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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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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승리의 손(The Victory Arch)은 이라크 바그다드에 위치한 기념물로, 이란-이라크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자우라 공원에 위치하며, 두 쌍의 거대한 팔이 칼을 쥐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칼레드 알-라할이 설계를 시작했으나 사망 후 모하메드 가니 히크마트가 완성했다. 이라크 전쟁 중 철거 논란이 있었으나, 현재는 복원되어 바그다드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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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손
개요
승리의 아치, 바그다드
승리의 아치, 바그다드
다른 이름칼리시야의 검 (Qaws an-Naṣr)
위치바그다드 중심부
설계자칼레드 알-라할
모하메드 가니 히크마트
종류개선문
재료콘크리트, 석재, 스테인리스 스틸, 청동
높이130 피트 (약 40 미터)
시작1986년
완공1989년
개장1989년 8월 8일
헌정 대상전몰 이라크 군인
역사적 맥락
배경이란-이라크 전쟁 승리 기념
건설 지시사담 후세인
명칭 의미칼리시야 전투 승리 상징
디자인 특징
전체 형태교차된 두 개의 검 형상
사담 후세인의 검 본뜬 것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
전승 기념 아치 지탱
사담 후세인의 손 본뜬 것
청동 재질
투구5,000개의 이란 군인 투구로 구성, 전장에서 수집
상징적 의미
검의 의미이라크 군의 용맹 상징
손의 의미승리 의지 표현
투구의 의미전쟁 희생자 추모
논란 및 비판
사담 후세인 상징일부 이라크인에게 독재 상징으로 여겨짐
철거 요구2007년 철거 논의 있었으나 보존 결정
종파적 갈등이라크 내 종파 갈등의 상징으로 간주되기도 함
추가 정보
상태보존
관련 항목이라크 전쟁

2. 위치

승리의 아치는 이라크 바그다드 중심부의 자우라 공원 입구를 표시한다.[1] 이 공원은 과거 축제 및 퍼레이드를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1]

2. 1. 자우라 공원

두 쌍의 아치는 자우라 공원으로 알려진 지역의 입구를 표시한다. 1986년 이라크 정부는 바그다드 중심부의 광대한 대통령 단지 근처인 자우라 공원에 축제 및 퍼레이드 장 건설을 시작했다. 이 공사는 이란-이라크 전쟁 종전 2년 전에 시작되었다. 대규모 축제 광장으로 알려진 이곳은 넓은 퍼레이드 장, 광대한 검열관 및 대형 반사 풀로 구성되었다. 주변의 잔디밭은 군사 퍼레이드 동안 이라크인들을 수용했다. 부지의 축제적 매력을 더하기 위해 아이스크림, 차가운 음료, 사탕을 판매하는 3개의 매점이 있었다.

이라크의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고난을 기리기 위해 세 개의 기념비가 건설되었다. 승리의 아치는 세 구조물 중 가장 마지막으로 건설되었으며, 무명 용사의 기념비 (1982년) 및 알-샤히드 기념비 (1983년) 건설에 이어 건설되었다. 세 기념비는 하나의 단위를 형성한다.

아치의 공식 명칭인 '카디시야의 칼'은 636년 아랍 군대가 사산 제국을 격파하고 수도인 크테시폰을 점령했을 때의 알-카디시야 전투를 암시하며, 이곳의 아치는 고대 황궁의 입구를 표시한다. 자우라 공원에는 대통령에게 바쳐진 선물 박물관과 공연 예술 센터가 있었다. 박물관은 사담 후세인이 공중에서 무기를 발사하면서 공화국 수비대를 검열했던 웅장한 검열관 1층에 위치해 있었다. 박물관에는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이라크인들이 기증한 평범한 물건들이 전시되었다. 여기에는 이라크 어린이들이 기증한 저렴한 플라스틱 장식품과 그림이 포함되었다.

2003년 이라크 점령 당시 '''승리의 아치'''에 있는 M1 에이브럼스 전차.

2. 2. 주변 시설

승리의 아치는 자우라 공원으로 알려진 지역의 입구를 표시한다. 1986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나기 2년 전, 이라크 정부는 바그다드 중심부의 대통령 단지 근처인 이곳에 축제 및 퍼레이드를 위한 장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축제 광장''으로 알려진 이곳은 넓은 퍼레이드 장, 웅장한 검열관, 대형 반사 풀로 구성되었다. 주변의 잔디밭은 군사 퍼레이드 동안 이라크 시민들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아이스크림, 차가운 음료, 사탕을 판매하는 3개의 매점도 있었다.

