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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라 스탐바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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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스트라 스탐바난은 스웨덴의 스톡홀름과 예테보리를 연결하는 철도 노선이다. 1845년 철도 건설 주장이 제기된 후, 1855년 착공하여 1862년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개통 당시 14시간이 소요되었으나, 지속적인 개량과 복선화, 전철화를 거쳐 운행 시간을 단축했다. 현재는 X 2000 고속 열차가 운행하며, 스톡홀름-예테보리 구간을 약 3시간 이내에 주파한다. 향후 예탈란드바난 고속선 건설 및 스톡홀름 시내 구간 개선 계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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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라 스탐바난 - [철도 노선]에 관한 문서
노선 정보
노선 이름서부 간선 철도
원어 이름Västra stambanan
노선 종류철도 노선
노선 상태운영 중
위치스웨덴
기점스톡홀름
종점예테보리
주요 경유지할스베리
개통일1862년 11월 3일
소유주스웨덴 정부
노선 길이455 km
선로 수복선 (일부 구간 복복선)
궤간1,435 mm (표준궤)
전철화교류 15kV 16.7Hz
최고 속도200 km/h
운영
운영사스웨덴 국철
그린 카고
기타
역사
건설 시작1856년
완공1862년
역 정보
역 수미제공
기술 정보
신호 시스템미제공

2. 역사

베스트라 스탐바난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과 제2의 도시 예테보리를 잇는 핵심 간선 철도 노선이다. 1850년대 스톡홀름예테보리를 최대한 직선으로 연결하는 계획으로 시작되었으며,[2][3] 아돌프 에우게네 본 로센 대공의 초기 제안과 닐스 에릭손의 건설 책임 아래 1855년 착공하여 1862년 11월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3] 개통으로 스톡홀름-예테보리 간 소요 시간은 14시간으로 크게 단축되었다.[3]

개통 이후 지속적인 개선이 이루어져, 1871년 스톡홀름 근교 일부 구간을 시작으로 복선화가 추진되어 1958년 스웨덴 최초로 전 구간 복선화가 완료되었다.[9] 1926년에는 전 구간 전철화가 이루어졌으며,[9] 1980년대 자동 열차 제어 장치(ATC) 도입 등으로 고속 운행 기반을 다졌다.[10] 1990년대 초반 고속 열차 X 2000 운행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고속철도 시대를 열었고,[9][10] 이후 그뢰딩에 선, 시티 선 건설 등 선로 용량 증대와 현대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2. 1. 건설 배경 (1845년-1854년)

아돌프 에우게네 본 로센 대공(Adolf Eugène von Rosen)은 1845년 스웨덴으로 돌아온 후, 영국프랑스에서 본 철도를 바탕으로 스웨덴 내 철도 건설을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당시 정치계를 양분시켰으며, 운하 건설자인 닐스 에릭손은 대표적인 반대자였다. 본 로센은 스톡홀름-예테보리 간 철도 건설 독점권을 확보하고 영국 자본의 도움을 받아 노선 선정을 시작했다.[2][3]

철도 건설을 초기에 지지했던 지역은 예테보리-알링소스-보르고르다 연선이었으며, 이 지역에서는 1848년부터 철도 건설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확보된 부지는 'S.J.W.'(Svenska Jern Wägen)라는 말뚝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1847년 영국에서 발생한 재정 위기로 인해 더 이상의 진전을 보기는 어려웠다.[2][3]

국회에서 정치적 논쟁이 이어지는 동안, 본 로센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멜라렌 호와 베네른 호를 잇는 셰핑-훌트 철도 건설을 계획했다.[4] 이는 서부 스웨덴의 지역 상인, 지주, 산업체 구성원들이 수도로 향하는 철도 노선 건설을 강력하게 요구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중앙 정부는 예테보리-알링소스 및 예테보리-보로스 간 노선 건설을 더 시급하게 여기고 있었다. 1852년 철도 건설을 위한 자본 회사가 설립되었으나, 1854년 국가가 직접 간선 철도를 건설하고 운영하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2][3]

2. 2. 건설 과정 (1855년-1862년)

