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러브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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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더 러브 본은 1987년 결성된 미국의 록 밴드이다. 그린 리버의 제프 에이먼트, 브루스 페어웨더, 스톤 고서드, 말펑션의 앤드류 우드, 10 미닛 워닝과 The Living의 그레그 길모어로 구성되었다. 1988년 EP "Shine"을 발매하며 시애틀 밴드 최초로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발표했다. 1990년 앤드루 우드의 사망으로 해체되었으며, 유작인 정규 앨범 "Apple"이 같은 해 발매되었다. 해체 후 에이먼트와 고서드는 펄 잼을 결성했고, 다른 멤버들도 다양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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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러브 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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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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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Lords of the Wasteland (1987–1988) |
결성지 | 워싱턴주 시애틀 |
장르 | 그런지 얼터너티브 록 하드 록 얼터너티브 메탈 글램 록 |
레이블 | Stardog 머큐리 |
스핀오프 | 그린 리버 |
파생 그룹 | 템플 오브 더 독 펄 잼 |
활동 기간 | 1988–1990, 부분 재결합: 2010, 2018 |
이전 멤버 | 제프 아멘트 브루스 페어웨더 그렉 길모어 스톤 고사드 앤드루 우드 리건 헤이거 |
2. 결성 배경 및 초기 활동 (1987-1988)
마더 러브 본은 1987년 시애틀에서 활동하던 여러 밴드의 멤버들이 모여 결성되었다. 초기에는 우드, 고서드, 에이먼트, 그리고 말펑션의 드러머 리건 하가가 참여한 커버 밴드 Lords of the Wasteland로 시작했다.[6] 1988년 초, 브루스 페어웨더를 영입하고 하가를 그레그 길모어로 교체하면서, 밴드 이름을 마더 러브 본으로 변경했다.[6]
이들은 빠르게 녹음과 공연 활동을 시작했고, 1988년 말에는 시애틀에서 가장 주목받는 밴드 중 하나로 떠올랐다.[7] 앤드류 우드의 활기찬 무대 매너와 독특한 의상, 몽환적인 가사는 밴드의 인기를 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8]
2. 1. 멤버 구성
마더 러브 본은 1988년에 전 그린 리버 멤버였던 제프 에이먼트(베이스), 브루스 페어웨더(리드 기타), 스톤 고사드(리듬 기타)와 전 말펑션의 프론트맨 앤드류 우드(보컬, 피아노), 전 10 미닛 워닝과 The Living의 드러머 그레그 길모어로 구성되었다.[6]멤버 | 악기 | 활동 기간 |
---|---|---|
앤드류 우드 | 보컬, 피아노, 키보드, 탬버린 | 1988년–1990년 (1990년 사망) |
브루스 페어웨더 | 리드 및 리듬 기타, 백킹 보컬 | 1988년–1990년 |
스톤 고사드 | 리듬 및 리드 기타, 백킹 보컬 | 1988년–1990년 |
제프 에이먼트 | 베이스, 백킹 보컬 | 1988년–1990년 |
그레그 길모어 | 드럼 | 1988년–1990년 |
리건 헤이거 | 드럼 | 1988년 |
2. 2. 초기 활동
1987년 그린 리버 출신의 제프 에이먼트, 브루스 페어웨더, 스톤 고서드와 이전 말펑션의 리더였던 앤드류 우드, 그리고 이전 10 미닛 워닝과 The Living의 그레그 길모어가 모여 밴드를 결성했다.[6] 이들은 우드, 고서드, 에이먼트, 그리고 말펑션의 드러머 리건 하가가 함께했던 커버 밴드 Lords of the Wasteland에서 시작했다.[6] 1988년 초, 페어웨더를 영입하고 하가를 길모어로 교체하면서 밴드 이름을 마더 러브 본으로 바꾸었다.[6]새로운 멤버로 구성된 마더 러브 본은 곧바로 녹음과 공연을 시작했고, 1988년 말에는 시애틀에서 가장 주목받는 밴드 중 하나가 되었다.[7] 특히, 앤드류 우드의 활기 넘치는 무대 매너와 독특한 의상, 몽환적인 가사는 밴드의 인기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8] 1996년 그런지 다큐멘터리 ''Hype!''에서 시애틀의 엔지니어 잭 엔디노는 앤드류 우드를 "시애틀에서 유일하게 스탠드업 코미디언 같은 프론트맨"이라고 칭찬했는데, 이는 우드가 팬들과 소통하는 방식이 유쾌했음을 보여준다.[8]
