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교 고의식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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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정교 고의식파 교회는 17세기 러시아 정교회 분열 이후 등장한 종교 단체이다. 벨라야 크리니차의 암브로스 대주교의 개종으로 인해 러시아 제국 당국의 반발을 받았으며, 볼셰비키 혁명 이후에는 러시아 정교회와 마찬가지로 박해를 겪었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러시아 사회에 대한 개방 정책을 펼치며 러시아 구정교회와 재교류했다. 현재 모스크바와 전 러시아의 대주교가 수장이며, 성 시노드에 의해 선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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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교 고의식파 교회 | |
---|---|
기본 정보 | |
![]() | |
유형 | 독립된 동방 정교회 |
주요 분류 | 구교도 |
방향 | 러시아 정교회 |
경전 | 오스트로그 성경 |
정치 체제 | 감독 정치 |
본부 | 모스크바 |
영토 | 러시아, 헝가리, 루마니아, 미국 |
창립자 | 알 수 없음 |
분리 | 러시아 정교회 |
신도 수 | 1,000,000명 |
웹사이트 | 러시아 정교 고의식파 교회 |
명칭 | |
한국어 | 러시아 정교 고의식파 교회 |
러시아어 | Русская Православная Старообрядческая Церковь (루스스카야 프라보슬라브나야 스타로오브랴드체스카야 체르코프) |
지도자 | |
직함 | 수석 주교 |
이름 | 메트로폴리탄 코르닐리우스 |
2. 역사
러시아 정교 고의식파 교회는 벨라야 크리니차의 암브로스(파파게오르골로스) 대주교의 개종으로 시작된 벨로크리니츠카야 계층(Belokrinitskaya Hierarchy)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후 러시아 제국과 소련 시대를 거치며 지속적인 박해와 탄압을 겪었으나, 1905년 '종교적 관용에 관한 칙령' 발표와 같은 시기에는 일부 활동의 자유를 얻기도 했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현대에 이르러서는 안드리안(체르베르고프) 대주교와 코르넬리우스 대주교 등이 러시아 정교회 및 사회와의 대화를 모색하는 등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2017년에는 러시아 구정교회(Russian Old-Orthodox Church)와 재교류하는 등 역사적 관계를 회복하기도 했다.[1]
2. 1. 분열의 기원
2. 2. 박해와 저항
벨라야 크리니차의 암브로스(파파게오르골로스)(Ambrose (Papageorgopolos)) 대주교가 고의식파로 개종하자 러시아 제국 당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곧 자신의 관할 구역을 떠나라는 압박을 받았지만, 떠나기 전에 새로운 교회를 위해 수릴(Суril) 대주교(티모페예프)를 서임했다. 벨로크리니츠카야 계층(Belokrinitskaya Hierarchy)이 러시아 제국 영토 내에서 활동하는 것은 제국 당국의 수많은 방해에 부딪혔으며, 1862년 회칙으로 인한 내부 분열(오크루즈니키(Okruzhniki), 네오크루즈니키(Neokruzhniki) 참조)까지 겪어야 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은 1905년 황제가 "종교적 관용에 관하여"라는 칙령을 발표하면서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이 칙령 덕분에 고의식파 신자들의 중요한 종교 및 문화 중심지인 로고시스코예 묘지(Rogozhskoye cemetery)의 제단 봉인이 해제될 수 있었다.그러나 1917년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고 내전이 발발하면서 고의식파 교회는 다시 큰 시련을 맞았다. 이전의 경쟁자였던 "니코니안" 러시아 정교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고통과 박해를 겪어야 했다. 1940년에는 소련의 무신론 정책 아래 칼루가의 밥바스(Sabbas (Ananyev)) 주교만이 유일하게 투옥되지 않은 주교로 남았다. 그는 같은 해에 다른 주교인 이레나르크(파르피노프)(Иринарх (Парфёнов))를 모스크바 대주교로 단독으로 승격시켰다. 박해의 시기 이후에는 소련 비밀 정보국의 강력한 통제하에 놓인 상대적인 안정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와 그 이후 러시아의 정치, 문화, 경제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사회에서 고의식파 교회의 위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알림피우스(Alimpius (Gusev)) 대주교가 17년간 재임했던 시기는 일부 사람들에게 "정체기" 또는 "회상"의 시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알림피우스 대주교의 후계자인 안드리안(체르베르고프)(Andrian (Chetvergov)) 대주교는 2004년 2월 선출된 후, 현대 러시아 사회에 고의식파의 문화적, 종교적 메시지를 알리고 전파하는 데 관심을 가진 카리스마 있고 재능 있는 지도자로 평가받았다. 