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와군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다가와군은 일본 후쿠오카현에 위치했던 군이다. 1960년대까지 지쿠호 탄전의 석탄 생산지로 발전하여 기타큐슈시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나, 에너지 혁명으로 석탄 수요가 감소하면서 쇠퇴했다. 1878년 행정 구역으로 발족했으며, 현재는 다가와시를 포함한 7개의 정과 촌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6년 아카이케정, 가네다정, 호조정이 합병하여 후쿠치정이 발족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부젠국의 군 - 미야코군 (후쿠오카현)
미야코군은 후쿠오카현에 위치하며, 고대 지명 유래와 지쿠호 탄전 관련 시설 설치를 거쳐 현재 간다정과 미야코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 가마시의 역사 - 가호군
가호군은 1896년 가마군과 호나미군을 통합하여 발족한 후쿠오카현의 군으로, 여러 차례의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 현재는 이이즈카시, 가마시, 게이센촌 지역을 관할한다. - 가마시의 역사 - 오구마정
오구마정은 1889년 후쿠오카현 가호군에서 4개 촌이 통합되어 오구마촌으로 성립 후 정으로 승격되었으나, 1955년 다른 촌들과 합병하여 가호정이 되면서 소멸되었고 현재는 가호정에 속하며 JR 큐슈 가미야마다 선의 오쿠마역이 위치한다.
다가와군 | |
---|---|
개요 | |
국가 | 일본 |
지방 | 규슈 지방 |
현 | 후쿠오카현 |
행정 구역 | |
정 | 가와라정 가와사키정 소에다정 오토정 아카촌 후쿠치정 이토다정 |
통계 | |
면적 | 338.16 km² |
인구 | 87,240명 (2005년) |
지리 | |
위치 | 후쿠오카현 동부 |
역사 | |
설립 | 1896년 2월 26일 |
2. 역사
지쿠호 탄전은 1960년대까지 다가와 시와 다가와 군 지역의 주된 석탄 생산지였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석탄은 기타큐슈 공업 지대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로 인해 기타큐슈시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현재도 다가와시, 후쿠치정, 아카촌, 가와라정은 기타큐슈 도시권에 포함된다.[3]
에너지 혁명으로 석탄 수요가 급감하면서 번성했던 탄광 산업은 쇠퇴했다. 지쿠호 지방의 모든 탄광은 폐광되었고, 일부 자치단체는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과소화 현상을 겪었다. 탄광 부지에 공장 단지를 조성하고 기업 유치를 추진하고 있지만, 급격한 과소화와 인구 감소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부 자치단체는 재정난에 직면했으며, 1992년에는 아카이케정(현 후쿠치정)이 재정 재건 단체로 지정되어 행정이 파탄 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3]
- 메이지 초기에는 전 지역이 부젠국 고쿠라번의 영지였다. 구고구령취조장에 기재된 메이지 초기 마을은 다음과 같다.(1정 67촌)[3]
- 1867년 (게이오 3년) 3월 - 조슈 전쟁으로 고쿠라 번이 이전하여 가와라번이 된다.[3]
- 1870년 1월 25일 (메이지 2년 12월 24일) - 가와라 번이 이전하여 토요츠번이 된다.[3]
- 1870년 (메이지 3년) 6월 - 히코야마무라가 히타현 관할이 된다.(1정 68촌)[3]
- 1871년 (메이지 4년)[3]
- * 8월 29일 (7월 14일) - 폐번치현으로 토요츠현 관할이 된다.
- * 12월 25일 (11월 14일) - 제1차 현 통합으로 고쿠라현 관할이 된다.
- 메이지 초년(1정 70촌)[3]
- * 이토무라가 카미이토무라, 시모이토무라로 분할된다.
- * 니시유게타무라가 카미유게타무라, 시모유게타무라, 미타테무라로 분할된다.
- * 카미이카타무라·시모이카타무라가 합병하여 이카타무라가 된다.
