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노 사다미치
1. 개요
마키노 사다미치는 18세기 일본의 다이묘로, 도쿠가와 막부의 측근인 마키노 나리사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742년부터 1749년까지 교토 쇼시다이를 역임했으며, 1747년에는 히타치국의 가사마 번으로 전봉되었다. 그는 나가오카 번과의 복잡한 관계를 맺었으며, 4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씨족 | 미카와 마키노 씨 |
|---|
| 이름 | 마키노 사다미치 |
|---|---|
| 일본어 이름 | 牧野 貞通 |
| 로마자 표기 | Makino Sadamichi |
| 출생 | 호에이 4년 8월 24일 (1707년9월 19일) |
| 사망 | 간엔 2년 9월 13일 (1749년10월 23일) |
| 관위 | 종5위하 에치젠노카미 종4위하 빙고노카미 시종 |
| 막부 | 에도 막부 |
| 섬긴 주군 | 도쿠가와 요시무네 이에시게 |
| 번 | 휴가노베오카번 번주 히타치가사마번 번주 |
| 가족 | 아버지: 마키노 시게사다 어머니: 후지타 씨 형제자매: 마쓰코, 야스시, 가메, 사다미치 |
| 배우자 | 정실: 마쓰우라 아쓰노부의 딸 측실: 혼조 씨 |
| 자녀 | 다다타카 사다타카 사다나가 다다토시 다다히로 사다쓰네 마쓰다이라 다다요시 미치히데 미치아키라 도다 미쓰노리 마쓰다이라 다다카네 기쿠코 센히메 혼다 다다시게 정실 마쓰우라 이타루 정실 세이소인 야치코 마키노 다다히로 양녀 아리마 히로유키 실 |
| 특이사항 | 교토 쇼시다이 역임 |
| 노베오카 번 번주 | 전임: 마키노 나리나카 후임: 나이토 마사아키 임기: 1719년 ~ 1747년 대수: 2 |
|---|---|
| 가사마 번 번주 | 전임: 이노우에 마사쓰네 후임: 마키노 사다나가 임기: 1747년 ~ 1749년 대수: 1 |
| 교토 쇼시다이 | 전임: 도키 요리토시 후임: 마쓰다이라 스케쿠니 임기: 1742년 ~ 1749년 대수: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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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오카번주 -
다카하시 모토타네
다카하시 모토타네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다카하시 아키타네의 양자가 되어 휴가국 노베오카의 다이묘가 되었으며, 임진왜란과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 후 가이에키당했다. -
노베오카번주 -
나이토 마사키
나이토 마사키는 에도 시대 이와키타이라 번의 번주로, 양자로서 번주 자리를 계승했으나 어린 나이로 아버지의 후견을 받았고, 재임 중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문책으로 노베오카 번으로 전봉되었다. -
1749년 사망 -
시마즈 무네노부
에도 시대 사쓰마번의 6대 번주 시마즈 무네노부는 아버지 시마즈 츠구토요의 뒤를 이어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2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고, 재임 기간 동안 궁술을 중용하였으며 도쿠가와 무네카츠의 딸과의 혼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
1749년 사망 -
정석오
정석오는 조선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영조 시대에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문신으로, 탕평책 추진, 균역법 제정 기여, 이인좌의 난 진압 등의 공을 세웠으나 정책 결정에 대한 긍정적, 비판적 평가가 있다. -
에도 막부 지사부교 -
마키노 다다키요 (1760년)
마키노 다다키요는 1760년 나가오카 번주 마키노 다다히로의 아들로 태어나 가독을 상속받고 막부의 요직을 역임했으며, 치세 기간 동안 지역 발전에 기여했으나 잦은 자연재해로 인해 어려움을 겪다 1831년에 사망했다. -
에도 막부 지사부교 -
사카이 다다요시 (1714년)
사카이 다다요시는 데와 마쓰야마 번의 3대 번주로, 번정 개혁 시도 실패, 막부의 재정 지원 및 영향력 행사, 영지 확장, 장기 명인으로 알려졌으며, 74세에 사망하여 차남이 뒤를 이었다.
2. 가계
마키노 사다미치는 마키노 나리사다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측실 후지타 씨이다. 마키노 나리히사를 양아버지로 두었으며, 정실은 마츠우라 아츠노부의 딸이다. 측실로는 혼조 씨와 사토 씨가 있다.
