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가사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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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마가사키 사건은 198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를 중심으로 발생한 일련의 범죄 사건을 말한다. 주범 X는 의사 가족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동거인들을 학대하고 살인, 시체 유기, 보험 사기 등의 범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은 2011년 F의 장녀의 도주로 발각되었으며, X를 포함한 다수의 관련자들이 체포되었다. 그러나 X는 체포 후 자살하여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재판 결과, 여러 관련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사건 과정에서 경찰의 미흡한 대응과 언론의 사진 오보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사건은 가족 내 폭력과 사회적 무관심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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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베군은 효고현에 존재했던 폐지된 군으로, 고대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까지 복잡한 행정 구역 개편을 거쳐 발족했으나 다이쇼 시대에 군청이 폐지되어 현재는 여러 시정촌으로 나뉘어 있다. - 아마가사키시의 역사 - 아마가사키번
아마가사키번은 에도 시대 셋쓰국 아마가사키에 존재했던 번으로, 다케베 가문이 처음 다이묘가 되어 성립되었으나 이후 도다 가문, 아오야마 가문을 거쳐 마쓰다이라 가문이 다스렸으며, 마쓰다이라 다다오키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다.
아마가사키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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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건 관계자
2. 1. 주범 X (체포 후 유치장에서 자살)
X는 1948년에 태어났다.[4] 일련의 사건이 발각된 후 2012년 12월 12일, 효고현 경찰 본부 유치장에서 자살했다.X는 의사 가족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동거인들에게 충성을 강요했고, 이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폭력을 행사했다. 한편, 함께 사는 사람들을 관광 여행이나 외식에 데려가기도 했다. 몇몇 사람들은 이 기회를 틈타 도망치려 했지만, X는 끈질기게 추적하여 다시 데려왔다.[4]
X는 1건의 상해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으나, 사망으로 인해 공소 기각되었다. 사망 후 A의 장남, A의 차남, D의 장녀에 대한 살인 및 상해치사 혐의 등으로 서류 송치되었다.[4]
2. 2. X의 의사 가족
X는 여러 차례 '가족 찬탈'을 통해 친족과 양자 관계를 반복하며 '가족'을 형성했다. 이 '가족' 구성원 중 X와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은 없다.
이들은 X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대부분 체포되거나 사망했다.
2. 2. 1. X의 의붓 여동생 H (A의 장남의 호적상 아내) (체포)
1953년생.[4] X의 금고지기 역할을 했으며, 일련의 사건 발각으로 이어진 3구의 시신 유기 장소를 처음으로 자백했다.[4] H의 어머니가 X의 어머니에게 방을 빌려 수십 년 동안 함께 살면서 어릴 때부터 서로를 알고 지냈다.[5] 1988년 X의 어머니에게 입양되었다.H의 증언에 따르면, X는 종종 H의 부모에게 소리를 지르고 H를 가족과 강제로 떨어뜨려 놓았으며, 그 후 둘은 함께 살기 시작했다. H는 X에 의해 술집과 비누방울 업소에서 성매매를 강요받았고, 월급의 대부분을 X에게 빼앗겼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삶에서 발생한 빚과 의사 가족의 압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2001년, X의 명령에 따라 A의 장남과 결혼했다. A의 장남은 10대 때부터 X와 알고 지내다가 성인이 된 후 가족과 같은 관계를 맺게 되었고, 2001년에 H와 결혼했지만, 이는 형식적인 결혼이었다.[9][11][25] H는 X의 재무와 비슷한 역할을 했으며, 공동 생활에 대한 일기를 썼는데, 폭력이나 학대 사건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피해자의 이름이 사망 무렵에 사라졌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가족 C의 장남과 어머니의 연금 도난 사건에서 H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녀는 이후 A의 장남과 차남, 가족 D의 장녀에 대한 살인 및 기타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고, 징역 21년을 선고받았다.
