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튼카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라튼카는 우크라이나어의 라틴 문자 표기법을 의미하며, 19세기부터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다. 요셉 워진스키와 프란츠 미클로시치를 비롯한 인물들이 라틴 문자 도입을 시도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치하의 갈리치아에서 라틴 문자 사용이 장려되기도 했다.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시기에는 라틴 문자 적용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공식적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2000년에는 지도제작위원회 등에서 몇몇 라틴카가 소개되었으며,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는 공식 음역 체계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우크라이나 지명 및 개인 이름 표기에 널리 사용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우크라이나어 - 수르지크어
수르지크어는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의 혼합어로, 러시아의 지배로 인한 언어적 동화 과정에서 발생하여 우크라이나의 언어 및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된 복잡한 쟁점을 내포한다. - 우크라이나어 - Ї
Ї는 우크라이나어 알파벳의 13번째 문자로 {{ipa|ji}} 소리를 내며, 우크라이나 독립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로마자 'ji' 또는 'ij', 일본어 '이이', '유이', '이' 등으로 표기된다. - 로마자 - 아이슬란드어 알파벳
아이슬란드어 알파벳은 아큐트 악센트 문자, Ðð, Þþ, Ææ, Öö를 포함한 32개의 라틴 문자로 구성되며, Þ와 Ð는 아이슬란드어 고유 문자이고, C, Q, W, Z는 외래어에서만 쓰이며, 모음은 장모음과 단모음으로 나뉜다. - 로마자 - 프락투어
프락투어는 16세기 초 막시밀리안 1세 시대에 디자인된 블랙 레터 서체로, 독일어권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민족주의와 낭만주의 부흥 시기 안티콰체와의 논쟁을 겪었고, 현재는 장식적 용도로 사용된다.
| 라튼카 | |
|---|---|
| 개요 | |
| 유형 | 알파벳 |
| 언어 | 우크라이나어 |
| 계열 | 라틴 문자 하위 집합 |
![]() | |
| 명칭 | |
| 한국어 | 우크라이나 라틴 문자 |
| 우크라이나어 | Українська латиниця (Ukrainśka latynycia), Латинка (Latynka) |
| 로마자 표기 | Latynka |
2. 역사
우크라이나어를 라틴 문자로 표기하려는 시도는 19세기부터 꾸준히 있었다. 리비우 출신의 학자 요셉 워진스키는 1834년 관련 논의를 시작했으며[2], 이후 토마시 파두라 등도 참여했다.
오스트리아 제국 치하의 갈리치아에서는 당국이 라틴 문자 사용을 장려했으며, 프란츠 미클로시치가 폴란드어와 체코어에 기반한 라틴 알파벳을 개발하기도 했다. 1859년에는 폴란드화 정책의 일환으로 이 알파벳 사용을 강제하려 했으나, 이는 우크라이나 지식인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소위 알파벳 전쟁( Азбучна війна|아즈부치나 비나uk )으로 번졌고 결국 무산되었다. 이러한 라틴 문자 사용 강요는 루마니아나 헝가리 일부 지역에서도 시도되었다.
러시아 제국 치하에서는 미하일로 드라호마노프가 키릴 문자를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문자 개혁안(드라호마니우카)을 제시하기도 했다. 20세기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시절인 1927년 철자법 회의에서도 라틴 문자 도입이 논의되었으나, 소련 정부의 반대로 채택되지 못했다.
2. 1. 19세기

19세기에 우크라이나어 문자에 라틴 문자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리비우 출신의 우크라이나 학자이자 사제였던 요셉 워진스키(Josyp Łozyński Ivanovyč)는 1834년 "루스코예 웨실레(Ruskoje wesile)"라는 저서를 통해 처음으로 라틴 문자 표기법을 제안했으며[2], 토마시 파두라 역시 이러한 시도에 참여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 치하의 갈리치아 당국은 우크라이나어에 라틴 문자를 사용하는 것을 장려했다. 프란츠 미클로시치는 1852년 폴란드어 및 체코어 알파벳을 기반으로 우크라이나어를 위한 라틴 알파벳을 개발했다. 이는 체코어의 'č, š, ž, dž, ď, ť'와 폴란드어의 'ś, ź, ć, ń', 그리고 'ľ' 등을 차용한 방식이었다. 체코 정치인 요세프 지레체크는 이 구상에 관심을 보였고, 제국 내무부의 지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849년 이후 신 절대주의 통치 기간 동안 갈리치아에서 진행된 폴란드화 운동의 일환으로, 총독 아게노르 로무알트 고우호프스키는 1859년 우크라이나 출판물에 미클로시치가 개발한 라틴 알파벳 사용을 강제하려 했다. 이는 격렬한 공개 토론인 알파벳 전쟁( Азбучна війна|아즈부치나 비나uk )을 촉발시켰고, 결국 라틴 알파벳 도입은 거부되었다.
우크라이나 출판물을 위한 라틴 알파벳 사용은 루마니아의 베사라비아, 부코비나, 도브루자 지역과 헝가리의 자카르파티아 지역에서도 강요되었다.
한편, 러시아 제국 치하의 우크라이나에서는 미하일로 드라호마노프가 1876년 라틴 문자 'ј'를 포함하는 순수 음소 기반의 키릴 문자 알파벳인 드라호마니우카를 제안했다. 이는 이전 카라지치 개혁과 유사하게 이중 문자 'я, є, ю, ї'를 'ја, је, јu, јі'로 대체하는 방식이었으며, 세르비아어 알파벳의 영향을 받았다.
2. 2. 20세기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시기인 1927년, 하르키우에서 열린 철자법 회의에서는 라튼카 도입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 회의에서 언어학자 마이크 요한센, 보리스 트카첸코, 미콜라 나코네치니는 우크라이나어에 더욱 "국제적인" 성격의 라틴 문자를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소비에트 정부 대표들의 반대에 부딪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 3. 21세기
3. 주요 라틴 문자 표기법
BGN/PCGN 2019 합의
Ще нам, браття молодії, усміхнеться доля.
Згинуть наші воріженьки, як роса на сонці.
Запануєм і ми, браття, у своїй сторонці.
Приспів:
Душу й тіло ми положим за нашу свободу,
І покажем, що ми, браття, козацького роду.
Shche nam, brattia molodii, usmikhnetsia dolia.
Zghynut nashi vorizhenky, yak rosa na sontsi,
Zapanuiem i my, brattia, u svoii storontsi.
Pryspiv:
Dushu y tilo my polozhym za nashu svobodu,
I pokazhem, shcho my, brattia, kozatskoho rodu.
Ŝe nam, brattja molodiï, usmixnetjsja dolja.
Zǧynutj naši voriženjky, jak rosa na sonci.
Zapanujem i my, brattja, u svoïj storonci.
Pryspiv:
Dušu j tilo my položym za našu svobodu,
I pokažem, ŝo my, brattja, kozacjkoǧo rodu.
Shche nam, brattja molodiji, usmikhnetjsja dolja.
Zghynutj nashi vorizhenjku, jak rosa na sonci.
Zapanujem i my, brattja, u svojij storonci.
Pryspiv:
Dushu j tilo my polozhym za nashu svobodu,
I pokazhem, shcho my, brattja, kozacjkogho ro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