스웨덴의 철도 건설은 1845년 아돌프 에우게네 본 로센 대공이 영국과 프랑스 철도를 견학하고 귀국한 후 이를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이는 정치계를 양분하는 논쟁적인 주장이었으며, 운하 건설자였던 닐스 에릭손 등이 대표적인 반대론자였다. 본 로센은 스톡홀름-예테보리 간 철도 건설 독점권을 얻어 영국 자본의 도움으로 노선 선정을 시작했다.[2][3]

초기에 철도 건설을 지지한 지역은 예테보리-알링소스-보르고르다였으며, 1848년부터 부지 확보가 가능했다. 철도 부지는 'S.J.W.'(Svenska Jern Wägensv) 말뚝으로 구분되었다. 그러나 1847년 영국의 재정 위기로 인해 큰 진전을 보지는 못하였다.[2][3]

국회 논쟁 중 본 로센은 멜라렌 호와 베네른 호를 잇는 소규모 셰핑-훌트 철도 건설을 계획하여[4] 서부 스웨덴 지역 상인들이 수도행 철도 노선을 강력히 요구하도록 유도했다. 중앙 정부는 예테보리-알링소스, 예테보리-보로스 구간을 더 시급하게 여겼다. 1852년 철도 건설 자본 회사가 설립되었으나, 1854년 국가가 간선 철도 건설 및 운영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2][3]

과거 철도 건설 반대론자였던 닐스 에릭손이 1855년 철도 건설 총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예테보리에 철도 부서(Jernwägs-Bureausv)를 설립하고 건설 자재, 인력, 식량, 숙소 등을 확보하며 착공을 준비했다.[3] 역사 건물 설계를 위해 건축가 아돌프 W. 에델스베르드(Adolf W. Edelsvärdsv)가 고용되었다.

세베 강을 지나는 돌다리


철도 노선은 완전히 확정되지 않았지만, 서부 구간은 본 로센의 원안이 채택되었다. 1855년 4월 30일, 베스트라 스탐바난(당시 명칭 Westra Stambanansv)의 첫 구간 착공식이 알링소스 외곽에서 열렸고, 1단계로 예테보리-보르고르다 구간 건설이 시작되었다.[2][3]

1855년 5월에는 건설 인력 700명을 고용했고, 같은 해 가을에는 2,650명까지 늘어났다. 특히 알링소스에서 예테보리로 들어가는 구간은 험난한 세베 강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다. 초기 계획은 강 주변을 따라가는 것이었으나, 강에서 유입된 토사 문제로 호수 쪽으로 노선을 변경해야 했다. 닐스 에릭손은 이 구간이 가장 비용이 많이 들고 공사가 어려웠다고 보고했다. 예테보리-욘세레드 간 첫 구간은 1856년 12월에 개통되었다.[3]

보르고르다 북쪽 구간의 노선 선정 과정에서는 빌링엔 산과 멜라렌 호 통과 방식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 본 로센의 원안은 빌링엔 산 서쪽의 기존 마차 경로를 따라 인구가 많은 스카라, 마리에스타드, 호바, 외레브로, 베스테로스를 거쳐 멜라렌 호 북쪽으로 스톡홀름에 진입하는 것이었다. 반면, 닐스 에릭손은 기존 교통로가 지나지 않던 지역에 철도를 건설하기를 원했다. 국왕이 이 계획에 반대하자 에릭손은 계획을 수정하여 빌링겐 산 동쪽을 돌아 팔셰핑, 셰브데, 퇴레보다, 예타 운하를 지나도록 했다.[5][6] 빌링엔 산 북쪽 구간에 대한 반대가 더욱 커지자, 닐스 에릭손은 1857년 9월 가장 빠르게 운행할 수 있는 할스베리, 카트리네홀름, 쇠데르텔리에를 경유하는 노선으로 최종 확정했다.[7]

1857년 여름, 욘세레드-퇴레보다 간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7월에는 고용 인원이 최대 7,700명에 달했다. 건설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다음과 같이 구간별로 개통되었다.