2. 2. 2. X의 사실혼 남편 I (체포)
I는 1950년에 태어났다.[4] 20대부터 X를 알고 지냈으며[4] 오랜 기간 동거 관계를 맺었지만, X에게 종속되어 학대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I는 A의 장남, A의 차남, D의 장녀에 대한 살인 및 기타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그 중 두 건은 살인 유죄, 한 건은 신체 상해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21년형을 선고받았다.2. 2. 3. 동거 여성 G (사망)
1941년에 태어났다.[4] X와는 그녀의 형제와의 관계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들은 부부처럼 함께 살았으며, 2000년에 함께 콘도를 구입하면서 공동 채무자가 되었다. 2008년 11월경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와 관련하여 7명이 감금 혐의로 기소되었다.2. 2. 4. X의 호적상 아들 J (N의 남편) (체포)
1986년에 태어났다.[4] X의 호적상 아들이자 A의 장남이다. D의 장녀를 살해한 죄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다.2. 2. 5. B의 넷째 아들의 셋째 아들 M (X의 의붓 장남) (체포)
1982년생. B의 넷째 아들의 셋째 아들 M은 X의 의붓 장남이다. M은 A의 장남, A의 차남, D의 장녀에 대한 살인죄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 21년형을 선고받았다.[4]2. 2. 6. X의 의붓 사촌 남성 K (C의 전처의 데려온 아이) (체포)
K|K일본어는 1974년에 태어났다.[6] A의 장남, A의 차남, D의 장녀에 대한 살인죄와 D에 대한 상해치사죄 등으로 기소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2. 2. 7. D의 차녀 N (X의 차남 J의 아내) (체포)
1985년에 태어났다. A의 장남, A의 차남, D의 장녀에 대한 살인죄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 23년형을 선고받았다.[4]2. 2. 8. X의 동거인 남성 L (D 가족 장녀의 남편) (체포)
L은 1969년에 태어났다. A의 차남이자 D의 장녀의 남편으로, 살인죄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4]2. 3. A의 친족
X는 여러 차례에 걸쳐 친척들에게 반복적인 입양을 시켜 "가족"을 형성했다. 이들은 혈연 관계가 아니다.- X의 의붓 며느리 H (A의 장남의 법적 아내) 【체포】: 1953년생.[4] A의 장남과 결혼하여 X의 재정 관리를 도왔으며, 시신 처리 장소를 처음으로 자백했다.
- X의 동거남 I 【체포】: 1950년생.[4] 20대부터 X와 동거했다.[4]
- X의 여성 동거인 【사망】: 1941년생.[4] X의 형제를 통해 알게 되었다.
- X의 양자 J (N의 남편) 【체포】: 1986년생.[4]
- B의 넷째 아들 M의 셋째 아들 (X의 맏사위) 【체포】: 1982년생.
- X의 남자 의붓 사촌 K (C의 전처의 의붓 자녀) 【체포】: 1974년생.[6]
- D의 차녀 N (J의 아내) 【체포】: 1985년생.
- X의 남자 동거인 L (D의 장녀의 남편) 【체포】: 1969년생.
B는 1999년 3월에 친족들에게 폭행과 음식 제한 등의 학대를 받다가 병사했다.[26] 2000년에 B 가족 친족들과 X에 의한 절도 사건이 발각되었을 때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도 진행되었지만, 사망진단서에 외상이 없어 입건되지 않았다.
