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렁큰 타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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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렁큰 타이거는 타이거 JK와 DJ 샤인으로 결성된 대한민국의 힙합 듀오로, 1999년 데뷔하여 2018년 마지막 앨범을 끝으로 20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2000년 DJ James Jhig가 합류하고 2집부터 MQ, Roscoe Umali가 객원 멤버로 참여했으며, 2005년 DJ 샤인이 탈퇴하면서 타이거 JK의 솔로 체제로 활동했다. 2007년 횡단성 척수염 진단을 받았으나 2008년 '8:45 Heaven'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힙합 노래상을 수상했다. 2009년 8집 'Feel gHood Muzik'은 라킴 등이 참여하여 10만 장 이상 판매되었으며, 서울가요대상 음반 대상과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힙합 앨범상을 수상했다. 2018년 마지막 앨범 'Drunken Tiger X : Rebirth Of Tiger JK'를 발매하며 활동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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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샤인은 뉴욕 주립 대학교 출신 음악가로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한국 힙합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고, 'Year of The Tiger'와 '뿌리' 등 여러 앨범을 발매하며 한국 힙합 초기 시장 개척과 장르 발전에 기여했다. - 드렁큰 타이거의 음반 - 타이거 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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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렁큰 타이거 - [음악 그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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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드렁큰 타이거 |
로마자 표기 | Deureongkeun taigeo |
영어 이름 | Drunken Tiger |
별칭 | DT |
국적 | 대한민국 미국 |
장르 | 한국 힙합 |
활동 기간 | 1999년 – 2018년 |
관련 활동 | 무브먼트 CB매스 김진표 라킴 랍티미스트 더 콰이엇 화나 DJ 프리즈 Ann MQ 타이거 JK DJ 샤인 The Movement MFBTY 윤미래 Bizzy |
웹사이트 | 대한민국 공식 웹사이트 미국 공식 웹사이트 일본 공식 웹사이트 |
이전 구성원 | |
레이블 |
2. 변화 과정
1998년, 한국계 미국인 래퍼 타이거 JK와 DJ 샤인은 힙합 듀오 드렁큰 타이거를 결성했다. 이듬해인 1999년 한국에서 첫 번째 앨범 ''Year of the Tiger''를 발매했는데, 당시 노골적인 가사와 주류 K-pop의 규범을 따르지 않는 모습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드렁큰 타이거는 직접 가사를 쓰고 기성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으며, 안무 없이 활동했다. 그럼에도 싱글 "I Want You"와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큰 인기를 얻어 현재 한국 힙합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2000년 발매된 2집 ''The Great Rebirth''부터는 DJ James Jhig(DJ 섀그)[9], 미키 아이즈, 로스코 우말리가 새 멤버로 합류했으며, 무브먼트의 객원 멤버였던 MQ도 참여했다. 이 앨범은 음악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그룹을 한국에서 "최초의 상업적으로 성공한 진정한 힙합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10] 하지만 같은 해, 타이거 JK는 1999년 메스암페타민 사용 혐의로 체포되는 시련을 겪었다. 그는 한국 내에서의 사용은 부인하며 힙합 그룹 업타운 멤버들의 허위 증언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 달 반 수감 후 2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10] 한때 방송 출연이 금지되기도 했으나, 항소 후 금지 조치가 해제되어 2001년 3집 ''The Legend Of...''를 발매할 수 있었다.
3집의 싱글 "Good Life"는 큰 성공을 거두며 여러 주 동안 음악 차트 1위를 차지했고,[11] 드렁큰 타이거는 2001 Mnet 뮤직 비디오 페스티벌에서 베스트 힙합 퍼포먼스 상, 2001년 서울가요대상에서 힙합/랩 상을 수상했다.[12] 이후 2003년 4집 ''Foundation'', 2004년 5집 ''One Is Not A Lonely Word''를 연이어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기 드렁큰 타이거는 일본, 중국, 대만 등 해외에서도 공연하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였다.[13][14][15]
5집 앨범 ''One Is Not A Lonely Word''에서는 DJ 샤인이 "백만 인의 콘서트" 단 한 곡에만 참여했고, 앨범은 거의 타이거 JK 혼자 작업하여 그의 솔로 앨범 성격이 강했다. 결국 2005년, 6집 앨범 발매 전에 DJ 샤인이 공식적으로 팀을 탈퇴하면서 드렁큰 타이거는 타이거 JK의 1인 체제로 재편되었다.