개통 연도서부 구간 (예테보리 기점)동부 구간 (스톡홀름 기점)
1856년 12월예테보리 - 욘세레드-
1857년 12월알링소스 - 보르고르다-
1858년팔셰핑까지 연장-
1859년퇴레보다까지 연장-
1860년-스톡홀름 쇠드라 - 쇠데르텔리에 외스트라
1861년-예르나까지 연장
1862년-그네스타 역까지 연장

[3][9]

마지막 구간 공사는 1862년에 완료되었다. 1862년 8월 1일에는 서쪽으로 스파레홀름까지, 동쪽으로 할스베리까지 열차 운행이 시작되어 스톡홀름예테보리가 철도로 완전히 연결되었다.[9] 같은 날, 지선인 할스베리-외레브로 구간도 개통되어(이후 베리슬라겐 화물선에 편입됨) 기존의 셰핑-훌트 철도와 이어지면서 예테보리에서 멜라렌 호의 내항인 셰핑까지 철도로 갈 수 있게 되었다.[3]

2. 3. 개통과 초기 운영 (1862년-1958년)

예테보리 방문 이전과 이후의 국회의원 풍자


국왕이 탑승하였던 열차


스톡홀름 쇠드라 역, 1904년


1850년대에 스톡홀름예테보리를 최대한 직선으로 연결하는 철도 건설이 계획되었다. 이 노선은 호수 북쪽을 지나 외레브로나 에스킬스투나 같은 주요 도시를 경유하지 않는 것으로 설계되었다. 1855년 알링소스 부근에서 기공식이 열렸고, 1856년에는 예테보리 중앙역에서 욘세레드(현 보케달역 부근)까지의 구간이 처음으로 개통되었다.

1862년 가을, 드디어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국왕 칼 15세가 탑승한 특별 열차가 11월 3일 오전 8시 54분 스톡홀름을 출발하여 예테보리로 향했다. 예테보리에서는 환영 아치, 불꽃놀이, 예포 발사, 축배 등 성대한 환영식이 열렸다. 개통 당일 운행한 열차는 모든 역에 정차하며 크고 작은 축하 행사를 가졌으며, 특히 11월 4일은 스웨덴-노르웨이 동군연합 창설 기념일이기도 하여 의미를 더했다. 노르웨이 대표단(내각, 노르웨이 의회 대표, 바이올리니스트 올레 불 등)을 태운 열차가 팔셰핑에서 국왕의 열차와 합류하기도 했다.[3] 예테보리 역사에서는 주 대표 올로프 포르헤우스의 연설과 철도 건설 유공자 훈장 수여식이 있었고, 건설 책임자였던 닐스 에릭손의 요청으로 국왕이 "Jag förklarar härmed Västra stambanan öppnad!|스웨덴어 원문sv"(|한국어 발음: 야그 푀르클라라르 헤르메드 베스트라 스탐바난 외프나드!sv)라고 외치며 공식 개통을 선언했다.[3]

축하 행사는 예테보리 증권 거래소에서도 이어졌으며, 밤새 계속된 잔치는 국왕의 요청으로 자정 넘어 0시 30분에 중단되었다. 다음 날에는 교회에서 수도사 페테르 비셀그렌 주도로 철도 영업을 축복하는 행사가 열렸다. 국왕이 떠날 때 다시 한번 예포가 발사되고 연회가 열린 후, 국왕 탑승 열차는 11월 6일 오전에 스톡홀름으로 돌아갔다.[3]

1862년 11월 8일부터 일반인들에게 노선 이용이 허가되었다. 당시까지 투입된 총 건설 비용은 3600만 릭스달러였다. 이는 2009년 가치로 환산하면 약 20억스웨덴 크로나에 해당한다. 개통 1년 후에는 약 25만 명이 이 노선을 이용했다.[3]

철도 개통으로 스톡홀름-예테보리 간 소요 시간은 14시간으로 단축되었다. 이는 내륙 수운(6~7일), 1832년 개통된 마차 노선(4일 반), 예타 운하(4일 4시간), 증기선과 마차를 번갈아 이용하는 가장 빠른 기존 교통수단(2일 8시간)과 비교했을 때 획기적인 변화였다.[3]

