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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츠 바그너 (박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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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리츠 바그너는 1813년 독일에서 태어난 박물학자이자 지리학자이다. 그는 알제리, 흑해 연안, 코카서스, 중앙 아메리카 등지를 탐험하며 동식물을 수집하고 연구했다. 바그너는 종의 진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지리적 격리가 종 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동설'을 주장했지만, 찰스 다윈을 비롯한 동시대 학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그의 이론은 현대 진화 생물학에서 재조명되었으며, 그의 이름은 독사 종의 학명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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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츠 바그너 (박물학자)

2. 생애 및 탐험

모리츠 바그너는 바이에른주 바이로이트 출신으로, 에를랑겐 대학교와 뮌헨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836년부터 1860년까지 알제리, 흑해 연안, 코카서스, 아메리카 대륙 등 세계 각지를 탐험하며 동식물, 특히 어류를 수집했다. 운송 문제와 산살바도르 지진으로 표본 상당수를 잃었으나, 1858년 이후 탐험에서는 포획지 정보를 상세히 기록해 발표, 일부는 신종 어류로 기재되었다. 뮌헨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여러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지리적 격리가 종 분화에 중요하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2. 1. 초기 생애

바이에른주 바이로이트에서 태어났다. 형은 생리학자인 루돌프 바그너이다. 에를랑겐 대학교, 뮌헨 대학교에서 공부했다.[1]

2. 2. 탐험 활동

1836년부터 1838년까지 알제리를 조사하였다. 1842년부터 1845년까지 흑해 연안 국가, 코카서스, 아르메니아, 쿠르디스탄, 페르시아를 여행했다. 1852년부터 1855년까지 오스트리아 탐험가 카를 셰르처와 함께 중앙 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카리브해 지역을 여행했으며, 1857년부터 1860년까지 파나마에서 에콰도르, 안데스 산맥을 탐험했다.

각지에서 동식물을 수집하여 대규모 컬렉션을 만들었다. 특히 어류에 관심을 가져 많은 양을 수집했다. 운송 중에 보존 방법이 적절하지 않았거나, 1854년 산살바도르의 지진으로 인해 대부분의 표본을 잃었지만, 1858년부터의 탐험에서는 그 포획지의 상세한 정보를 저작으로 발표했고, 오스트리아 학자 루돌프 크네르에 의해 몇몇 신종 어류로 기재되었다.

2. 3. 학술 활동 및 말년

모리츠 바그너는 뮌헨 대학교의 지리학 및 민속학 명예 교수였으며, 1860년 독일 과학 아카데미 레오폴디나 회원, 1862년 바이에른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1]

바그너는 각지에서 동식물, 특히 어류를 수집하여 대규모 컬렉션을 만들었으나, 운송 중 보존 방법이 적절하지 않았거나 1854년 산살바도르 지진으로 인해 대부분의 표본을 잃었다. 하지만 1858년부터의 탐험에서는 그 포획지의 상세한 정보를 저작으로 발표했고, 오스트리아 학자 루돌프 크네르에 의해 몇몇 신종 어류로 기재되었다.[1]

바그너는 진화에 관한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종의 진화를 위해서는 지리적인 격리가 발생하고 교잡의 가능성이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1]

3. 진화 이론: 이동설과 지리적 격리

모리츠 바그너는 지리학자이자 박물학자로, 북아프리카, 중동, 열대 아메리카 등지를 탐험하며 방대한 동식물 표본을 수집했다. 에른스트 마이어는 바그너가 지리적 종분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고 평가했지만,[3]p562–565 다른 학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4]

바그너의 진화 이론은 엇갈린 반응을 얻었다. 찰스 다윈,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 아우구스트 바이스만 등 주요 진화론자들은 바그너의 지리적 종분화 아이디어를 비판했고, 1942년 마이어에 의해 재조명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잊혀졌다.[14] 그러나 지리적 종분화는 진화 종합설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되었다.[8]

일부 현대 학자들은 바그너가 지리적 종분화 개념을 개척했으며, 다윈은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그너의 "이동 이론"은 다소 단순한 라마르크주의적 진화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9]

바그너의 통찰력은 오늘날에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지리적 격리가 종 분열을 유발하는 유일한 메커니즘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한, 지리적 환경이 격리된 경우에도 자연 선택이 종분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9][17]

