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 잉글랜드 (1950년 FIFA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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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50년 FIFA 월드컵에서 미국은 축구 강호 잉글랜드를 1-0으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잉글랜드는 FIFA와의 갈등으로 월드컵에 처음 참가했으며, 막강한 전력으로 우승 후보로 꼽혔다. 반면 미국 대표팀은 준프로 또는 아마추어 선수로 구성되어 약체로 평가받았다. 경기는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에서 열렸으며, 조 게이전스의 결승골로 미국이 승리했다. 이 경기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악의 패배로 기록되었으며, 미국에서는 1994년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재조명되어 "벨루오리존치의 기적"으로 불린다. 이후 두 팀은 2010년과 2022년 월드컵에서도 만나 무승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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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 잉글랜드 (1950년 FIFA 월드컵) | |
---|---|
경기 정보 | |
제목 | 미국 대 잉글랜드 |
다른 제목 | 미러클 오브 벨루오리존치 |
대회 | 1950년 FIFA 월드컵 |
경기 라운드 | 1950년 FIFA 월드컵 1라운드 |
날짜 | 1950년 6월 29일 |
경기장 | 에스타디우 인데펜덴시아 |
도시 | 벨루오리존치, MG |
심판 | 제네로소 다틸로 (이탈리아) |
관중 수 | 10,151명 (공식), 13,000명 (보도) |
경기 결과 | |
팀 1 | 미국 |
팀 1 득점 | 1 |
팀 2 | 잉글랜드 |
팀 2 득점 | 0 |
2. 배경
1950년 FIFA 월드컵은 잉글랜드가 처음으로 참가한 월드컵이었다. 잉글랜드는 축구 협회와 FIFA 간의 분쟁으로 이전 세 번의 대회에 불참했으나, 관계가 개선된 후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되었다.[1][2][38] [39] 잉글랜드는 2조에서 스페인, 칠레, 미국과 함께 편성되었다. 대회 규정에 따라 각 조 1위만이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다.[3]
당시 잉글랜드는 "축구의 왕"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었으며,[4] 전후 23승 4패 3무의 압도적인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회 직전에는 이탈리아를 4-0, 포르투갈을 10-0으로 대파하는 등 막강한 전력을 과시했다. 스탠리 매튜스, 톰 피니와 같은 스타 선수들을 보유한 잉글랜드는 개최국 브라질과 함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5][38] 첫 경기인 칠레전에서도 매튜스 없이 승리했다.[38]
반면, 미국 대표팀은 대부분 준프로 선수나 아마추어 선수로 구성되어 있었다. 월터 바르는 고등학교 교사였고, 프랭크 보르기는 장의차 운전사였으며,[5] 다른 선수들은 우편 배달부나 식기 세척기 등으로 일했다.[9] 조 마카, 에드 맥일베니, 조 개트옌스 등 세 명의 선수는 미국 시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 직전 급하게 팀에 합류했다.[11] 빌 제프리 감독은 언론에 "우리에게는 기회가 없다"고 말했으며,[5] 그의 선수들을 "도살될 양"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약체로 평가했다.[11]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미국에게 3골을 먼저 주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라고 쓰기도 했다.[12] 첫 경기인 스페인전에서 선제골을 넣었지만, 이후 3실점하며 역전패했다.[40]
2. 1. 1950년 FIFA 월드컵 2조
3. 경기 진행
경기는 1950년 6월 29일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의 이스타지우 라임훈두 이펜덴시아에서 개최되었다. 당초 관중은 10,000명 정도였으나, 경기 중 미국의 선전으로 인해 관중이 늘어났다.[11][6]