자우라 공원에는 이란-이라크 전쟁의 고통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세 개의 기념비가 있다. 승리의 아치는 무명 용사의 기념비(1982년 건설)와 알-샤히드 기념비(1983년 건설)에 이어 마지막으로 건설되었으며, 이 세 기념비는 하나의 단위를 형성한다.

또한 공원 안에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게 바쳐진 선물을 모아둔 박물관과 공연 예술 센터가 있었다. 박물관은 사담 후세인이 공중으로 무기를 발사하며 공화국 수비대를 검열했던 웅장한 검열관의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박물관에는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일반 이라크 시민들이 기증한 평범한 물건들이 전시되었는데, 여기에는 이라크 어린이들이 선물한 저렴한 플라스틱 장식품이나 그림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3. 역사

승리의 손은 이란-이라크 전쟁의 고통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사담 후세인의 지시로 건설된 기념물 중 하나이다.[6] 이 기념물은 사담 후세인 정권의 권위를 높이고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목적[6]과 함께, 바그다드 도시 미관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6] 바그다드에는 이 외에도 알-샤히드 기념비나 무명 용사 기념비 등 여러 기념물이 같은 시기에 세워졌다.[7] 기념비가 세워진 부지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8] 1990년 헌정식 당시 사담 후세인의 행보는 그의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8] 이 기념물은 표면적으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의 승리를 강조하지만, 더 넓게는 이라크 역사 전체의 전사자들을 기리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설명된다.[8]

3. 1. 건립 배경

이라크의 대표적인 조각가인 칼레드 알-라할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구상 스케치를 바탕으로 아치 건설의 설계와 제작을 맡았다. 이 디자인은 땅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두 쌍의 손이 각각 43m 길이의 검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알-라할은 기념비 완공 전인 1987년에 사망하여, 다른 유명 이라크 조각가인 모하메드 가니 히크마트가 이어서 작업을 맡았다.[4] 두 조각가 모두 사담 후세인과 긴밀하게 협력했다.[5]

이 기념물은 바그다드 시를 미화하고 국민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한 광범위한 공공 사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건설되었다.[6] 바그다드에는 알-샤히드 기념비와 무명 용사 기념비를 포함하여 1969년부터 2003년 사이에 세워진 많은 동상, 분수, 조각품들이 있다.[7]

기념비가 세워진 장소는 과거 아랍인들이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를 격파한 알카디시야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여겨지며, 이는 일반적으로 초기 이슬람 정복을 통해 이 지역에 이슬람 지배가 시작된 계기로 간주된다. 1990년 기념비 헌정식에서 사담 후세인은 흰 말을 타고 아치 아래를 지나갔다. 이는 시아파와 수니파 무슬림 분열의 계기가 된 680년 카르발라에서 희생된 시아파 순교자 후세인 이븐 알리를 연상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 기념비는 이란-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 승리를 강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더 나아가 이라크 역사 속 모든 전쟁에서 희생된 이라크인들을 기리는 상징성도 지닌다.[8]

3. 2. 설계 및 건설

이라크의 대표적인 조각가인 칼레드 알-라할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구상한 스케치를 바탕으로 아치 건설의 설계 및 실행을 위임받았다. 이 디자인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두 쌍의 손이 각각 43m 길이의 검을 쥐고 있는 형태이다. 그러나 알-라할은 기념비가 완공되기 전인 1987년에 사망하였고, 또 다른 저명한 이라크 조각가인 모하메드 가니 히크마트가 프로젝트를 이어받았다.[4] 두 조각가 모두 사담 후세인과 긴밀하게 협력하였다.[5]

이 기념비는 바그다드 시를 아름답게 꾸미고 국민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광범위한 공공 사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건설되었다.[6] 바그다드에는 이 기념비 외에도 1969년부터 2003년 사이에 건설된 알-샤히드 기념비와 무명 용사 기념비를 포함한 수많은 동상, 분수, 조각상들이 있다.[7]