3. 1. 이동설의 핵심 내용

바그너는 지리적 격리가 새로운 종 형성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격리된 개체군만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 수 있으며, 잦은 이주는 오히려 종 분화를 방해한다고 보았다.[6] 바그너는 알제리에서 날지 못하는 딱정벌레인 ''Pimelia''와 ''Melasoma''를 연구했는데, 이 딱정벌레들은 아틀라스 산맥에서 지중해로 흐르는 강 사이의 북부 해안 지역에 각 종이 서식하고 있었다. 강을 건너면 서로 다르지만 밀접하게 관련된 종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5]

바그너는 코카서스 산맥과 안데스 산맥 계곡에서도 유사한 관찰을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소수의 개체만이 그들의 분포 범위를 넘을 때만 [새로운 종이 생겨날 수 있으며]... 식민지 개체군이 그들의 종의 다른 구성원들과 오랫동안 분리되지 않고는 새로운 종의 형성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6] 이는 지리적 종분화 과정을 창시자 효과로 설명한 초기 사례였다. 그는 "자신의 고대 분포 지역을 결코 떠나지 않는 유기체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주장했다.[7]

바그너의 이러한 주장은 훗날 이소적 종분화(allopatric speciation) 개념의 기초가 되었다.[8]

3. 2. 다윈과의 논쟁

바그너는 찰스 다윈에게 편지를 보내 새로운 종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리적 요소를 간과했다고 주장했다.[4] 다윈은 처음에는 이 편지에 우호적으로 답하며 지리적 격리가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지만, 종분화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라고 밝혔다.[4] 그는 자신이 종의 기원에서 지리적 종분화를 다루었다고 지적했다.[4]

그러나 바그너는 이후 논문에서 자연 선택의 중요성을 완전히 거부하고, 지리적 분리가 종분화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4] 그는 다시 교배가 종의 분화를 막는 데 중요하며, 따라서 지리적 분리가 분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다.[4] 다윈은 바그너의 주장에 불쾌감을 느껴, 1875년 논문 복사본에 "가장 형편없는 쓰레기"라고 적었다.[4]

J.T. 굴릭 목사 또한 바그너의 이론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10]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바그너의 지리적 종분화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11] 나중에 굴릭의 비판 중 일부에 동의하는 수정 노트를 작성했다.[12] 굴릭은 분리된 세대가 종의 모든 생존자가 한 방향으로 변형되는 데 필요한 조건은 아니지만, 분열적인 진화에는 필수 조건이라고 지적했다.[12] 또한 분리가 반드시 외부 장벽이나 별도의 구역 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12]

굴릭은 후속 논문에서 바그너가 지리적 격리의 중요성을 주장한 것은 옳지만, 지리적 격리 없이는 자연 선택이 새로운 종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13]

3. 3. 현대 진화 생물학에서의 재조명

에른스트 마이어와 베른하르트 렌슈 등 20세기 중반의 진화 생물학자들은 모리츠 바그너의 지리적 종분화 개념을 재평가했다.[14] 마이어는 격리된 개체군이 생식적 격리 메커니즘을 획득하여 새로운 종이 된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지리적 격리가 종분화의 유일한 메커니즘은 아니지만, 진화 종합설에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8] 바그너는 알제리에서 날지 못하는 딱정벌레인 ''Pimelia''와 ''Melasoma''를 연구하면서, 강을 경계로 서로 다른 종이 분포하는 것을 관찰했다.[5] 코카서스 산맥과 안데스 산맥 계곡에서도 유사한 관찰을 바탕으로, 바그너는 소수의 개체가 지리적 경계를 넘어 장기간 격리될 때 새로운 종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6] 이는 지리적 종분화를 창시자 효과로 설명한 초기 사례였다.[7]

4. 비판과 논쟁

모리츠 바그너의 이론은 발표 당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비판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특히 찰스 다윈을 비롯한 당대 학자들과의 논쟁, 그리고 현대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의 평가는 바그너 이론의 한계와 의의를 동시에 보여준다.

바그너는 지리적 격리가 종분화의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했지만, 다윈은 자연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바그너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J.T. 굴릭은 바그너의 이론이 과장되었다고 비판하며, 지리적 격리 외에도 다양한 요인이 종분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바그너의 이론은 라마르크주의적 진화론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연 선택의 역할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하지만 그의 지리적 종분화에 대한 통찰력은 이후 진화생물학 연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에른스트 마이어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재평가되기도 했다.

