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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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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파의 변은 원나라 영종 게겐 카안이 암살당한 사건으로, 권력 투쟁과 정치적 불안정을 보여준다. 영종은 할머니 다기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테무데르 세력을 견제했지만, 테무데르와 가까웠던 테크시가 구 테무데르 파, 황족, 그리고 영종의 동생 등과 함께 암살을 모의했다. 1323년, 영종이 상경에서 대도로 이동하던 중 남파에서 테크시 등에게 습격당해 암살당하고, 이후 테크시는 영종의 아들이 아닌 예순 테무르를 옹립하여 원 태정제가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무종의 아들들의 정통성을 지지하는 세력은 이에 반발하여 천력의 내란을 일으키는 결과를 낳았다.

2. 배경

다기는 아들인 쿠르크 카안(무종 하이산)이 즉위한 이후, 흥성궁을 거점으로 하여 막대한 권력을 휘둘렀다. 쿠르크 카안 사후, 동생인 부얀투 카안(인종 아유르바르와다)가 즉위하자 다기의 권력은 더욱 강화되었고, 이와 동시에 카안 권력의 공백화도 진전되었다. 부얀투 카안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시데바라가 즉위할 때에도 다기의 괴뢰 정권이 될 것이 공공연하게 언급되었고, 다기의 신임을 받은 테무데르가 태사 우승상으로서 보복 인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새로 즉위한 게겐 카안은 아버지 부얀투 카안과 달리 자신이 괴뢰 상태에 놓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라이르 왕가의 바이주를 기용하여 테무데르 세력의 삭감을 꾀했다. 지치 2년(1322년)에는 다기와 테무데르가 잇따라 사망했고, 자신을 견제할 존재가 없어진 게겐 카안은 바이주를 중서 우승상으로 삼고, 신정을 시작했다. 그 한편 게겐 카안은 구 테무데르 세력을 조정에서 일소하는 데에도 힘을 쏟아 테무데르의 아이를 처형하고 그 재산을 몰수했다.

일찍이 테무데르와 가까운 관계에 있던 테크시는 게겐 카안의 치세 하에서 어사대부에 임명되었고, 좌·우 아속위(아스트 군벌)를 이끌었지만, 테무데르의 아이가 처형된 것을 보고 스스로도 처벌 대상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래서 테크시는 마찬가지로 게겐 카안의 숙청에 두려움을 느끼는 구 테무데르 파의 고관, 안서 왕국을 폐지당한 원한을 가진 유력 황족인 올크 테무르 및 알탄 부카, 게겐 카안의 동생이면서 냉대받던 우두스 부카 등과 협력하여 게겐 카안의 암살 계획을 입안했다.

2. 1. 권력 투쟁

다기는 아들인 쿠르크 카안(무종 하이산)이 즉위한 이후, 흥성궁을 거점으로 하여 막대한 권력을 휘둘렀다. 쿠르크 카안 사후, 동생인 부얀투 카안(인종 아유르바르와다)가 즉위하자 다기의 권력은 더욱 강화되었고, 이와 동시에 카안 권력의 공백화도 진전되었다. 부얀투 카안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시데바라가 즉위할 때에도 다기의 괴뢰 정권이 될 것이 공공연하게 언급되었고, 다기의 신임을 받은 테무데르가 태사 우승상으로서 보복 인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새로 즉위한 게겐 카안은 아버지 부얀투 카안과 달리 자신이 괴뢰 상태에 놓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라이르 왕가의 바이주를 기용하여 테무데르 세력의 삭감을 꾀했다. 지치 2년(1322년)에는 다기와 테무데르가 잇따라 사망했고, 자신을 견제할 존재가 없어진 게겐 카안은 바이주를 중서 우승상으로 삼고, 신정을 시작했다. 그 한편 게겐 카안은 구 테무데르 세력을 조정에서 일소하는 데에도 힘을 쏟아 테무데르의 아이를 처형하고 그 재산을 몰수했다.