2009년에는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남자 가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3년, 타이거 JK는 아내인 윤미래, 동료 래퍼 비지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MFBTY를 결성하여 "Sweet Dream"을 발표했다.[23][24] 같은 해 세 사람은 정글 엔터테인먼트를 나와 타이거 JK가 설립한 새 레이블 필굿뮤직으로 이적했고, '드렁큰 타이거 ft. 윤미래, 비지' 명의로 앨범 ''The Cure''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한국 케이팝 핫 100 차트 6위에 올랐으며, 당시 암 투병 중이던 타이거 JK의 아버지를 위해 만들어졌다.[25][24]
2015년에는 MFBTY 이름으로 앨범 ''Wondaland''를 발표해 다음 뮤직 차트 상위권을 휩쓸고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8위에 오르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23][24] 이후 타이거 JK는 아들이 '드렁큰(drunken)'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아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 사용을 줄였다고 밝히기도 했다.[23][24]
2018년, 드렁큰 타이거는 10번째 정규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Drunken Tiger X: Rebirth of Tiger JK''를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윤미래, 비지를 비롯해 도끼, 은지원, RM, 주노플로 등 여러 아티스트가 참여했으며,[26] 이 앨범을 끝으로 드렁큰 타이거는 20년간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다.
2. 1. DJ 샤인의 탈퇴
1999년, 타이거 JK와 함께 드렁큰 타이거를 결성한 DJ 샤인은 그룹 활동 이전부터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2003년 드렁큰 타이거 4집 앨범 ''Foundation'' 활동 이후 갑작스럽게 그룹을 탈퇴했으며, 2004년 발매된 5집 앨범 ''One Is Not A Lonely Word''에서는 단 한 곡에만 참여했다.DJ 샤인의 탈퇴 사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다. 어머니의 병환, 음악적인 회의감, 평소 관심이 많았던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 등이 대표적인 추측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가 드렁큰 타이거를 떠난 정확한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2009년 6월 11일에 방송된 MBC 라디오 스타에서는 힙합 그룹 에픽하이가 출연하여 드렁큰 타이거의 노래를 최고의 힙합 곡으로 선정했다. 이때 MC 김구라는 "드렁큰 타이거에서 왜 DJ 샤인이 탈퇴한지 아느냐"며, 멤버 중 타이거 JK가 DJ 샤인보다 인기가 많은 것이 탈퇴의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에 윤종신, 김국진, 신정환 등 다른 MC들이 정보의 출처를 묻자 김구라는 "무명의 정보원이 알려주었다"고 얼버무렸다.[44]
결과적으로 드렁큰 타이거는 5집 앨범부터 DJ 샤인 없이 타이거 JK 1인 체제로 활동하게 되었다.
3. 결성 전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당시, 흑인 래퍼 아이스 큐브는 'Black Korea'라는 곡을 통해 흑인들을 상대로 장사하면서도 그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 한국인들에 대한 불만을 표현했다.[16]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흑인 MC와 DJ들이 주로 참여하는 힙합 페스티벌 공연장에 한국인 래퍼가 소개되자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나왔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타이거 JK는 이에 맞서 한국을 무시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은 "Call me Tiger"라는 곡으로 즉흥 랩을 선보여 상을 받았다. 이 공연장에서 타이거 JK는 또 다른 한국인인 DJ 샤인을 만났다. DJ 샤인 역시 뉴욕의 여러 클럽에서 DJ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한국인인지 몰랐으나, 같은 한국인임을 알게 된 후 빠르게 친해져 힙합 그룹 결성을 구상하게 되었다.