4. 1. 당대 학자들의 비판

에른스트 마이어, 제리 코인, H. 앨런 오어와 같은 현대 전문가들은 바그너가 지리적 종분화 개념을 처음 발견했지만, 다윈은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9] 그러나 바그너의 "이동 이론"은 단순한 라마르크주의적 진화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바그너는 다윈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윈이 새로운 종의 진화에 중요한 지리적 요소를 간과했다고 주장했다. 다윈은 처음에는 우호적으로 답하며 지리적 격리가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지만, 종의 기원에서 이미 지리적 종분화를 다루었다고 지적했다. 바그너는 이후 논문에서 자연 선택의 중요성을 완전히 부정했다. 그는 다시 교배가 종의 분화를 막고, 지리적 분리가 분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했지만,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이미 이러한 생각을 다루었다.[4] 다윈은 바그너의 격앙된 어조와 일방적인 주장에 불쾌감을 느꼈고, 바그너의 1875년 논문 복사본에 "가장 형편없는 쓰레기"라고 적었다.

J.T. 굴릭 목사 또한 바그너의 이론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10]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바그너의 지리적 종분화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는데,[11] 굴릭은 조던의 주장에 응답하여 다음과 같이 바그너의 잘못된 가정을 수정했다.

  • 분리된 세대가 종의 모든 생존자가 한 방향으로 변형되는 데 필요한 조건은 아니지만, 분열적인 진화에는 필수 조건이다.
  • 분리는 반드시 외부 장벽이나 별도의 구역 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 자연 선택의 다양성은 진화의 다양성에 필수적이지 않다.
  • 외부 조건의 차이는 진화의 다양성에 필수적이지 않다. 분리 및 변이, 즉 교차에 압도되지 않는 변이는 외부 조건이 동일하게 유지되고 분리가 지질학적이지 않더라도, 하나의 계통의 후손에서 유형의 분기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전부이다.[12]


굴릭은 후속 논문에서 바그너가 지리적 격리의 중요성을 진화의 한 요인으로 처음 주장했지만, 지리적 격리 없이는 자연 선택이 새로운 종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지나쳤다고 말했다.[13]

마이어는 바그너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주장하며, "부모 종으로부터 격리된 개체군이 이 격리 기간 동안 외부 장벽이 무너질 때 격리를 촉진하거나 보장하는 특성을 획득하면 새로운 종이 발생한다."라고 설명했다.[14] 동물 분류학자 베른하르트 렌슈 또한 지리적 종분화를 진화의 주요 요소로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5][16] 그는 지리적 분리를 계통 발생 분기의 가장 빈번한 초기 단계로 보았다. 그러나 다양한 종의 개념이 오늘날 마이어의 격리 개념과 경쟁하고 있어, 마이어의 설명은 더 이상 표준 (동음이의)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바그너의 통찰력의 중요성은 오늘날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 지리적 격리가 종 분열을 유발하는 유일한 메커니즘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지리적 환경이 격리된 경우에도 자연 선택이 종분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9][17] 다윈이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종의 기원''은 바그너의 첫 번째 설명 이후 거의 20년 후에 출판되었지만, 다윈의 노트가 더 관련이 있다. 다윈의 노트는 "행동학적 격리 메커니즘에 의해 유지되는 생식 격리에 대한 명확한 설명"[3]p266을 보여준다. 종의 기원에도 같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현대 생물학자들은 종종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4] 바그너의 날지 못하는 딱정벌레와 같은 명확한 예는 노트에 없다. 바그너의 아이디어 대부분은 그의 잘못된 믿음에 가려져 있지만,[18] 그의 지리적 종분화에 대한 추론은 자연 서식지에서 곤충을 관찰하여 얻은 중요한 통찰력이었다.

