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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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리살주는 방글라데시 남부에 위치한 주로, 1993년 1월 1일에 신설되었다. 이 지역은 고대부터 여러 왕조의 지배를 받았으며, 13세기 초 무슬림 세력에 편입된 후 무굴 제국 시대를 거쳐 영국 식민지 시대를 겪었다.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이후 바리살 광역 지역이 바리살주로 승격되었다. 갠지스강 삼각주 지대에 위치하여 쌀 생산으로 유명하며, 주요 도시로는 바리살이 있다. 2022년 기준 인구는 약 910만 명이며, 이슬람교가 다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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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살주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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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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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 동방의 베네토 |
위치 | 방글라데시 |
중심 도시 | 바리살 |
인구 통계 | 바리살리, 보리샤일라 |
면적 | 13,225km2 |
해발 고도 | 1.2m |
행정 | |
소속 국가 | 방글라데시 |
설립일 | 1993년 1월 1일 |
관할 구역 | 6개 구 |
하위 구역 | 41개 하위 구 |
유니온 카운슬 | 352개 |
행정 책임자 | 분할 위원 |
책임자 | Md. Rayhan Kawsar |
경찰청장 | Md. Monzur Morshed Alam |
의회 선거구 | 자티야 상샤드(21석) |
인구 | |
총 인구 (2022년) | 9,100,104명 (조사) |
도시 인구 | 2,286,285명 |
농촌 인구 | 6,811,636명 |
메트로 인구 | 419,472명 |
조정 인구 | 9,325,820명 |
인구 밀도 | auto |
언어 | |
공용어 | 벵골어 |
소수 언어 | 라카인어 |
기타 정보 | |
시간대 | BST |
UTC 오프셋 | +6 |
ISO 3166-2 | BD-A |
웹사이트 | 바리살 주 공식 웹사이트 |
HDI (2018) | 0.629 |
주요 크리켓 팀 | 포춘 바리살 바리살 주 |
2. 역사
바리살은 과거 로이쇼두리 가문의 지배를 받았으나, 현재 이 일족은 콜카타로 이주했다.[1] 1797년 바케르간지 구가 설립되었고, 이후 바리살 구로 개칭되었다. 1948년 바게르간지구 일부는 바리살구로, 나머지는 파투아칼리구로 개칭되어 쿨나구의 5개 구 중 하나가 되었다.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이후, 1993년 1월 1일 바리살 주가 신설되었으며,[10] 2002년 바리살 시가 도시(City Corporation)로 승격되었다.
2. 1. 고대 및 중세 시대
현대 바리살 지역은 고대 시대에 방가 왕국과 간가리다이 제국의 일부였다. 벵골에서 굽타 왕조가 멸망한 후, 이 지역은 6세기에 가우다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이 지역은 초기 중세 시대에 카드거 왕조, 팔라 제국, 찬드라 왕조 및 바르만 왕조(벵골)의 지배를 받았다. 세나 왕조 시대의 비문 기록에 따르면, 현대의 바리살은 벵골 지역의 고대 행정 구역인 ''아누타라 방가''(남부 벵골)로 알려졌다. 세나 왕조의 통치 이후, 바리살은 12~13세기에 데바 왕조의 왕들에 의해 통치되었다.[7][8]초창기 바리살 지역은 브라마푸트라강-갠지스강-메그나강의 합류로 이루어진 거대한 수로에서 씻겨 내려온 충적토에 의해 생성되고 형성된 섬들이 합쳐져 만들어진 습지였다.
13세기 초, 무하마드 빈 바흐티야르 할지가 바리살을 무슬림 세력에 귀속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하마드 빈 투글루크가 동벵골을 완전히 정복했다. 힌두교 족장들은 벵골 북서부에서 권력을 잃고 바리살 지역으로 흩어져 박라 왕국을 세웠다.[9]
2. 2. 무굴 제국 시대
17세기 말과 18세기 초, 무슬림 개척자들이 바리살 지역으로 이주하여 농지를 개간하고 정착했다. 이 시기 바리살은 무굴 제국의 수도 다카 건설로 인해 사업가와 개발자들에게 더욱 접근성이 좋아졌다. 그러나 아라칸족과 포르투갈 선원들의 해적 행위로 인해 무굴 총독들의 진출 시도는 방해받았다.[9]1666년 이후, 무굴 해군이 메그나 하구의 외부 위협을 제거하면서 바리살 내륙은 식민지화에 적합한 환경이 되었다. 토지 개발자들은 지방 당국으로부터 탈루크(তালুক) 토지 구획에 대한 보조금을 받았다. 탈루크다르(তালুকদার)들은 이 보조금을 농업 생산에 투입했고, 자민다르(জমিদার) 계층을 통해 토지 수입을 넘겨주었다. 자민다르는 일반적으로 지방 수도에 거주하며 수석 지방 세무 관리인 데완(দেওয়ান)과 쉽게 교류했다.[9]
무슬림 피르(수피즘) 또는 카디가 직접 미개척 지역으로 들어가 정글을 개간하고 지역 주민들을 조직하여 영향력을 확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적인 무슬림 피르와 무굴 당국 간의 관계는 항상 조화롭지는 않았다. 피르의 권위는 대중에게 있었기 때문에 총독 및 관료들과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동부 바카르간지의 잘라카티 타나에서 18세기 많은 피르들과 교육자, 이슬람 학자들이 권위 아래 들어갔으며, 그중에는 사이이드 파키르와 파이주스 아흐메드 칸이 포함되어 사이이드푸르, 히즐라, 믈라디의 모든 무슬림 마을의 경작자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06년 사이이드푸르 마을의 피르 파키르에 대한 마을 조사에서 "이 지역 사람들은 파키르를 그들의 지도자로 여겼고 나와브에게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피르의 영향력은 컸다. 결국 총독의 고용된 선장인 라라 체트 싱이 파키르를 설득하여 나라를 떠나게 했다.[9]
2. 3. 영국 식민지 시대
1797년 이 지역은 바케르간지 구로 설립되었으나, 이후 바리살 구로 개칭되었으며, 히즐라-물라디의 피르 파이주스 아흐메드 칸은 물라디-히즐라 마을에 정착했다.[1] 관구 도시 바리살은 과거 로이쇼두리 가문의 지배를 받았으나, 현재 이 일족은 콜카타로 이주했다.[1]2. 4. 파키스탄 시대
1948년에 바게르간지구 지역의 일부는 바리살구로, 나머지는 파투아칼리구로 개칭되어 쿨나구의 5개 구 중 하나가 되었다.2. 5. 방글라데시 시대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이후, 1993년 1월 1일에 바리살 주가 신설되었다.[10] 2002년, 바리살 시가 도시(City Corporation)로 승격되었다.3. 지리
갠지스강(파드마강) 하구의 삼각주 지대에 위치하며, 습지대이다. 주요 강으로는 아리알 칸(Arial Khan), 비쉬칼리(Bishkhali), 부리쉬와르(Burishwar), 텐툴리아(Tentulia), 파이라(Paira), 하린가타(Haringhata), 발레쉬와르(Baleshwar), 키르탄콜라(Kirtankhola), 카차(Katcha), 아군무카(Agunmukha) 등이 있다.[1] 수많은 강과 운하로 인해 주민들은 보트를 주요 교통 수단으로 사용한다.[1]
4. 행정 구역
(2022년 인구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