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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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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제악은 일본에서 연주된 백제 음악을 의미한다. 683년 일본서기에 처음 등장하며, 554년 백제가 야마토 왕조에 악인을 보낸 것이 백제 악사의 일본 도래에 대한 최초 기록이다. 세로 공후, 횡적, 막목 등의 악기를 사용했으며, 악사 수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덴표 시대에는 백제왕씨에 의한 연주가 있었으나, 헤이안 시대에 고려악에 흡수되어 쇠퇴했다.

2. 역사

"백제악"이라는 명칭이 문헌상 처음 등장하는 것은 『일본서기덴무 천황 12년(683년) 1월 기록이다. 이 기록에는 오와리다노마히(小墾田儛) 및 고려(高麗), 백제, 신라 삼국의 악(樂)이 궁중 정원에서 연주되었다고 적혀 있다[2].

이에 앞서 『일본서기』 킨메이 천황 15년(554년) 2월에는 백제가 야마토 왕조에 원군을 요청하며 오경 박사, 승려 등과 함께 악사(樂人)를 파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이 시기 백제의 악사가 일본에 건너갔음을 알 수 있다[3].

백제악에는 세로로 타는 공후(竪箜篌, 백제금이라고도 함), 가로로 부는 피리인 횡적(横笛, 백제적이라고도 함), 막목(莫目) 등의 악기가 사용되었다. 악사와 악생의 수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는데, 직원령(職員令)에는 악사가 4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덴표 3년(731년)에는 악생이 26명이었으나 이후 점차 축소되었다[4][5].

덴표 16년(744년)과 엔랴쿠 10년(791년)에는 각각 쇼무 천황간무 천황을 위해 백제왕씨가 백제악을 연주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6][7].

그러나 백제악은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고려악(高麗楽)에 흡수되었고, 백제금, 백제적, 막목 등 백제 고유의 악기들도 결국 쇠퇴하였다.

2. 1. 백제 악사의 일본 도래

일본서기』에 따르면, 백제에서 악사가 일본으로 건너간 첫 기록은 킨메이 천황 15년(554년) 2월의 일이다. 당시 백제는 야마토 왕조에 원군 파병을 요청하면서 기존에 파견했던 장군과 오경 박사, 승려 등을 교체해 줄 것을 청했다. 이때 새로운 역 박사, 력 박사, 의 박사, 채약사와 함께 악인(樂人, 악사)을 보냈는데, 이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최초의 백제 악사로 기록되어 있다.[3]

2. 2. 악기 및 악사 구성

백제에서 일본으로 악사가 파견된 것은 『일본서기』 킨메이 천황 15년(554년) 2월 기록이 처음이다. 당시 백제는 야마토 왕조에 원군 파견을 요청하면서 오경 박사, 승려, 역 박사, 력 박사, 의 박사, 채약사 등과 함께 악사(악인)를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3]

백제악에는 세로로 타는 공후(竪箜篌, 백제금이라고도 불림), 가로로 부는 피리인 횡적(横笛, 백제적이라고도 불림), 막목(莫目) 등의 악기가 사용되었다.

악사의 수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다.

시기/기록구성총원비고
직원령(職員令) 17-4명-
영집해(令集解)』 인용
(아악대속 오와리노 죠소쿠 설)
공후사(箜篌師), 횡적사(横笛師, 노래 겸임), 한금사(韓琴師), 무사(舞師) 각 1명4명-
다이도(大同) 4년 (809년) 3월 격(格)공후사, 횡적사(노래 겸임), 막목사(莫目師), 무사 각 1명4명한금사가 막목사로 변경됨[4]



악곡을 배우는 악생(樂生)의 수도 조정되었다. 『속일본기(続日本紀)』에 따르면, 덴표(天平) 3년(731년) 6월에 아악료(雅楽寮)의 잡악생(雑楽生) 정원이 정해지면서 백제악의 악생은 26명이 되었다.[5] 이후 요로령(養老令)에서는 20명으로 줄었다. 가쇼(嘉祥) 원년(848년) 9월의 격(格)에 따른 세부 구성과 이후 변화는 다음과 같다.

시기/기록총원세부 구성 (가쇼 원년 기준)비고
덴표 3년 (731년)26명-속일본기 기록
요로령20명--
가쇼 원년 (848년)20명횡적생 1명, 막목생(莫目生) 1명, 공후생 2명, 무생(舞生) 4명, 무녀(舞女) 10명, 다리시고생(多理志古生) 1명, 가생(歌生) 1명-
가쇼 원년 (848년) 이후7명-공후생 1명, 무생 2명, 무녀 감축[4]



백제악은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고려악(高麗楽)에 흡수되었고, 백제금, 백제적, 막목 등의 악기도 결국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2. 3. 악생 수 변화

덴표 3년(731년) 6월, 아악료에 소속된 악생의 정원이 정해졌을 때 백제악 악생은 26명이었다[5]. 이후 요로령에서는 20명으로 줄어들었다.

가쇼 원년(848년) 9월의 격(格, 규정)에 따르면 당시 백제악 악생의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4].

가쇼 원년(848년) 백제악 악생 구성
악기/역할인원
횡적생1명
막무생1명
공후2명
무생 (춤추는 사람)4명
무녀10명
다리시고생1명
가생 (노래하는 사람)1명
총합20명



그러나 같은 해에 다시 인원 감축이 이루어져 공후생 1명, 무생 2명, 그리고 무녀 10명이 줄어들면서 총 7명(횡적생 1, 막무생 1, 공후생 1, 무생 2, 다리시고생 1, 가생 1)으로 축소되었다[4].

2. 4. 백제왕씨의 연주

덴표 16년 (744년) 2월에는 쇼무 천황을 위해 백제왕씨가 백제악을 연주하였다.[6] 이후 엔랴쿠 10년 (791년) 10월에는 간무 천황을 위해 후지와라노 쓰구나와가 백제왕씨에게 백제악을 연주하게 하였다.[7] 두 차례 연주에 참여한 백제왕씨 연주자들은 각각 승진하였다.

2. 5. 고려악에 흡수 및 쇠퇴

백제악은 헤이안 시대에는 고려악에 흡수되었고, 백제금·백제적·막목 등의 악기도 결국 쇠퇴하였다.

참조

[1] 뉴스 5世紀の日韓関係 - 倭の五王と高句麗・百済 - http://www.jkcf.or.j[...] 日韓歴史共同研究 2005-06
[2] 서적 日本書紀 巻第二十九・天武天皇下・十二年正月十八日条
[3] 서적 日本書紀 巻第二十九・欽明天皇・十五年二月条
[4] 서적 続日本紀 2 岩波書店 1990
[5] 서적 続日本紀 巻第十一・聖武天皇・天平三年六月二十九日条
[6] 서적 続日本紀 巻第十五・聖武天皇・天平十六年二月二十日条
[7] 서적 続日本紀 巻第四十・桓武天皇・延暦十年十月十二日条
[8] 간행물 백제악 글로벌 세계 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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