; 전반전
잉글랜드는 경기 초반부터 미국을 압도했다. 90초 만에 스탠리 모텐슨이 왼쪽 측면에서 로이 벤틀리에게 크로스를 보냈고, 벤틀리가 슛을 날렸지만 미국의 골키퍼 프랭크 보르기에게 간신히 막혔다.[5] 전반 12분까지 잉글랜드는 골대 앞에서 6번의 슈팅 기회를 잡았지만,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2번의 슛은 골대를 맞았고, 1번은 골대 위로 살짝 넘어갔으며, 또 다른 슛은 보르기가 멋지게 막아냈다.[5]
미국은 공격 전개에 어려움을 겪었고, 25분에 첫 슈팅을 시도했지만 잉글랜드 골키퍼 버트 윌리엄스에게 막혔다. 잉글랜드는 30분, 31분, 32분에 연달아 3번의 공격을 시도했으나, 득점에는 실패했다. 모텐슨은 2번이나 크로스바 위로 슛을 날렸고, 톰 피니의 헤더는 보르기가 쳐냈다.[5]
전반 37분, 미국의 월터 바가 25야드 밖에서 장거리 슈팅을 시도했지만 윌리엄스가 선방했다. 그러나 38분에 튕겨나간 공을 조 게이전스가 헤딩으로 슈팅했고, 공은 잉글랜드 골대 왼쪽 안으로 들어갔다.[13] 미국이 1-0으로 앞서나가자 관중들은 열광했다.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 피니에게 동점골 기회가 있었지만, 슛을 하기 전에 휘슬이 울렸다.[5]
경기가 진행되면서 브라질 지역 주민들이 라디오 중계를 듣고 경기장을 찾아 관중 수가 늘어났다.[11] 관중들은 대부분 언더독인 미국을 응원하며, 보르기의 선방과 잉글랜드의 공격 실패에 환호했다.[6] 심지어 일부 지역 주민들은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 낮은 벽을 뛰어넘기도 했다.[6]
월터 바흐가 미국 대표팀 주장을 정기적으로 맡았지만, 이 경기에서는 "그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에드 맥길베니가 주장을 맡았다.[15]
; 후반전
미국은 전반전에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후반 54분에 추가 득점 기회를 노렸지만 실패했다.[5] 59분, 잉글랜드는 프리킥을 얻었으나 모르텐센의 슛은 프랭크 보르기의 선방에 막혔다. 이후 잉글랜드는 계속해서 맹공을 퍼부었지만, 미국은 15분 동안 슈팅을 허용하지 않으며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경기 종료 8분 전, 찰리 콜롬보는 페널티 지역 밖에서 모르텐센에게 반칙을 범했다. 잉글랜드는 페널티킥을 주장했으나, 주심은 반칙이 페널티 지역 밖에서 이루어졌다고 판정했다. 알프 램지의 프리킥에 이은 지미 멀렌의 헤딩슛은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보르기가 마지막 순간에 공을 쳐냈고, 주심은 공이 골라인을 넘지 않았다고 판정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5] 잉글랜드는 이후 이렇다 할 공격을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미국이 85분에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 프랭크 "피위" 월리스가 윌리엄스 골키퍼를 골대 밖으로 유인한 후 빈 골대를 향해 슛을 날렸지만, 램지가 슬라이딩하며 골라인을 넘기 전에 공을 걷어냈다.[5]
; 경기 정보
1950년 6월 29일 15시(BRT, UTC-3)에 벨루오리존치의 이스타지우 라임훈두 이펜덴시아에서 열린 미국과 잉글랜드의 경기는 미국이 1-0으로 승리했다. 전반 38분 게이전스가 미국의 결승골을 기록했다. 경기에는 10,151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주심은 이탈리아의 제네로소 다티로가 맡았다.
선수(미국) | 포지션 | 선수(잉글랜드) | 포지션 |
---|---|---|---|
프랭크 보르기 | GK | 버트 윌리엄스 | GK |
해리 키오 | RB | 알프 램지 | RB |
조 마카 | LB | 존 애스턴 | LB |
에드 맥길베니 (c) | RH | 빌리 라이트 (c) | CH |
찰리 콜롬보 | CH | 로리 휴스 | MF |
월터 바 | LH | 지미 디킨슨 | MF |
지노 팔리아니 | IR | 윌프 매니온 | FW |
존 소자 | IL | 톰 피니 | FW |
프랭크 월레스 | OR | 지미 멀렌 | FW |
에드 소자 | OL | 스탠 모텐슨 | FW |
조 게이전스 | CF | 로이 벤트리 | FW |
감독: 빌 제프리 (빌 제프리/Bill Jeffreysco) | 감독: 월터 윈터보텀 |
부심은 프랑스의 찰스 드 라 살과 이탈리아의 조반니 갈레아티가 맡았다.
