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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메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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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가메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건축가로, 그의 형제는 트로포니오스였다. 아가메데스와 트로포니오스는 아폴론 신전을 비롯한 여러 건축물을 건설했으며, 특히 델포이 신탁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형제는 히리에우스 왕의 보물창고를 짓는 과정에서 덫에 걸린 아가메데스를 트로포니오스가 죽이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후 트로포니오스는 땅에 묻혀 신이 되었고, 아가메데스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이집트 보물창고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있어, 그 기원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현대에는 《어둠의 예언》에 등장하는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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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메데스
기본 정보
그리스어Ἀγαμήδης
로마자 표기Agamḗdēs
신화
분야건축가, 영웅
아버지에르기노스 또는 아폴론
어머니에피카스테
형제트로포니오스
배우자이에로테아
에피카스테
자녀케르키온
관련 인물
스승델포이의 건축가
관련 신아폴론

2. 가족 관계

아가메데스는 에피카스테의 아들로 케르키온의 아버지였으며, 의붓아들 트로포니오스를 두었다. 몇몇 사람들은 트로포니오스가 아폴론의 아들이라고 믿었다.[2] 다른 설에 따르면 아가메데스는 아폴론과 에피카스테의 아들이거나, 제우스이오카스테의 아들이며 트로포니오스의 아버지였다.[2] 가장 흔한 설명으로는 트로포니오스는 아가메데스의 형제였다.[2]

3. 신화 속 이야기

아가메데스는 에피카스테의 아들이었고, 의붓아들인 트로포니오스를 두었는데, 몇몇 사람들은 트로포니오스가 아폴론의 아들이라고 믿었다. 다른 전승에 따르면 아가메데스는 아폴론과 에피카스테, 혹은 제우스이오카스테의 아들이었다.[2]

아가메데스와 트로포니우스는 델포이아폴론 신전을 짓고 나서 신에게 보상을 요청했고, 신탁은 7일 후에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7일 밤, 그들은 침대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4] 키케로는 3일 후의 일이라고 언급했다.[5] 이는 메난드로스의 "신들이 사랑하는 자는 젊어서 죽는다"는 말과 연결된다.[6]

이집트 보물창고 이야기가 그리스에서 유래했는지, 아니면 그리스 이야기가 이집트에서 수입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뮐러는 이 전승이 미니안에서 시작되어 아우게아스에게 전해졌으며, 프삼메티코스 1세의 통치 이전부터 그리스에 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2]

3. 1. 히리에우스 왕의 보물창고

아가메데스와 트로포니오스 형제는 건축가로서, 특히 사원과 궁전을 짓는 데 뛰어난 업적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보이오티아의 히리아 왕 히리에우스의 보물창고를 지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주석가는 페르가뭄의 카락스와는 다소 다른 설명을 제공하며,[7] 그들이 아우게아스 왕을 위해 보물창고를 지었다고 말한다. 파우사니아스에 나오는 이 보물창고 이야기는 헤로도토스가 이집트 왕 람프시니토스의 보물창고에 대해 언급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8] 히리에우스의 보물창고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아가메데스와 트로포니우스는 밖에서 돌 하나를 빼낼 수 있도록 배치하여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보물창고로 들어가는 입구를 만들었다. 이들은 끊임없이 보물창고를 털었고, 왕은 자물쇠와 봉인이 손상되지 않았는데도 보물이 계속 줄어드는 것을 보고 도둑을 잡기 위해 덫을 설치했다. 아가메데스는 이 덫에 걸렸고, 트로포니우스는 아가메데스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그의 머리를 잘랐다.[2]

이후 트로포니우스는 즉시 땅에 삼켜져 불멸의 지하 신이 되었다. 이 장소에는 나중에 레바데이아 숲에 아가메데스의 동굴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었고, 그 옆에는 기둥이 있었다. 여기에는 트로포니우스의 신탁도 있었고, 그것을 찾아간 사람들은 먼저 아가메데스에게 숫양을 바치고 신격화된 그를 불렀다.[9]

3. 2. 트로포니오스 신탁

두 형제는 건축가로서, 특히 사원과 궁전을 짓는 데 뛰어난 업적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아폴론의 신전, 즉 델포이 신탁을 모시는 곳을 지었다.[3] 아가메데스와 트로포니우스는 신전을 짓고 나서 신에게 보상을 요청했고, 신탁은 7일 후에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7일 밤, 그들은 침대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4]

이후 트로포니우스는 즉시 땅에 삼켜져 불멸의 지하 신이 되었다. 이 장소는 나중에 레바데이아 숲에 아가메데스의 동굴이라고 불리는 곳이었고, 그 옆에는 기둥이 있었다. 여기에는 트로포니우스의 신탁도 있었는데, 그것을 찾아간 사람들은 먼저 아가메데스에게 숫양을 바치고 신격화된 그를 불렀다.[9]

4. 이집트 보물창고 이야기와의 관계

아가메데스와 트로포니우스 형제는 보이오티아의 히리아 왕 히리에우스를 위해 보물창고를 지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주석가는 페르가뭄의 카락스와는 다소 다른 설명을 제공하며,[7] 그들이 아우게아스 왕을 위해 보물창고를 지었다고 말한다. 파우사니아스가 전하는 이 보물창고 이야기는 헤로도토스가 이집트 왕 람프시니토스의 보물창고에 대해 언급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8]

히리에우스의 보물창고를 건설할 때, 아가메데스와 트로포니우스는 밖에서 돌 하나를 빼낼 수 있도록 배치하여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보물창고로 들어가는 입구를 만들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보물창고를 털었고, 왕은 자물쇠와 봉인이 멀쩡한데도 보물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도둑을 잡기 위해 덫을 놓았다. 아가메데스는 덫에 걸렸고, 트로포니우스는 그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깊은 슬픔 속에서 그의 머리를 잘라냈다.[2]

이집트 보물창고 이야기가 그리스에서 유래했는지, 아니면 그리스 이야기가 이집트에서 수입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현대 학자들에 의해 양쪽으로 모두 답해졌다. 그러나 뮐러는 이 전승이 미니안 사이에서 시작되어 그들로부터 아우게아스에게 전해졌으며, 두 나라 간의 교류가 시작된 프삼메티코스 1세의 통치 이전부터 그리스에 알려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2]

5. 대중문화 속 아가메데스

어둠의 예언에서 아가메데스는 아가메투스라는 이름을 가진 주황색 유령으로 묘사된다.[1] 그는 웨이스테이션에 살면서 책 전체에서 아폴로를 돕는다.[1]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이복 형제인 트로포니오스를 찾기 위해 웨이스테이션을 떠난다.[1]

참조

[1] 서적 Graeciae Descriptio http://data.perseus.[...]
[2] 웹사이트 s.v. Agamedes https://www.perseus.[...]
[3] 서적 Graeciae Descriptio http://data.perseus.[...]
[4] 서적 Consolation to Apollonius
[5] 서적 Tusculanae Quaestiones
[6] 서적 The Greek Myths https://books.google[...] Penguin 1990-12-01
[7] 서적 Nubes
[8] 서적 Histories
[9] 서적 Graeciae Descriptio http://data.pers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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