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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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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분서왕은 백제의 제9대 왕으로, 책계왕의 맏아들이다. 한군현과의 전투에서 부왕이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으며, 한군현 세력에 강경책을 펼쳤다. 304년 낙랑군 서쪽 현을 공격하다가 낙랑군 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분서왕 사후 고이왕계가 몰락하고 초고왕계가 다시 권력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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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왕
기본 정보
이름분서왕
작위어라하
왕조백제
재위298년 – 304년
즉위298년
이전 국왕책계왕
다음 국왕비류왕
본명부여분서
출생일미상
출생지위례성
사망일304년
사망지위례성
자녀계왕
부왕책계왕
모후보과부인
직업
왕가부여
왕조백제
한국어 이름
한글분서왕
한자汾西王
로마자 표기Bunseo-wang
일본어 가나ふんせいおう
일본어 가타카나プンソワン
백제 군주
목록온조왕 18 BCE–28 CE
다루왕 28–77
기루왕 77–128
개루왕 128–166
초고왕 166–214
구수왕 214–234
사반왕 234
고이왕 234–286
책계왕 286–298
분서왕 298–304
비류왕 304–344
계왕 344–346
근초고왕 346–375
근구수왕 375–384
침류왕 384–385
진사왕 385–392
아신왕 392–405
전지왕 405–420
구이신왕 420–427
비유왕 427–455
개로왕 455–475
문주왕 475–477
삼근왕 477–479
동성왕 479–501
무령왕 501–523
성왕 523–554
위덕왕 554–598
혜왕 598–599
법왕 599–600
무왕 600–641
의자왕 641–660
기타
백제 군주 (4-14대)

2. 생애

책계왕의 맏아들로, 한군현(漢郡縣)과의 전투에서 부왕이 사망하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분서왕은 한군현 세력에 대하여 강경책을 폈던 것으로 보인다. 304년 낙랑군의 서쪽 현을 공격했을 때 낙랑군 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했다.[1] 고이왕의 손자인 분서왕이 피살된 뒤 고이왕계가 몰락하고 초고왕계가 다시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2. 1. 즉위 전

분서왕은 책계왕의 맏아들이다.[1]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의표(儀表)가 준수하였다고 전해진다. 삼국사기에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제사를 지낼 때는 담대하고 곧았다. 아버지인 왕은 그를 사랑하여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2][3]

2. 2. 즉위 후

책계왕의 맏아들로, 한군현(漢郡縣)과의 전투에서 부왕이 사망하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어려서부터 의표(儀表)가 준수했다고 전해진다. 분서왕은 한군현 세력에 대하여 강경책을 폈다. 304년 낙랑군의 서쪽 현을 공격하던 중 낙랑군 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했다.[4][3][5]

분서왕은 아버지를 죽인 중국낙랑군 세력과 계속해서 전쟁을 벌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304년 낙랑군 서쪽 지역을 점령하였으나, 군(행정구역) 태수가 보낸 암살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4][3][5]

연도사건
298년대사면을 실시함.
299년동명왕릉 참배.
302년혜성이 나타남(4월).
304년낙랑군 서쪽 영토 점령(2월), 낙랑군 태수가 보낸 암살자에게 피살(10월).


3. 대외 관계

분서왕은 책계왕을 살해한 한군현, 특히 낙랑군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304년 낙랑군 서쪽 지역을 점령하는 등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으나, 낙랑군 태수가 보낸 암살자에게 살해당했다.[4][3][5]

3. 1. 한군현과의 갈등

분서왕은 아버지 책계왕을 살해한 한군현, 특히 낙랑군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304년 낙랑군 서쪽 지역을 점령하는 등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4][3][5] 그러나 이러한 분서왕의 강경책은 결국 낙랑군 태수의 보복을 불러와 암살로 이어졌다.[4][3][5]

'''삼국사기 기록'''
연도사건
298년겨울, 10월. 대사면 시행.
299년봄, 1월. 동명왕릉 참배.
302년여름, 4월. 낮에 혜성 나타남.
304년봄, 2월. 비밀리에 군대를 이끌고 낙랑군 서쪽 영토 점령.
겨울, 10월. 낙랑군 태수가 보낸 암살자에게 살해당함.


4. 분서왕 사후

책계왕의 맏아들로, 한군현(漢郡縣)과의 전투에서 부왕이 사망하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분서왕은 한군현 세력에 대하여 강경책을 폈던 것으로 보인다. 304년 낙랑군 서쪽 현을 공격했을 때 낙랑군 태수가 보낸 정예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고이왕의 손자인 분서왕이 피살된 뒤 고이왕계가 몰락하고 초고왕계가 다시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3]

분서왕 사후, 고이왕(Goi)의 후손인 분서가 죽고 초고왕(Chogo)의 후손이 왕위를 되찾았다. 다만, 분서의 아들인 계왕(Gye)이 제12대 왕으로 잠시 통치하였다.[3]

5. 가계


  • 아버지: 책계왕
  • 어머니: 보과부인(寶菓夫人중국어) - 대방군 태수의 딸.
  • 왕비: 미상
  • 아들: 계왕

참조

[1] 서적 백제의중앙과지방 (Central area and regions of Baekje) Juryuseong 2005
[2] 간행물 Samguk sagi
[3] 웹사이트 분서왕 https://www.doopedia[...] Doopedia 2020-09-21
[4] 웹사이트 분서왕 http://encykorea.aks[...]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2020-09-20
[5] 웹사이트 King Chaekgye, King Bunseo http://world.kbs.co.[...] KBS World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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