을 빌어 자연스럽게 이 지역의 민속신앙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3. 남이 장군 사당

남이 장군 사당은 대지 89평에 건평 10평 크기의 3칸 한와(韓瓦)로, 당 입구 전면에 있다. 당 내부에는 남이장군상을 비롯해서 부군대감내외상·최영장군상·정추정씨와 부인상·산신령내외분·토지관장(土地官長)님·천신대감상(天神大監像)·맹인내외상(盲人內外像) 등 각종 무속화(巫俗畫)가 걸려 있다.

당의 유래는 남이 장군이 이곳 용산에서 모병을 해서 훈련시켰고 한강변 새남터에서 참화를 당했기 때문에 이곳에 당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원래 당은 원효로2가 당고개라는 거제산에 있었는데, 약 백여 년 전에 장군이 현몽해서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4. 제례

남이 장군 사당제는 걸립패들이 농악을 울리며 집집마다 방문하여 당제와 당굿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는 단순한 걸립이 아니라 무녀가 참여하여 집집마다 축원을 해주는 마을돌기굿의 성격을 띤다. 예전에는 꽃을 당집에 모셨다가 본당으로 모시는 영신의례인 꽃받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꽃등렬 행사로 바뀌어 산천동 당집에서 사당까지 행진하고 사당에서 제를 올린다. 남이 장군 사당제는 악공들의 제례음악에 맞추어 유식제례로 진행된 후 무굿이 이어지는데, 강릉단오제나 은산별신제와 형태가 비슷하다. 다만, 장군행렬은 신꽃을 들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오는데, 이는 신의 마을 행차에 해당한다.

4. 1. 제물과 제관

제물은 제사 3일 전 제주(祭主)가 당에다 신에게 바치는 술인 '조라'를 모신다. 조라는 정결한 쌀 3되 3홉을 쪄서 누룩을 버무려 물을 섞어 단지에 넣는다. 제물은 메·떡·술·과실·포·채소·탕 등을 준비하며, 떡은 붉은팥을 넣은 시루떡으로 쌀 3되 3홉을 시루에 쪄서 통시루로 바친다. 당굿에는 돼지 한 마리를 바치며 굿상은 따로 마련한다. 제일(祭日)은 4월 1일, 10월 1일이며, 3년마다 4월 1일에 대규모의 당제를 지내고 굿을 하였으나, 현재는 10월에 대제와 당굿을 한다.

제관 선정은 제일 10일 전 생기복덕(生氣福德)을 보아 원로 두 사람을 뽑는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제주, 한 사람은 집사(執事)가 된다. 제주는 당제를 주관한다. 대제 때는 화주(化主) 12명을 선정하는데 이들이 제주가 된다.

4. 2. 절차

제의는 제사 3일 전부터 걸립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의 느름기를 앞세운 걸립패가 풍물을 울리면 동네 유지와 제관이 뒤따르며 집집마다 방문하여 당제와 당굿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한다. 이때 가정에서는 꽃반이라 하여 작은 소반 위에 창호지를 깔고 밥 한 그릇, 숟가락, 실, 쌀, 돈을 놓고 집안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걸립이 끝나면 '꽃받이'를 하는데, 이는 산천동 부군당에 있는 꽃(종이꽃, 연꽃)을 가져오는 의식이다. 산천동 부군당은 남이 장군의 부인을 모신 곳이기 때문에, 부인을 초빙한 뒤 사당제를 지내는 것이다.

제의(祭儀)는 일동재배, 초헌, 아헌, 종헌, 독축, 첨작, 일동재배 순서로 유교식 의례에 따라 진행된다. 굿은 잡귀를 쫓아내는 부정치기부터 시작하며, 이때 무당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대문 밖으로 나갔다가 끝난 뒤에 들어온다. 내림대는 잎이 달린 참나무를 사용하며, 굵기는 손가락 정도, 길이는 두 자 정도이고 창호지를 손잡이 쪽에 매단다. 굿의 순서는 가망청배, 부정치기, 호구거리, 말명거리, 조상거리, 상산거리, 별상거리, 대감거리, 창부거리, 제석거리, 군웅거리, 황제푸리, 뒷전 순이다. 굿이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무복(巫服)을 입고 신춤을 추는 '무감'을 하며 여흥을 즐긴다.

4. 3. 사례제

사례제(謝禮祭)는 제사를 지낸 다음날(전에는 3일 뒤)에 실시한다. 제주와 화주, 그리고 마을 어른들이 당에 모여 잡인이 경내에 들어왔음을 사죄하고 무사히 지내게 되어 고맙다는 뜻을 고한다. 사례제가 끝나면 제물을 내려 대동잔치를 연다. 사례제 때의 제물은 예전에는 따로 준비했으나, 요즈음에는 대제 때의 음식을 올린다. 대제가 끝난 뒤 제관과 임원 몇 명이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있는 남이 장군 묘에 가서 간단히 제를 올리고 온다. 이 제사에서 신성과 세속이 함께 어울려짐을 느낄 수 있고, 이 가운데서 지역적인 공동체의식을 강화시키는 의의가 있음을 볼 수 있다.

5. 현대적 의의

현대에 이르러 마을굿이 사라져 가는 실정에서 남이 장군 사당제는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는 데 그 의의가 있으며,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로 축제성을 띤 마을 제의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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