자녀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자녀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2.1. 가문 배경
미카와국에서 기원한 후다이 마키노 씨는 158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지위가 상승했다. 그들은 전설적인 정치가이자 전설적인 진구 황후의 연인이었던 타케우치노 스쿠네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사다미치는 1680년에 창설된 마키노 씨의 분가에 속했다. 이 마키노 씨는 시모사국의 세키야도번, 미카와국의 요시다번, 휴가국의 나베오카번을 거쳐 1747년부터 1868년까지 히타치국의 카사마번(8만 코쿠)에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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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족의 수장은 메이지 시대에 "자작"으로 귀족 작위를 받았다.
2.2. 분가
사다미치는 1680년에 창설된 마키노 씨의 분가에 속했다. 이 마키노 씨는 1683년 시모사국의 세키야도번, 1705년 미카와국의 요시다번, 1712년 휴가국의 나베오카번을 거쳐 1747년부터 1868년까지 히타치국의 카사마번(8만 코쿠)에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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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친아버지 | 마키노 나리사다 | |
| 친어머니 | 후지타 씨 | 측실 |
| 양아버지 | 마키노 나리히사 | |
| 정실 | 마츠우라 아츠노부의 딸 | |
| 측실 | 혼조 씨 | |
| 측실 | 사토 씨 | |
| 장남 | 마키노 타다카 | 생모는 혼조 씨. 마키노 타다치카의 양자. |
| 차남 | 마키노 사다타카 | |
| 5남 | 마키노 사다나가 | |
| 8남 | 마키노 타다토시 | 생모는 혼조 씨. 마키노 타다카의 양자. |
| 10남 | 마키노 타다히로 | 실제로는 마키노 타다치카와 측실 오하라 씨의 장남. |
| 12남 | 마키노 사다츠네 | |
| 13남 | 마츠다이라 타다요시 | |
| 14남 | 마키노 미치히데 | |
| 15남 | 마키노 미치아키라 | |
| 16남 | 토다 미츠쿠라 | |
| 17남 | 마츠다이라 타다스스메 | |
| 장녀 | 키쿠코 | 오쿠다이라 마사아츠 정실, 신겐인 |
| 차녀 | 센히메 | 마츠다이라 나오즈미 정실 |
| 3녀 | 혼다 타다히라 정실 | |
| 4녀 | 마츠우라 이타루 정실 | |
| 5녀 | 이나바 야스미치 정실, 세이소인 | |
| 6녀 | 야치코 | 마키노 야스미츠 정실 |
| 양녀 | 마키노 타다히로의 양녀 | |
| 양녀 | 아리마 히로유키의 처 |
3. 생애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측근 마키노 나리사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측실 후지타 씨이며, 나리사다가 74세 때 얻은 아들이었다. 유년기 이름은 고노스케였고, 휘는 처음에는 사다토모, 나중에는 사다미치였다. 마키노 가문의 가독은 나리사다 이후 양자인 나리하루, 그 장남 나리히사가 이었지만, 나리히사가 21세에 요절했기 때문에 그 뒤를 잇게 되었다.
1719년(교호 4년) 가독을 상속받아 노베오카 번주가 되었고, 1716년(교호 11년)에는 노베오카성에 입성하였다.
1734년(교호 19년) 28세에 주자반이 되었고, 이듬해인 1735년(교호 20년)에는 사사봉행을 겸임하였다. 1739년(겐분 4년)에는 에치고 나가오카 번과 상의하여, 나가오카 번주 마키노 타다치카의 후계자로서 자신의 후계자인 타다타카를 나가오카 번 후계자로 삼고, 자신의 집안을 나가오카 번주가의 분가로 위치시켰다. 또한, 타다타카 대신 차남인 사다타카를 후계자로 삼았지만, 1741년(간포 원년)에 요절했기 때문에, 셋째 아들 사다나가를 후계자로 삼았다.
1742년(간포 2년) 종4위하에 오르고 교토 쇼시다이에 취임했다. 1742년 7월 2일부터 1749년 10월 28일까지 19대 도쿠가와 막부의 교토 쇼시다이를 지냈다. 마키노 사다나가의 아버지였으며, 55대 쇼시다이인 마키노 타다유키와는 먼 친척 관계였다. 실적이 인정되어 1747년(엔쿄 4년) 히타치 카사마 번으로 전봉되었다. 1748년 6월, 나가오카 번을 상속한 타다타카가 사망하자, 나가오카 번 에도 번저에 들어가 상속에 대한 상담에 참여하고, 타다타카의 마지막 양자로 9남 타다토시를 나가오카 번주로 삼았다.
1749년(간엔 2년) 9월 13일, 임지인 교토에서 43세로 사망하였다.