일찍이 테무데르와 가까운 관계에 있던 테크시는 게겐 카안의 치세 하에서 어사대부에 임명되었고, 좌·우 아속위(아스트 군벌)를 이끌었지만, 테무데르의 아이가 처형된 것을 보고 스스로도 처벌 대상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래서 테크시는 마찬가지로 게겐 카안의 숙청에 두려움을 느끼는 구 테무데르 파의 고관, 안서 왕국을 폐지당한 원한을 가진 유력 황족인 올크 테무르 및 알탄 부카, 게겐 카안의 동생이면서 냉대받던 우두스 부카 등과 협력하여 게겐 카안의 암살 계획을 입안했다.

2. 2. 영종의 친정 시도

원 인종과 달리 영종은 할머니 다기 카툰의 간섭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잘라이르 부족의 바이주(拜住)를 기용해 태후의 측근인 테무데르(鐵木迭兒)를 견제하고자 했다. 그러던 1322년(지치 2년) 태후와 테무데르가 연이어 사망하자 영종은 바이주를 중서우승상에 임명해 친정을 시작했다.

2. 3. 테크시의 불만

테크시는 테무데르와 가까운 사이로 어사대부의 지위에 있었다. 하지만 테무데르가 죽고 가족들이 처형되자 자신에게도 화가 미칠까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에 테크시는 옛 테무데르의 파벌에 속하는 관료들, 안서국이 폐지된 것에 대해 앙심을 품은 황족 오루크 테무르, 알탄 부카, 원 영종의 동생이지만 푸대접을 받던 오도스부카 등과 협력해 영종의 암살을 모의하게 되었다.

3. 남파의 변

영종의 할머니 다기 카툰은 아들 원 무종이 즉위한 이래 흥성궁(興聖宮)에 거처하며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무종이 붕어하자 동생을 원 인종으로 즉위시켰고 태후의 권력은 더욱 강해졌다. 인종의 아들 영종이 즉위한 뒤에도 태후의 권력은 여전했다.

하지만 인종과 달리 영종은 할머니의 이러한 간섭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잘라이르 부족의 바이주(拜住)를 기용해 태후의 측근인 테무데르(鐵木迭兒)를 견제하고자 했다. 그러던 1322년(지치 2년) 태후와 테무데르가 연이어 사망하자 영종은 바이주를 중서우승상에 임명해 친정을 시작했다.

테크시(鐵失)는 테무데르와 가까운 사이로 어사대부의 지위에 있었다. 하지만 테무데르가 죽고 가족들이 처형되자 자신에게도 화가 미칠까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에 텍시는 옛 테무데르의 파벌에 속하는 관료들, 안서국이 폐지된 것에 대해 앙심을 품은 황족 오루크 테무르(兀雷帖木兒)·알탄 부카, 영종의 동생이지만 푸대접을 받던 오도스부카(兀都思不花) 등과 협력해 영종의 암살을 모의하게 되었다.

1323년 8월 4일 영종은 상경에서 대도로 이동하던 중 남파에 천막을 치고 잠시 머무르고 있었다. 이때 텍시는 지추밀원사 에센 테무르(也先鐵木兒) 등과 함께 천막을 습격하여 바이주를 죽이고 이어 영종마저 살해했다.

지치 3년 8월 4일 (1323년 9월 4일)[1][2], 계절 이동을 하던 게겐 카안과 바이주는 상도 (하계 야영지)에서 대도 (동계 야영지)로 이동하던 중 남파에 천막을 쳤다. 테크시는 지추밀원사 에센 테무르, 대사농 시쿠두르, 전 평장정사 치긴 테무르, 전 운남행성 평장정사 올제이, 테무델의 아들이자 전 지서시어사 소남, 테크시의 동생이자 선휘사 쇄남, 전서원사 토고치, 추밀원부사 아산, 첨서추밀원사 장대, 위사 투멘, 제왕 알탄 부카, 볼라트, 오르크 테무르, 오르크 부카, 울루스 부카 등과 함께 자신의 휘하에 있는 아스트 병을 이끌고 게겐 카안의 천막을 습격했다.

