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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 라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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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라 라첸은 1918년 독일에서 태어난 육상 선수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여자 높이뛰기에서 4위를 기록했다. 1938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이후 성별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열차에서 '여장 남자'로 신고되어 조사를 받았고, 의학적 검사 결과 남성으로 판명되었다. 나치 독일의 강요로 여성으로 위장하여 대회에 참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며, 이후 하인리히 라첸으로 개명하고 남성으로 정정했다. 2008년 사망하기 전까지 과거에 대한 언급을 피했으며, 그의 사례는 성별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사회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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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 라첸
기본 정보
헤르만 라치엔, alias
도라 라치엔 (하인리히 라치엔)
본명 (출생 시)도라 라치엔
개명 후 이름하인리히 라치엔
별칭해당 사항 없음
국적독일국 (1919년~1933년) → 독일 연방 공화국 → 독일
종목높이뛰기
소속VfB 코메트, 브레멘 (독일)
출생일1918년 11월 20일
출생지독일 제국 브레멘
사망일2008년 4월 22일
사망지해당 사항 없음
175cm
몸무게59kg
개인 최고 기록높이뛰기: 1m 70cm (1938년)
메달 기록
소속 국가독일
스포츠여자 육상 경기
대회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
실격1938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여자 높이뛰기

2. 어린 시절과 초기 경력

도라 라첸은 1918년 독일 브레멘 근처 에리히스호프에서 태어났다.[4] 그의 아버지는 음식점 주인이었던 하인리히 라첸이었으며, 도라는 다섯 번째 아이였다.[10] 출생 당시 산파는 처음에 "사내아이입니다"라고 외쳤으나, 잠시 후 아기의 생식기를 보고 "여자아이입니다"라고 말을 바꾸었다.[4][10] 이에 따라 아기는 당시 독일에서 흔한 여자 이름인 '도라'로 세례를 받았다.[4][10]

라첸은 여자아이로 길러졌고, 어린 시절 내내 여자아이 옷을 입었다.[4] 생후 9개월 무렵, 아팠던 라첸의 생식기를 검사한 의사는 "그냥 둬. 어쨌든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했으며,[4] 아버지의 요청에 따른 다른 진단에서도 의사는 단순히 치료할 수 없다고만 언급했다.[10] 라첸은 10살이나 11살 때부터 자신이 남성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지만, 왜 남자인데도 여자 옷을 입어야 하는지 부모에게 묻지는 않았다고 훗날 진술했다.[4]

성장하면서 라첸은 스포츠에 관심을 보였고, 특히 높이뛰기에 재능을 보여 학교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했다.[10] 십 대가 되어서는 여자 선수로서 성공적으로 대회에 참가했지만, 자신의 신체적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부끄러워했던 것으로 보인다.[4]

1937년 독일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로 우승하는 라첸


17세였던 1936년, 라첸은 독일 대표로 베를린 올림픽 여자 높이뛰기 종목에 출전하여 1.58m를 기록하며 17명의 선수 중 4위에 올랐다.[10] 당시 팀 동료였던 그레텔 베르그만은 훗날 라첸이 공동 샤워실에서 절대 알몸을 보이지 않아 동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의 성별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회상했다.[4] 1937년에는 독일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1.63m의 기록으로 우승했다.[4]

1938년에는 오스트리아 에서 열린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 여자 높이뛰기 종목에 참가하여 1.7m의 세계 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다.[11]

라첸의 삶에 대한 1938년과 1939년의 조사 결과는 2009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의해 공개되었다.[4]

3. 성별 논란과 강제 커밍아웃

라첸은 출생 당시 산파가 처음에는 아들로 판단했다가 딸로 정정하면서 '도라'라는 이름으로 여자아이로 길러졌다.[4] 어린 시절 의사가 그의 생식기를 검사한 후 "어쨌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4] 라첸 자신은 10살 무렵 자신이 남성임을 인지했지만, 여자 옷을 입는 것에 대해 부모에게 묻지 못했다고 진술했다.[4]

1938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 여자 높이뛰기에서 1.7m의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으나,[11][2] 영국의 도로시 타일러-오덤과 같은 경쟁 선수들은 그의 성별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다. 오덤은 라첸이 실제로는 남성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세계 기록 반환을 요구했고, 이후 라첸이 남성임이 밝혀지자 기록을 되찾았다.[3]

