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매저로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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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빌 매저로스키는 폴란드계로 웨스트버지니아주 휠링에서 태어난 야구 선수로, 1956년부터 1972년까지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2루수로 활약했다. 그는 8번의 골드글러브상을 수상하고, 2루수 병살 메이저 리그 기록을 보유하는 등 뛰어난 수비 실력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1958년에는 MVP 투표에서 8위에 올랐다. 1960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쳐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2001년에는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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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매저로스키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 |
| 포지션 | 2루수 |
| 타석/투구 | 우타/우투 |
| 출생일 | 1936년 9월 5일 () |
| 출생지 |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휠링 |
| 프로 입단 연도 | 1954년 |
| 선수 경력 | |
| 메이저 리그 데뷔 | 팀: 피츠버그 파이리츠 날짜: 1956년 7월 7일 |
| 메이저 리그 최종 | 팀: 피츠버그 파이리츠 날짜: 1972년 10월 4일 |
| 소속 팀 | 피츠버그 파이리츠 (1956–1972) |
| 코치 경력 | 피츠버그 파이리츠 (1973) 시애틀 매리너스 (1979 - 1980) |
| 통계 (MLB) | |
| 타율 | .260 |
| 안타 | 2,016 |
| 홈런 | 138 |
| 타점 | 853 |
| 수상 내역 | |
| 올스타 선정 | 10회 (1958–1960², 1962–1964, 1967) |
| 월드 시리즈 우승 | 2회 (1960, 1971) |
| 골드 글러브 수상 | 8회 (1958, 1960, 1961, 1963–1967) |
| 영구 결번 | 피츠버그 파이리츠 No. 9 |
| 명예의 전당 헌액 | 파이리츠 명예의 전당 |
| 명예의 전당 | |
| 종류 | 국립 야구 명예의 전당 및 박물관 |
| 날짜 | 2001 |
| 방법 | 베테랑 위원회 |
2. 어린 시절
빌 매저로스키는 폴란드계 미국인으로 웨스트버지니아주 휠링에서 태어났다.[1] 그는 오하이오주 틸턴스빌에 있는 워런 합동 고등학교에서 야구와 농구 모두 뛰어난 선수였다.[1]
빌 매저로스키는 뛰어난 수비로 주목받았으며, 1958년 골드글러브상을 처음 수상했다. 통산 수비율은 .983이었고, 보살에서 내셔널 리그 1위를 9번 차지했으며, 2루수 병살 메이저 리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
그의 부모는 오하이오주 인근 헤이즐에 거주하는 메이메와 루이스 매저로스키였다.[1] 아버지 루이스는 한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을 정도로 촉망받는 야구 선수였으나, 탄광 사고로 발을 절단하면서 꿈과 생계가 모두 망가졌다.[1] 매저로스키는 부모님, 여동생 메리와 함께 전기와 실내 배관 시설이 없는 작은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자랐다.[1]
루이스는 술에 의존하게 되었지만, 아들이 탄광으로 가는 길을 따르는 것을 막으려 했다. 둘은 정기적으로 캐치볼을 하고 야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훈련은 테니스공을 가지고 하는 것이었는데, 루이스는 벽돌 벽에 테니스공을 던졌고, 그의 아들은 가족 전설에 따르면 뒷간을 파서 번 돈으로 산 글러브로 공을 잡았다.[1]
어린 시절, 매저로스키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팬이었으며, 루 보드루, 밥 펠러, 켄 켈트너, 조 고든을 자신의 영웅으로 꼽았다.[2]
매저로스키는 워렌 통합 고등학교에서 야구부 4년 동안 주전 선수로 활약했으며, 주로 유격수나 투수를 맡았다. 그는 졸업반 때 농구에서 클래스 A 올-오하이오 2팀에 선정되었다.[1]