개통 당시 베스트라 스탐바난의 스톡홀름 종착역은 쇠데르말름 지구에 위치한 스톡홀름 쇠드라 역이었다. 북쪽에서 오는 노라 스탐바난 열차는 스톡홀름 노라 역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닐스 에릭손은 일찍부터 두 종착역을 연결하여 스톡홀름의 중앙역을 통합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의 계획에 따라 1871년 삼마르빈딩 선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연결선은 대부분 구간이 터널과 교량으로 이루어져 당시 킬로미터당 2백만 릭스달러라는 막대한 건설비가 투입된 가장 비싼 철도 노선이었다. 이 노선은 일부 개량을 거쳐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하기 위해 복선화 공사가 진행되었다. 스톡홀름 쇠드라 역에서 릴리에홀멘까지의 구간은 이미 1868년에 복선화되었다. 19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복선화가 시작되어 1908년에는 예테보리-올스크로켄 구간, 1909년에는 북쪽의 뢰닝에까지 복선화가 완료되었다.[9] 이후 북쪽과 남쪽에서 동시에 복선화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욘세레드 지역 터널이나 1916년 개통된 플로다 지역의 우베레드 터널 등이 새로 건설되었다. 1921년에는 쇠데르텔리에 운하 확장 공사와 맞물려 해당 구간이 복선화 및 직선화되었고, 기존의 쇠데르텔리에 외프레 역은 쇠데르텔리에 쇠드라 역(이후 쇠데르텔리에 함 역으로 개명)으로 대체되었다.[9]

1923년부터는 전철화 공사가 시작되어 1926년에 완료되었다. 1929년에는 오르스타 교가 개통되어 엘브셰 역에서 스톡홀름 쇠드라 역까지의 구간이 단축되었다. 1950년부터 1954년까지는 스톡홀름 지하철 건설과 연계하여 일부 구간이 고가화되었다. 마침내 1958년, 전 구간 복선화 공사가 완료되어 베스트라 스탐바난은 스웨덴 최초의 전 구간 복선 철도가 되었다.[9]

2. 4. 고속화 및 현대화 (1907년-현재)

욘세레드를 지나는 레지나 열차


1907년 이전 국유 철도의 최고 운행 속도는 여름 85km/h, 겨울 75km/h였으나, 1907년에 연중 90km/h로 상향 조정되었다.[10] 이는 평균 속도 증가로 이어졌지만, 더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노선 직선화 및 고가화 공사가 시작되었다.

복선화 공사는 19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진행되었다. 1908년 예테보리-올스크로켄 구간을 시작으로, 1909년에는 북쪽 뢰닝에까지 복선화가 이루어졌다.[9] 이후 북쪽과 남쪽에서 동시에 공사가 진행되어, 욘세레드 지역 터널과 플로다 지역의 우베레드 터널(1916년 개통) 등이 복선화 과정에서 새로 건설되었다. 1921년에는 쇠데르텔리에 운하 확장 공사와 함께 해당 구간이 복선화 및 직선화되었고, 기존의 쇠데르텔리에 외프레 역은 쇠데르텔리에 쇠드라(이후 쇠데르텔리에 함 역으로 개명) 역으로 대체되었다.[9]

1923년부터는 전철화가 시작되었고, 전철화 이후 전기 기관차는 증기 기관차보다 더 높은 견인력과 속도를 낼 수 있게 되었다. 1929년에는 오르스타 교가 개통되어 엘브셰 역부터 스톡홀름 쇠드라 역 사이 구간이 단축되었다. 1950년부터 1954년까지는 스톡홀름 지하철 건설을 위해 일부 구간이 고가화되기도 했다. 마침내 1958년, 전 구간 복선화 공사가 완료되어 베스트라 스탐바난은 스웨덴 최초의 전 구간 복선 철도가 되었다.[9]

1930년대 후반에는 서부 및 남부 간선의 제한 속도를 120km/h까지 높이기 위한 증속 계획이 추진되어 복선화, 중량 레일 사용, 노반 개선 공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1946년에는 일부 구간에서 120km/h, 1948년에는 130km/h까지 속도가 향상되었다. 이 시기에는 나무 침목이 콘크리트 침목으로 교체되었고, 고속화를 위해 장대 레일이 도입되었다.[10] 130km/h 증속은 1960년대에 완료되었다.[10]

