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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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초식은 부산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6기로 임관한 인물이다. 육군 중위, 대위, 소령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했으며, 중령으로 예편 후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되었다. 그는 강문봉 장군의 배후와 허태영 대령 등의 중요 임무를 받아 송용고와 함께 김창룡을 사살하는 데 동참했다. 군사재판과 민간 형사재판을 거쳐 사형이 선고되었고, 옥중에서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했다. 1958년 송용고와 함께 사형이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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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초식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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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출생일 | 1928년 1월 10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평안남도 대동 |
사망일 | 1958년 5월 20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 서대문 구치소 사형장 |
본관 | 아주(鵝洲) |
배우자 | 이임순(李任順) |
자녀 | 1남 |
거주지 | 대한민국 경기도 의정부 |
종교 | 개신교(장로회) → 천주교(세례명: 사도 바울로) |
군 복무 | |
국가 | 국방부 방첩대 |
직책 | 작전담당관 |
임기 | 1950년 5월 20일 ~ 1950년 8월 1일 |
장관 | 신성모 |
차관 | 장경근 |
대통령 | 이승만 |
부통령 | 이시영 |
총리 | 신성모 |
군복무 | 대한민국 육군 |
학력 | 대한민국 육군포병학교 |
근무 | 육군 제1사단 육군 방첩부대 육군 수도사단 |
지휘 | 육군 제1사단 예하 소대장 육군 방첩부대 작전장교 육군 수도사단 예하 중대장 육군 수도사단 예하 대대장 |
복무 기간 | 1948년 3월 2일 ~ 1955년 2월 8일 |
참전 | 여순 내란 진압 작전 제주 4·3 내란 진압 작전 한국 전쟁 |
계급 | 대한민국 육군 중령 |
서훈 | 을지무공훈장 |
기타 정보 | |
정당 | 무소속 |
경력 | 1956년 1월 30일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을 중요 임무 방조 |
2. 일생
신초식은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 부산고등상업학교를 졸업했다. 1946년 5월 31일부터 12월 1일까지 경기도 양주백석국민학교에서 급사로 일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6기로 임관하였다. 이후 육군보병학교, 육군공병학교, 육군포병학교를 졸업하였다. 육군 소위 시절 여순 내란 진압 작전과 중위 시절 제주 4·3 내란 진압 작전에 참여하였다. 한국 전쟁에는 육군 중위, 대위, 소령으로 참전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을 맞이하였다. 1953년 12월 6일 육군 중령으로 진급하였고, 1954년 4월 25일 23세의 이임순(李任順)과 결혼하였다. 1955년 2월 8일 육군 중령으로 예편하였으며, 1956년 1월 8일 경기도 의정부 자택에서 외동아들을 얻었다.
신초식은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군사 및 민간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강문봉, 허태영 등의 지시를 받아 송용고와 함께 암살에 가담했다. 옥중에서 김홍섭 판사의 권유로 천주교로 개종했으며, 1958년 5월 20일 송용고와 함께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2. 1. 초기 생애와 군 경력
평안남도 대동에서 출생하여 부산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5월 31일부터 12월 1일까지 경기도 양주백석국민학교에서 급사로 일하다가 그만둔 후, 1948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6기로 임관하였다. 이후 육군보병학교, 육군공병학교, 육군포병학교를 졸업하였다. 육군 소위 시절 여순 내란 진압 작전과 중위 시절 제주 4·3 내란 진압 작전에 참여하였다. 한국 전쟁에는 육군 중위, 대위, 소령으로 참전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을 맞이하였다. 1953년 12월 6일 육군 중령으로 진급하였고, 1954년 4월 25일 23세의 이임순(李任順)과 결혼하였다. 1955년 2월 8일 육군 중령으로 예편하였으며, 1956년 1월 8일 경기도 의정부 자택에서 외동아들을 얻었다.학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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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등상업학교 졸업 |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6기 졸업 |
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졸업 |
대한민국 육군공병학교 졸업 |
대한민국 육군포병학교 졸업 |
2. 2.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
신초식은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군사 및 민간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강문봉, 허태영 등의 지시를 받아 송용고와 함께 암살에 가담했다. 옥중에서 김홍섭 판사의 권유로 천주교로 개종했으며, 1958년 5월 20일 송용고와 함께 교수형이 집행되었다.2. 2. 1. 사건의 배경과 전개
신초식은 부인이 25세, 외동아들이 생후 22일이던 때 예비역 육군 중령 신분으로 경기도 의정부 자택을 떠나 서울로 갔다. 1956년 1월 30일 서울에서 육군 제2군사령관 강문봉의 배후 지시와 허태영 육군 대령 등의 중요 임무로, 송용고 예비역 육군 소령과 함께 육군 특무부대장 김창룡 장군을 사살하는 데 참여하였다. 이른바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을 방조하여 군사재판(군법회의)에 기소되었고, 민간 형사재판 끝에 사형이 선고되었다. 김홍섭 판사의 권유로 옥중에서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그는 옥중 신앙 생활에 전념하던 중 1958년 5월 20일 옛 동지 송용고와 함께 사형(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사형 집행 당시 그의 부인 이임순 여사는 27세였고, 외동아들은 만 두 살(생후 28개월)이었다.2. 2. 2. 재판 과정과 사형 집행
1956년 1월 30일, 김창룡 특무부대장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군사재판과 민간 형사재판을 받았다. 신초식은 부인이 25세, 외동아들이 생후 22일이었을 때, 예비역 육군 중령 신분으로 강문봉 육군 제2군사령관, 허태영 육군 대령 등의 지시를 받아 송용고 예비역 육군 소령과 함께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에 가담하였다.재판 결과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김홍섭 판사의 권유로 옥중에서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였다. 이후 옥중 신앙 생활에 전념하던 중 1958년 5월 20일 옛 동지 송용고와 함께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사형 집행 당시 그의 부인 이임순 여사는 27세였고, 외동아들은 만 2세(생후 28개월)로 국민학교 입학 전이었다.
2. 2. 3. 사건의 진실과 논란
신초식은 부인이 25세, 외동아들이 생후 22일이었을 때, 예비역 육군 중령 신분으로 경기도 의정부 자택을 떠나 서울로 갔다. 그는 육군 제2군사령관 강문봉의 배후와 허태영 육군 대령 등의 중요 임무로, 1956년 1월 30일 서울에서 육군 특무부대장 김창룡 장군을 사살하는 데 송용고 예비역 육군 소령과 함께 동참했다. 이른바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을 방조하여 군사재판(군법회의)에 기소되었고, 민간 형사재판 끝에 사형이 선고되었다.김홍섭 판사의 권유로 옥중에서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그는 옥중 신앙 생활에 전념하던 중, 1958년 5월 20일 옛 동지 송용고와 함께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사형 집행 당시 그의 부인 이임순 여사는 27세였고, 외동아들은 만 두 살(생후 28개월)로 국민학교 입학 전이었다.
3. 학력
- 경상남도 부산고등상업학교
-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6기
- 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 대한민국 육군공병학교
- 대한민국 육군포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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