3. 3. 상징성

기념비가 세워진 부지는 역사적으로 아랍인들이 페르시아 제국사산 왕조를 물리친 장소로, 이 승리는 일반적으로 초기 이슬람 정복을 통해 이 지역에 대한 이슬람 지배가 시작된 계기로 여겨진다.[8]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기념비가 이란-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 승리주의적 서사를 제시하는 데 활용되었다. 즉, 과거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현대의 전쟁과 연결하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6][8]

1990년 기념비 헌정식에서 사담 후세인이 흰 말을 타고 아치 아래를 통과한 행위는 이러한 상징성을 더욱 강화한다. 이는 시아파와 수니파 무슬림 사이의 분열을 야기한 680년 카르발라 전투에서 살해된 시아파 순교자 후세인 이븐 알리를 의도적으로 연상시킨 것으로 해석된다.[8] 이는 특정 종교적, 역사적 인물을 차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구축하려 한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비록 이 기념비가 이란-이라크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가 강하지만, 더 나아가 이라크 역사 전체에 걸쳐 모든 전쟁에서 전사한 이라크인들을 기리는 포괄적인 상징성도 지닌다고 설명된다.[8] 기념비는 바그다드 시를 미화하고 국민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광범위한 공공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되었으며, 알-샤히드 기념비나 무명 용사 기념비와 같이 1969년부터 2003년 사이에 세워진 여러 기념물 중 하나이다.[6][7]

3. 4. 철거 논란과 복원

이 기념물은 걸프 전쟁 중에는 파괴되지 않았으나, 당시 미군 장군이었던 노먼 슈워츠코프는 기념물 철거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9] 현재 이 아치들은 바그다드의 국제 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다.[10]

2007년 2월, 사담 후세인 시대의 상징물을 제거하기 위해 새로 구성된 이라크 정부 위원회가 이 기념물의 철거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라크 내외의 보존 단체 등으로부터 즉각적인 항의를 불러일으켰다.[11]

실제 철거 작업은 2007년 2월 20일에 시작되어, 기념물의 청동 구조물 일부가 약 약 3.05m 크기로 잘려나갔다. 당시 현장에서는 일부 이라크 시민들과 연합군 병사들이 기념물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나 헬멧 등을 기념품으로 가져가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러나 누리 알 말리키 당시 총리가 내린 철거 결정에 대해 잘마이 할릴자드 주이라크 미국 대사가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다음 날인 2월 21일 철거 작업은 중단되었다. 결국 이라크 정부는 기존의 철거 계획을 철회하였다.[12]

그 후 2011년 2월, 이라크 당국은 국가적 화해의 상징으로 기념물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13]

4. 구조

이 기념비는 땅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한 쌍의 팔이 각각 칼을 쥐고 중앙 지점에서 만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칼은 사드 이븐 아비 와카스가 카디시야 전투에서 사용한 무기를 본뜬 것이다.[14] 청동으로 주조된 손과 팔은 사담 후세인의 팔뚝 등을 모델로 하여 디자인되었다. 칼이 만나는 지점은 지상에서 약 약 39.62m 높이에 위치한다. 팔은 콘크리트 받침대 위에 놓여 있으며, 받침대 주변에는 다수의 헬멧이 배치되어 있다.[15]

4. 1. 디자인

''승리의 아치'' (세부 묘사) 거대한 손들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이며, 쓰러진 병사들의 헬멧이 흩어져 있다.


이 기념비는 땅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한 쌍의 팔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팔은 중앙 지점에서 서로 교차하는 칼을 쥐고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칼은 사드 이븐 아비 와카스가 카디시야 전투에서 사용했던 무기를 본떠 디자인되었다.[14] 각 칼은 24ton의 무게가 나가며, 이라크에서 직접 주조되었다. 특히, 이 칼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이라크 군인들의 총과 탱크에서 나온 금속을 일부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칼이 교차하는 지점에는 작은 깃대가 솟아 있으며, 이 지점의 높이는 지상에서 약 약 39.62m에 달한다. 조각가 칼릴 알-라할은 사담 후세인의 팔뚝 사진과 석고 모형을 참고하여 손의 형태를 디자인했다. 프로젝트 후반에는 프로젝트를 인수한 모하메드 가니가 직접 사담 후세인의 엄지손가락 지문을 채취하여, 아치 중 하나의 엄지손가락 모형에 추가하기도 했다.