- 1876년 (메이지 9년) 4월 18일 - 제2차 현 통합으로 후쿠오카현 관할이 된다.[3]
- 1878년 (메이지 11년) 11월 1일 - 군구정촌편제법 시행으로 타가와군이 발족, 군청은 가와라마치에 설치.[3]
- 1886년 (메이지 19년) - 하타무라가 이카타무라에 합병.(1정 69촌)[3]
- 1887년 (메이지 20년) - 정촌 통합이 이루어진다.(39촌)[3]
- * 가와라무라 ← 시모카와라무라, 가와라마치
- * 이타무라 ← 카미이타무라, 시모이타무라
- * 아카무라 ← 카미아카무라, 시모아카무라, 야마우라무라
- * 우치다무라 ← 고우치다무라, 오우치다무라
- * 이마닌하라무라 ← 카미이마닌무라, 시모이마닌무라, 쿠와바라무라
- * 다이교지무라 ← 야스나가무라, 아키나가무라, 세이코무라, 카키하라무라, 시라츠치무라, 모토마츠무라, 후쿠다무라
- * 츠노무라 ← 시모츠노무라, 카미츠노무라
- * 소에다이타무라 ← 소에다무라, 소에다마치, 이하라무라
- * 야스마키무라 ← 키시로무라, 야타쿠무라, 카미마자키무라, 시모마자키무라
- * 이노쿠니무라 ← 카네쿠니무라, 이노히자무라
- * 이토무라 ← 카미이토무라, 시모이토무라
- * 유게타무라 ← 카미유게타무라, 시모유게타무라, 미타테무라
- * 나라무라 ← 미야오무라, 고토지무라
- * 카와미야무라 ← 미야토코무라, 카와하라유게타무라
- * 이치바무라 ← 쿠사바무라, 이치즈무라
- * 마키무라, 신조무라, 이와세무라가 쇼무라에, 오쿠마무라가 이토다무라에, 미나미키무라가 칸자키무라에 각각 합병.
2. 1. 고대
엔기시키 신명장에는 다가와 군내의 시키나이샤 목록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사명 | 요미 | 격 | 비정사 | 소재지 |
---|---|---|---|---|
카라쿠니오키나가오오히메오오메노 미코토 신사 | 카라쿠니오키나카- | 소 | 카와라 신사 | 후쿠오카현 다가와군 카와라정 |
오시호네노 미코토 신사 | 오시호네노 | 소 | ||
토요히메노- 신사 | 토요히메노- | 소 |
위 표의 내용은 하위 섹션 "시키나이샤"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2. 1. 1. 시키나이샤
엔기시키 신명장에 기록된 군내의 시키나이샤. | ||||||
---|---|---|---|---|---|---|
사명 | 요미 | 격 | 부기 | 비정사 | 소재지 | 비고 |
다가와군 3좌(병소) | ||||||
카라쿠니오키나가오오히메오오메노 미코토 신사 | 카라쿠니오키나카- | 소 | 카와라 신사 | 후쿠오카현 다가와군 카와라정 | ||
오시호네노 미코토 신사 | 오시호네노 | 소 | ||||
토요히메노- 신사 | 토요히메노- | 소 |
2. 2. 근세 이후의 연혁
다가와 시역 및 군역은 1960년대까지 지쿠호 탄전의 석탄 생산지로서 발전했다. 석탄 채굴로 기타큐슈 공업지대의 발전을 담당했기 때문에 기타큐슈시와 강한 관계가 있으며, 현재에도 다가와시, 후쿠치정, 아카촌, 가와라정은 기타큐슈 도시권에 속한다.[3]그러나 에너지 혁명으로 석탄 수요가 감소하면서 이전까지 번창하던 탄광은 쇠퇴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지쿠호 지방의 탄광은 모두 폐광했고, 이에 따라 과소화로 인구가 반감한 자치체도 있었다. 현재는 탄광터의 공장 단지에 기업 유치를 진행시키고 있지만, 급속한 과소화와 인구 감소에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또 재정난에 직면하고 있는 자치체도 있어, 1992년에는 옛 아카이케정이 재정재건 단체에 들어가 행정이 파탄나는 사태를 불렀다.[3]
- 메이지 초년 시점에서는 전역이 부젠 고쿠라번의 영지였다. 구고구령취조장에 기재된 메이지 초년 시점의 마을은 다음과 같다.(1정 67촌)[3]
- 게이오 3년 3월(1867년) - 조슈 전쟁에 의해 고쿠라 번이 이전하여 가와라번이 된다.[3]
- 1870년 1월 25일 (메이지 2년 12월 24일) - 가와라 번이 이전하여 토요츠번이 된다.[3]
- 1870년 (메이지 3년) 6월 - 히코야마무라가 기립해 히타현의 관할이 된다.(1정 68촌)[3]
- 1871년 (메이지 4년)[3]
- * 8월 29일 (7월 14일) - 폐번치현에 의해 토요츠현의 관할이 된다.
- * 12월 25일 (11월 14일) - 제1차 현 통합에 의해 고쿠라현의 관할이 된다.
- 메이지 초년(1정 70촌)[3]
- * 이토무라가 분할되어 카미이토무라, 시모이토무라가 된다.
- * 니시유게타무라가 분할되어 카미유게타무라, 시모유게타무라, 미타테무라가 된다.
- * 카미이카타무라·시모이카타무라가 합병하여 이카타무라가 된다.
