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흠
1. 개요
심흠은 남조 양나라 출신으로, 진 문제의 정전에 종군하여 정위장군과 안주 자사를 역임했다. 매부인 진 문제가 황제가 되자 건성현후에 봉해졌으며, 회계태수, 시중 등을 거쳐 상서좌복야를 지냈다. 이후 의흥태수로 있다가 사망했으며, 시호는 성이다. 그의 아들 심관 또한 건성현후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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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남조)의 후작 -
심군리
심군리는 남조 진나라의 인물로, 회계목공주의 부마가 되어 영안정후에 봉해졌으며, 시중, 좌민상서, 단양윤을 역임하고, 딸이 황후가 되면서 국구로서 망채현후에 봉해졌고, 천태종 발전에 기여했다. -
진 (남조)의 후작 -
심각 (남북조)
심각은 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무장이자 정치가로, 학문과 무예에 능했으며 양나라에서 벼슬을 시작하여 진나라 건국에 기여하고 말년에는 오흥군태수 등을 지내며 헌신했다. -
503년 출생 -
진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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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년 출생 -
리비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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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남조)의 시중 -
진숙보
진숙보는 진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사치와 폭정, 안일한 대처로 나라를 멸망시킨 무능한 군주였으나 문학적 재능은 뛰어났다. -
진 (남조)의 시중 -
진 문제
진 문제는 진나라의 두 번째 황제로, 후경의 난을 평정하는 데 기여했으며, 정치 안정, 군벌 숙청, 부역 감면, 노비 해방 등의 정책을 통해 나라를 다스렸다.
2. 가계
3. 생애
심흠은 안주자사(安州刺史)를 지냈다. 매부 문제 진천(文帝 陳蒨)이 황제가 되자 건성현후(建成縣侯)에 봉해지고 회계태수를 거쳐 시중을 지냈다. 566년 외조카 폐제 진백종(廢帝 陳伯宗)이 황제에 즉위하자 상서우복야가 되었고, 567년 상서좌복야가 되었다.
569년 문제 진천의 동생 효선제 진욱이 조카 폐제 진백종을 폐위시키고 황제에 오르자 의흥태수(義興太守)로 있다가 죽었다. 향년 67세였다. 시중, 특진, 익좌장군의 관직이 추증되었다. 시호는 성(成)이다. 아들 심관(沈觀)은 건성현후(建成縣侯)에 습작(襲爵)되고 어사중승(御史中丞)을 지냈다.
3.1. 초기 생애 및 경력
심흠은 남조 양(梁)나라 안전중록사참군 심법심의 아들로 태어났다. 진천(후의 문제)의 정전에 종군하여 공적으로 정위장군, 안주 자사가 되었다.
매부인 문제 진천이 황제가 되자, 건성현후(建成縣侯)에 봉해졌고, 통직산기상시, 지절, 회계 등 9군 제군사, 명위장군, 회계군 태수에 임명되었다. 조정에 들어가 시중, 좌위장군, 위위경을 역임했다.
566년 외조카 폐제 진백종이 황제에 등극하자 상서우복야가 되었고, 567년 상서좌복야로 승진했다.
3.2. 문제 치세
문제 진천이 황제가 되자 건성현후(建成縣侯)에 봉해지고 회계태수를 거쳐 시중을 지냈다. 566년 외조카 폐제 진백종이 황제에 즉위하자 상서우복야가 되고, 567년 상서좌복야를 지냈다. 569년 문제 진천의 동생 효선제 진욱이 조카 폐제 진백종을 폐위시키고 황제에 오르자 의흥태수(義興太守)로 있다가 죽었다. 시호는 성(成)이다.
광대 연간에 상서우복야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좌복야로 옮겼다. 태건 원년(569년), 선제가 즉위하자 운휘장군, 의흥군 태수로 나가게 되었다. 그 해에 사망했다. 향년 67세였다. 시중, 특진, 익좌장군의 관직이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