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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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키티아는 흑해 북쪽의 스텝 지역에 거주하며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번성했던 유목 이란계 민족과 그들이 거주했던 지역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들을 스키타이 또는 스키테스라고 불렀으며, 스키타이인들은 스스로를 스콜로텐 또는 슈크라고 칭했다. 스키티아는 동쪽의 돈 강에서 서쪽의 다뉴브 강까지 뻗어 있었으며, 유목 목축에 적합한 기후 조건 속에서 대규모 가축을 길렀다. 스키타이인들은 아가티르시를 몰아내고 폰토스 스텝을 지배했으나, 기원전 4세기 말 사르마티아인에게 대체되었다. 스키티아의 기원에 대한 전설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스키타이 문화가 고대 국가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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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티아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 |
|---|---|
| 개요 | |
| 현지 이름 | 스키티아 |
| 위치 | 폰토스 스텝 |
| 데모님 | 스키타이인 |
| 역사 | |
| 존속 기간 | 기원전 9세기 ~ 기원전 3세기 |
| 이전 | 킴메르인 우라르투 |
| 이후 | 메디아 리디아 크림 스키타이 왕국 다뉴브 하류 스키타이 왕국 사르마티아 폰토스 왕국 |
| 수도 | 카미안카 |
| 정치 | |
| 정치 체제 | 군주제 |
| 지도자 칭호 | 왕 |
| 지도자 | 이스파카이아 (? ~ 기원전 679년) 아가로스 (기원전 310년경) |
| 언어 및 종교 | |
| 통용어 | 스키타이어 |
| 종교 | 스키타이 종교 메소포타미아 종교 우라르투 종교 프리기아 종교 고대 이란 종교 트라키아 종교 고대 그리스 종교 |
| 기타 정보 | |
| 현재 국가 | 해당 없음 (고대 국가) |
| 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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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칭
고대 아시리아의 왕이었던 에사르하돈(재위 기원전 681년~669년)의 연대기에 기록된 설형문자 점토판에는 '아슈구(쿠)자이(Ashg[k]uzai)'라고 나온다.[2] 기원전 7세기 이후 스키타이와 교역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처음으로 그들을 스키타이, 혹은 스키테스(Skythes)라고 불렀다.[2] 스키타이인들은 스스로를 '스콜로텐(Skoloten)' 또는 '슈크(Shk)'라고 칭했는데, 아시리아나 그리스인들의 지칭도 이들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2]
스키타이는 흑해 북부 폰토스 스텝 지역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돈 강, 서쪽으로는 다뉴브 강까지 뻗어 있었다. 이 지역은 나무가 없는 초원 지대와 비옥한 흑토 삼림-스텝 지대로 나뉘며, 드네프르 강 등 여러 강이 흑해로 흘러 들어갔다.[1][2][3]
"스키티아"(Scythia)와 "스키티카"(Scythica)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 이름 "스쿠티아"(Σκυθια|스쿠티아grc)와 "스쿠티케"(Σκυθικη|스쿠티케grc)의 라틴어화된 형태이며, 이들은 다시 스키타이인을 지칭하는 고대 그리스어 이름인 "스쿠테스"(Σκυθης|스쿠테스grc)와 "스쿠토이"(Σκυθοι|스쿠토이grc)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스키타이인의 내칭인 "스쿠다"(Skuδa)에서 파생되었다.[2]
3. 지리
헬레니즘 시대에는 '스키티아'라는 명칭이 남부 러시아 스텝뿐만 아니라 서쪽의 다뉴브 평원과 동쪽의 중국 변경에 이르는 넓은 스텝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오늘날 학계에서는 '스키타이'를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흑해 스텝을 지배했던 유목 이란계 민족을 지칭하며, '스키티아'는 이들이 거주했던 흑해 스텝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3]
3. 1. 폰토스 스텝의 스키타이 왕국
돈 강에서 다뉴브 강까지 뻗어 있던 폰토스 스텝의 스키타이 왕국은 유목 목축을 하는 흑해 해안 북쪽의 나무가 없는 스텝 지역과, 농경 인구가 거주하는 북쪽의 비옥한 흑토 삼림-스텝 지역을 포함했다.[1][2][3] 북쪽 경계는 활엽수림이었고, 드네프르 강을 포함한 여러 강이 이 지역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흘러 흑해로 들어갔다.
기원전 9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는 기후가 서늘하고 건조하여 북부 폰토스 지역에서 기마 유목 목축업이 발달했다. 기원전 5세기에는 기후가 따뜻하고 습해져 유목민들이 스텝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러한 유리한 기후 조건에서 풀이 나무가 없는 스텝에서 풍부하게 자라 유목 스키타이인들이 대규모 소와 말 무리를 기를 수 있었다. 그리스인들이 Υλαια|Hulaia|우들랜드grc (숲)이라고 부른 국가는 현재 헤르손 영토를 따라 있는 하류 드네프르 강 지역과 그 강을 따라 더 북쪽의 계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숲으로 덮여 있었다. 흑해 연안 근처의 남쪽 땅은 농업에 적합했다.[1][3]
3. 2. 스키타이의 확장
스키타이인들은 폰토스 대초원 지역의 아가티르시를 서쪽으로 몰아내고 카르파티아 지역까지 진출했다.[3] 기원전 4세기 말, 사르마티아인들이 동쪽에서 이동해 오면서 스키타이인들을 대체하고 폰토스 대초원의 지배 세력이 되었다.[3] 이로 인해 "유럽 사르마티아"가 이 지역의 이름으로 "스키티아"를 대체했다.[3]
4. 기원과 역사
고대 앗시리아의 왕이었던 에사르하돈(재위 기원전 681년~669년)의 연대기를 기록한 설형문자 점토판에는 '아슈구(쿠)자이(Ashg[k]uzai)'라고 나오며, 기원전 7세기 이후 스키타이와 교역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처음으로 그들을 스키타이, 혹은 스키테스(Skythes)라고 불렀다.[1] 스키타이인들은 스스로를 '스콜로텐(Skoloten)' 또는 '슈크(Shk)'라고 칭했는데, 앗시리아나 그리스인들의 지칭도 이들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스키티아의 기원에 대한 두 가지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태양신 제우스와 보리스테네스(현재의 드네프르강)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타르기타오스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헤라클레스가 드네프르 강 연안의 힐라에아 숲에 살던 뱀 여인에게서 얻은 세 아들 중 막내인 스키테스에 관한 것이다. 두 전설 모두 시조의 출현이 드네프르 강과 관련이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한편 구약성서에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스키타이인들을 활과 창을 잡고 말을 탄 채 줄지어 엄습하는 잔인한 북방 민족으로 묘사한 기록이 있다.[1]
참조
[1]
사전
Scythia
https://www.collinsd[...]
[2]
인용
[3]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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