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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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틴 고어는 런던에서 태어난 영국의 음악가로, 데페쉬 모드의 멤버이자 작곡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80년에 앤드루 플레처와 빈스 클라크와 함께 데페쉬 모드를 결성했으며, 밴드의 주요 작곡가로서 "Personal Jesus"와 같은 히트곡을 만들었다. 고어는 솔로 활동을 통해 여러 앨범을 발매했으며,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에 참여하거나 리믹스를 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빈스 클라크와 함께 VCMG라는 테크노 듀오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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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고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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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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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마틴 리 고어 |
출생일 | 1961년 7월 23일 |
출생지 | 런던, 잉글랜드 |
직업 | 뮤지션, 가수, 송라이터, 레코드 프로듀서, DJ |
악기 | 기타, 보컬, 키보드 |
레이블 | 뮤트, 사이레, 리프라이즈 |
관련 그룹 | 데페쉬 모드, VCMG |
웹사이트 | martingore.com |
음악 스타일 | |
장르 | 얼터너티브 댄스, 신스팝, 뉴 웨이브, 얼터너티브 록, 하드 록, 일렉트로니카 |
개인 정보 | |
배우자 | 수잔 부아베르 (1994년 결혼, 2006년 이혼), 커릴리 카스키 (2014년 결혼) |
2. 초기 생애
마틴 리 고어는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부는 영국에 주둔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G.I.였다.[9] 고어는 양아버지 데이비드 고어와 생모 파멜라 밑에서 자랐으며, 이들은 모두 포드 오브 브리튼(Ford of Britain) 다겐햄 공장에서 일했다.[10] 그는 30세가 되어서야 자신의 생부를 알게 되었고, 그 전까지는 양아버지를 친아버지로 알고 있었다.[11] 고어는 나중에 미국 남부에서 생부를 만났다.[9]
1980년, 고어는 반 고흐 클럽에서 동급생 앤드류 플레처와 재회했다. 플레처는 그를 빈스 클라크와 함께 자신의 밴드 Composition of Sound에 영입했다. 곧 밴드는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를 부르는 것을 듣고 데이브 가한을 밴드의 리드 싱어로 영입했다.[16] 고어는 밴드의 키보디스트이며, 백 보컬을 담당하고,[3] 가끔 리드 보컬을 맡기도 한다.[17][18]
고어는 자신의 성장 과정을 "평범하고" "안정적"이라고 묘사했으며,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책을 읽는 것을 선호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학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외국 교환 학생 여행에도 참여했다고 말했다.[10] 그의 가족은 그가 성장하는 동안 잠시 혼처치에 살다가 바질던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니콜라스 종합학교에 다녔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는 노먼 앤 더 웜스라는 지역 밴드의 기타리스트였다.[9][10]
고어는 1970년대부터 독학으로 키보드를 연주했으며,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그는 잡지 ''디스코 45''를 통해 차트 히트곡의 구조를 파악하며 연주하는 법을 배웠다.[12] 그는 앤디 "플레치" 플레처, 앨리슨 모예, 페리 바몬테와 같은 반에서 수업을 받았다.[13] 1979년 A 레벨을 마치고 니콜라스 종합학교를 떠나 은행 출납원으로 일했다. 저녁, 주말, 그리고 여가 시간에도 그는 노먼 앤 더 웜스 밴드 활동을 이어갔다.[14][15] 그는 크라프트베르크, 휴먼 리그, 오케스트랄 마누버스 인 더 다크(OMD)와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전자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12] 친구에게 Korg 700S를 빌린 후, 첫 신시사이저인 Yamaha CS5를 구입했다.[12]