4. 주요 사건
1998년, 한국계 미국인 래퍼 타이거 JK와 DJ 샤인은 듀오 드렁큰 타이거를 결성했다. 이들은 대학 시절 라디오 힙합 콘테스트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고, 한국 방문 중 공연이 관계자의 눈에 띄어 1999년 첫 앨범 ''Year of the Tiger''를 발매하며 데뷔했다. 당시 이 앨범은 노골적인 가사와 주류 K-pop의 규범을 거부하는 태도로 논란을 일으켰다. 드렁큰 타이거는 직접 가사를 쓰고 기성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으며, 안무 없이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앨범의 싱글 "I Want You"와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현재 한국 힙합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2000년, 드렁큰 타이거는 두 번째 앨범 ''The Great Rebirth''를 발매하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9] 이 앨범은 드렁큰 타이거를 한국 최초의 상업적으로 성공한 본격적인 힙합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10] 그러나 같은 해, 타이거 JK는 메스암페타민 사용 혐의로 구속되는 시련을 겪었다. 그는 혐의를 부인했고, 팬들과 동료들의 지지 속에 활동을 재개했다.[10][42] (자세한 내용은 #업타운과 마약 사건 참조)
2001년 발매된 세 번째 앨범 ''The Legend Of...,''는 드렁큰 타이거의 가장 성공적인 앨범 중 하나로 꼽힌다. 싱글 "Good Life"는 큰 인기를 얻으며 여러 주 동안 음악 차트 1위를 차지했고,[11] 그들은 2001 Mnet 뮤직 비디오 페스티벌에서 베스트 힙합 퍼포먼스 상, 2001년 서울가요대상에서 힙합/랩 상을 수상했다.[12]
2003년 4집 ''Foundation''과 2004년 5집 ''One Is Not A Lonely Word''를 연이어 발매했다. 5집 앨범부터는 DJ 샤인이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게 되면서 타이거 JK 1인 체제로 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기 드렁큰 타이거의 인기는 국제적으로 확장되어 일본, 중국, 대만 등 여러 국가에서 공연하며 팬층을 넓혔다.[13][14][15]
2006년, 타이거 JK는 희귀병인 척수염 진단을 받고 힘겨운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병마와 싸우면서도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윤미래의 간호 속에 병세를 극복해 나갔다.[45] (자세한 내용은 #척수염 투병 참조)
2009년 6월, 8집 발매를 앞두고 전설적인 래퍼 라킴, Dilated Peoples의 Rakaa, 일본의 Zeebra 등 해외 유명 래퍼들과의 협업 소식이 알려지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앨범 작업에 참여하며 드렁큰 타이거의 음악에 힘을 실어주었다.[46] (자세한 내용은 #라킴과의 콜라보 참조) 같은 해, 드렁큰 타이거는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남자 가수상을 수상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2013년, 타이거 JK는 소속사 동료이자 아내인 윤미래, 그리고 래퍼 비지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MFBTY를 결성하여 "Sweet Dream"을 발표하며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23][24] 그해 말, 세 사람은 타이거 JK가 운영하던 정글 엔터테인먼트를 떠나 새로운 레이블 필굿뮤직을 설립했다. 9월에는 드렁큰 타이거 ft. 윤미래, 비지 명의로 앨범 ''The Cure''를 발매했는데, 이 앨범은 당시 암 투병 중이던 타이거 JK의 아버지에게 헌정되었다.[25][24]
2018년, 타이거 JK는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앨범인 ''Drunken Tiger X: Rebirth of Tiger JK''를 발매했다. 이 앨범에는 윤미래, 비지를 비롯해 도끼, 은지원, RM, 주노플로 등 다양한 세대의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하여 드렁큰 타이거의 마지막을 기념했다.[26] 이로써 1999년부터 한국 힙합의 상징적인 이름이었던 드렁큰 타이거의 활동은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
4. 1. 업타운과 마약 사건
2000년 5월, 타이거 JK는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을 흡입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는 당시 마약 혐의로 이미 구속 기소된 업타운 멤버가 "JK와 함께 수 차례 필로폰을 흡입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었다.[42] 타이거 JK는 과거 마약을 사용한 적은 인정했으나, 1999년으로 특정된 혐의 시점에는 한국에 없었다고 주장하며 혐의 사실을 강력히 부인했고, 실제로 소변 및 모발 검사에서도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5월 4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36일간 수감되었고, 6월 8일 보석으로 풀려났다.[42] 타이거 JK는 이 과정에서 업타운 멤버들의 허위 증언으로 인해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했다.[10]이 사건은 국내 힙합계는 물론 미국 힙합 사회에서도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구속 당시 팬들은 타이거 JK의 부친이자 음악 평론가인 서병후와 함께 구명 운동 및 항의 집회를 열었다. 세계적인 인터넷 방송국 'Heavy.com'은 'Free JK'라는 제목의 3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으며, 외국의 여러 힙합 잡지들도 관련 특집 기사를 게재했다. 또한, 우 탱 클랜과 교류하던 캐패도나 등 유명 힙합 가수들이 'Free JK'라는 싱글을 발표하며 국제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우팸'(우 탱 클랜과 친분이 있는 뮤지션 및 팬 그룹)이 국내에 우 탱 클랜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Free JK'가 우 탱 클랜의 곡이라는 오해가 퍼지기도 했다.