3. 1. 전반전
잉글랜드는 경기 초반부터 미국을 압도했다. 90초 만에 스탠리 모텐슨이 왼쪽 측면에서 로이 벤틀리에게 크로스를 보냈고, 벤틀리가 슛을 날렸지만 미국의 골키퍼 프랭크 보르기에게 간신히 막혔다.[5] 전반 12분까지 잉글랜드는 골대 앞에서 6번의 슈팅 기회를 잡았지만,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2번의 슛은 골대를 맞았고, 1번은 골대 위로 살짝 넘어갔으며, 또 다른 슛은 보르기가 멋지게 막아냈다.[5]미국은 공격 전개에 어려움을 겪었고, 25분에 첫 슈팅을 시도했지만 잉글랜드 골키퍼 버트 윌리엄스에게 막혔다. 잉글랜드는 30분, 31분, 32분에 연달아 3번의 공격을 시도했으나, 득점에는 실패했다. 모텐슨은 2번이나 크로스바 위로 슛을 날렸고, 톰 피니의 헤더는 보르기가 쳐냈다.[5]
전반 37분, 미국의 월터 바가 25야드 밖에서 장거리 슈팅을 시도했지만 윌리엄스가 선방했다. 그러나 38분에 튕겨나간 공을 조 게이전스가 헤딩으로 슈팅했고, 공은 잉글랜드 골대 왼쪽 안으로 들어갔다.[13] 미국이 1-0으로 앞서나가자 관중들은 열광했다.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 피니에게 동점골 기회가 있었지만, 슛을 하기 전에 휘슬이 울렸다.[5]
경기가 진행되면서 브라질 지역 주민들이 라디오 중계를 듣고 경기장을 찾아 관중 수가 늘어났다.[11] 관중들은 대부분 언더독인 미국을 응원하며, 보르기의 선방과 잉글랜드의 공격 실패에 환호했다.[6] 심지어 일부 지역 주민들은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 낮은 벽을 뛰어넘기도 했다.[6]
월터 바흐가 미국 대표팀 주장을 정기적으로 맡았지만, 이 경기에서는 "그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에드 맥길베니가 주장을 맡았다.[15]
3. 2. 후반전
미국은 전반전에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후반 54분에 추가 득점 기회를 노렸지만 실패했다.[5] 59분, 잉글랜드는 프리킥을 얻었으나 모르텐센의 슛은 프랭크 보르기의 선방에 막혔다. 이후 잉글랜드는 계속해서 맹공을 퍼부었지만, 미국은 15분 동안 슈팅을 허용하지 않으며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경기 종료 8분 전, 찰리 콜롬보는 페널티 지역 밖에서 모르텐센에게 반칙을 범했다. 잉글랜드는 페널티킥을 주장했으나, 주심은 반칙이 페널티 지역 밖에서 이루어졌다고 판정했다. 알프 램지의 프리킥에 이은 지미 멀렌의 헤딩슛은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보르기가 마지막 순간에 공을 쳐냈고, 주심은 공이 골라인을 넘지 않았다고 판정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5] 잉글랜드는 이후 이렇다 할 공격을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미국이 85분에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 프랭크 "피위" 월리스가 윌리엄스 골키퍼를 골대 밖으로 유인한 후 빈 골대를 향해 슛을 날렸지만, 램지가 슬라이딩하며 골라인을 넘기 전에 공을 걷어냈다.[5]3. 3. 경기 정보
1950년 6월 29일 15시(BRT, UTC-3)에 벨루오리존치의 이스타지우 라임훈두 이펜덴시아에서 열린 미국과 잉글랜드의 경기는 미국이 1-0으로 승리했다. 전반 38분 게이전스가 미국의 결승골을 기록했다. 경기에는 10,151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주심은 이탈리아의 제네로소 다티로가 맡았다.선수(미국) | 포지션 | 선수(잉글랜드) | 포지션 |
---|---|---|---|
프랭크 보르기 | GK | 버트 윌리엄스 | GK |
해리 키오 | RB | 알프 램지 | RB |
조 마카 | LB | 존 애스턴 | LB |
에드 맥길베니 (c) | RH | 빌리 라이트 (c) | CH |
찰리 콜롬보 | CH | 로리 휴스 | MF |
월터 바 | LH | 지미 디킨슨 | MF |
지노 팔리아니 | IR | 윌프 매니온 | FW |
존 소자 | IL | 톰 피니 | FW |
프랭크 월레스 | OR | 지미 멀렌 | FW |
에드 소자 | OL | 스탠 모텐슨 | FW |
조 게이전스 | CF | 로이 벤트리 | FW |
감독: 빌 제프리 (빌 제프리/Bill Jeffreysco) | 감독: 월터 윈터보텀 |