기념비의 손과 팔 부분은 청동으로 제작되었으며, 영국의 모리스 싱어 주조소에서 청동으로 주조되었다. 당시 이라크에는 이처럼 거대한 조각상을 제작할 만한 규모의 주조 공장이 없었기 때문에, 독일의 H+H Metallform 주조 회사가 주도하는 국제 컨소시엄을 통해 많은 부분이 해외에서 제작되었다.

팔은 콘크리트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으며, 마치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각 받침대에는 2,500개씩, 총 5,000개의 헬멧이 놓여 있다. 이 헬멧들은 그물에 담겨 받침대 아래 땅으로 쏟아지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는데, 사담 후세인은 이 헬멧들이 전쟁 중 사망한 이란 군인들의 것이라고 주장했다.[15]

4. 2. 재료

기념비의 칼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졌으며, 사드 이븐 아비 와카스가 카디시야 전투에서 사용한 무기를 모델로 삼았다.[14] 각 칼날의 무게는 24ton에 달한다. 칼은 이라크에서 주조되었는데, 특히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이라크 군인들의 총과 탱크에서 나온 금속이 재료의 일부로 사용되었다.[15]

기념비의 손과 팔 부분은 청동으로 제작되었으며, 영국의 모리스 싱어 주조소에서 주조되었다. 당시 이라크에는 이러한 대형 조형물을 제작할 만한 규모의 주조 공장이 없었기 때문에, 독일의 H+H Metallform 주조 회사가 주도하는 국제 컨소시엄을 통해 해외에서 많은 부분이 제작되었다.[15] 손의 디자인은 사담 후세인의 팔뚝 사진과 석고 모형을 기반으로 했으며, 조각가는 사담 후세인의 엄지 지문을 직접 채취하여 아치 중 하나의 엄지 모형에 반영하기도 했다.

팔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도록 디자인된 콘크리트 받침대 위에 놓여 있다. 각 받침대에는 2,500개씩, 총 5,000개의 헬멧이 그물에 담겨 아래로 쏟아지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데, 사담 후세인은 이를 전쟁 중 사망한 이란 군인들의 것이라고 주장했다.[15]

4. 3. 세부 사항



이 기념물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한 쌍의 팔이 각각 칼을 쥐고 중앙에서 만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칼은 이슬람 초기 역사의 중요한 인물인 사드 이븐 아비 와카스가 카디시야 전투에서 사용했던 무기를 본뜬 것이다.[14] 칼이 만나는 지점에는 작은 깃대가 있으며, 이 지점은 지상으로부터 약 약 39.62m 높이에 위치한다.

기념물의 손 디자인은 사담 후세인의 팔뚝 사진과 석고 모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조각가 칼릴 알-라할(Khalil al-Rahal)이 시작했으나 그의 사망 후 모하메드 가니 히크마트(Mohammed Ghani Hikmat)가 이어받아 완성했으며, 가니는 사담 후세인의 엄지손가락 지문을 직접 본떠 아치 중 하나의 엄지손가락 모형에 추가하기도 했다.

당시 이라크에는 이러한 대형 구조물을 제작할 만한 충분한 규모의 주조 공장이 없었기 때문에, 기념물의 상당 부분은 해외에서 제작되었다. 독일의 H+H Metallform 주조 회사가 주도하는 국제 컨소시엄이 제작을 맡았다. 무게가 각각 24ton에 달하는 스테인리스 스틸 칼날은 이라크에서 주조되었는데, 여기에는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이라크 군인들의 총과 탱크에서 나온 금속이 일부 사용되었다. 기념물의 손과 팔 부분은 영국의 모리스 싱어 주조소에서 청동으로 제작되었다.

팔 부분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도록 디자인된 콘크리트 받침대 위에 놓여 있다. 각 받침대에는 2,500개씩, 총 5,000개의 헬멧이 그물에 담겨 아래로 쏟아지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사담 후세인은 이 헬멧들이 이란-이라크 전쟁 중 사망한 이란 군인들의 것이라고 주장했다.[15]

4. 3. 1. 폭발하는 땅



기념물의 받침대 부분으로, 거대한 팔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모습을 형상화했다.[15] 이 받침대는 철근 콘크리트로 제작되었다.[16] 받침대 주변에는 총 5,000개의 헬멧이 흩어져 있는데, 이는 사담 후세인이란-이라크 전쟁 중 사망한 이란 군인들의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헬멧들은 그물에 담겨 땅으로 쏟아지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15]

4. 3. 2. 팔뚝과 손잡이

사담 후세인의 팔뚝 사진과 석고 모형이 손 디자인의 기초가 되었다. 프로젝트 막바지에는 조각가 가니가 사담 후세인의 엄지손가락 지문을 직접 본떠 아치 중 하나의 엄지손가락 모형에 추가하기도 했다.