1859년 이후 60년이 지나서야 선도적인 전문가들이 지리적 접근 방식이 종분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데 동의했다.[19] 그러나 종분화는 지리뿐만 아니라, 지리적 중첩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분리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술로웨이(Sulloway)의 기사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4. 2. 현대의 논쟁

에른스트 마이어, 제리 코인, H. 앨런 오어와 같은 일부 현대 전문가들은[9] 바그너가 지리적 종분화 개념을 개척했으며, 다윈은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그너의 "이동 이론"은 다소 단순한 라마르크주의적 진화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바그너는 다윈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윈이 새로운 종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리적 요소를 간과했다고 주장했다. 다윈은 처음에는 이 편지에 우호적으로 답하며 지리적 격리가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으며(비록 종분화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실제로 자신이 종의 기원에서 지리적 종분화를 다루었다고 지적했다. 바그너는 이후 논문에서 자연 선택의 중요성을 완전히 거부했다. 그는 다시 교배가 종의 분화를 막는 데 중요하다는 점과, 따라서 지리적 분리가 분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바그너는 다윈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러한 생각은 종의 기원에도 나타나 있다.[4] 다윈은 바그너의 점점 더 격앙된 어조와 일방적인 주장에 불쾌감을 느껴, 바그너의 1875년 논문 복사본에 "가장 형편없는 쓰레기"라고 적었다.

다윈뿐만 아니라, J.T. 굴릭 목사 또한 바그너의 이론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10] 굴릭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주장에 응답한 것으로 보이는데, 조던은 지리적 종분화에 대한 초기 지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자주 인용되는 논문에서 바그너의 지리적 종분화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11] 조던은 나중에 굴릭의 비판 중 일부에 동의하는 짧은 수정 노트를 작성했다.

굴릭은 모리츠 바그너 박사의 일부 잘못된 가정을 수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분리된 세대는 종의 모든 생존자가 한 방향으로 변형되는 데 필요한 조건은 아니지만, 분열적인 진화에는 필수 조건이다.

# 분리는 반드시 외부 장벽이나 별도의 구역 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 자연 선택의 다양성은 진화의 다양성에 필수적이지 않다.

# 외부 조건의 차이는 진화의 다양성에 필수적이지 않다. 분리 및 변이 - 즉, 교차에 압도되지 않는 변이 - 는 외부 조건이 동일하게 유지되고 분리가 지질학적이지 않더라도, 하나의 계통의 후손에서 유형의 분기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전부이다.

이 모든 것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일치한다.[12]

후속 논문에서 굴릭은 "모리츠 바그너는 '생물의 이동 법칙'에서 지리적 격리의 중요성을 진화의 한 요인으로 처음으로 주장했지만, 지리적 격리 없이는 자연 선택이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는 데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고 주장했을 때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13]

마이어의 공식화는 바그너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한 것으로 주장된다. "부모 종으로부터 격리된 개체군이 이 격리 기간 동안 외부 장벽이 무너질 때 격리를 촉진하거나 보장하는 특성을 획득하면 새로운 종이 발생한다."[14] 동물 분류학자 베른하르트 렌슈 또한 지리적 종분화를 진화의 주요 요소로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5][16] 그는 지리적 분리를 계통 발생 분기 (계통 발생 분기)로 향하는 가장 빈번한 초기 단계로 식별했다. 그러나 다양한 종의 개념이 오늘날 마이어의 격리 개념과 경쟁하고 있으며, 따라서 마이어의 설명은 더 이상 표준 (동음이의)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바그너의 통찰력의 중요성은 오늘날 매우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 지리적 격리가 종 분열을 유발하는 유일한 메커니즘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리적 환경이 격리된 경우에도 자연 선택이 종분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9][17] 찰스 다윈이 동시에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논쟁의 여지가 있다. ''종의 기원''은 바그너의 첫 번째 설명 이후 거의 20년 후에 출판되었지만, 그의 노트의 증거가 더 관련이 있다. 다윈의 노트 (20세기 중반까지 출판되지 않음)의 증거는 "행동학적 [행동] 격리 메커니즘에 의해 유지되는 생식 격리에 대한 명확한 설명"[3]p266을 보여준다. 동일한 아이디어가 종의 기원에도 존재하지만, 현대 생물학자들은 종종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4] 반면에, 바그너의 날지 못하는 딱정벌레와 같이 노트에는 명확한 단일 예가 없다. 바그너의 아이디어의 좋은 점의 대부분은 그의 다른, 잘못된 믿음에 가려져 있지만,[18] 그의 지리적 종분화에 대한 추론은 자연 서식지에서 곤충을 관찰하여 얻은 중요한 통찰력이었다.