매저로스키는 듀케인 대학교,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에서 받은 대학 장학금 제안을 거절하고 프로 야구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1954년 보스턴 레드삭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 여러 메이저 리그 팀들이 그를 영입하려 했지만, 17세의 그는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선택했다.[1]
3. 야구 경력
수비뿐만 아니라 공격에서도 좋은 시즌을 보냈다. 1958년 .275의 타율, 19 홈런, 68 타점을 기록하며 MVP 후보로 언급되었다.[1] 1957년부터 1968년까지 전성기 동안 다른 중견수들보다 많은 안타를 쳐서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포브스 필드의 먼 펜스 때문에 홈런 수는 적었지만, 원정 경기에서 홈 경기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홈런을 기록했다(홈 45개, 원정 93개).[1]
1960년 월드 시리즈 9회말 뉴욕 양키스 투수 랠프 테리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쳐서 파이리츠에 우승을 안겼다. 양키스는 이닝 초 2점을 얻어 9-9 동점을 만들어 매저로스키의 극적인 홈런을 가능하게 했다.[1]
강타자가 아니라는 평판에도 불구하고, 1960년 시리즈 1차전 4회 돈 호크가 주자로 있는 상황에서 짐 코치를 상대로 좌측 필드 점수판 너머 2점 홈런을 쳐 6-4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1]
로베르토 클레멘테와 함께 파이리츠가 1971년 월드 시리즈 우승, 1972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패배를 할 때까지 1960년 월드 시리즈 멤버 중 마지막으로 남아있었다. 선수 은퇴 1년 후인 1973년 파이리츠 코치진에 합류했다.[1]
3. 1. 프로 입단과 초기
프로 선수 생활 초기에 매저로스키에게 성공이 쉽게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1955년, 17세의 매저로스키는 클래스 A 윌리엄스포트 그레이스에서 데뷔하여 93경기에서 .235의 타율을 기록했다. 그는 유격수로만 뛰었는데, 31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다음 해 봄, 브랜치 리키 피츠버그 파이리츠 단장은 그가 2루수로서 병살 플레이를 얼마나 잘 하는지 주목했고, 이는 그가 다이아몬드의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계기가 되었다.[1] 매저로스키는 1955 시즌을 시작하기 위해 트리플 A 할리우드 스타스 팜 클럽으로 승격되었다. 새로운 포지션에서 20경기 동안 무실책 경기를 펼쳤지만, 두 단계의 승격은 타석에서 너무 버거웠다. 그는 윌리엄스포트로 다시 보내졌고, 114경기에서 .293의 타율과 11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다시 궤도에 올랐다.
매저로스키는 1956 시즌 초에 할리우드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눈에 띄게 달랐다. 그는 .305의 타율과 .823의 OPS (출루율+장타율)를 기록하며 시즌 중반에 메이저 리그로 승격되었다. 대부분의 젊은 선수들이 수년 동안 마이너 리그에서 기량을 연마해야 했던 시기에, 매저로스키는 19세의 나이에 부름을 받았다. 예상대로, 전환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았다.[1]
그는 1956년 7월 7일, 뉴욕 자이언츠를 상대로 뉴욕 폴로 그라운드에서 첫 메이저 리그 경기에 출전했다. 그의 첫 안타는 첫 타석에서 조니 안토넬리를 상대로 친 1루타였다.[3] 그러나 그 후 5주 동안 그의 타율은 .200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는 8월 16일, 4회에 로빈 로버츠를 상대로 2점 홈런을 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4-1로 승리하게 했다. 그러나 며칠 후, 바비 브래건 피츠버그 파이리츠 감독은 그를 10경기 동안 투수 뒤 타순으로 배치했다. 매저로스키는 81경기에서 .243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타순 하락이 그의 경력 초기에 타석에서의 자신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나중에 인정했다.