그는 공개 발언에서 자신을 전통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라고 밝히면서도, 러시아 정교회 및 러시아 정치 세력과의 대화를 시작하는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노력은 2005년 8월 10일, 안드리안 대주교가 러시아 외딴 지역 순례 중 만성 심장 질환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중단되었다. 많은 이들이 교회의 새로운 지도부가 안드리안 대주교가 선택한 개방 노선을 이어갈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2005년 10월 18일에 선출된 새로운 코르넬리우스(Cornelius) 대주교는 전임자가 시작한 러시아 사회에 대한 개방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2017년 10월 17일, 러시아 정교 고의식파 교회는 러시아 구정교회(Russian Old-Orthodox Church)와 재교류했다.[1]
2. 3. 벨로크리니츠카야 계층
벨라야 크리니차의 암브로스(파파게오르골로스)(Ambrose (Papageorgopolos)) 대주교가 개종하면서 벨로크리니츠카야 계층(Belokrinitskaya Hierarchy)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 제국 당국의 강한 반발을 샀고, 암브로스 대주교는 곧 자신의 관할 구역을 떠나라는 압력을 받았다. 그는 떠나기 전, 새로운 교회를 위해 Сурил (Тимофеев)|수릴 (티모페예프)rus 대주교를 서임했다. 러시아 제국 영토 내에서 벨로크리니츠카야 계층의 활동은 당국의 수많은 방해에 직면했으며, 1862년 회칙으로 인해 오크루즈니키(Okruzhniki)와 네오크루즈니키(Neokruzhniki)로 나뉘는 내부 분열을 겪기도 했다.이러한 상황은 1905년 황제가 "종교적 관용에 관하여" 칙령을 발표하면서 크게 바뀌었다. 이 칙령 이후, 구교도들의 중요한 종교 및 문화 중심지였던 로고시스코예 묘지(Rogozhskoye cemetery)의 제단 봉인이 해제되었다.
1917년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고 러시아 내전이 발발하자, 고의식파 교회는 과거 경쟁 관계였던 "니코니안" 러시아 정교회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고통과 박해를 겪었다. 1940년에는 소련의 무신론 정책 아래 칼루가의 밥바스(Sabbas (Ananyev)) 주교만이 유일하게 투옥되지 않은 주교였다. 그는 같은 해 단독으로 Иринарх (Парфёнов)|이레나르크 (파르피노프)rus를 모스크바 대주교로 승격시켰다. 박해의 시기 이후에는 소련 비밀 정보국의 강력한 통제 하에 상대적인 안정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와 그 이후 국가의 정치, 문화, 경제적 변화는 러시아 사회에서 고의식파 교회의 위상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으며, 알림피우스(Alimpius (Gusev)) 대주교의 17년 임기는 일부에게 정체된 시기로 평가받기도 한다.
알림피우스의 후계자인 안드리안(체르베르고프)(Andrian (Chetvergov)) 대주교는 2004년 2월 선출된 이후, 현대 러시아 사회에 고의식파의 문화적, 종교적 메시지를 알리는 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카리스마 있고 능력 있는 지도자로 평가받았으며, 공개적으로 자신을 전통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라고 밝히면서도 러시아 정교회 및 러시아 정치 세력과의 대화를 시작하는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2005년 8월 10일, 안드리안 대주교가 러시아 외딴 지역 순례 중 만성 심장 질환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중단되었다.
많은 이들이 교회의 지도부가 안드리안 대주교가 시작한 새로운 노선을 이어갈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2005년 10월 18일에 선출된 새로운 코르넬리우스(Cornelius) 대주교는 전임자가 시작한 러시아 사회에 대한 개방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2017년 10월 17일, 러시아 정교 고의식파 교회는 러시아 구정교회(Russian Old-Orthodox Church)와 재교류했다.[1]
2. 4. 소비에트 연방 시기