1980년대에는 여객 열차 속도를 160km/h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전차선 개선이 이루어졌고, 1980년부터는 자동 열차 제어 장치(ATC)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고속 운행 시 운전사가 육안으로만 신호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차상 신호가 필수적이며, 운전사 실수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자동 제동 장치가 추가된 것이다.[10] 1985년부터 Rc3 및 Rc6 기관차가 160km/h 운행을 시작했고, 1989년에는 전 구간에 ATC 설치가 완료되었다.[10]

고속 열차 X 2000이 도입된 1990년대 초반에는 이미 대부분 구간이 200km/h 운행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9][10] 이후에도 신호 시스템 개선, 평면 교차 해소, 선형 개선 등 증속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11] 현재 노선의 최고 속도는 200km/h이지만, 이 속도는 X 2000 틸팅 열차와 일부 광역 열차만 낼 수 있다. 일반 인터시티 열차는 차량 성능 제약으로 인해 최고 속도가 160km/h로 제한된다. 스툅데와 퇴레보다 사이에는 약 40km에 달하는 스웨덴에서 가장 긴 직선 구간이 있으며, 이곳은 속도 시험에 활용된다. 현재 스웨덴 철도 최고 속도 기록인 303km/h도 X50 "레지나" EMU 열차가 이 구간에서 달성한 것이다. 이 노선은 1950년대 초부터 Rapid 엔진이 150km/h로 운행했을 정도로 높은 속도로 유명했다.

노선 용량 증대와 효율화를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1930년대 철도 국유화 과정에서 예테보리 지역의 여러 사철 역이 예테보리 센트랄 역으로 통합되었고, 이 과정에서 올스크로켄-예테보리 센트랄 간 2km 구간이 1938년 복복선화되었다.[9] 1972년 오르스타 교가 개통되면서 엘브셰에서 뉘네스 선이 합류하여 스톡홀름 지역에 첫 복복선 구간이 생겼다. 1995년에는 플레밍스베리-예르나 구간을 잇는 병행 노선인 그뢰딩에 선이 완공되었다. 그뢰딩에 선은 설계 최고 속도가 250km/h에 달하지만, 아직 신호 시스템과 열차가 이를 지원하지는 못한다. 이 노선 개통으로 병주 구간을 포함하면 복복선 구간은 44km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1993년부터는 예르나에서 쇠드라 스탐바난이 분기하여 카트리네홀름까지 병행 운행하게 되었다.[12][9]

하지만 스톡홀름 도심 구간의 선로 용량 부족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다. 특히 스톡홀름 쇠드라 역과 스톡홀름 센트랄 역 사이의 2.5km 복선 구간은 스웨덴에서 가장 혼잡한 구간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통근 열차 운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시티 선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시티 선은 톰테보다에서 분기하여 스톡홀름 시내를 지하로 통과한 뒤 스톡홀름 쇠드라 역과 연결되는 노선으로, 2008년 착공하여 2017년 완공을 목표로 했다. 시티 선 개통에 대비하여 오르스타 교는 이미 복층으로 건설되었으며, 완공 후 통근 열차는 새 오르스타 교를 통해 시티 선 터널로 진입하고, 나머지 열차는 기존 오르스타 교를 통해 스톡홀름 센트랄 역으로 운행하게 될 예정이었다.

3. 운행 현황

쇠데르텔리에 쉬드 역


베스트라 스탐바난은 전 구간이 복선이며, 스톡홀름예테보리 주변은 복복선 구간이다. 예르나-플레밍스베리 구간에는 병행 노선이 존재하는데, 그뢰딩에 선은 장거리 열차용으로, 구선은 통근열차용으로 사용된다. 플레밍스베리 북쪽 구간은 방향별 복복선으로, 장거리 열차가 외선을, 통근 열차가 내선을 이용한다. 스톡홀름 중앙역-스톡홀름 쇠드라 구간은 복선으로, 스웨덴 철도에서 시간당 24회 운행으로 가장 혼잡한 구간이다. 스톡홀름 남역 - 야르나역 구간 역시 복복선이며, 이 중 플레밍스베리역 - 야르나역 구간은 복선 선로가 각각 다른 경로를 통과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스톡홀름-예르나 구간의 모든 접속 노선은 입체 교차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외 구간은 입체 및 평면 교차가 혼재한다. 카트리네홀름역에서는 쇠드라 스탐바난이, 할스베리역에서는 베리슬라겐 화물선이 접속한다. 예르나-카트리네홀름 구간은 통행량이 많지만, 다른 구간에 비해 곡선 반경이 작아 열차 운행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