2. 3. 1. A (행방불명)
A는 1927년에서 1928년 사이에 태어났다. A와 그녀의 세 자녀는 한때 부모님의 집에서 방을 빌려 살았으며, 1980년대 중반까지 함께 살았다.[4]2. 3. 2. A의 장남 (X의 의붓 여동생 H의 남편) (사망)
1953년에 태어났다.[9] 10대 때부터 A의 가족과 알고 지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가족과 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1982년경 누나와 함께 구마모토로 도망쳤지만 다시 붙잡혔고, 이후 누나, A의 차남과 함께 동거하게 되었다.[24] 동거 후 누나와 어머니가 학대당하는 것을 보았지만 막을 수 없었다.[24] 그 후 아마가사키시내의 회사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며, 번 돈을 모두 X 등에게 넘겨주었으며, 가족 내 유일한 직업인이었다.[9] 2000년에는 X가 구입한 맨션의 명의상 소유자가 되었다. 2001년에는 X의 의붓 여동생 H와 결혼했지만, 형식적인 결혼이었다.[9][11][25]2005년 오키나와현에서 추락사했는데, 당시에는 사고사로 처리되었다. 그러나 사건이 발각된 후 수사 과정에서 보험금을 노리고 자살을 강요당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의 사망과 관련하여 6명이 살인 및 사기죄로 기소되었다.
2. 3. 3. A의 차남 (사망)
1958년에 출생했다. 2011년 7월경 사망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7명이 시체유기죄로 기소되었고, 그중 6명은 살인 및 체포 감금죄로 기소되었다.[4]2. 4. B 가
X는 1948년에 태어나 2012년 12월 12일 효고현 경찰 본부 구치소에서 자살했다.[4] X는 의사 집안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주변 사람들에게 충성을 강요하고,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처벌했다.[4] 몇몇은 도망치려 했지만, X는 끈질기게 추적해 다시 데려왔다.[4] X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기각되었고, 사망 후에는 맏아들, 둘째 아들, 맏딸 살인 및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다.[4]X의 "가족"은 여러 차례의 "가족 접수"와 반복적인 입양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혈연 관계는 없다.
- X의 의붓 며느리 H (A의 장남의 법적 아내) 【체포】: 1953년생.[4] H는 X의 어머니에게 입양되었으며, X에게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월급을 빼앗겼다.[5] H는 1심에서 징역 2년을, 이후 살인 등 혐의로 징역 21년을 선고받았다.
- X의 동거남 I 【체포】: 1950년생.[4] X와 오랫동안 동거했으며, 살인 및 신체 상해 혐의로 징역 21년을 선고받았다.
- X의 여성 동거인 【사망】: 1941년생.[4] X와 부부처럼 함께 살았으며, 2008년 11월경 사망했다.
- X의 양자 J (N의 남편) 【체포】: 1986년생.[4]
- B의 넷째 아들 M의 셋째 아들 (X의 맏사위) 【체포】: 1982년생.
- X의 남자 의붓 사촌 K (C의 전처의 의붓 자녀) 【체포】: 1974년생.[6]
- D의 차녀 N (J의 아내) 【체포】: 1985년생.
- X의 남자 동거인 L (D의 장녀의 남편) 【체포】: 1969년생.
1998년 3월경, X는 B의 이모 장례식을 둘러싸고 분쟁을 일으켜 친척들에게 돈을 요구했다.
2003년 3월 6일, C의 어머니 시신이 다카마쓰시 D의 집 창고 마룻바닥 밑에서 발견되었다. 이 사건으로 X 등 여러 명이 상해치사 혐의로 서류 송치되었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불기소 처분되었다.