성별 논란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1938년 9월 21일, 유럽 선수권 대회가 끝난 직후였다. 라첸이 에서 쾰른으로 가는 특급 열차에 탑승했을 때, 열차 차장이 마그데부르크역에서 "여장한 남자가 열차에 타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4][12] 라첸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고, 처음에는 여성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시했지만 결국 자신이 남성임을 인정하고 간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길러진 사정을 설명했다.[4][12]

소환된 내과 의사는 검진 결과 라첸이 남성이라고 명확히 판정했다. 의사는 라첸의 생식기에 대해 "음경 부분의 선단에서 후부에 이르기까지 찢어진 틈새 모양의 거친 흉터성 상처"가 있으며, 이 상태로는 성관계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소견을 밝혔다.[4][12] 출생 당시 라첸의 음경음낭이 중간 부분에서 나뉘어 보였고, 고환은 복강 내에 숨겨져 있어(정류고환), 산파가 외음부에 비정상적으로 긴 클리토리스를 가진 여자아이로 오인했던 것으로 추정된다.[12]

라첸은 체포되어 호헨리헨 스포츠 요양소에서 추가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동일했다.[4] 1939년 3월, 검찰은 라첸이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 한 의도가 없었으므로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라첸은 스포츠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고, 그의 아버지는 당국에 라첸의 법적 성별을 남성으로 변경하고 이름을 '하인리히'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라첸이 획득했던 금메달은 반환되었고 그의 기록은 공식적으로 삭제되었다.[4][5]

3. 1. 나치 연루설과 반박



1966년, ''타임''지는 1957년 헤르만 라첸(당시 도라 라첸)이 브레멘에서 웨이터로 일하던 중, "나치에 의해 '독일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여자로 가장하도록 강요받았다"고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다고 보도했다.[6] 기사에 따르면 헤르만은 "3년 동안 나는 여자로 살았다. 매우 지루했다"고 말했다고 한다.[6]

2009년 개봉한 영화 베를린 36은 ''타임''지의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허구적인 이야기를 다루었다.[7] 영화에서는 나치유대인 선수인 그레텔 베르그만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라첸을 투입하여 베르그만을 대체했다고 묘사한다.[7] 그러나 영화 개봉 후 베르그만 본인은 라첸의 행동 동기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었다"고 밝혔다.[8]

그러나 ''슈피겔''은 2009년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라첸이 나치의 도구였다는 주장에 대해 강하게 의문을 제기했다.[4] ''슈피겔''은 ''타임''지의 보도가 라첸과의 실제 인터뷰에 기반했는지 불분명하며, 기사 내용이 빈약하고 부정확하다고 지적했다.[4] 또한, 라첸 사건을 연구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하며 영화 베를린 36의 묘사가 사실과 다르다고 비판했다. 스포츠 작가 볼커 클루게는 "사용 가능한 문서를 바탕으로, 나치가 올림픽을 위한 '비밀 무기'로 도라 라첸을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평가했으며,[4] 역사학자 베르노 바흐로 역시 영화 내용과 실제 역사 사이의 "명확한 편차"를 지적하며 영화 제작자들에게 '실화'라는 홍보 문구를 사용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고 전했다.[4] 이러한 연구들은 나치가 라첸을 의도적으로 이용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찾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4. 이후의 삶

1938년과 1939년에 걸쳐 라첸의 사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관련 파일은 2009년 슈피겔을 통해 공개되었다.[4] 장기간의 조사 끝에, 라첸은 금전적 이득을 위한 부정행위에 연루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나치 독일 체제 하에서의 피해자로 여겨진다. 검찰은 "금전적 보상을 얻으려는 의도가 없었으므로 사기 행위는 간주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4] 이에 따라 라첸은 스포츠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1939년 3월 29일, 아버지 하인리히 라첸의 요청에 따라 등기소의 성별 기록이 정정되었고, 이름도 공식적으로 "하인리히 라첸"으로 변경되었다.[4] 그가 획득했던 1938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 금메달은 반환되었고, 그의 이름은 기록에서 삭제되었다.[4][5]