3. 전성기 및 EP ''Shine'' 발매 (1988-1989)
1988년 초, 그레그 길모어를 드러머로 영입하고 밴드 이름을 마더 러브 본으로 변경한 이들은 곧바로 녹음과 공연 활동을 시작했다.[6]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애틀에서 가장 주목받는 밴드 중 하나로 떠올랐다.[7] 보컬 앤드류 우드의 화려한 무대 매너와 독특한 의상, 몽환적인 가사는 밴드의 인기를 견인했다. 시애틀의 엔지니어 잭 엔디노는 1996년 그런지 다큐멘터리 ''Hype!''에서 앤드류 우드를 "시애틀에서 유일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프론트맨"이라고 칭하며, 팬들과 소통하는 그의 유쾌한 방식을 언급했다.[8]
3. 1. ''Shine'' 발매
1988년 11월, 마더 러브 본은 폴리그램의 자회사인 폴리도르/스타도그와 계약을 맺고 데뷔 EP를 녹음했다. 계약의 일환으로 폴리그램은 밴드를 위해 스타도그 레코드라는 레이블을 만들었다.[7] 1989년 3월, 마더 러브 본은 데뷔 EP ''Shine''을 발매하여, 메이저 레이블에서 음반을 발매한 시애틀 최초의 밴드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음반은 좋은 판매고를 올렸고 밴드의 인지도를 빠르게 높였다. AllMusic의 존 북은 "이 음반은 시애틀 음악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9]4. 정규 앨범 ''Apple'' 녹음 및 앤드류 우드의 사망 (1989-1990)
1989년 말, 마더 러브 본은 캘리포니아주 소살리토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데뷔 앨범 ''Apple'' 녹음을 시작했다.[10] 초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1990년 3월 발매 예정일에 맞춰 완성되었다. 그러나 앨범 발매를 며칠 앞두고 앤드류 우드가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면서 밴드는 해체되었다.
4. 1. 앤드류 우드의 사망
앤드류 우드는 오랫동안 약물 중독 문제를 겪었다. 1990년 3월, 마더 러브 본의 데뷔 앨범 ''Apple'' 발매를 며칠 앞두고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10] 반응이 없고 뇌 활동 징후가 없어, 친구와 가족들이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이틀 동안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여 병원에 입원했다.[7] 앤드류 우드의 사망으로 인해 그룹은 사실상 해체되었다.[7]4. 2. ''Apple'' 발매
1989년 말, 밴드는 캘리포니아주 소살리토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데뷔 앨범 ''Apple''을 녹음했다. 초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1990년 3월 발매 예정일에 맞춰 완성되었다. 그러나 ''Apple'' 발매를 며칠 앞두고, 오랫동안 약물 문제를 겪어온 프론트맨 앤드류 우드가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10] 우드는 반응이 없고 뇌 활동 징후가 없어, 친구와 가족들이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이틀 동안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여 병원에 입원했다. 우드의 죽음으로 인해 그룹은 사실상 해체되었다.[7] 앨범은 그해 1990년 7월 19일에 발매되었다. ''롤링 스톤''의 킴 니리는 이 앨범이 "수많은 다른 하드 록 앨범들이 실패한 지점에서 성공하여, 제프를 불멸하게 만든 본질 – 역동성, 얘들아! –을 포착하고, 그것에 독특한 90년대적 해석을 부여했다"고 말했다.[11]5. 해체 이후 (1990-현재)