1917년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고 러시아 내전이 발발한 후, 고의식파 교회는 기존의 러시아 정교회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고통과 박해를 겪었다. 소련의 무신론 정책 아래 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이 탄압받았다. 1940년에는 소련 당국에 의해 투옥되지 않은 유일한 주교가 칼루가의 밥바스(Sabbas (Ananyev)) 주교뿐이었다. 그는 같은 해 Иринарх (Парфёнов)|이레나르크(파르피노프)ru를 모스크바 대주교로 단독으로 서임했다. 혹독한 박해 시기 이후에는 소련 비밀경찰의 강력한 통제 아래 놓였지만, 상대적으로 안정된 시기를 맞이하기도 했다.2. 5. 현대
벨라야 크리니차의 암브로스(파파게오르골로스) 대주교가 고의식파로 개종하자 러시아 제국 당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암브로스 대주교는 자신의 관할 구역을 떠나라는 압박을 받았지만, 떠나기 전에 수릴(티모페예프)을 새로운 주교로 서임했다. 벨로크리니츠카야 계층은 러시아 제국 내에서 활동하면서 당국의 많은 방해를 받았고, 1862년 회칙 문제로 오크루즈니키와 네오크루즈니키로 나뉘는 내부 분열도 겪었다.하지만 1905년 니콜라이 2세 황제가 '종교적 관용에 관한 칙령'을 발표하면서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이 칙령 덕분에 고의식파의 중요한 종교 및 문화 중심지인 로고시스코예 묘지의 제단 봉인이 해제될 수 있었다.
1917년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고 러시아 내전이 시작된 후, 고의식파 교회는 과거 경쟁 관계였던 '니콘파' 러시아 정교회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고통과 박해를 겪었다. 1940년에는 소련의 무신론 정책 아래 칼루가의 밥바스(아나니예프) 주교만이 유일하게 투옥되지 않은 주교였다. 그는 같은 해 이레나르크(파르피노프)를 모스크바 대주교로 단독으로 임명했다. 박해 시기 이후에는 소련 비밀경찰의 강력한 통제 아래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안정된 시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와 그 이후 러시아의 정치, 문화, 경제적 변화 속에서도 고의식파 교회의 사회적 위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알림피우스(구세프) 대주교가 재임한 17년 동안은 일부에서 정체된 시기로 평가받기도 한다.
후임 안드리안(체트베르고프) 대주교는 2004년 2월 선출된 이후, 현대 러시아 사회에 고의식파의 문화적, 종교적 의미를 알리는 데 힘쓰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로 평가받았다. 그는 스스로 전통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임을 밝히면서도, 러시아 정교회 및 러시아 내 다양한 정치 세력과 대화를 시작하는 중요한 행보를 보였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노력은 2005년 8월 10일, 안드리안 대주교가 러시아 외딴 지역 순례 중 만성 심장 질환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중단되었다. 이후 교회가 안드리안 대주교가 추진했던 개방 노선을 이어갈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2005년 10월 18일 새로 선출된 코르넬리우스 대주교는 전임자의 개방 정책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2017년 10월 17일, 러시아 정교 고의식파 교회는 러시아 구정교회와 다시 교류하게 되었다.[1]
3. 조직
교회의 수장은 모스크바와 전 러시아의 대주교(1988년까지는 대주교)이며, 모스크바의 로고시스코예 묘지에 거주한다.
러시아 정교 고의식파 교회는 벨로크리니츠카야 계층에 속하며, 2008년 5월 16/29일까지 리포반 정교 고의식파 교회와 완전한 교회적 교제를 이루었다.
3. 1. 성 시노드
교회의 최고 대표 기관은 '''성 시노드'''(Освященный Собор|오스뱌셴니 소보르rus)이다. 성 시노드는 교회의 수장인 모스크바와 전 러시아의 대주교를 선출하며, 수도관구 평의회 위원들을 임명하는 역할을 한다.3. 2. 교구 및 신학교
교회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에 5명의 지역 주교를 두고 있으며, 250개 이상의 교구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수년 전부터 구 고의식파 교회의 사제 양성을 위한 신학 학교를 다시 세우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4. 수장
(내용 없음)
4. 1. 역대 수장 목록
직위심비르스크 주교
블라디미르 대주교 (1853–1863)
모스크바 및 전 러시아 대주교

모스크바 대주교

모스크바 및 전 러시아 대주교

모스크바 및 전 러시아 대주교

코카서스 주교

칼루가, 스몰렌스크 및 브랸스크 주교
모스크바 및 전 러시아 대주교

모스크바 및 전 러시아 대주교

모스크바 및 전 러시아 대주교

모스크바 및 전 러시아 대주교
모스크바 및 전 러시아 관구 대주교
모스크바 및 전 러시아 관구 대주교

모스크바 및 전 러시아 관구 대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