대니 머토가 1957년 8월 초에 브래건을 대신하여 지휘봉을 잡은 후, 매저로스키와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즉각적이고 꾸준한 발전을 보였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1958년 시즌 전 분석에서 "야구 관계자들은 매저로스키가 훌륭한 손과 수비 범위, 그리고 강한 어깨를 가지고 있어서, 아마도 이 업계에서 가장 훌륭한 젊은 내야수일 것이다"라고 보도했다.[4]
1958년, 젊은 파이리츠는 2위로 시즌을 마치며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매저로스키는 선수 경력에서 처음으로 올스타로 성장했다. 그의 19개의 홈런과 69개의 타점은 메이저 리그에서 그의 포지션에서 각각 2위를 차지했다. 그는 또한 첫 번째 골드 글러브상을 수상했다.[5] 그의 아버지 루이스는 다음 해 초에 폐암으로 사망했지만, 아들이 스타덤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1]
3. 2. 수비의 달인
매저로스키는 뛰어난 수비로 주목받았고 1958년 자신의 8개 골드글러브상 중 첫 번째 상을 수상하였다.[1] 그는 .983의 통산 수비율을 기록했고, 9번이나 보살에서 내셔널 리그를 이끌었으며, 2루수에 의한 병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7]
매저로스키는 수비 능력이 뛰어났지만, 공격에서도 좋은 시즌들을 보냈다. 그의 최고 시즌은 1958년으로, .275를 타구하고 19개의 홈런을 치고 68개의 타점을 기록하여 MVP 상 후보로 고려되기도 했다.[1] 그의 전성기(1957 ~ 1968) 동안 그는 당시 다른 어떤 중견수들보다 더 많은 안타를 쳐서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매저로스키의 홈런 수는 포브스 필드의 먼 울타리 때문에 적었다. 그는 경력 동안 홈구장에서보다 원정 경기에서 2배 이상 많은 홈런을 쳤다(홈구장에서 45개, 원정 경기에서 93개).[1]
1960년 월드 시리즈에서 매저로스키는 9회 말에 뉴욕 양키스의 투수 랠프 테리를 상대로 경기를 끝내는 홈런을 쳐서 파이리츠에게 우승을 안겨주었다. 양키스는 이닝 초에 9 대 9로 경기를 동점으로 만들기 위해 2점을 얻으며 매저로스키의 영웅적인 플레이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앤디 저프라라는 14세 팬이 경기장 밖에서 공을 잡아서 매저로스키의 사인을 받았지만, 나중에 경기에서 사용될 때 분실되었다.[1]
매저로스키는 1960년 시리즈에서 또 다른 결정적인 홈런을 쳤다. 1차전 4회에서 돈 호크가 주자로 있는 상황에서 매저로스키는 왼쪽 필드 점수판 너머로 짐 코치에게 홈런을 쳐서 6 대 4로 파이리츠가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1]
매저로스키와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파이리츠가 1971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고 1972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패했을 때 1960년 월드 시리즈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선수들이었다. 매저로스키는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1년 후인 1973년에 파이리츠에서 전 동료 선수 빌 버던의 코치진에 합류했다.[1]
파이리츠의 해설자 밥 프린스는 매저로스키를 "더 글러브"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포지션에서 수비의 기준을 세운 영원한 골드 글러브 후보였다.[1]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미래의 명예의 전당 2루수 조 모건은 그를 내야 수비의 "황금 표준"이라고 불렀다.[1]
매저로스키는 진 켈리와 같은 발놀림, 마법 같은 손, 확실한 팔, 그리고 주자들이 플레이를 방해하려는 수많은 시도를 견뎌낸 매우 강한 다리로 병살타를 예술의 경지로 만들었다. 날카로운 야구 본능과 결합하여, 그는 9이닝당 어시스트에서 9시즌 동안 리그를 이끈 것으로 입증된 바와 같이, 필드에서 비교할 수 없는 범위를 보여주었다. 최근 분석에 따르면 그는 이 포지션에서 총 구역 득점에서도 비슷한 점수를 얻었다. 놀랍게도 매저로스키는 그의 게임의 거의 절반을 포브스 필드에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었는데, 이 경기장의 내야는 옥수수처럼 하얀 표면과 많은 불규칙한 바운스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 최악이라고 널리 여겨졌다.[1]
매저로스키를 특별하게 만든 또 다른 점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글러브였는데, 오른손보다 크지 않았다. 이 콤팩트함은 특히 병살타 시도에서 더 빠른 그립, 공 전달 및 릴리스를 가능하게 했다. 한 번 길들여지면, 이 장비는 한 번에 여러 해 동안 사용되었다.[1]
"매즈는 실제로 공을 잡거나, 병살타를 할 때 글러브를 닫지도 않았어요."라고 1966시즌에 매저로스키의 161개의 병살타(여전히 메이저 리그 기록) 중 많은 수를 도운 파이리츠 유격수 진 앨리는 말했다. "그는 글러브를 각도로 기울이고 손을 그렇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공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어요. 그러다 그의 손에서 그렇게 미끄러져 나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6]
