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계왕
1. 개요
책계왕은 백제의 제7대 왕으로, 고이왕의 장남이다. 286년 고이왕의 사망 이후 왕위에 올랐으며, 키가 크고 웅장하며 용맹했다는 기록이 있다. 대방군 태수의 딸인 보과부인을 아내로 맞이하여 고구려와 갈등을 겪었고, 고구려의 공격에 대비해 위례성, 아차산성, 사성을 강화했다. 298년에는 맥인과 낙랑군의 침략을 받아 직접 출전했으나 전투 중 사망했다.
책계왕
기본 정보
| 이름 | 책계 |
|---|---|
| 칭호 | 어라하 |
| 즉위 | 286년 |
| 퇴위 | 298년 |
| 선대 국왕 | 고이왕 |
| 후대 국왕 | 분서왕 |
| 본명 | 부여책계 |
| 출생지 | 위례성 |
| 사망일 | 298년 |
| 사망지 | 위례성 |
| 자녀 | 분서왕 |
| 아버지 | 고이왕 |
| 어머니 | 왕비 보과 |
| 직업 | 왕 |
| 배우자 | 왕비 보과 |
| 왕가 | 부여 |
| 왕조 | 백제 |
| 시호 | 청계 어라하, 책찬 어라하 |
한국어 이름
| 한글 | 책계왕 |
|---|---|
| 한자 | 責稽王 |
| 로마자 표기 | Chaekgye-wang |
| 매큔-라이샤워 표기 | Ch'aekkye-wang |
일본어 이름
| 한자 | 責稽王 |
|---|---|
| 히라가나 | せきけいおう |
| 가타카나 | チェッキェワン |
| 로마자 | Sekikeiō |
백제 국왕 목록
| 백제 국왕 목록 | 온조왕 18 BCE–28 CE 다루왕 28–77 기루왕 77–128 개루왕 128–166 초고왕 166–214 구수왕 214–234 사반왕 234 고이왕 234–286 책계왕 286–298 분서왕 298–304 비류왕 304–344 계왕 344–346 근초고왕 346–375 근구수왕 375–384 침류왕 384–385 진사왕 385–392 아신왕 392–405 전지왕 405–420 구이신왕 420–427 비유왕 427–455 개로왕 455–475 문주왕 475–477 삼근왕 477–479 동성왕 479–501 무령왕 501–523 성왕 523–554 위덕왕 554–598 혜왕 598–599 법왕 599–600 무왕 600–641 의자왕 641–660 |
|---|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298년 사망 -
유례 이사금
유례 이사금은 신라 14대 이사금으로, 재위 기간 동안 왜와의 교전과 이서국과의 전투를 치르며 국방 강화에 힘썼다. -
백제 국왕 -
기루왕
기루왕은 백제의 제5대 국왕으로, 다루왕 사후 즉위하여 신라를 공격했으나 패배하고 신라와 평화 조약을 맺었으며 말갈의 침입 시 신라의 지원을 받았고 자연재해가 빈번했다. -
백제 국왕 -
법왕
법왕은 백제의 제29대 왕으로, 혜왕 또는 위덕왕의 아들이며, 재위 기간 동안 불교를 숭상하고 미륵사 건립을 추진했으며 백성들에게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지하는 정책을 펼쳤다. -
전사한 군주 -
콘스탄티노스 11세 팔레올로고스
콘스탄티노스 11세 팔레올로고스는 1405년에 태어나 1449년 황제가 되었으며, 오스만 제국의 위협 속에서 동서 교회의 통합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며 동로마 제국의 종말을 가져왔다. -
전사한 군주 -
리처드 3세
리처드 3세는 잉글랜드 요크 왕가 마지막 왕으로, 장미 전쟁에서 공을 세웠으나 조카들을 런던탑에 가두고 왕위에 올랐다가 보즈워스 전투에서 패배하여 사망하며 요크 왕가의 몰락을 초래했고, 셰익스피어 희곡 등에서 악인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2. 생애
고이왕의 맏아들로 왕비는 대방 태수의 딸 보과이다. 286년 위례성을 수리하고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아차산성과 사성을 수축했다.
298년 음력 9월, 한군(漢軍)이 낙랑과 맥인을 이끌고 침입했을 때 직접 출전하였으나 백제가 크게 패했고 책계왕도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삼국사기』에는 "키가 크고 훌륭했으며, 기상이 웅장하고 용맹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2.1. 위례성 수리와 국방 강화
286년에 수도인 위례성을 화려하게 수리하고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아차산성과 사성을 수축했다.
책계왕은 대방 태수의 딸이자 한족인 보과를 부인으로 두었던 관계로, 286년 대방군이 고구려에 공격받았을 때 구원 요청에 응하여 대방군을 구하였다. 이후 백제는 고구려와 긴장 관계에 들어섰고, 왕은 아차산성(서울특별시성동구)·사성을 수리하여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