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실증사관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실증사관은 역사 연구에서 실증적 방법과 객관적인 증거를 중시하는 역사관이다. 19세기 독일의 레오폴트 폰 랑케의 역사 서술 방법에서 시작되었으며, 개별 사실들의 연관성을 통해 전체성을 파악하고 객관적인 사료에 근거한 역사 서술을 강조한다. 일본에서는 랑케의 사학을 실증사학으로 명명했으나, 랑케의 역사관은 실증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실증사관의 영향을 받아 사료 비판과 해석을 강조하는 역사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이병도, 김상기 등이 대표적인 학자이다. 하지만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민족사적인 연구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역사학 - 역사주의
    역사주의는 19세기 초 독일에서 시작되어 낭만주의와 결합, 다양한 사상에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학문 분야를 탄생시켰으나, 결정론과 전체론 비판 및 신역사주의 등장으로 재해석되는 다의적 개념의 사상이다.
  • 역사학 - 시민 혁명
    시민 혁명은 봉건주의 또는 절대주의 체제에 대항하여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는 사회적, 정치적 운동으로, 마르크스주의, 배링턴 무어 주니어, 닐 데이비슨 등의 이론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해석되며, 영국, 프랑스, 미국 혁명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서구 중심적 관점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례도 존재하며, 민족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실증사관

2. 역사와 관련 철학

레오폴트 폰 랑케는 실증사학의 시초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그는 헤겔의 역사주의와 유사한 역사관을 가졌으며, 역사가는 객관적인 사료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랑케의 역사 방법론은 '객관적 사료에 의한 역사 서술법'으로 불렸으며, 일본에서는 '실증사학'으로 불렸다. 그러나 랑케는 역사 발전을 귀납적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사학을 실증사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1][2]

2. 1. 레오폴트 폰 랑케의 역사관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 1795 ~ 1886)는 1820년대부터 부각된 독일의 역사학자로, 실증사학의 시초로 여겨진다.

랑케는 《세계사》에서 개별자는 다른 개별자와 관련성을 맺고, 이러한 관련성이 계속 확장되어 결국 전체성에 대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헤겔의 역사주의적 역사관과 유사하며, 실제로 랑케는 헤겔의 역사 이론을 상당 부분 따랐다. 그는 "사물들의 신적인 질서"가 세계사의 통일성으로 구현되며, 이러한 철학적 전제하에 언어학이 보편사적 진리에 이르는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랑케가 말하는 진리는 보편적으로 증명되고, 변증되고 확립되는 '지식'이므로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지만, 그는 절대적 진리나 보편사적 진리는 오직 신만이 알 수 있고, 인간은 최대한 정확히 분석하여 진리에 가깝게 수용 또는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

랑케는 개별적 사실들의 연관을 발전으로 파악하고, 그 발전 양상은 지배적 이념을 통해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는 역사는 인간의 역사로 서술되어야 하므로, 특정 시기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주도하며 역사를 이끌어간 인간 집단을 찾아 그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역사가는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역할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객관주의적 역사 방법론은 당시 '객관적 사료에 의한 역사 서술법'으로 불렸으며, 일본으로 건너가 '실증사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랑케는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근대적인 사학을 확립했고, 이는 곧 근대 역사학의 대표 방법론으로 자리 잡았다.[2]

그러나 랑케의 사학을 실증사학이라고 명명한 일본의 입장에는 오류가 있다. 실증주의 사학은 검증된 자료 하나하나가 과학 법칙을 세우기 위한 자료가 된다고 보지만, 랑케는 '역사의 모든 순간은 신과 직결되어 있다'고 말하며, 역사 사건들이 자료로 검증되어도 역사의 발전 방향을 귀납적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 실증주의적 사례로 보지 않았다. 랑케 사학과 그 뒤를 이은 역사주의적 역사학은 자연 과학과 달리 역사 서술이 개별적 사건의 고유성과 독특성을 중시하는 개체 기술적 학문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므로, 이를 일본과 동아시아에서 실증사관 또는 실증주의적 사관이라 부르는 것은 랑케 사관의 특징을 간과한 잘못된 명칭이다.