매저로스키가 마지막 경기를 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 그는 한 시즌 최다 병살타(161개), 통산 최다 병살타(1,706개), 리그 최다 병살타(8회), 최다 어시스트 시즌(9회) 등 2루수 메이저 리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7] 1964년 그의 543개의 어시스트는 1938년에서 1983년 사이에 어떤 2루수보다 가장 많았다.[5]
매저로스키의 빅 리그 첫 병살타 파트너인 딕 그로트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놀라운 범위를 가지고 있었고, 훌륭한 본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절대로 잘못된 베이스로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병살타 릴리스는 경이로웠습니다. 매즈가 어렸을 때, 저는 그와 몇 년 동안 함께 했습니다. 제가 매즈를 움직여서 여기에서 플레이하거나 저기에서 플레이하라고 말하면, 두 번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절대로."[6]
매저로스키는 또한 뛰어난 내구력으로 유명했는데, 특히 2루수 포지션의 신체적 요구와 그의 경력 후반의 만성적인 하체 문제를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12시즌(1957-1968) 동안 그는 7번 150경기 이상을 선발 출장했고, 매번 최소 129경기 이상을 선발 출장했다. 1966년과 1967년에는 강철의 사나이가 가능한 이닝 중 32이닝을 제외하고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5]
3. 3. 1960년 월드 시리즈
매저로스키는 1960년 월드 시리즈에서 9회말 뉴욕 양키스의 투수 랠프 테리를 상대로 경기를 끝내는 홈런을 쳐서 파이리츠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양키스는 그 이닝의 초반에 2점을 얻어 9-9 동점을 만들었고, 이로써 매저로스키의 극적인 홈런이 가능하게 되었다. 14세 소년 앤디 저프라가 경기장 밖에서 이 공을 주워 매저로스키에게 사인을 받았으나, 나중에 경기 중에 이 공을 잃어버렸다.[12]
강타자가 아니라는 평판에도 불구하고, 매저로스키는 1960년 시리즈에서 또 하나의 결정적인 홈런을 쳤다. 1차전 4회, 돈 호크가 주자로 있는 상황에서 짐 코치를 상대로 좌측 필드 점수판을 넘기는 2점 홈런을 쳐서 6-4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10]
매저로스키와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파이리츠가 1971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고 1972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패했을 때 1960년 월드 시리즈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선수들이었다.
1960년 시즌은 피츠버그 스포츠 팬들의 가장 열렬한 꿈을 뛰어넘는 시즌이었다. '배틀린 벅스(Battlin' Bucs)'로 알려진 파이리츠는 1927년 시즌 이후 처음으로 페넌트를 차지하기 위해 시작부터 내셔널 리그를 지배했다. 매저로스키는 두 번의 올스타 게임에서 내셔널 리그 선발로 출전했다.[9][5]
파이리츠는 8월에 매저로스키의 활약으로 31경기 중 21경기에서 승리하며 페넌트 레이스를 장악했다. 그는 .373의 타율과 16타점을 기록했고, 그 달에 26경기 연속 무실책 행진을 이어갔다.[5] 팀은 1960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고, 여기서 매저로스키는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두 번의 경기를 끝내는 홈런을 치며 자신의 야구 인생을 빛냈다. 두 번째 홈런은 10월 13일 랠프 테리를 상대로 포브스 필드에서 터졌으며, 1993년까지 메이저 리그 역사상 월드 시리즈를 끝내는 유일한 홈런이었다.[10]
야구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경기 중 하나는 9회 초에 양키스가 2점을 득점하여 9-9 동점을 만들면서 더욱 극적이었다. 매저로스키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휩쓸렸다고 인정했다. 그는 이닝 후반에 선두 타자로 나설 차례라는 것을 잊은 듯했고, 1루 코치 레니 레비가 그 사실을 상기시켜 준 후에야 급하게 방망이를 집어 들었다.[11]
현지 시간으로 정확히 오후 3시 36분에 1-0 카운트에서 매저로스키는 테리의 높은 패스트볼을 멀리 왼쪽-중앙 필드의 406피트 표식 바로 왼쪽으로 날려 보냈다. NBC 라디오 해설자 척 톰슨은 전국 청취자들에게 "스윙과 함께 높이 뜬 공이 멀리 왼쪽으로 날아갑니다! 이 공이 해낼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벽 뒤로 요기 베라가 물러섭니다... 공이 담장을 넘었습니다 -- 홈런! 피라츠가 이겼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매저로스키가 포브스 필드의 좌측 펜스를 넘어 1-0의 투구를 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게 1960년 월드 시리즈를 안겨줍니다!"