2. 4. 1. B (사망)
1925년~1926년 출생.[4] 1999년 3월 사망했다. B가 사망할 당시 친족들에게 폭행과 음식 제한 등의 학대를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26]2000년 B 가족 친족들과 X에 의한 절도 사건이 밝혀졌을 때, B의 사망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되었으나, 사망진단서에 외상 등의 특이 사항이 기록되지 않아 입건되지 않았다.[26]
2. 4. 2. B의 장남의 장남 (사망)
1974년~1975년 출생.[4] 1999년 12월 20일, 연금되어 있던 단지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2. 4. 3. B의 넷째 아들의 장남 (행방불명)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 태어났다. 2000년 3월경부터 행방불명되었으며, 2014년 2월에 공개 수배되었다.2. 5. C 가·D 가
C 가는 1998년 3월, X의 고모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X가 "절차가 미흡하다"며 B 등에게 트집을 잡으면서[35] 시작되었다. X는 B뿐만 아니라 B의 아들 부부, B의 형 등을 아마가사키 시내 B의 집에 불러 모아 문제 해결을 위한 회의를 열게 했다. X는 폭력단의 존재를 암시하며 회의를 주재했고, 다친 사람을 돌보거나 빚을 진 사람의 상담에 응하는[35] 등 B가 친족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해 갔다.친족들끼리 서로의 불만을 말하게 되면서, 친족 간 폭력이나 학대가 발생했다. B는 가장 먼저 표적이 되어, 구타, 장시간 서 있기, 음식 제한 등의 학대를 받았다.[35] X는 주로 지시만 하고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35]
B의 손자들도 X에게 불려가[35] X와 친해졌고, 부모에게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다. B의 아들 부부 등은 자녀를 인질로 잡힌 상태가 되어 X에게 더욱 종속되었다.[35] X는 여러 핑계를 대며 아들들에게 퇴직을 강요하거나[35] 집을 팔게 했다.[35] 어떤 친족의 빚을 갚는다는 명목으로, 장례식 문제와 무관한 고치 시의 친척들이 X 등에게 천 수백만 엔을 건네주기도 했다.[35]
B가 친족들은 효고현 니시노미야 시의 단독 주택에서 집단 생활을 하게 되었다.[35] X는 B의 아들 부부를 차례로 이혼시키고, 손자 2명을 양자로 삼았다.[35] 집단 생활에서 탈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다른 친족들에게 발각되어 다시 끌려왔다.
1999년 3월, B가 친족들에게 폭행과 음식 제한 등의 학대를 받다가 병사했다.[35] 2000년 B가족 친족들과 X의 절도 사건이 발각되었을 때, 이 사망 사건도 수사했지만, 사망진단서에 특이 사항이 없어 입건되지 않았다.[35]
D는 2003년 8월, 전 남편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와카야마현의 한 호텔에서 일했다. 그러나 2007년 12월, X 일당에게 위치가 발각되어 납치되었다.[9] 이 사건으로 X, H, I, M, J, K, L, D의 장녀(피해자의 장녀), N(피해자의 차녀) 등 9명이 D를 아마가사키로 납치한 혐의를 받았다. 이미 사망한 X와 D의 장녀를 제외한 7명이 생명·신체 가해 약취 혐의로 체포되었다. I, M, J, K, N이 기소되었고, H는 방조죄로 기소되었으며, L은 불기소 처분(기소 유예)을 받았다.[35]
2. 5. 1. C의 모친 (사망)
1924년에 태어났다. 2003년 3월 6일, X 등이 다카마쓰에서 아마가사키로 돌아온 날, 자택 맨션에서 음식 제한 등의 학대와 폭행을 받다가 급사했다.[25] 시신은 다카마쓰 시의 D 가옥에 인접한 창고 마룻바닥 밑에 유기되었으며, 2012년 12월에 체포자의 진술에 따라 발견되었다.이 사건으로 X, K, C(피해자의 장남), C의 남동생(피해자의 차남), C의 여동생(피해자의 차녀), C의 조카(피해자의 손자), D(피해자의 장녀), D의 장녀(피해자의 손녀), D의 차녀 N(피해자의 손녀)이 공모하여 C의 어머니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상해치사)로 서류 송치되었으나, 상해치사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모두 불기소 처분되었다.