3.1. 출생과 가독 상속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측근 마키노 나리사다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측실 후지타 씨이며, 나리사다가 74세 때 얻은 아들이었다. 유년기 이름은 고노스케였고, 휘는 처음에는 사다토모, 나중에는 사다미치였다. 마키노 가문의 가독은 나리사다 이후 양자인 나리하루, 그 장남 나리히사가 이었지만, 나리히사가 21세에 요절했기 때문에 그 뒤를 잇게 되었다.
3.2. 번주 시절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측근 마키노 나리사다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측실 후지타 씨이다. 나리사다가 74세에 얻은 아들이었다. 유년기 이름은 고노스케였고, 휘는 처음에는 사다토모, 나중에는 사다미치였다. 마키노 가문의 가독은 나리사다 이후 양자인 나리하루, 그 장남 나리히사가 이었지만, 나리히사가 21세에 요절했기 때문에 그 뒤를 잇게 되었다.
1719년(교호 4년), 가독을 상속받아 노베오카 번주가 되었고, 1716년(교호 11년)에는 노베오카성에 입성하였다.
1734년(교호 19년) 28세에 주자반이 되었고, 이듬해인 1735년(교호 20년)에는 사사봉행을 겸임하게 되었다. 1739년(겐분 4년)에는 에치고 나가오카 번과 상의하여, 나가오카 번주 마키노 타다치카의 후계자로서 자신의 후계자인 타다타카를 나가오카 번 후계자로 삼고, 자신의 집안을 나가오카 번주가의 분가로 위치시켰다. 또한, 타다타카 대신 차남인 사다타카를 후계자로 삼았지만, 1741년(간포 원년)에 요절했기 때문에, 셋째 아들 사다나가를 후계자로 삼는다.
1742년(간포 2년)에는 종4위하에 오르고, 교토 쇼시다이에 취임했다. 실적이 인정되어 1747년(엔쿄 4년)에는 히타치 카사마 번으로 전봉되었다. 1748년 6월, 나가오카 번을 상속한 타다타카가 사망하자, 나가오카 번 에도 번저에 들어가 상속에 대한 상담에 참여하고, 타다타카의 마지막 양자로 9남 타다토시를 나가오카 번주로 삼는다.
1749년(간엔 2년) 9월 13일, 임지인 교토에서 43세로 사망한다.
3.3. 막부 관료
마키노 사다미치는 1742년 7월 2일부터 1749년 10월 28일까지 19대 도쿠가와 막부의 교토 쇼시다이를 지냈다. 마키노 사다나가의 아버지였으며, 55대 쇼시다이인 마키노 타다유키와는 먼 친척 관계였다.
1734년(교호 19년) 28세에 주자반이 되었고, 이듬해인 1735년(교호 20년)에는 사사봉행을 겸임하였다. 1742년(간포 2년)에는 종4위하에 오르고, 교토 쇼시다이에 취임했다.
3.4. 나가오카 번과의 관계
겐분 4년(1739년), 사다미치는 나가오카 번과 상의하여 자신의 후계자인 다다타카를 나가오카 번주 다다치카의 후계자로 삼고, 자신의 집안을 나가오카 번주가의 분가로 위치시켰다. 이후 차남 사다타카를 후계자로 삼았지만 간포 원년(1741년)에 요절하여 셋째 아들 사다나가를 후계자로 삼았다.
엔쿄 5년 6월(1748년), 다다타카가 나가오카 번을 상속한 뒤 사망하자, 사다미치는 에도 번저에 들어가 상속 상담에 참여하고, 다다타카의 마지막 양자로 9남 다다토시를 나가오카 번주로 삼았다.
간엔 2년 9월 13일(1749년) 사다미치가 사망한 후, 간엔 3년(1750년)에 가사마 번을 계승한 사다나가는 다다토시의 뒤를 이어 나가오카 번주가 된 다다히로를 고인이 된 사다미치의 유자로 삼았다. 다다히로는 사실 다다타카의 양아버지인 다다치카의 친아들이었다.
3.5. 사망
간엔 2년(1749년) 9월 13일, 임지인 교토에서 43세로 사망하였다. 공식 계보상으로는 사다미치의 아들로 되어 있는 다다히로는 다다토시의 뒤를 이어 나가오카 번주가 되었으나, 실제로는 다다타카의 양아버지인 다다치카의 친아들이었다. 사다미치 사후 간엔 3년(1750년)에 가사마 번을 계승한 사다나가는 고인이 된 사다미치의 유자로 다다히로를 입적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