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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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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심군리는 남조 진나라의 인물로, 진나라 무제 진패선의 딸 회계목공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었으며 영안정후에 봉해졌다. 그는 시중, 좌민상서, 단양윤 등을 역임했고, 딸이 진나라 후주의 황후가 되면서 국구로서 망채현후에 봉해졌다. 심군리는 천태종의 발전에 기여하여 지의 선사가 천태산에서 은거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2. 가계

진나라 초대 황제 무제 진패선(503년 ~ 559년)의 딸 회계목공주 진씨(会稽穆公主 陳氏)와 혼인하여 부마(황제의 사위)가 되어 '''영안정후(永安亭侯)'''에 봉작되었다.

570년 그의 딸 심무화(沈婺華)가 황태자(皇太子) 진숙보(553년 ~ 604년)와 혼인하여 황태자비(皇太子妃)가 되었고, 심군리(沈君理)는 황태자의 장인으로서 '''망채현후(望蔡県侯)'''에 봉작되었다. 583년 진숙보가 황제에 등극하자 심무화는 황후(후주황후)가 되었고, 심군리는 국구(황제의 장인)가 되었다. 심군리는 국구로서 작위 '''망채현후(望蔡県侯)'''에 시호 '''정헌(貞憲)'''이 더해져 '''망채정헌후(望蔡貞憲侯)'''에 봉작되었다.

가계는 다음과 같다.

관계이름비고
조부심승측(沈僧畟)좌민상서(左民尚書, 호부상서)
부친심순(沈巡)동양태수(東陽太守)
장인무제 진패선진나라 초대 황제
부인회계목공주 진씨(会稽穆公主 陳氏)무제 진패선의 딸
후주황후 심씨본명은 심무화(沈婺華)
사위후주 진숙보진나라 제5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외손자폐태자 오흥왕 진윤(廢太子 吳興王 陳胤)후주 진숙보의 후궁 손희(孫姬) 소생, 심황후(沈皇后)의 양자로 입적
사돈효선제 진욱진나라 제4대 황제


3. 생애

심군리는 남조 진나라의 고위 관료이자 황실 인척이었다. 진나라 초대 황제 진패선의 사위였으며, 그의 딸 심무화는 황태자 진숙보와 혼인하여 황태자비가 되었다.

심군리는 진패선, 문제, 폐제, 효선제 등 여러 황제를 섬기며 오군태수, 시중, 좌민상서, 단양윤, 동양태수, 형주자사, 중서령, 태자첨사, 이부상서 등 다양한 관직을 역임했다. 딸이 황태자비가 된 후에는 망채현후에 봉해지기도 했다.

573년 의동대장군과 상서우복야를 지내다 사망했으며, '정헌'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583년 딸 심무화가 황후가 되자, 심군리는 황제의 장인으로서 망채정헌후에 추봉되었다.

그는 불교, 특히 천태종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의를 청하여 와관사에 머무르게 하기도 했다.[1]

3. 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심군리(沈君理)는 진나라 초대 황제 무제 진패선의 딸 회계목공주 진씨와 혼인하여 부마(황제의 사위)가 되어 영안정후(永安亭侯)에 봉해졌다. 오군태수(呉郡太守)를 거쳐 문제 진천이 황제가 되자 시중(侍中)이 되었다. 이후 좌민상서(호부상서), 단양윤(남경부윤), 동양태수(東陽太守)를 지내고, 폐제 진백종이 황제에 오르자 형주자사(衡州刺史)를 거쳐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효선제 진욱이 황제가 되자 태자첨사(太子詹事)를 거쳐 이부상서(吏部尚書)가 되었다.

570년 그의 딸 심무화가 황태자(진숙보)와 혼인하여 황태자비(皇太子妃)가 되었고, 심군리는 황태자의 장인으로서 망채현후(望蔡県侯)에 봉작되었다. 572년 시중(侍中)이 되고, 573년 의동대장군(의동삼사)과 상서우복야(尚書右僕射)를 지내고 죽었다. 정헌(貞憲)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583년 진숙보가 황제에 등극하자 심무화는 황후(후주황후)가 되었고, 심군리는 국구(황제의 장인)가 되어 망채정헌후(望蔡貞憲侯)로 추봉되었다.

천태종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지의를 청하여 와관사에 머무르게 하였다.[1]

3. 2. 진나라 건국 이후

진나라 초대 황제 무제 진패선의 딸 회계목공주 진씨(会稽穆公主 陳氏)와 혼인하여 부마(황제의 사위)가 되어 '''영안정후(永安亭侯)'''에 봉작되었다.[1] 오군태수(呉郡太守)를 거쳐 문제 진천이 황제가 되자 시중(侍中)이 되었다.[1] 이후 좌민상서(左民尚書, 호부상서), 단양윤(丹陽尹, 남경부윤), 동양태수(東陽太守)를 지내고, 폐제 진백종이 황제에 오르자 형주자사(衡州刺史)를 거쳐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1] 효선제 진욱이 황제가 되자 태자첨사(太子詹事)를 거쳐 이부상서(吏部尚書)가 되었다.[1]

570년 그의 딸 심무화가 황태자(皇太子) 진숙보와 혼인하여 황태자비(皇太子妃)가 되었고, 심군리는 황태자의 장인으로서 '''망채현후(望蔡県侯)'''에 봉작되었다.[1] 572년 시중(侍中)이 되고,[1] 573년 의동대장군(의동삼사)과 상서우복야(尚書右僕射)를 지내고 죽었다.[1] 시호는 '''정헌(貞憲)'''이다.[1] 583년 진숙보가 황제에 등극하자 심무화는 황후(후주황후)가 되었고, 심군리는 국구(國舅, 황제의 장인)로서 작위 '''망채현후(望蔡県侯)'''에 시호 '''정헌(貞憲)'''이 더해져 '''망채정헌후(望蔡貞憲侯)'''에 봉작되었다.[1]

심군리는 불교 천태종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1]

3. 3. 황실과의 관계

진나라 초대 황제 무제 진패선의 딸 회계목공주 진씨(会稽穆公主 陳氏)와 혼인하여 부마(황제의 사위)가 되었고 '''영안정후(永安亭侯)'''에 봉작되었다. 문제 진천이 황제가 되자 오군태수(呉郡太守)를 거쳐 시중(侍中)이 되었다. 이후 좌민상서(左民尚書, 호부상서), 단양윤(丹陽尹, 남경부윤), 동양태수(東陽太守)를 지냈고, 폐제 진백종이 황제에 오르자 형주자사(衡州刺史)를 거쳐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효선제 진욱이 황제가 되자 태자첨사(太子詹事)를 거쳐 이부상서(吏部尚書)가 되었다.

570년 딸 심무화가 황태자 진숙보와 혼인하여 황태자비(皇太子妃)가 되면서 황태자의 장인으로서 '''망채현후(望蔡県侯)'''에 봉작되었다. 572년 시중(侍中)이 되었고, 573년 의동대장군(의동삼사) 겸 상서우복야(尚書右僕射)를 지내다 사망했다. 시호는 '''정헌(貞憲)'''이다. 583년 진숙보가 황제에 즉위하여 심무화가 황후(후주황후)가 되자, 심군리는 국구(國舅, 황제의 장인)로서 '''망채정헌후(望蔡貞憲侯)'''에 봉작되었다.

심군리는 천태종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3. 4. 불교 후원

천태종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지자 지의선사는 심군리의 청으로 와관사 주지를 맡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임하였다. 그는 심군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수행력이 부족함을 토로하며, 천태산에 들어가 수행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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