카트리네홀름-셰브데 간 180km 구간은 직선화가 잘 되어 있어 X 2000 열차가 최고 속도를 낼 수 있다. 중간 정차역이 있더라도 평균 175km/h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셰브데-알링소스 구간 역시 직선화는 잘 되어 있으나, 일부 정차역으로 인해 평균 속도가 낮아진다. 알링소스-예테보리 구간은 노선 전체에서 가장 느린 구간으로, 평균 속도는 90km/h이다. 많은 열차가 이 45km 구간을 통과하는 데 약 30분이 소요되며, 통근 열차 운행으로 인해 추월이 어려운 구간이다. X 2000 열차는 스톡홀름-예테보리 구간을 보통 2시간 45분에 운행하지만, 알링소스-예테보리 구간의 혼잡 시간대에는 소요 시간이 더 길어진다.

스톡홀름-예테보리 구간은 연간 200만 명의 승객이 열차를 이용한다. 이는 같은 구간의 항공편 이용객(연간 120만 명)과 버스 이용객(연간 20만 명)을 합친 것보다 많으며, 철도가 이 구간 대중교통 수송의 약 60%를 차지한다.

전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는 대부분 X 2000이다. 이 열차는 정차역 수가 적으며, 대부분의 운행 시간은 3시간 이내이다. 구간별 소요 시간은 예테보리-알링소스-셰브데 약 1시간, 셰브데-할스베리 약 40분, 할스베리-쇠데르텔리에-스톡홀름 약 1시간 20분이다. 주간에는 인터시티 열차도 운행하는데, X 2000과 정차역 수는 비슷하지만 소요 시간은 약 4시간이다. 지역 열차는 승객 수요에 따라 멜라르선을 경유하여 베스테로스로 운행한 후 할스베리에서 다시 합류하기도 한다.

예테보리와 스톡홀름 주변에서는 지역 통근열차가 운행하며, 단거리 지역 열차만 정차하는 역도 존재한다. 올스크로켄-예테보리 간 2km의 복복선 구간은 고정된 통행 방향 없이 교통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선로가 달라질 수 있다. 남쪽 2개 선로는 주로 베스트라 스탐바난 열차가, 북쪽 2개 선로는 북쪽 방향으로 운행하거나 해당 방향에서 오는 열차가 이용한다.

스웨덴 철도는 시설 소유와 열차 운영을 분리하는 상하 분리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베스트라 스탐바난 노선은 스웨덴 산업성 교통국이 소유하고 있으며, SJ AB(여객), 그린 카고(화물), 베올리아 트란스포르트 등의 회사가 노선을 임대하여 열차를 운행한다.

4. 건설 기준



베스트라 스탐바난은 전 구간이 복선화되어 있으며, 스톡홀름예테보리 주변은 복복선으로 건설되었다. 예르나-플레밍스베리 구간에는 병행 노선이 존재하는데, 그뢰딩에 선은 장거리 열차용으로, 구선은 통근 열차용으로 사용된다. 플레밍스베리 북쪽 구간은 방향별 복복선 구간으로, 장거리 열차는 외선을, 통근 열차는 내선을 이용한다. 스톡홀름 센트랄-스톡홀름 쇠드라 구간은 단순 복선이지만, 시간당 24회의 열차가 통행하는 스웨덴 철도에서 가장 혼잡한 구간이다.

스톡홀름-예르나 구간은 모든 접속 노선이 입체 교차 방식으로 건설되었으나, 그 외 구간은 입체 교차와 평면 교차가 혼재한다. 카트리네홀름에서는 쇠드라 스탐바난이, 할스베리에서는 베리슬라겐 화물선이 접속한다. 예르나-카트리네홀름 구간은 통행량이 많고 다른 구간에 비해 곡선 반경이 작아 열차 운행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

반면, 카트리네홀름-셰브데 간 180km 구간은 직선화가 잘 되어 있어 X 2000 열차가 최고 속도를 낼 수 있다. 이 구간에서는 중간에 정차하더라도 평균 시속 175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셰브데-알링소스 구간 역시 직선화는 잘 되어 있지만, 일부 정차역 때문에 평균 속도가 떨어진다. 알링소스-예테보리 구간은 노선 전체에서 가장 느린 구간으로, 평균 속도가 시속 90km에 불과하다. 많은 열차가 이 45km 구간을 통과하는 데 30분이 소요되며, 통근 열차 운행으로 인해 추월이 어려운 실정이다. X 2000 열차는 스톡홀름-예테보리 구간을 일반적으로 2시간 45분에 운행하지만, 알링소스-예테보리 구간이 혼잡한 시간대에는 운행 시간이 더 길어진다.