드렁큰 타이거 측은 업타운 멤버가 거짓 증언을 했다고 자백한 녹취 테이프를 확보하고 있었으나, 타이거 JK의 무죄가 입증되자 이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타이거 JK는 이 사건을 겪으며 "미국은 죄가 입증되기 전까지 무죄이지만 한국은 무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유죄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유죄 추정의 원칙이 만연한 듯한 당시 한국 사법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43]
결국 타이거 JK는 유죄 판결을 받고 2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10] 이로 인해 드렁큰 타이거는 2년 동안 공영 매체 출연이 금지되었으나, 항소 끝에 금지 조치가 해제되어 2001년 세 번째 앨범을 발매하며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10]
4. 2. 척수염 투병
2006년 2월, 타이거 JK는 100만 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는 희귀병인 척수염 진단을 받으며 큰 고비를 맞았다. 처음에는 단순 허리디스크로 여겼으나, 발가락이나 다리에 감각이 없고 체온이 급상승하는 등 이상 증세를 느껴 병원을 찾았고 척수염 판정을 받았다.척수염으로 인해 신경이 마비되었으며, 치료를 위해 복용한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으로 2주 만에 체중이 30~40kg 가량 급격히 증가하기도 했다. 당시 소속사나 가족조차 그의 투병 사실을 몰랐으며, 마비 증세가 심해 지팡이 없이는 걷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타이거 JK는 투병 중에도 무브먼트 공연 활동을 이어갔다. 몸을 움직이면 뼈가 약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꾸준히 물을 마시고 의정부 시내를 걸어 다니는 등 회복을 위해 노력하며 병세가 점차 호전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 연인이었던 윤미래의 간호가 큰 힘이 되었다.
현재 척수염은 완치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약을 복용하고 있다. 또한 단어는 떠오르지만 말로 잘 나오지 않는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알려졌다.[45]
4. 3. 라킴과의 콜라보
2009년 6월, 드렁큰 타이거의 8집 발매를 앞두고 라킴, Dilated Peoples의 Rakaa, 일본의 랩퍼 Zeebra 등 해외 유명 랩퍼들이 참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한국 힙합계가 크게 주목했다. 특히 이들은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고 흔쾌히 앨범에 참여해 주어 더욱 화제가 되었다.다음은 타이거 JK와 협업한 라킴이 타이거 JK와 한국 힙합 팬들에게 전해온 편지 내용이다.
:"타이거 JK는 힙합 음악과 그 운동에서, 나와 똑같은 좁은 길을 나란히 개척해가는 친구!"
:"나는 언제나 의식 있는 눈으로, 세계를 내다보는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였습니다. 나는 그동안 콜레보는 많이 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콜레보를 할 때에는 나와 똑같은 좁은 길을 걷고 있는 아티스트를 찾습니다. 타이거 JK가 바로 그런 친구입니다. 우리는 지금 육체적으로는 서로 지구의 반대편 끝에 있지만, “힙합 - 그 음악과 그 운동”을 보는 방식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서로 꼭 같이 나란히 가고 있습니다."
:"나는 뉴욕 아티스트이지만 글로벌한 안목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그리고 아시아에서, 언제나 엄청나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들이 내 메시지를 듣고 있다면, 나도 그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따라서 당신이 올바른 기회를 찾아 무언가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무언가 되돌려 줄 수 있을 때, 나도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던져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십시오.[46]
5. 음반 목록
드렁큰 타이거는 1999년 1집 ''Year of The Tiger''로 데뷔한 이래, 2018년 ''Drunken Tiger X: Rebirth Of Tiger JK''까지 총 10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했다. 또한, 《1999 대한민국》, 《2002 대한민국》 등의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고 여러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다.[27][28][29][30][31][32][33][34][35][36][37]
자세한 음반 정보는 아래 하위 섹션을 참고할 수 있다.
5. 1. 정규 음반
[27][28](with 윤미래 & Bizz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