부심은 프랑스의 찰스 드 라 살과 이탈리아의 조반니 갈레아티가 맡았다.
4. 경기 후
이 경기에서 승리한 미국은 이 경기에서 모든 힘을 쏟아부은 탓에 가장 약한 상대인 칠레에게 2-5 대패를 당해 조꼴찌로 탈락했으며 잉글랜드는 미국에게 패배한 여파로 인해 전의를 완전히 상실해서 스페인에게 0-1로 패배했으며 그 결과 스페인만 3전 전승, 나머지 3팀 모두 1승 2패를 기록하여 스페인이 파이널에 진출했다.
-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한 잉글랜드는 최종전에서 스페인에 맞서지만, 결국 패배하여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이 사건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대의 수치로 일컬어졌으며, 당시 경기에서 착용한 파란색 유니폼은 오늘날까지 사용되지 않고 있다.
- 대승을 거둔 미국은 최종전에서 칠레에 2-5로 패하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은 축구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현지 브라질에도 기자 한 명만 파견하는 등 미국에서는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았다. 수비수 해리 키오는 경기 후 기자 회견에서 "경기 전, 우리는 0-2 패배에 만족했고, 이길 생각도 없었다.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는 것만 생각했다"라고 언급했다.
- 개최국 브라질의 관중들은 이번 대회 최대 라이벌로 여겨지던 잉글랜드의 탈락을 크게 기뻐했지만, 결승 리그에서 마라카낭의 비극이라는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악의 비극에 직면하게 된다.
- 승리의 주역이었던 아이티 출신 게이전스는 귀국한 아이티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게이전스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14년 후인 1964년에 아이티의 뒤발리에 대통령이 발족한 비밀 경찰통통 마쿠트에 체포되어 포트 디망셰 감옥에 투옥되었다. 투옥 이틀째에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겼다. 같은 해 7월 10일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유해도 발견되지 않았다. 뒤발리에 정권 아래 희생된 3만 명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 2005년에는 이 경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미국 영화 『제럴드 버틀러 in THE GAME OF LIVES』(원제: ''The Game of Their Lives'')가 공개되었다. 제프리 더글러스의 저서 『월드컵 전설 기적을 일으킨 11인』(원제: ''The Game of Their Lives'')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 이후, 양국은 2010년과 2022년 월드컵에서 맞붙었고, 2010년에는 1-1, 2022년에는 0-0으로 비겼다. 또한 친선 경기를 포함하면 잉글랜드가 8승 2패 2무로 앞서고 있다[41]。
4. 1. 잉글랜드
잉글랜드는 미국전 패배의 여파로 전의를 완전히 상실, 이어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도 0-1로 패배하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20] 이 경기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악의 패배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이 착용한 파란색 유니폼은 이후 다시 사용되지 않았다는 속설이 있다.[26] 하지만, 1959년 페루 원정 경기 등에서 파란색 유니폼을 착용한 기록이 확인된다.[28]1950년 월드컵의 충격적인 패배는 1953년 헝가리의 "골든 팀"에게 6-3으로 패배[4], 1954년 헝가리에게 7-1로 다시 패배[4]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연이은 패배는 잉글랜드 축구의 재조직을 촉발했고, 결국 1966년 FIFA 월드컵 우승으로 이어졌다.[4]
