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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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도국산은 인천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산으로, 과거 송현배수지가 건설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만수산 또는 송림산으로 불렸으며, 일제강점기 상수도 시설인 송현배수지가 완공된 후 수도국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수도국산 주변은 인천의 대표적인 빈민가였으며, 달동네가 형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달동네는 사라졌지만, 현재는 송현근린공원과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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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국산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산 정보 | |
이름 | 수도국산 |
다른 이름 | 해당 없음 |
높이 | 56 |
높이 설명 | 해당 없음 |
돌출높이 | 해당 없음 |
돌출높이 설명 | 해당 없음 |
어미산 | 해당 없음 |
위치 | 인천광역시 동구 |
산맥 | 해당 없음 |
위도 | 37.47886 |
경도 | 126.639863 |
종류 | 해당 없음 |
나이 | 해당 없음 |
최종 분화 | 해당 없음 |
첫 등정 | 해당 없음 |
등산로 | 해당 없음 |
목록 | 해당 없음 |
2. 명칭 유래
수도국산의 원래 이름은 만수산(萬壽山) 또는 송림산(松林山)이다. 송림산은 산 언덕에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송현(松峴), 송림(松林) 등 산 주변 지역의 지명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2003년 10월 27일에 인천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3호로 지정된 송현배수지는 인천 최초의 상수도 시설이자 도시계획시설이다. 1905년에 일본인 나카지마 박사에 의해 서울 - 인천 간 수도 설계가 완성됨에 따라 1906년 11월에 배수지 공사에 착수하였으며, 1908년에 송현배수지 시설이 준공되었다. 이후 한강 연안 노량진에 있었던 수원지 정수시설이 1910년 10월에 준공되어 그해 12월 1일부터 서울-인천 간 수돗물 급수가 시작되었다.
수도국산 주변은 인천의 대표적인 빈민가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게 상권을 빼앗기고 중국인들에게는 일자리를 잃은 한국인들이 송현동, 송림동과 같은 곳으로 찾아들었다. 비탈진 소나무숲은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1908년 이 산 정상에 서울 노량진과 인천 송현동을 잇는 송현배수지가 완공되면서 수도국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3. 송현배수지
부지면적 36780m2의 송현배수지는 저수조 3개를 갖추고 있었는데, 현재 제수변실(制水弁室, 배수관의 단수 및 유압 조절 기능을 하는 제수밸브를 보호하는 시설물)과 화강석으로 만든 23단의 장대석 계단, 철제 정문이 남아 있다.
제수변실은 일체식 무근 콘크리트로 지은 원통형 건물로, 지붕부는 첨탑으로 장식되어 있고 출입구 위쪽 벽면에는‘백 번 흐르면 만 번 빛난다’는 뜻의‘만윤백량(萬潤百凉)’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4. 달동네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몰려들었으며, 1960~70년대에는 산업화와 함께 충청, 호남 출신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면서 수도국산 비탈에 약 3천여 가구가 모여 살게 되었다. 그 결과 수도국산은 인천의 전형적인 달동네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송현동·송림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산비탈을 깎은 터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다. 인천광역시 동구청은 수도국산 정상 부분에 송현근린공원을 조성하고, 공원 중심에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만들어 달동네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있다.
4. 1. 형성 배경
수도국산 주변은 인천에서 소득 수준이 가장 낮았던 대표적인 빈민가였다. 일제강점기의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게 상권을 박탈당하고 중국인들에게는 일자리를 잃고 송현동, 송림동과 같은 신설 마을로 찾아들었다. 비탈진 소나무숲은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변모하였다.
이어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으며, 1960~70년대에는 산업화와 함께 충청, 호남 출신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었다. 산꼭대기까지 점차 작은 판자집들이 들어차면서 마침내 181500m2 규모의 수도국산 비탈에 약 3천여 가구가 모둠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수도국산은 인천의 전형적인 달동네가 되었다.
4. 2. 재개발과 보존
1990년대 중반부터 송현동·송림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수도국산 달동네는 사라지기 시작했고, 산비탈을 깎은 터에는 대형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아직 아파트 단지 반대편 언덕에 달동네의 흔적이 남아있다. 인천광역시 동구청은 아파트 단지 조성 이후 수도국산 정상 부분에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녹지공간·체육공간 조성을 위해 송현근린공원을 조성하고, 공원 중심에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만들어 역사·문화 학습의 장을 제공했다.
5. 찾아오는 길
수도권 전철 1호선 동인천역에서 내려 4번 출구(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방향)로 나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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