기념비의 손과 팔은 영국의 모리스 싱어(Morris Singer) 주조소에서 청동으로 주조되었다. 각 팔뚝과 손잡이의 무게는 20ton에 달하며, 이를 지탱하는 내부 보강 프레임의 무게 역시 20ton이다.[16] 팔 부분은 콘크리트 받침대 위에 놓여 땅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4. 3. 3. 칼

기념비를 구성하는 한 쌍의 팔은 각각 칼을 쥐고 있으며, 이 칼들은 중앙 지점에서 서로 만난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이 칼은 사드 이븐 아비 와카스가 카디시야 전투에서 사용했던 무기를 본떠 제작되었다.[14] 칼날은 약간의 곡선을 그리며 중앙에서 만나 아치 형태를 이루고, 각 칼의 무게는 24ton이다. 이 칼들은 이라크에서 주조되었으며,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전사한 이라크 군인들의 총과 탱크에서 나온 금속을 일부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두 칼이 만나는 지점에는 작은 깃대가 솟아 있으며, 이 지점은 지상으로부터 약 약 39.62m 높이에 해당한다.

4. 3. 4. 그물

그물은 청동으로 주조되었다.[16] 각 그물에는 2,500개의 헬멧이 담겨 있으며(총 5,000개), 이 헬멧들은 그물 아래 땅으로 쏟아지는 모습으로 연출되어 있다.[15] 사담 후세인은 이 헬멧들이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이란 군인들의 것이라고 주장했다.[15]

4. 3. 5. 깃대

깃발과 깃대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졌으며, 아치형 칼이 만나는 지점 위로 7m 높이로 솟아 있다.[16]

5. 대중 문화

승리의 아치는 바그다드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기념물 중 하나이다. 특정 위치에 서면 방문객이 마치 자신의 손으로 칼을 잡고 있는 것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또한 속이 빈 손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 것도 가능하다. 많은 군인과 연합군 방문객들이 손 안으로 들어가 칼과 손이 만나는 지점에서 밖을 내다보며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 기념물은 1991년 100IQD 지폐에도 등장한다.

참조

[1] 뉴스 جهود للحفاظ على قوس النصر في بغداد بعد تدمير أنصاب وتماثيل أقامها صدام http://aawsat.com/de[...] جريدة الشرق الأوسط
[2] 웹사이트 معالم بغداد http://www.baghdad.g[...] 2011-03-17
[3] 서적 The Monument: Art, Vulgarity, and Responsibility in Saddam Hussein's Iraq
[4] 서적 The Monument: Art, Vulgarity, and Responsibility in Saddam Hussein's Iraq
[5] 서적 Baghdad: City of Peace, City of Blood Penguin UK 2014
[6] 서적 Monument: Art, Vulgarity, and Responsibility in Iraq https://archive.org/[...]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7] 서적 Critical Approaches to Ancient Near Eastern Art Walter de Gruyter 2014
[8] 서적 The Monument: Art, Vulgarity, and Responsibility in Iraq
[9] 웹사이트 Baghdad Monuments http://www.globalsec[...] 2003-12-18
[10] 뉴스 Fate of Saddam relics sparks debate https://www.theguard[...] 2004-06-16
[11] 뉴스 Mohammed Ghani Hikmat, Iraqi Sculptor, Dies at 82 https://www.nytimes.[...] 2011-09-21
[12] 뉴스 Iraq Confronts Hussein Legacy Cast in Bronze https://www.nytimes.[...] New York Times 2018-05-29
[13] 뉴스 Iraq Restores Hussein’s Victory Arch as Sign of Reconciliation http://www.dispatch.[...] The Columbus Dispatch 2018-08-09
[14] 간행물 The Monument: Art, Vulgarity, and Responsibility in Iraq 1992
[15] 서적 The Monument: Art, Vulgarity, and Responsibility in Iraq
[16] 서적 The Monument: Art, Vulgarity, and Responsibility in Iraq
[17] 논문 What Is Totalitarian Art? Cultural Kitsch From Stalin to Saddam https://www.jstor.or[...]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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