2. 2. 실증주의 사학과의 관계

레오폴트 폰 랑케는 《세계사》에서 개별자는 다른 개별자와 관련성을 맺고, 그 관련성이 계속 확장되면서 궁극적으로 전체성에 대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사물들의 신적인 질서"가 세계사라는 대상의 통일성으로 구현되며, 이러한 철학적 전제하에 언어학이 보편사적 진리에 이르는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랑케가 말하는 진리는 보편적으로 증명되고, 변증되고 확립되는 '지식'이므로 절대적인 진리라고 할 수 없다. 그는 절대적인 진리나 보편사적 진리는 오직 신만이 알 수 있으며, 인간은 그것을 최대한 정확히 분석하여 진리에 가깝게 수용하거나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

랑케는 개체적 사실들의 연관을 발전으로 파악하고, 그 발전 양상이 구체적으로 지배적 이념을 통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그는 역사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역사로 서술되어야 하므로, 특정 시기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주도권을 쥐고 역사를 이끌어간 인간 집단을 찾아 그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역사가는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역할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객관주의적 역사 방법론은 당시 '객관적 사료에 의한 역사 서술법'으로 불렸으며, 일본으로 건너간 후 '실증사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랑케의 사학을 실증사학으로 명명한 일본의 입장에는 오류가 있다. 실증주의 사학에서는 검증된 자료 하나하나가 과학 법칙을 세우기 위한 자료가 된다고 본다. 그러나 '역사의 모든 순간은 신과 직결되어 있다'는 랑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역사 사건들이 자료로 검증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역사의 발전 방향을 귀납적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 실증주의적 사례라고 보지 않았다. 랑케 사학, 그리고 랑케의 뒤를 이은 역사주의적 역사학의 인식론은 자연 과학과 달리 역사 서술이 개별적 사건의 고유성과 독특성을 중시하는 개체 기술적 학문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를 일본,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실증사관 혹은 실증주의적 사관이라 칭하는 것은 랑케 사관의 특징을 간과한 잘못된 명칭이다.[2]

3. 개념

실증사학은 역사를 연구할 때 실제적인 증거, 즉 '실증'을 중시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최종 평가하는 방법론이다. 실증사학은 문헌 자료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며, 위서(僞書)를 판별하기 위해 사료 비판을 중요하게 여긴다.

3. 1. 실증사학의 연구 방법론

실증사학은 연구 방법의 실증을 중시한다. '실증'은 실제적인 증거를 의미하며, 실증사학은 역사를 연구할 때 실증적 방법으로 증명된 근거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최종 평가한다.

실증사학 연구 방법론에서 가장 중시되는 근거는 문헌 자료이다. 그러나 모든 문헌 자료를 연구의 기반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위서(僞書), 즉 거짓된 문서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실증사학자들은 '정확한 문헌 자료'를 찾고자 노력한다. 따라서 정확한 문헌을 기반으로 역사를 평가하기 위해 여러 사료를 동시적으로 연구하여 정확한 문헌 자료를 찾아내고 사료 비판을 시도한다.

실증사학의 연구 방법론은 크게 '사실 해명 중시'와 '사료 비판 중시'로 나뉜다.

  • 사실 해명 중시: 사료 비판보다는 사료 외의 고고학적 근거, 기타 비사료적 요소를 통해 발견적 또는 귀납적 추론으로 역사를 분석한다.
  • 사료 비판 중시: 이미 드러나 있는 정확한 사료를 통해 연역적 추론으로 역사를 분석한다.
  • 두 가지 모두 중시: 사실 해명과 사료 비판 모두를 중시하는 유형도 존재한다.[3]


모든 실증사학에 적용되는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1. 개별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단순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 시간의 선후 관계를 정확히 규명하여, 해당 시기에 일어난 역사적 또는 정치적 변동과 일치하는 역사적 해석을 주로 택한다.