5. 미래 계획

예테보리스톡홀름을 잇는 고속철도 노선인 ''예탈란드바난'' 건설 계획이 있다. 이 노선은 베테른 호 남쪽을 지나 보로스, 옌셰핑, 린셰핑, 노르셰핑 등 주요 도시들을 경유하여 스톡홀름-예테보리 축에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5. 1. 예탈란드바난 고속선

스톡홀름예테보리 사이를 잇는 고속철도 노선인 ''예탈란드바난'' 건설 계획이 있다. 이 노선은 베테른 호 남쪽을 지나며 보로스, 옌셰핑, 린셰핑, 노르셰핑 등 기존 노선보다 인구가 많은 주요 도시들을 경유하여 이들 도시를 스톡홀름-예테보리 축에 연결할 예정이다.

최고 속도는 300km/h 이상으로 계획되어 있으며, 21세기 중반 즈음에 운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계획에 따르면 스톡홀름에서 예르나역 부근까지 약 40km 구간은 기존 선로를 이용하고, 이후 고속 신선으로 진입하여 총 소요 시간을 약 2시간으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가장 빠른 열차는 논스톱 X 2000 열차로, 455km 거리를 2시간 52분 만에 주파하며 평균 속도는 159km/h이다. 따라서 고속선이 개통되면 이동 시간이 약 40분 단축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간 단축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점 등을 이유로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5. 2. 스톡홀름 시내 구간 개선 (시티 선)

스톡홀름 쇠드라 역과 스톡홀름 센트랄 역 사이의 복선 구간은 거리는 2.5km로 길지 않지만, 스웨덴에서 가장 혼잡한 철도 구간 중 하나이다.[9][12] 이러한 병목 현상을 해소하고 통근 열차 운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시티 선(Citybanan) 건설이 추진되었다.

시티 선은 톰테보다에서 분기하여 스톡홀름 시내를 지하 터널로 통과한 뒤 스톡홀름 쇠드라 역과 연결되는 노선이다. 이 노선 건설을 준비하기 위해 오르스타 교는 이미 복층 구조로 건설되었다. 현재는 북쪽으로 가는 열차가 아래층을, 남쪽으로 가는 열차가 위층을 사용하고 있다. 시티 선이 완공되면 통근 열차는 새로운 오르스타 교(아래층)를 통해 지하 터널로 진입하고, 나머지 모든 열차는 기존 오르스타 교(위층)를 통해 스톡홀름 센트랄 역으로 운행하게 된다.

시티 선 건설은 2008년에 시작되었으며,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건설 초기에는 가칭 "시테바난선"으로 불리기도 했다.

참조

[1] 웹사이트 Västra stambanan https://www.trafikve[...] 2019-03-02
[2] 서적 En modern svensk ekonomisk historia SNS Förlag
[3] 서적 Från Östersjö till Västerhav ; Historien om hur Västra Stambanan kom till Statens Järnvägar Göteborg
[4] 문서
[5] 웹사이트 Tillblivelse av de första järnvägarna http://www.agj.net/h[...]
[6] 문서
[7] 서적 Stockholms centralstation: Dess historiska utveckling och ombyggnad under åren 1925–1927 http://www.ekeving.s[...] Kungliga järnvägsstyrelsen
[8] 간행물 Tidtabell 57 http://tidtabell.res[...] 2011-08-21
[9] 서적 Järnvägsdata med trafikplatser Svenska Järnvägsklubben
[10] 서적 Svenska elmotorvagnar; Elektriska motorvagnar konstruerade och byggda i Sverige Svenska Järnvägsklubben
[11] 문서
[12]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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