테크시 등은 먼저 우승상 바이주를 살해하고, 이어서 천막 안에 있던 게겐 카안을 시역했다. 이로써 게겐 카안은 치세 3년, 향년 21세로 남파에서 붕어했다.

3. 1. 암살 모의

테크시는 테무데르 파벌 관료, 황족 오루크 테무르, 알탄 부카, 영종의 동생 오도스부카 등과 암살을 모의했다.[1][2] 테무데르가 죽고 가족들이 처형되자 테크시는 자신에게도 화가 미칠까 두려워 옛 테무데르 파벌에 속하는 관료들과 안서국 폐지에 앙심을 품은 황족, 푸대접을 받던 영종의 동생 등과 협력하였다.

3. 2. 영종 시해

영종의 할머니 다기 카툰은 아들 원 무종이 즉위한 이래 흥성궁(興聖宮)에 거처하며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무종이 붕어하자 동생을 원 인종으로 즉위시켰고 태후의 권력은 더욱 강해졌다. 인종의 아들 영종이 즉위한 뒤에도 태후의 권력은 여전했다.

하지만 인종과 달리 영종은 할머니의 이러한 간섭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잘라이르 부족의 바이주를 기용해 태후의 측근인 테무데르를 견제하고자 했다. 그러던 1322년(지치 2년) 태후와 테무데르가 연이어 사망하자 영종은 바이주를 중서우승상에 임명해 친정을 시작했다.

테크시(鐵失)는 테무데르와 가까운 사이로 어사대부의 지위에 있었다. 하지만 테무데르가 죽고 가족들이 처형되자 자신에게도 화가 미칠까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에 텍시는 옛 테무데르의 파벌에 속하는 관료들, 안서국이 폐지된 것에 대해 앙심을 품은 황족 오루크 테무르·알탄 부카, 영종의 동생이지만 푸대접을 받던 오도스부카 등과 협력해 영종의 암살을 모의하게 되었다.

1323년 8월 4일 영종은 상경에서 대도로 이동하던 중 남파에 천막을 치고 잠시 머무르고 있었다. 이때 텍시는 지추밀원사 에센 테무르 등과 함께 천막을 습격하여 바이주를 죽이고 이어 영종마저 살해했다. 이로써 게겐 카안은 치세 3년, 향년 21세로 남파에서 붕어했다.[1][2]

4. 결과

남파의 변 당시 게겐 칸에게는 아직 아들이 없었기에, 새로운 칸은 다른 황통에서 선택해야만 했다. 게겐 칸과 혈통이 가깝고 칸의 가장 유력한 후보는 쿠르크 칸의 유아인 코실라(후의 원 명종)와 토크 테무르(후의 원 문종)였지만, 테크시 등이 실제로 옹립한 것은 다소 먼 친척인 진왕 (지논) 예순 테무르였다.

이것은 원래 쿠르크 칸의 유아를 냉대했던 것이 다기-테무데르 세력이었고, 그 잔당인 테크시 등이 칸으로 옹립하더라도 과거의 원한으로 인해 보복 인사가 행해질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3], 또한 콩기라트부 출신인 다기의 밑에서 융성한 테크시 등으로서는 비콩기라트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쿠르크 칸의 유아보다 콩기라트 출신 어머니 부얀켈미슈를 둔 예순 테무르를 옹립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4] 등이 이유로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쿠르크 칸의 유아こそ正統なる 칸에 걸맞다고 생각하는 세력은 다수 남아 있었고, 그들은 예순 테무르의 혈통에 의한 통치를 탐탁지 않아 하여, 그의 사후에 천력의 내란을 일으키게 된다.