3. 어떠한 역사-시간적 공간 안에 존재하는 피지배층보다 지배층의 입장을 중시한다. 이들은 세계가 근대주의를 받아들이기 전에 기본적으로 군주제 또는 기타 전근대적 요소를 포함하는 통치 체제가 보편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여, 지배층의 행동 양식 또는 그들의 역사를 연구의 목적이 되는 해당 역사 구간 연구에 대한 중점 연구 요소로 삼았다.[4]

3. 2. 실증사학의 공통점

실증사학은 연구 방법에 있어서 실제적인 증거, 즉 '실증'을 중시한다. 실증사학은 실증적 방법으로 증명된 근거들을 가지고 역사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최종 평가한다.[3]

실증사학 연구 방법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근거는 문헌자료이다. 하지만 모든 문헌자료를 연구의 기반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위서(僞書), 즉 거짓으로 쓰여진 문서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실증사학자들은 '정확한 문헌자료'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여러 사료들을 동시에 연구하여 정확한 문헌자료를 찾아내고 사료비판을 시도한다.

모든 실증사학자들의 연구 방법이 같은 것은 아니다. 실증사학 연구 방법론은 크게 '사실해명중시'와 '사료비판중시'로 나뉜다. 사료비판중시는 이미 드러나 있는 정확한 사료를 통해 연역적 추론으로 역사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사실해명중시는 사료비판보다는 사료 외의 고고학적 근거, 기타 비사료적 요소를 통해 발견적 또는 귀납적 추론으로 역사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 둘을 모두 중시하는 유형도 존재한다.[3]

모든 실증사학에 적용되는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4]

  • 첫째, 개별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단순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둘째, 시간의 선후 관계를 정확히 규명하여, 해당 시기에 일어난 역사적 또는 정치적 변동과 일치하는 역사적 해석을 주로 택한다.
  • 셋째, 지배층의 입장을 중시한다. 이들은 세계가 근대주의를 받아들이기 전에 기본적으로 군주제 또는 기타 전근대적 요소를 포함하는 통치 체제가 보편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여, 지배층의 행동 양식 또는 그들의 역사를 연구의 중점 요소로 삼았다.[4]

4. 대한민국의 실증사관

대한민국의 실증사관은 일제강점기 19세기 일본의 실증사관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한 흐름으로, 사료 비교, 대조, 비판, 해석을 강조하는 역사연구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활약한 한인 실증사학자들은 주로 일본 대학 교육을 받았으며, 주관적 해석이나 특정 사관을 배격하고 자료 그대로의 해석 및 비판만을 강조했다.

4. 1. 진단학회와 주요 학자

1934년 진단학회는 일본인 역사학자들과 학문적 경쟁을 했으나, 사실상 일본식 식민주의 역사 방법론을 답습했기 때문에 식민지 상황에서 민족 해방이라는 특수한 관점에서 역사를 비판하고 연구하기엔 역부족이었다.[5] 진단학회의 역사 연구 방법론은 해방 후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5]

대표적인 학자로는 이병도(李丙燾), 김상기(金庠基), 이상백(李相伯) 등이 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활약한 한인 실증사학자들로 주로 일본 대학 교육을 받았으며, 주관적 해석이나 특정 사관을 배격하고 자료 그대로의 해석 및 비판만을 강조하여 연구의 정확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식민사관의 영향을 받아 민족사적인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고, 일본의 제국주의적 학풍을 따라갔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4. 2. 식민사관의 영향과 한계

1934년 진단학회는 일본인 역사학자들과 학문적 경쟁을 했으나, 진단학회의 역사 연구 방법론은 사실상 일본식 식민주의 역사 방법론을 답습한 것이었다. 따라서 식민지 상황에서 민족 해방이라는 특수한 관점에서 역사를 비판하고 연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진단학회의 역사 연구 방법론은 해방 후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5]

참조

[1] 논문 랑케 사관의 성격과 위치 서강대 인문과학 연구소 1975
[2] 논문 "모든 시대는 진리에 직결되어있다" : 한국 역사학의 랑케, 이기백 한국사학사학회-한국사학사학보 2006
[3] 간행물 우리나라 근대역사학의 발달 2-1930·1940년대의 실증주의 사학 문학과 지성-가을호 1972
[4] 서적 현대 한국사학과 사관 일주각 1991
[5] 서적 한국 근현대사사전 가함기획 200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