1859년 이후 6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선도적인 전문가들이 개체군이 부모 개체군으로부터 격리되는 동안 격리 메커니즘을 획득하면 새로운 종이 진화할 수 있다는 지리적 접근 방식이 종분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데 동의했다.[19]

그러나 다시 한번, 술로웨이의 기사를 참조해야 한다. 종분화는 단지 지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리적 중첩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분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5. 유산 및 영향

모리츠 바그너의 이름은 독사의 한 종류인 몽티비페라 바그네리(Montivipera wagneri)의 학명에 붙여졌다.[20] 그는 진화에 대한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종의 진화를 위해서는 지리적인 격리가 발생하고 서로 다른 종 간의 교배 가능성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6. 저작 목록


  • ''1836, 1837, 1838년 알제리 섭정 여행''. 3권. 라이프치히 1841.
  • ''코사크의 카프카스와 땅''. 2권. 라이프치히 1847.
  • ''아라라트 산과 아르메니아 고원 여행''. 슈투트가르트 1848.
  • ''콜키스 여행''. 라이프치히 1850.
  • ''페르시아와 쿠르드족의 땅 여행''. 2권. 라이프치히 1851.
  • 카를 셰르처와 공저: ''1852년과 1853년 북아메리카 여행기''. 아놀트 출판사, 라이프치히 1854.
  • ''코스타리카 공화국''. 라이프치히 1856.
  • ''파나마에콰도르 주의 수문학적 관계와 담수어의 출현에 관하여''. Königlich bayer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II Classe 11 (I Abt.).
  • ''1852년과 1853년 북아메리카 여행''. (Carl Scherzer와 함께) 3권, 고타 1861.
  • ''다윈 이론과 유기체의 이동 법칙''. 라이프치히 1868. 영어판: Wagner M. 1873. ''다윈 이론과 유기체의 이동 법칙''. J.L. Laird 번역, 런던.[21]
  • ''열대 아메리카 자연과학 여행''. 슈투트가르트 1870.
  • ''지리적 격리와 식민지 형성이 유기체의 형태적 변화에 미치는 영향''. 뮌헨 1871.
  • ''공간적 분리에 의한 종의 기원.'' [공간적 분리에 의한 종의 기원] Gesammelte Aufsätze. Benno Schwalbe, 바젤 1889.
  • ''콜키스와 코카서스 너머 독일 식민지 여행기''. 아놀트 출판사, 라이프치히 1850.
  • ''파나마와 에콰도르 주의 수문학적 상황과 담수어 발생에 관하여'' (= ''바이에른 왕립 과학 아카데미 논문,'' II 부 10, I 부). 뮌헨 1864.

참조

[1] 서적 Reisen in der Regentschaft Algier in den Jahren 1836, 1837 und 1838 Leipzig 1841
[2] 서적 The Yezidis: A study in survival Routledge 1987
[3] 서적 The growth of biological thought: diversity, evolution and inheritance Harvard 1982
[4] 논문 Geographic isolation in Darwin's thinking: the vicissitudes of a crucial idea 1979
[5] 서적 Reisen in der Regentschaft Algier in den Jahren 1836, 1837 & 1838 Voss 1841
[6] 서적 The Darwinian Theory and the Law of the Migration of Organisms https://books.google[...] E. Stanford 1873
[7] 서적 Die Entstehung der Arten durch räumliche Sonderung Schwalbe 1889
[8] 서적 Evolution: the new synthesis Allen & Unwin 1942
[9] 서적 Speciation Sinauer 2004
[10] 논문 Divergent evolution through cumulative segregation 1888
[11] 논문 The origin of species through isolation 1905
[12] 논문 Ontogenetic species and other species 1905
[13] 논문 Isolation and selection in the evolution of species. The need of clear definitions 1908
[14] 서적 Systematics and the origin of species Columbia 1942
[15] 서적 Das Prinzip geographischer Rassenkreise und das Problem der Artbildung Bonn 1929
[16] 서적 Evolution above the species level Columbia 1950
[17] 서적 Frogs, flies & dandelions: the making of species Oxford 2001
[18] 웹사이트 Wagner http://www.ucl.ac.uk[...]
[19] 서적 What evolution is Weidenfeld & Nicolson 2001
[20] 서적 The Eponym Dictionary of Reptiles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11
[21] 서적 The Darwinian Theory and the Law of the Migration of Organisms https://books.google[...] E. Stanford 1873
[22] 기타 Biographische Skizze. In: Moriz Wagner: Die Entstehung der Arten durch räumliche Sonderung Basel 1889
[23] 웹사이트 Mitgliedseintrag von Prof. Dr. Moriz Wagner bei der Bayer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https://de.wikisourc[...] 20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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