2. 5. 2. C (서류 송치)
C는 1942년에서 1943년 사이에 태어났다. C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상해치사 혐의로 서류 송치되었으나,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되었다.[6]2. 5. 3. C의 남동생 (사망·서류 송치)
1948년에서 1949년 사이에 태어났다. 2002년 무렵 공동 생활을 시작했으나, 2007년 동거인 A가의 차남과 함께 도쿄로 도망쳤다. 이후 2010년 2월 잠복처에서 암으로 병사했으며, 사건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29] 그는 1건의 살인과 2건의 상해치사 혐의 등으로 서류 송치되었다.2. 5. 4. C의 여동생 (C의 모친의 차녀) (행방불명·서류 송치)
1952년에서 1953년 사이에 태어났다. 2003년 10월경부터 행방불명되었으며, 2014년 2월에 공개 수배되었다.[4] C의 어머니에 대한 상해치사 혐의로 서류 송치되었으나, 공소시효 만료로 인해 불기소 처분되었다.[25]2. 5. 5. C 가 손자 (서류 송치)
1980년~1981년생. C의 어머니에 대한 상해치사 혐의로 서류 송치되었으나,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되었다.[4]2. 5. 6. D (C의 모친의 장녀) (사망·서류 송치)
1949년에 태어났다. 2009년 6월, K에게 머리를 심하게 흔들리는 등의 폭행을 당해 급성 경막하 혈종으로 인한 연명성 의식 장애를 겪었고, 이로 인해 폐렴으로 사망했다.[9] 이 사건과 관련하여 K는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되었고,[9] X와 D의 장녀는 이미 사망하여 서류 송치되었다.[9]2. 5. 7. D의 장녀 (주범 여성 X의 동거인 남성 L의 아내) (사망·서류 송치)
1982년에 태어났다. 2008년 12월에 사망했으며, 이와 관련하여 7명이 살인 및 감금 혐의로 기소되었다.[4] D의 장녀는 3건의 상해치사 혐의 등으로 서류 송치되었다.[4]2. 5. 8. D 남편의 형 (사망)
D의 매형은 1944년에 태어났다.[9] 2004년 1월 자택 맨션에서 사망했다.[25]이 사건과 관련하여 X, K, C (피해자의 장남), C의 남동생 (피해자의 차남), C의 여동생 (피해자의 차녀), C의 조카 (피해자의 손자), D (피해자의 장녀), D의 장녀 (피해자의 손녀), D의 차녀 N (피해자의 손녀)이 공모, C의 어머니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서류 송치되었으나, 상해치사죄의 공소시효가 성립되어 모두 불기소 처분되었다.[25]
2. 6. E 가·F 가
E는 사철 회사에서 근무하였는데, 불만에 대응하면서 X가 E의 가족 및 E의 장모(F)의 가정사에 개입하게 되었다.[49]2. 6. 1. E (체포)
E는 1969년~1970년에 태어났다. 당시 E는 사철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불만에 대응한 것이 X가 E의 가족 및 E의 장모(F)의 가정사에 개입하는 결과를 낳았다. E는 F에 대한 상해치사죄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2. 6. 2. E의 아내 (F의 차녀) (체포)
E의 아내는 1970년에 태어났다.[49] F에 대한 상해치사죄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49][50]2013년 9월 25일부터 10월 31일까지 고베 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원 재판에서 E의 전 부인은 주범인 X에게 종속적인 입장이었지만, 심신상실 상태는 아니었다는 검찰 측 주장이 받아들여졌다.[47][48] 변호 측은 심신상실을 주장하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47][48]
고베 지방법원은 E의 전 부인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49][50] E의 전 부인은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했다.[51][52][53]
2014년 7월 2일 오사카 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도 변호 측은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54] 10월 3일, 오사카 고등법원은 E의 전 부인의 항소를 기각했다.[55] E의 전 부인은 다시 상고했다.[56]
2015년 10월 13일, 최고 재판소는 E의 전 부인의 상고를 기각하여 1심 판결이 확정되었다.[57]
2. 6. 3. F (사망)