매저로스키는 승리한 홈팀 라커룸에서 기자들에게 "공이 (벽) 너머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랐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기뻐서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일년 내내 싸우고, 역전하는 팀이었습니다. 양키스가 9회에 동점을 만들었음에도 우리는 항상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고 느꼈지만, 제가 그 역할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전설적인 홈런은 피라츠에게 35년 만의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안겨주었고, 도시에서 며칠 동안 지속된 축하 행사를 촉발했다.[11]
매저로스키는 "공이 결국 넘어갔을 때 저는 거의 2루에 가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너무 열심히 달려서 3루에 도착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습니다 -- 공이 넘어갔어요." 그 시점에서 매저로스키는 기뻐하는 소년처럼 베이스를 돌며 홈플레이트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는 "제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양키스를 이겼다! 우리가 그들을 이겼다!'였습니다."라고 회고했다.[11]
14살의 앤디 저페는 구장과 인접한 쉔리 공원의 벚나무 사이에서 공을 회수했다. 매저로스키는 라커룸에서 그에게 공에 서명을 해 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경기에서 이 기념품을 잃어버렸다.[12]
7차전 홈런은 매저로스키가 시리즈에서 세 번째로 경기를 끝내는 안타였다. 1차전 4회, 돈 호크가 주자로 나가 있는 상황에서 그는 짐 코츠를 상대로 2점 홈런을 쳐서 좌측 펜스 너머의 커다란 전광판을 넘겼다. 이 안타로 피츠버그는 5-2로 앞서갔고, 6-4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5차전에서 매저로스키는 4회에 호크와 지노 시몰리를 득점시키는 2루타를 아트 디트마를 상대로 쳐냈다. 이 안타는 그의 팀에게 3-0의 리드를 안겨주었고, 이는 5-2 승리로 이어졌다. 매저로스키는 .320의 타율과 팀 최고인 5타점, 4득점, 2홈런을 기록했지만, 양키스의 바비 리차드슨이 시리즈의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10]
2010년 9월, 매저로스키의 전설적인 홈런 세리머니를 묘사한 매저로스키의 동상이 피츠버그의 PNC 파크 외부에 공개되었다. 동상은 두 팔을 뻗고 오른손에 야구 모자를 든 주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13]
이 홈런은 ''더 스포팅 뉴스''가 선정한 "야구의 가장 위대한 25가지 순간"에서 2위를 차지했다.[14] 2020년, ''더 애슬레틱''에 기고한 스포츠 작가 조 포스난스키는 야구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담은 "60가지 순간" 시리즈에서 이 홈런을 8위로 선정했다.[15]
3승 3패로 맞이한 7차전(포브스 필드)은 MLB 역사에 남는 명승부가 되었다. 초반 파이리츠가 4-0으로 리드했지만, 양키스는 5회부터 8회까지 7점을 내면서 역전했다. 8회말 파이리츠가 5점을 얻어 9-7로 재역전했지만, 9회초 양키스는 2점을 얻어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9회말, 매저로스키가 월드 시리즈 최종전에서 사상 최초의 끝내기 홈런을 쳐서, 파이리츠가 4승 3패로 양키스를 꺾었다.