4. 1. 태정제의 즉위

영종에게 아들이 없었기에 다른 황족 중에서 새 황제를 세워야 했다.[3] 당시 가장 차기 황제에 가까웠던 인물은 무종의 아들 코실라(和世㻋)와 툭테무르(圖帖睦爾)였지만, 텍시는 상대적으로 촌수가 멀었던 예순 테무르를 옹립했다. 이가 원 태정제다.[4]

이는 태후 다기와 테무데르의 세력이 무종의 아들들을 냉대했기에 그 잔당 세력에 속하는 텍시가 무종의 아들을 옹립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태후가 콩기라트 출신이었던 것에 비해 무종의 아들들은 콩기라트부 출신이 아니었고 태정제는 콩기라트부 출신 어머니를 두었다는 점도 주요한 이유였다.

하지만 무종의 아들이 더 강한 정통성을 지녔다고 생각한 세력이 많이 남아 있었고 이들은 태정제와 그 혈통의 통치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훗날 천력의 내란을 야기하게 된다.

4. 2. 태정제 즉위의 이유

원 영종에게 아들이 없었기에 다른 황족 중에서 새 황제를 세워야 했다.[3] 당시 가장 차기 황제에 가까웠던 인물은 원 무종의 아들 코실라(후의 원 명종)와 툭테무르(후의 원 문종)였지만 텍시는 상대적으로 촌수가 멀었던 예순 테무르를 옹립했다. 이가 원 태정제다.[3][4]

이는 태후 다기와 테무데르의 세력이 무종의 아들들을 냉대했기에 그 잔당 세력에 속하는 텍시가 무종의 아들을 옹립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3] 또한 콩기라트부 출신인 다기의 밑에서 융성한 테크시 등으로서는 비콩기라트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쿠르크 칸의 유아보다 콩기라트 출신 어머니 부얀켈미슈를 둔 예순 테무르를 옹립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4]

하지만 무종의 아들이 더 강한 정통성을 지녔다고 생각한 세력이 많이 남아 있었고 이들은 태정제와 그 혈통의 통치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훗날 천력의 내란을 야기하게 된다.[3][4]

4. 3. 천력의 내란

원 태정제원 무종의 아들인 코실라와 툭테무르 대신 촌수가 멀었던 인물이었다. 이는 태후 다기와 테무데르의 세력이 무종의 아들들을 냉대했기 때문이었다.[3] 또한 태후가 콩기라트 출신이었던 것에 비해 무종의 아들들은 콩기라트부 출신이 아니었고 태정제는 콩기라트부 출신 어머니 부얀켈미슈를 두었다는 점도 주요한 이유였다.[4]

하지만 무종의 아들이 더 강한 정통성을 지녔다고 생각한 세력이 많이 남아 있었고 이들은 태정제와 그 혈통의 통치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훗날 천력의 내란을 야기하게 된다.

5. 평가

남파의 변은 원나라의 권력 투쟁과 정치적 불안정을 보여주는 사건이다.[3][4] 이 사건은 영종의 개혁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게겐 칸(영종)에게는 아들이 없었기에, 새로운 칸은 다른 황통에서 선택해야만 했다. 게겐 칸과 혈통이 가깝고 가장 유력한 칸 후보는 카이산의 유아인 코실라(후의 명종)와 토크 테무르(후의 문종)였지만, 테크시 등이 실제로 옹립한 것은 다소 먼 친척인 진왕 (지논) 예순 테무르였다.

이는 쿠르크 칸의 유아를 냉대했던 것이 다기-테무데르 세력이었고, 그 잔당인 테크시 등이 칸으로 옹립하더라도 과거의 원한으로 인해 보복 인사가 행해질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콩기라트부 출신인 다기의 밑에서 융성한 테크시 등으로서는 비콩기라트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쿠르크 칸의 유아보다 콩기라트 출신 어머니 부얀켈미슈를 둔 예순 테무르를 옹립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쿠르크 칸의 유아를 정통으로 생각하는 세력은 다수 남아 있었고, 그들은 예순 테무르의 혈통에 의한 통치를 탐탁지 않아 하여, 그의 사후에 천력의 내란을 일으키게 된다.

6. 개요

참조

[1] 서적 元史
[2] 서적 元史
[3] 서적
[4]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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