F는 1944년 또는 1945년에 태어났다. 2011년 9월 11일에 사망했으며, 이와 관련하여 E 전 부부, F의 장녀 등 3명이 상해치사죄 등으로 기소되었다.[49][50]2013년 9월 25일부터 10월 31일까지 고베 지방 법원에서 열린 재판원 재판에서,[45][46] 피고인들은 X에게 폭력과 학대를 받았다고 진술했다.[45][46] 변호 측은 피고인들이 심신 상실 상태였다고 주장하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검찰 측은 피고인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 경우도 있었다며 심신 상실은 아니라고 반박했다.[47][48] 법원은 주모자가 X라고 인정하면서도 피고인들의 심신 상실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E에게 징역 3년 6개월, E의 전 부인에게 징역 2년 집행 유예 3년, F의 장녀에게 징역 3년 집행 유예 4년이 선고되었다.[49][50]
피고인들은 모두 항소했고,[51][52][53] 2014년 10월 3일 오사카 고등 법원은 F의 장녀와 E의 전 부인의 항소를 기각했지만, E는 1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 집행 유예 5년으로 감형했다.[55] E는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되었고, F의 장녀와 E의 전 부인은 상고했다.[56] 2015년 10월 13일, 최고 재판소는 이들의 상고를 기각하여 1심 판결이 확정되었다.[57]
2. 6. 4. F 가 장녀 (체포)
1968년에 태어났다.[49] F에 대한 상해치사죄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았다.[49] 자수한 사실 등이 고려되었다.[49]2013년 9월 25일부터 10월 31일까지 고베 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원 재판에서, 변호 측은 F의 장녀가 X의 영향으로 심신상실 상태였다고 주장하며 무죄를 주장했다.[47] 검찰 측은 F의 장녀가 종속적인 입장이었지만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한 경우도 있었다며 징역 4년을 구형했다.[47] 고베 지방법원은 F의 장녀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49]
F의 장녀는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했다.[51] 2014년 10월 3일, 오사카 고등법원은 항소를 기각했다.[55] F의 장녀는 다시 상고했으나,[56] 2015년 10월 13일 최고 재판소는 상고를 기각하여 1심 판결이 확정되었다.[57]
3. 사건의 경과
1987년경, 주범 X는 혈연 관계가 없는 여러 사람들과 효고현 아마가사키시 남동부 지역에서 생활하며 유사 가족을 형성했다.[3] X의 친척 A의 실종을 시작으로 여러 의심스러운 사망과 실종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지만, 수년 동안 드러나지 않았다.[3]
2011년 11월, 감금되어 있던 40대 여성이 탈출하여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X는 오에 가즈코의 장녀 사망 후 폭행 혐의로 체포되었다.[3] 2012년 10월, 별개의 사건으로 체포된 공범이 범행을 자백하면서 다른 사건들이 추가로 밝혀졌다.[3]
X는 2012년 12월, 효고현 경찰서 유치장에서 자살했다.[41] X는 죽기 전 "살아 있어도 의미가 없다", "죽고 싶다.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나" 등 자살을 암시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42][43] X의 유족은 시신 인수를 거부했고, X는 2012년 12월 19일에 고베시에서 화장되었다.[44]
X의 공범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효고현, 가가와현, 오키나와현 경찰이 합동 수사를 진행했으나, 2014년 3월 해산되어 사실상 수사가 종결되었다.[3] X와 그녀의 친족을 포함한 11명이 확인된 8건의 사망 사건 중 6건에 대해 과실치사 및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3] X가 교도소에서 자살했기 때문에 친족 10명에 대해서만 재판이 열렸다.[3]
이 사건은 기소된 사람이 17명에 달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X는 "가족 납치" 동안 사소한 약점과 협박 전술을 이용하여 가족 전체를 통제했으며, 많은 피해자들이 친척에 대한 강압적인 폭력, 음식, 수면 제한, 재산 강탈, 가족 해체 강요 등에 시달렸다.[3] X의 유사 가족 구성원들 또한 범죄에 연루되도록 강요받았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강제 결혼이나 입양을 통해 친족이 되었다.[3]
B의 사망 사건은 1999년 3월에 발생했다. B는 친족들로부터 폭행과 음식 제한 등의 학대를 받다가 사망했다. 2000년에 B 가족 친족들과 X에 의한 절도 사건이 발각되었을 때, 이 사망 사건에 관해서도 수사가 진행되었지만, 사망진단서에 외상 등의 특이 사항이 기재되어 있지 않아 입건되지 않았다.[26]
2013년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다.