앤드류 우드의 사망 이후, 마더 러브 본은 해체되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각자 다른 음악 활동을 통해 그들의 음악적 여정을 이어갔다. 스톤 고사드와 제프 아멘트는 크리스 코넬과 함께 템플 오브 더 독을 결성했고, 이후 펄 잼을 결성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브루스 페어웨더는 러브 배터리에 합류했다가, The Press Corps를 결성했다. 리건 길모어는 Chubby Children에서 활동하고, 사운드가든의 곡 작업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2011년 4월, 케빈 우드(앤드류 우드의 형)는 앤드류의 사망 21주년을 기념하여 하드 록 밴드 Lace Weeper와 함께 마더 러브 본의 "Crown of Thorns"를 녹음했다.[14]
5. 1. 템플 오브 더 독 결성
앤드류 우드가 사망한 후 몇 달 뒤, 스톤 고사드와 제프 아멘트는 우드의 룸메이트였던 사운드가든의 리더 크리스 코넬에게 우드를 기리는 싱글 음반을 녹음하자는 제안을 받았다.[12] 이 프로젝트는 결국 정규 음반 제작으로 확대되었고, 이들은 마더 러브 본의 노래 "Man of Golden Words" 가사에서 이름을 따 템플 오브 더 독이라고 그룹명을 지었다.[13]5. 2. 펄 잼 결성
우드의 사망 후 몇 달 뒤, 에이먼트와 고사드는 우드의 룸메이트이자 친구였던 사운드가든의 크리스 코넬을 섭외하여 우드를 기리는 트리뷰트 밴드인 템플 오브 더 독을 결성했다.[12][13] 1991년 4월에 유일한 앨범 《템플 오브 더 독》을 발매하여 미국에서 5위를 기록했다. 이 앨범은 플래티넘 디스크로 인정받았다. 에이먼트와 고사드는 1990년에 펄 잼을 결성하여 그런지 씬을 대표하는 밴드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결성 이후 25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5. 3. 다른 멤버들의 활동
페어웨더는 처음에는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1992년 베이시스트 토미 심슨을 대신하여 시애틀 기반의 사이키델릭 록 밴드 러브 배터리에 합류했다.[12] 그는 밴드의 앨범 3장과 수많은 투어에 참여한 후 밴드를 떠났다. 2006년에는 The Fluid의 개릿 샤블릭, 머드허니의 댄 피터스와 함께 The Press Corps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13]길모어는 마더 러브 본 해체 이후 활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그는 1982년부터 1985년까지 함께 활동했던 브라이언 폭스, 가스 브란덴버그와 재결합하여 Chubby Children이라는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다. 이 밴드는 몇 차례의 공연과 미발표 녹음을 남겼다. 그는 또한 1998년 그의 전 밴드인 텐 미닛 워닝의 재결합에 참여했으며, 사운드가든의 1996년 스튜디오 앨범인 ''Down on the Upside''에 수록된 "Never the Machine Forever" (킴 타일 작곡으로 표기됨)의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14] 이 곡은 원래 타일이 길모어와 함께 한 잼 세션에서 나왔다.
5. 4. 재결합 공연
2010년 4월 14일, 마더 러브 본의 생존 멤버 4명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재결합하여 시애틀의 쇼박스에서 매진된 "브래드 앤 프렌즈" 공연을 가졌다(프론트맨으로는 친구이자 동료 시애틀 뮤지션인 숀 스미스가 참여했다). 연주된 곡들은 "Stardog Champion", "Holy Roller", "Gentle Groove"를 포함하여 밴드의 초기 레퍼토리 일부였으며, 시애틀 주변 클럽 시절 앙코르곡으로 즐겨 불렀던 아르헨트의 "Hold Your Head Up" 커버곡도 포함되었다.[12]2018년 5월 5일, 밴드는 다시 뭉쳐 시애틀의 넵튠 극장에서 열린 행사에서 "Hold Your Head Up"을 포함한 14곡을 연주했다. 현지 가수 숀 스미스(피전헤드)와 옴 조하리(헬스 벨스)가 노래를 불렀다.[13]
6. 음악 스타일 및 영향
마더 러브 본은 앤드류 우드의 활기찬 무대 매너와 몽환적인 가사로 주목받았다. 시애틀 엔지니어 잭 엔디노는 앤드류 우드를 "시애틀에서 유일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프론트맨"이라고 묘사하며 팬들과 소통하는 그의 유쾌한 방식을 언급했다.[8]
롤링 스톤의 킴 니리는 마더 러브 본의 앨범 ''Apple''이 "수많은 다른 하드 록 앨범들이 실패한 지점에서 성공하여, 제플린을 불멸하게 만든 본질 – 역동성 –을 포착하고, 그것에 독특한 90년대적 해석을 부여했다"고 평가했다.[11]
7. 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