이 시리즈에서 양키스는 55득점을 올렸지만, 파이리츠는 27득점에 그쳤다. 안타 수에서도 91 대 60으로 완패했지만, 시리즈에서 승리했다. 이 활약으로 매저로스키는 베이브 루스 상을 수상했다. 월드 시리즈 최종전에서의 끝내기 홈런은 그 후 1993년 월드 시리즈의 조 카터까지 나오지 않았다. 당시 카터는 6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쳤으며, 3승 3패의 7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친 것은 현재까지 매저로스키가 유일하다. 이 때의 홈런볼은 한 팬이 잡았지만, 맥주 2박스와 교환하여 매저로스키의 손에 들어갔고, 현재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보관되어 있다.
3. 4. 선수 생활 후반기
매저로스키는 뛰어난 수비 능력으로 주목받았으며, 1958년에 첫 번째 골드 글러브 상을 수상했다. 그는 통산 .983의 수비율을 기록했고, 9번이나 보살 부문에서 내셔널 리그 1위를 차지했으며, 2루수의 병살 부문 메이저 리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수비 능력이 뛰어났던 반면, 공격에서는 몇몇 좋은 시즌을 보냈다. 1958년에는 .275의 타율, 19개의 홈런, 68개의 타점을 기록하며 MVP 후보로 고려되기도 했다. 그의 전성기(1957~68) 동안에는 다른 어떤 중견수들보다 많은 안타를 쳐서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매저로스키의 홈런 수는 포브스 필드의 먼 펜스 때문에 적었지만, 원정 경기에서는 홈 경기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홈런을 기록했다.
1960년 월드 시리즈에서 매저로스키는 9회말 뉴욕 양키스의 투수 랠프 테리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쳐서 파이리츠에게 우승을 안겼다. 이 홈런은 앤디 저프라라는 14세 팬이 잡아서 매저로스키의 사인을 받았으나, 후에 분실되었다.
매저로스키는 1960년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도 짐 코치를 상대로 홈런을 쳐서 팀의 6 대 4 승리에 기여했다.
매저로스키와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파이리츠가 1971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고 1972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패배할 때까지 1960년 월드 시리즈 멤버 중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선수들이었다. 매저로스키는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1년 후인 1973년에 파이리츠의 코치진에 합류했다.
4. 은퇴 이후

매저로스키는 봄 훈련에서 파이리츠를 위해 특별 내야수 강사로 지내고 있으며 플로리다주 패너마시티에서 은퇴 생활을 하고 있다. 전 파이리츠 1루수 숀 케이시가 나온 FSN 피츠버그 광고에도 출연했다.[1]
그의 아들 대런은 은퇴한 주니어 칼리지 야구 코치이며, 아들 데이브는 대기 과학자이다.
1960년 월드 시리즈 7차전의 텔레비전 중계 영상은 5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매저로스키는 병원에 입원하여 참석하지 못했다.
매년 빌 매저로스키 골프 토너먼트를 주최하고 있다.[24]
1979년 폴란드계 미국인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1]
1995년 오하이오 캐디즈의 해리슨 센트럴 고등학교(Harrison Central High School (Ohio))는 매저로스키가 기증한 운동장을 '매저로스키 필드'로 명명했다. 2003년 레이랜드의 버키 로컬 고등학교(Buckeye Local High School)는 새로운 야구장 이름을 그의 이름으로 짓고, 홈 플레이트 뒤에 기념비를 세웠다.
2004년 오하이오 밸리 육상 회의(Ohio Valley Athletic Conference)는 매저로스키를 존 하블리첵, 바비 더글러스와 함께 명예의 전당 창립 멤버로 선출했다.
2006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2006 Major League Baseball All-Star Game)에 앞서 피츠버그 PNC 파크에서 열린 홈런 더비에서 첫 공을 던졌고, 올스타 주간 행사 동안 올스타 레전드 및 유명인 소프트볼 게임에서 내셔널 리그를 관리했다.