고어에게는 1967년에 태어난 여동생 카렌과 1968년에 태어난 여동생 재클린, 두 명의 이복 여동생이 있다.[10]
3. 데페쉬 모드
밴드의 이름을 '데페쉬 모드'(프랑스 패션 잡지 ''Dépêche Mode''에서 따옴)로 정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고어는 "그것은 '서두르는 패션' 또는 '패션 발송'을 의미합니다. 저는 그 소리가 마음에 듭니다."라고 말했다.[19][20] 하지만 잡지 이름(그리고 밴드의 이름)은 정확하게 "패션 뉴스" 또는 "패션 업데이트"와 유사하게 번역된다.[21]
고어는 데페쉬 모드의 데뷔 앨범 ''Speak & Spell''에 "Tora! Tora! Tora!"와 기악곡 "Big Muff" 두 곡을 썼다.[22] "Any Second Now (Voices)"는 밴드에서 고어가 처음으로 리드 보컬을 맡은 곡이다.[16] 1981년 클라크가 데페쉬 모드에서 탈퇴를 발표했을 때, 고어는 밴드의 주요 작곡가가 되었다.[2] 고어가 데페쉬 모드의 두 번째 앨범 ''A Broken Frame'' (1982)을 위해 쓴 곡들은 클라크의 곡들과 음악적으로나 가사적으로 달랐다. 고어의 작곡은 이후 데페쉬 모드 앨범에서 점차 어둡고 정치적으로 변해갔다.[16] 그는 밴드의 여러 곡, 특히 발라드에서 리드 보컬을 맡으며, 그의 테너 목소리는 가한의 극적인 바리톤과 대조를 이룬다.[23][24][25]
고어는 때때로 데페쉬 모드 곡에서 기타(일반적으로 그의 Gretsch White Falcon 또는 Gretsch Double Anniversary)를 연주한다.[26][27][28] 기타가 주요 악기로 사용된 것은 "Personal Jesus"가 처음이었지만, 그는 "Behind the Wheel" 및 "Love, in Itself"와 같은 이전 곡들에서도 작은 기타 파트를 사용했다. 고어의 기타 연주는 ''Songs of Faith and Devotion''에서 더욱 발전했다.[29] 라이브 공연에서 그는 "Never Let Me Down Again" 및 "A Question of Time"과 같은 몇몇 오래된 데페쉬 모드 곡에서 키보드를 기타로 바꾼다.[30][31] 1990년대 중반, 고어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는 새로운 음악의 선두에 서서, 표준적인 록 형식 방송국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32]
1980년 빈스 클라크의 학우였던 앤드류 플레처를 만나, 빈스, 플레처와 함께 데페쉬 모드의 전신이 되는 "Composition of Sound"를 결성했다. 결성 당시에는 빈스가 보컬과 기타, 마틴이 키보드, 플레처가 베이스를 담당했다. 이윽고 빈스의 권유로 데이비드 가한이 가입하고, 밴드 이름도 '''Depeche Mode'''로 개명했다.
이후 밴드는 뮤트 레코드의 다니엘 밀러에게 발탁되어 1981년에 데뷔했다. 데뷔 당시 밴드의 작사·작곡은 빈스가 주로 담당했지만, 이전부터 프로모션과 투어 활동에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해에 탈퇴했다. 이후 밴드의 곡 대부분은 마틴의 작사·작곡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 사건이 그의 재능을 꽃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작풍도 지금까지의 팝적인 밝은 사운드에서 음영이 풍부한 서정적인 것으로 변화했고, 이후 밴드의 음악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탈퇴 시 빈스는 "마틴은 나보다 뛰어난 송라이터니까 괜찮아"라는 말을 남기고 밴드를 떠났지만, 정작 마틴은 "자신의 곡을 믿어야만 했기 때문에 압박감이 대단했다"라며 잠 못 이루는 날들이 계속되었음을 고백했다.[76]
데페쉬 모드는 2024년까지 15장의 오리지널 앨범과 수많은 싱글을 발표했다. 이들의 총 판매량은 9,000만 장에 육박하며, 지금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4년에 한 번 앨범을 발표하고 2년에 가까운 라이브 투어를 하는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
기타는 주로 그레치사의 제품을 사용한다. 또한 각 앨범에서 평균 2곡 정도 메인 보컬을 맡고 있다.
4. 솔로 활동 및 기타 작업
마틴 고어는 데페쉬 모드 활동 외에도 다양한 음악 활동을 펼쳤다. 1989년과 2003년에는 커버곡 모음집인 ''카운터페이트 EP''와 ''카운터페이트²''를 발매했으며, 1995년에는 레너드 코헨 트리뷰트 앨범 ''타워 오브 송: 레너드 코헨의 노래''에서 "Coming Back to You"를 커버했다.