당시 잉글랜드 언론들은 자국 크리켓 팀의 사상 첫 홈 경기 패배 소식에 묻혀 이 사건을 크게 보도하지 않거나, 오보를 내는 경우가 있었다.[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팀의 경기력은 "잉글랜드, 축구에서도 망신", "마지막 지푸라기 - 미국,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격파"와 같은 헤드라인으로 맹렬하게 비난받았다.[18][19]
4. 2. 미국
미국은 이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칠레와의 최종전에서 2-5로 패배하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3] 미국 내에서는 이 경기에 대한 관심이 적었으며, 언론 보도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의 덴트 맥스키밍 기자가 유일하게 현지에 파견되었는데, 그는 신문사의 지원 없이 자비로 취재를 해야 했다.[5] 맥스키밍의 기사는 미국의 주요 신문에 실린 몇 안 되는 보도 중 하나였다.[5] [16]미국의 존 수자는 ''Mundo Esportivo''가 선정한 월드컵 올스타 팀에 선발되었다.[15]
이 경기는 1994년 FIFA 월드컵 개최 이전까지 미국 축구계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25] 이후 이 경기는 레이크 플래시드 기적에 비견되며 '벨루오리존치의 기적'으로 불리게 되었다.[33][34][35]
4. 3. 대한민국
1950년은 한국 전쟁이 발발한 해였기에, 한국의 언론과 축구 팬들은 이 경기를 약소국이 강대국을 꺾은 이변으로 받아들였다.[5][15][25] 이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되기도 했다. 또한 이 경기는 스포츠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례로 언급되기도 했다.5. 이후 양 팀의 월드컵 맞대결
이후, 양국은 2010년 FIFA 월드컵과 2022년 FIFA 월드컵에서 다시 만났는데, 2010년에는 1-1로, 2022년에는 0-0으로 비겼다.[41] 친선 경기를 포함하면 잉글랜드가 8승 2패 2무로 앞서고 있다.[41]
6. 기타
이 경기는 미국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지만, 1994년 FIFA 월드컵을 미국에서 개최하면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25] 제프리 더글라스는 1994년 월드컵 준비 보도 기사에 영감을 받아 미국 팀 생존 선수 5명을 인터뷰하여 ''The Game of Their Lives''라는 책을 썼고, 이는 2005년 데이비드 앤스포 감독의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32] 이후, 이 경기는 1980년 동계 올림픽에서 미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이 소련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을 꺾은 레이크 플래시드 기적에 비견되며 "기적의 경기"로 불리게 되었다.[33][34][35]
대부분의 월드컵 참가국 신문들은 이변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미국과 잉글랜드에서는 그렇지 않았다.[5] 잉글랜드에서는 잉글랜드 크리켓 팀이 서인도 제도에게 사상 첫 홈 경기 패배를 당한 사건이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팀의 경기력은 "잉글랜드, 축구에서도 망신"과 같은 헤드라인으로 맹렬하게 비난받았다.[18][19]
한편, 미국 대표팀 선수 중 존 수자는 브라질 스포츠 신문 ''Mundo Esportivo''가 선정한 월드컵 올스타 팀에 선발되었으며, 2002년 클라우디오 레이나가 선정되기 전까지 유일하게 월드컵 올스타 팀에 선발된 미국 선수였다.[15] 미국 대표팀은 1950년 FIFA 월드컵에서 선보인 파란색 유니폼을 다시는 착용하지 않았다.[26]
미국과 잉글랜드는 1950년 이후 2010년 FIFA 월드컵 조별 리그 경기에서 1-1 무승부,[36] 2022년 FIFA 월드컵 조별 리그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다.[3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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