2022년 파이리츠 명예의 전당 창립 멤버로 헌액되었다.[22]
1987년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모어랜드 카운티에서 민주당 카운티 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23]
피츠버그 파이리츠 영구 결번 (1987년 지정).
같은 해 8월 7일, 매저로스키의 등번호 ''9''번은 파이리츠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2001년 원로 위원회를 통해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현재는 파이리츠의 특별 어드바이저로서, 매년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2023년 현재 생존해 있는 유일한 파이리츠 영구 결번 선수이다.
5. 명예의 전당 헌액과 기타 영예
매저로스키는 2001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헌액식에서 감정에 복받쳐 준비된 연설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20] 그는 수비 능력을 인정받아 헌액된 선수였다.
1987년 파이리츠는 그의 등번호 9번을 영구 결번했다.[22]
1979년에는 국립 폴란드계 미국인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1]
2004년 오하이오 밸리 육상 대회는 보스턴 셀틱스의 존 하블리첵과 전 올림픽 레슬링 선수 바비 더글러스와 함께 매저로스키를 명예의 전당 창립 멤버로 선출하였다.
2010년 9월 PNC 파크 외부에 매저로스키의 동상이 세워졌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스포츠 역사상 100개의 거대한 순간들 중 매저로스키의 홈런을 8위에 놓았다.
2006년 PNC 파크에서 열린 올스타 경기 전 홈런 더비에서 첫 투구를 던졌다.
오늘날 포브스 필드의 벽 일부는 피츠버그 대학교 캠퍼스에 기념물로 남아있다. 이 벽은 "매저로스키의 벽"으로 불리기도 한다.
6. 평가 및 영향
빌 매저로스키는 뛰어난 수비 능력을 갖춘 2루수로 평가받는다. 통산 8번의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으며, 특히 1960년대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전성기를 이끈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매저로스키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병살타를 기록한 2루수이다. 통산 1706개의 병살타는 2루수 역대 최고 기록이며, 한 시즌 최다 병살타 기록(1966년, 161개) 역시 보유하고 있다.[1]
다음은 매저로스키의 주요 수비 기록이다.
| 연도 | 구단 | 2루(2B) | |||||
|---|---|---|---|---|---|---|---|
| 경기 | 자 살 | 보 살 | 실 책 | 병 살 | 수 비 율 | ||
| 1956 | 피츠버그 파이리츠 | 81 | 163 | 242 | 8 | 56 | .981 |
| 1957 | 144 | 308 | 443 | 17 | 96 | .978 | |
| 1958 | 152 | 344 | 496 | 17 | 118 | .980 | |
| 1959 | 133 | 303 | 373 | 13 | 100 | .981 | |
| 1960 | 151 | 413 | 449 | 10 | 127 | .989 | |
| 1961 | 152 | 410 | 505 | 23 | 144 | .975 | |
| 1962 | 159 | 425 | 509 | 14 | 138 | .985 | |
| 1963 | 138 | 340 | 506 | 14 | 131 | .984 | |
| 1964 | 162 | 346 | 543 | 23 | 122 | .975 | |
| 1965 | 127 | 290 | 439 | 9 | 113 | .988 | |
| 1966 | 162 | 411 | 538 | 8 | 161 | .992 | |
| 1967 | 163 | 417 | 498 | 18 | 131 | .981 | |
| 1968 | 142 | 319 | 467 | 15 | 107 | .981 | |
| 1969 | 65 | 134 | 192 | 4 | 46 | .988 | |
| 1970 | 102 | 227 | 325 | 7 | 87 | .987 | |
| 1971 | 46 | 95 | 121 | 3 | 22 | .986 | |
| 1972 | 15 | 29 | 39 | 1 | 7 | .986 | |
| MLB | 2094 | 4974 | 6685 | 204 | 1706 | .983 |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해당 리그 최고 기록이다.
- '''굵은 글씨''' 연도는 골드 글러브를 수상한 해이다.