- 1876년 (메이지 9년) 4월 18일 - 제2차 현 통합에 의해 후쿠오카현의 관할이 된다.[3]
- 1878년 (메이지 11년) 11월 1일 - 군구정촌편제법의 후쿠오카현에서의 시행에 의해, 행정 구역으로서 타가와군이 발족. 군청이 가와라마치에 설치.[3]
- 1886년 (메이지 19년) - 하타무라가 이카타무라에 합병.(1정 69촌)[3]
- 1887년 (메이지 20년) - 이하의 정촌의 통합이 이루어진다.(39촌)[3]
- * 가와라무라 ← 시모카와라무라, 가와라마치
- * 이타무라 ← 카미이타무라, 시모이타무라
- * 아카무라 ← 카미아카무라, 시모아카무라, 야마우라무라
- * 우치다무라 ← 고우치다무라, 오우치다무라
- * 이마닌하라무라 ← 카미이마닌무라, 시모이마닌무라, 쿠와바라무라
- * 다이교지무라 ← 야스나가무라, 아키나가무라, 세이코무라, 카키하라무라, 시라츠치무라, 모토마츠무라, 후쿠다무라
- * 츠노무라 ← 시모츠노무라, 카미츠노무라
- * 소에다이타무라 ← 소에다무라, 소에다마치, 이하라무라
- * 야스마키무라 ← 키시로무라, 야타쿠무라, 카미마자키무라, 시모마자키무라
- * 이노쿠니무라 ← 카네쿠니무라, 이노히자무라
- * 이토무라 ← 카미이토무라, 시모이토무라
- * 유게타무라 ← 카미유게타무라, 시모유게타무라, 미타테무라
- * 나라무라 ← 미야오무라, 고토지무라
- * 카와미야무라 ← 미야토코무라, 카와하라유게타무라
- * 이치바무라 ← 쿠사바무라, 이치즈무라
- * 마키무라, 신조무라, 이와세무라가 쇼무라에, 오쿠마무라가 이토다무라에, 미나미키무라가 칸자키무라에 각각 합병.
2. 3. 지쿠호 탄전과 다가와
지쿠호 탄전은 1960년대까지 다가와 시와 다가와 군 지역의 주된 석탄 생산지였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석탄은 기타큐슈 공업지대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로 인해 기타큐슈시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현재도 다가와시, 후쿠치정, 아카촌, 가와라정은 기타큐슈 도시권에 포함된다.하지만 에너지 혁명으로 인해 석탄 수요가 급감하면서, 번성했던 탄광 산업은 쇠퇴하게 되었다. 지쿠호 지방의 모든 탄광은 폐광되었고, 이로 인해 일부 자치단체는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과소화 현상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탄광 부지에 공장 단지를 조성하고 기업 유치를 추진하고 있지만, 급격한 과소화와 인구 감소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일부 자치단체는 재정난에 직면했으며, 1992년에는 아카이케정 (현 후쿠치정)이 재정 재건 단체로 지정되어 행정이 파탄 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8]
2. 4. 현대의 변화
다가와 시역 및 군역은 1960년대까지 지쿠호 탄전의 석탄 생산지로서 발전했다. 석탄 채굴로 기타큐슈 공업 지대의 발전을 담당했기 때문에 기타큐슈시와 강한 관계가 있으며, 현재도 다가와시, 후쿠치정, 아카촌, 가와라정은 기타큐슈 도시권에 속해 있다.[8] 그러나 에너지 혁명으로 석탄 수요가 감소하면서 이전까지 번창하던 탄광은 쇠퇴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는 지쿠호 지방의 탄광은 모두 폐광했고, 이에 따라 과소화에 의해 인구가 반감한 자치체도 있었다. 현재는 탄광터의 공장 단지에 기업 유치를 진행시키고 있지만, 급속한 과소화와 인구 감소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또 재정난에 직면하고 있는 자치체도 있어 1992년에는 옛 아카이케정(후쿠치정)이 재정 재건 단체에 들어가 행정이 파탄하는 사태를 불렀다.[8]3. 행정 구역
1878년(메이지 11년) 행정 구역으로 발족 당시 군역은 다가와시 전역과 가마시 일부(이노쿠니)에 해당한다.
3. 1. 정/촌
1878년 (메이지 11년)에 행정 구역으로 발족할 당시 군역은 위에 적힌 6개 정(町)과 1개 촌(村) 외에 아래의 구역에 해당한다.- 다가와시 전역
- 가마시 일부 (이노쿠니)
3. 2. 합병 역사
정(町) 시행가와라정
정(町) 개칭
고토지정
다가와시
정(町) 시행
이다정에 편입
다가와시에 편입
(이토・이나쿠 일부)
야마다시에 편입
(이나쿠 일부)
소에다촌
정(町) 시행
소에다정
소에다정에 편입
정(町) 개칭
가네다정
후쿠치정
정(町) 개칭
아카이케정
정(町) 시행
정(町) 시행
가와사키촌에 편입
정(町) 시행
정(町) 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