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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 만호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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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생포 만호진성은 조선시대 울산에 있었던 수군진성 중 하나이다. 조선 초기 울산읍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으며, 만호 3품, 병선 20척, 군졸 767명이 상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함락되어 폐성되었고, 정유재란 이후에는 서생포왜성으로 진을 옮겨 1895년까지 수군의 동첨절제사영으로 사용되었다. 북쪽으로 회야강이 흐르는 지점에 위치하며, 구릉과 평지를 연결하여 축조한 포곡식 성이다. 발굴 조사를 통해 성벽, 문지, 해자 등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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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 만호진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서생포 왜성 전경
서생포 왜성 전경
국가대한민국
위치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화정리 산68번지 일원
종류기념물
지정 번호35
지정일2000년 11월 9일
상세 정보
시대해당 정보 없음
소유해당 정보 없음
면적해당 정보 없음
수량1개소
전승지해당 정보 없음
전승자해당 정보 없음
참고 사항해당 정보 없음
웹사이트해당 정보 없음
문화재청문화재청 서생포 만호진성 설명

2. 역사

조선 전기 울산에는 서생포 만호진성, 염포진성, 개운포진성 등 세 곳의 수군진성(水軍鎭城)이 있었다. 진성은 국경 및 해안 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쌓은 군사적 성격의 성이다.[1]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따르면, 서생포 만호진성은 울산읍성을 밖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만호는 3품이며 병선 20척, 군졸 767명이 성에 상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문헌 기록을 통해 축성 시기는 조선 초기일 것으로 추정된다.[1]

2. 1. 임진왜란과 그 이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에 의해 함락되어 폐성되었다. 정유재란 이후에는 서생포왜성으로 진을 옮겨 1895년까지 수군(水軍)의 동첨절제사영(同僉節制使營)으로 유지되었다.[1]

3. 지리적 위치 및 구조

서생포 만호진성은 북쪽의 회야강이 동쪽으로 흘러 바다와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여 수군이 활동하기에 유리했다.[1] 이 성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하며, 구릉 경사면과 평지를 연결하여 축조한 포곡식(包谷式) 성이다.[1]

3. 1. 성곽 구조

서생포 만호진성은 구릉 경사면과 평지를 연결하여 축조한 포곡식(包谷式) 성이다. 성벽 길이는 약 440m 정도 남아있다. 평지에 해당되는 성곽은 멸실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평면 형태는 알 수 없지만, 말각방형에 가까운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1] 현재 성벽 곳곳에는 기초석 일부가 남아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시기 왜군이 서생포왜성을 쌓기 위해 성돌을 빼어갔기 때문으로 보인다.[1]

성벽은 장대석을 가로로 눕혀 지대석으로 삼고 그 위에 대형 석재로 기단석을 쌓았다. 상부로 갈수록 이보다 작은 돌로 면을 맞추어 쌓았으며, 내부는 소형의 할석으로 뒷채움하여 마무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에 문지로 보이는 시설 일부가 남아있지만, 수군진성이므로 주 출입시설은 회야강과 바다 쪽으로 쉽게 왕래할 수 있는 북동쪽에 위치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성벽 너비는 4m 정도, 잔존높이는 1~1.5m 정도이다.[1]

발굴조사에서 돌로 양 벽을 쌓은 원 해자와 개축 또는 보수된 2차 해자가 확인되었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1차적으로 방어하는 목적으로 쌓았으나, 동시에 산사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성벽을 훼손하지 않도록 바깥쪽으로 돌리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차 해자의 너비는 약 3.5m이며, 2차 해자의 너비는 3.7m 정도이다.[1]

3. 2. 성벽과 해자

성벽은 장대석을 가로로 눕혀 지대석으로 삼고, 그 위에 큰 석재로 기단석을 쌓았다. 위로 갈수록 이보다 작은 돌로 면을 맞추었으며, 내부는 작은 할석으로 뒷채움하여 마무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 너비는 약 4m, 잔존 높이는 1~1.5m 정도이다.[1]

발굴 조사 결과, 돌로 양 벽을 쌓은 1차 해자와 개축 또는 보수된 2차 해자가 확인되었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1차적으로 방어하는 목적과 함께, 산사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성벽을 훼손하지 않도록 바깥쪽으로 돌리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차 해자의 너비는 약 3.5m이며, 2차 해자의 너비는 약 3.7m이다.[1]

4. 발굴 조사

발굴 조사를 통해 성벽의 기초석, 문지로 추정되는 시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쳐 축조된 해자가 확인되었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1차적으로 방어할 목적으로 쌓았으나, 산사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성벽을 훼손하지 않도록 바깥쪽으로 돌리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1] 1차 해자의 너비는 약 3.5m이며, 2차 해자의 너비는 약 3.7m이다.[1] 이를 통해 성의 구조와 축성 방식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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