공격 면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통산 138개의 홈런과 853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1960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터뜨린 끝내기 홈런은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극적인 홈런 중 하나로 꼽힌다.[1]
7. 수상 및 기록
매저로스키는 1958년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출되었고, 같은 해 첫 골드글러브상을 수상했다. 1960년에는 베이브 루스 상을 수상했으며, 2001년에는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
7. 1. 수상
| 수상 |
|---|
| 골드글러브 8회 (1958년, 1960년, 1961년, 1963년, 1964년, 1966년, 1967년) |
| MLB 올스타 게임 선출 7회 (1958년, 1959년, 1960년, 1962년, 1963년, 1964년, 1967년) |
7. 2. 기록
통산 수비율은 .983이었다. 내셔널 리그 골드글러브상을 8번이나 수상했다. 통산 1706번의 병살타에 참여했는데, 이는 MLB 역대 기록이다.[2]- 골드글러브상(2루수 부문): 8회 (1958년, 1960년, 1961년, 1963년 - 1967년)[2]
- 베이브 루스 상: 1회 (1960년)[2]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1년, 원로 위원회 선정)[2]
- 피츠버그 파이리츠 영구 결번: '''9'''[2]
| 연도 | 팀 | 경기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
| 1956 | PIT | 81 | 255 | 62 | 8 | 1 | 3 | 14 | 0 | 18 | 24 | .243 | .293 | .318 |
| 1957 | PIT | 148 | 526 | 149 | 27 | 7 | 8 | 54 | 3 | 27 | 49 | .283 | .318 | .407 |
| 1958 | PIT | 152 | 567 | 156 | 24 | 6 | 19 | 68 | 1 | 25 | 71 | .275 | .308 | .439 |
| 1959 | PIT | 135 | 493 | 119 | 15 | 6 | 7 | 59 | 1 | 29 | 54 | .241 | .283 | .339 |
| 1960 | PIT | 151 | 538 | 147 | 21 | 5 | 11 | 64 | 4 | 40 | 50 | .273 | .320 | .392 |
| 1961 | PIT | 152 | 558 | 148 | 21 | 2 | 13 | 59 | 2 | 26 | 55 | .265 | .298 | .380 |
| 1962 | PIT | 159 | 572 | 155 | 24 | 9 | 14 | 81 | 0 | 37 | 47 | .271 | .315 | .418 |
| 1963 | PIT | 142 | 534 | 131 | 22 | 3 | 8 | 52 | 2 | 32 | 46 | .245 | .286 | .343 |
| 1964 | PIT | 162 | 601 | 161 | 22 | 8 | 10 | 64 | 1 | 29 | 52 | .268 | .300 | .381 |
| 1965 | PIT | 130 | 494 | 134 | 17 | 1 | 6 | 54 | 2 | 18 | 34 | .271 | .294 | .346 |
| 1966 | PIT | 162 | 621 | 163 | 22 | 7 | 16 | 82 | 4 | 31 | 62 | .262 | .296 | .398 |
| 1967 | PIT | 163 | 639 | 167 | 25 | 3 | 9 | 77 | 1 | 30 | 55 | .261 | .292 | .352 |
| 1968 | PIT | 143 | 506 | 127 | 18 | 2 | 3 | 42 | 3 | 38 | 38 | .251 | .304 | .312 |
| 1969 | PIT | 67 | 227 | 52 | 7 | 1 | 3 | 25 | 1 | 22 | 16 | .229 | .298 | .308 |
| 1970 | PIT | 112 | 367 | 84 | 14 | 0 | 7 | 39 | 2 | 27 | 40 | .229 | .283 | .324 |
| 1971 | PIT | 70 | 193 | 49 | 3 | 1 | 1 | 16 | 0 | 15 | 8 | .254 | .303 | .295 |
| 1972 | PIT | 34 | 64 | 12 | 4 | 0 | 0 | 3 | 0 | 3 | 5 | .188 | .217 | .250 |
| 통산 | 2163 | 7755 | 2016 | 294 | 62 | 138 | 853 | 27 | 447 | 706 | .260 | .299 | .367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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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o Clemente and The Odd Couple: Two Different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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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ttsburgh Pirates vs Cincinnati Reds Box Score: July 31,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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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moreland Co. officials miffed about mud-sli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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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are They Now? Pittsburgh Pir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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