2011년에는 데페쉬 모드의 전 동료였던 빈스 클라크와 테크노 유닛 VCMG를 결성, 2012년에 앨범 ''Ssss''를 발매했다. 2015년에는 솔로 앨범 ''MG''를 발표해 데페쉬 모드와는 다른 전자 음악을 선보였다.
고어는 1980년대부터 여러 아티스트의 앨범에 참여하거나 리믹스를 담당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4. 1. 솔로 앨범
고어는 ''카운터페이트 EP''(1989), ''카운터페이트²''(2003), ''MG''(2015), ''더 서드 침팬지''(2021) 음반을 발매했다.[36] 그는 레너드 코헨 트리뷰트 앨범 ''타워 오브 송: 레너드 코헨의 노래''(1995)에서 "Coming Back to You"를 커버했다.
2015년 2월 말, 고어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여러 개의 티저 이미지가 게시되었고,[36] 해시태그 "MGxMG"가 언급되었다. 이는 나중에 그의 새로운 솔로 스튜디오 앨범 ''MG''(2012년 빈스 클라크와 함께 한 이전 협업 앨범 ''VCMG''와 유사하게 명명됨)의 홍보 도구로 밝혀졌다. 3월 2일, 그의 공식 웹사이트와 다양한 소셜 미디어에 게시된 뉴스 게시물에서 이 새 스튜디오 앨범 발매가 4월 27일 또는 28일로 확정되었으며, 새 앨범의 트랙 ''Europa Hymn''을 미리 공개했다.[37][38]
마틴 고어는 산타 모니카에 상당한 규모의 유로랙, 무그 및 에리카 신디사이저(그 외 다수)를 갖춘 개인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으며, 이곳에서 솔로 작업을 녹음하고 데페쉬 모드의 음악을 작곡했다.[30][39][40][41]
마틴 고어는 밴드 활동과 더불어, 2003년에 커버곡 모음집 『Counterfeit²』를 발표했다. 또한 1980년대부터 다양한 아티스트의 작품에 참여하거나, 리믹스 등을 담당해 왔다.
최근에는 2011년에 과거 밴드 동료인 빈스 클라크와 테크노 유닛 "VCMG"를 결성하여, 다음 해인 2012년에 작품을 발표했다. 솔로 작품으로는 2015년 4월에 『MG』가 발표되었으며, 지금까지의 커버나 데페쉬 모드에서 보여주던 얼터너티브 음악과는 다른 전자 음악을 선보였다.
4. 2. VCMG
고어는 레너드 코헨 트리뷰트 앨범 ''타워 오브 송: 레너드 코헨의 노래''(1995)에서 "Coming Back to You"를 커버했다.
2011년, 고어는 전 데페쉬 모드 동료인 빈스 클라크와 테크노 듀오 VCMG를 결성했다. VCMG는 2012년 3월 12일에 기악 미니멀리스트 전자 댄스 앨범 ''Ssss''를 발매했다.[33][34] VCMG의 첫 번째 싱글 ''Spock''은 2011년 11월 30일에 Beatport에서 전 세계 독점 발매되었다. 두 번째 싱글 ''Single Blip''은 2012년 2월 20일에, 세 번째 싱글 ''Aftermaths''는 2012년 8월 20일에 Beatport에서 독점 발매되었다.[35]
4. 3. 기타 참여
(클라이언트는 앤드루 플레처가 설립한 레이블 "토스트 하와이"의 첫 번째 아티스트)2006 그웬 스테파니 The Sweet Escape "Wonderful Life" 기타 참여 2007 원투 Instead "Cloud Nine" 공동 작곡, 기타 참여 2010 니처 에브 Industrial Complex "Once You Say" 백 보컬 참여 2010 밤 더 베이스 Back to Light "Milakia" 공동 작곡, 기타 참여
(밤 더 베이스는 데페쉬 모드의 앨범 프로듀싱 담당)2011 컴팩트 스페이스 Nameless "The Unstoppable Collision" 기타 참여
(컴팩트 스페이스 멤버들은 데페쉬 모드의 지원 멤버로 활동)2011 알바 노토 Univrs "Uni Rec" 신시사이저 참여 2011 Motor Man Made Machine "Man Made Machine" 리드 보컬 참여 2016 더 미션 Another Fall from Grace "Only You & You Alone" 백 보컬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