이후 하인리히 라첸(하인츠라는 애칭으로도 불림)은 새로운 신분증과 작업 서류를 발급받고 제국노동봉사단에 의해 하노버로 보내져 일했다. 그는 나중에 고향인 브레멘으로 돌아와 부모님의 바(bar) 운영을 맡았으며, 2008년 사망할 때까지 언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며 과거에 대해 침묵했다.[4]

그러나 1966년, 타임은 라첸이 1957년에 '헤르만'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나치 정권에 의해 독일의 명예를 위해 여성으로 가장하도록 강요받았다고 눈물로 고백했다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6] 이 이야기는 2009년 영화 《베를린 36》(Berlin 36)에서 허구적으로 각색되어 다루어졌다. 이 영화는 나치가 유대인 선수인 그레텔 베르크만 대신 라첸을 올림픽에 출전시키려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7][13][14]

하지만 슈피겔은 타임 보도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라첸이 나치의 도구였다는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슈피겔은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하며, 영화 《베를린 36》의 묘사가 실제 기록과 다르며, 나치가 라첸을 의도적으로 올림픽 '비밀 무기'로 이용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4]

5. 사회적 영향과 유산

도라 라첸 사건은 당시 스포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이후 선수들의 성별을 확인하는 성별 검사 정책 도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은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특히 간성(Intersex) 선수의 존재와 그들의 인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국제 스포츠 기구들은 라첸 사건 이후 성별 검사 정책을 도입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해왔지만, 검사의 정확성, 윤리성, 선수 인권 침해 가능성 등 여러 측면에서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스포츠 영역에서 성 정체성과 성별 다양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복잡한 과제를 안겨주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으며, 특히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는 성소수자의 권익 보호와 차별 해소를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스포츠계에서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거나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라첸과 같은 선수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반복하지 않고 모든 선수가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5. 1. 현대적 관점

도라 라첸의 사례는 현대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성별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1] 그의 삶은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성 정체성의 존재를 보여주며, 특히 간성(Intersex)을 포함한 모든 성별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포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2]

나아가 라첸의 경험은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혐오의 문제를 성찰하게 한다.[3] 그의 사례는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모든 개인이 동등한 인권과 존엄성을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4] 이를 위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해소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5]

참조

[1] 서적 The Book of Olympic Lists https://archive.org/[...]
[2] 웹사이트 Dora Ratjen https://web.archive.[...] 2010-08-31
[3] 뉴스 Dorothy Tyler: High jumper who met Hitler then became the first British woman to win an individual Olympic medal in athletics https://www.independ[...] 2014-09-30
[4] 뉴스 How Dora the Man Competed in the Woman's High Jump http://www.spiegel.d[...] Der Spiegel 2009-09-15
[5] 뉴스 Caster Semenya expected to be affected by IAAF rule changes https://www.bbc.co.u[...]
[6] 간행물 Track & Field: Preserving la Difference https://web.archive.[...] Time 1966-09-16
[7] 뉴스 Berlin 36 tells how Nazis replaced Jewish woman athlete for man in drag http://www.timesonli[...] The Times 2009-09-03
[8] 뉴스 The Jewish jumper and the male impostor http://news.bbc.co.u[...] BBC News 2009-09-09
[9] 문서 彼の名については、ヘルマン・ラチエン(Hermann Ratjen)、またはホルスト・ラチエン(Horst Ratjen)とも誤って報道されている。
[10] 웹사이트 Athletics at the 1936 Berlin Summer Games:Women's High Jump http://www.sports-re[...]
[11] 문서 後日このメダルは剥奪され、[[ハンガリー]]代表の[[イボヤ・チャーク]]が真の金メダリストとなった。
[12] 웹사이트 1936 Berlin Olympics How Dora the Man Competed in the Woman's High Jump http://www.spiegel.d[...]
[13] 웹사이트 Berlin'36公式サイト http://www.berlin36.[...]
[14] 문서 映画内での役名は「マリー・ケッテラー(Marie Ketteler)」となっている。[[ベルリン]]出身の男優{{仮リンク|ゼバスティアン・ウルツェンドフスキ|de|Sebastian Urzendowsky}}がこの役を演じた。
[15] 뉴스 How Dora the Man Competed in the Woman's High Jump http://www.spiegel.d[...] 슈피겔 200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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