- 2013년 9월 25일 ~ 2013년 10월 31일 (1심): E 전 부부, F의 장녀 등 3명에 대한 재판원 재판이 고베 지법에서 열렸다. 피고인들은 X에게 폭력과 학대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심신 상실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49][50]
- 2014년 7월 2일 ~ 2014년 10월 3일 (항소심): 오사카 고등법원은 F의 장녀와 E의 전 부인의 항소를 기각했지만, E에 대해서는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집행 유예를 선고했다.[55]
- 2015년 10월 13일 (상고심): 최고 재판소는 F의 장녀와 E의 전 부인의 상고를 기각하여 1심 판결이 확정되었다.[57]
- 2014년 11월 19일 ~ 2015년 3월 18일 (J의 1심): J는 1건의 사체 유기죄만 인정하고 다른 죄는 부인했지만, 고베 지법은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 2015년 1월 29일 ~ 2015년 3월 19일 (L의 1심): L은 일부 혐의를 부인했지만, 고베 지법은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5년을 선고했다.[61]
- 2015년 5월 13일 ~ 2015년 9월 16일 (H, I, M의 1심): 3명 모두 일부 혐의는 인정했지만 살인죄는 부인했다. 고베 지법은 A가 차남 사망·시체 유기 사건의 살인죄에 대해서는 상해치사죄를 적용했지만, 그 외의 죄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 21년을 선고했다.[63]
- 2018년 6월 20일 (I의 상고심): 최고 재판소는 I의 상고를 기각하여 징역 21년이 확정되었다.[67]
3. 1. A 일가, X 등과 동거 (1980년대)
A의 장남(1953년생)은 10대 시절 X와 알게 된 후 가족과 같은 교제를 해왔다.[5] 1982년경, A의 장남은 누나와 함께 구마모토로 도망쳤지만 붙잡혀 돌아왔다.[4] 이후 X는 A의 장남과 동거했으며, 2001년 X의 지시에 따라 A의 장남은 H(1953년생)와 결혼했다.[4]3. 1. 1. A 실종 사건 (1987년경)
A는 1927년에서 1928년 사이에 태어났다. 1987년경, A는 X의 자택 등에서 가족들에게 폭행당해 사망했고, 시신은 아마가사키시의 바다에 유기되었다는 증언이 나왔다.[4] 2014년 2월, 시신 유기 추정 현장을 수색했지만 발견되지 않았다.[4]3. 2. B 가 찬탈 사건 (1998년 3월~2000년 1월)
1998년 3월경, X는 B의 고모 장례식을 둘러싼 분쟁에 연루되어 B의 친척들에게 돈을 요구했다. X는 B 가를 지배하기 위해 친족들에게 서로의 불만을 말하게 하고, 폭력과 학대를 강요했다.[4]3. 2. 1. B 사망 (1999년 3월)
B는 1925년에서 1926년 사이에 태어났으며, 친족들로부터 폭행과 음식 제한 등의 학대를 받다가 1999년 3월에 사망했다.3. 2. 2. B의 장남의 장남 추락사 (1999년 12월)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B의 장남의 장남에 대한 정보가 없으므로, 해당 섹션 제목에 맞는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원본 소스에 기반하여 섹션 내용을 작성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3. 2. 3. 절도 사건으로 X 등 체포 (2000년 1월)
B의 조카는 X 등을 수사하게 하기 위해 절도를 제안했고, X와 B 가의 친족들은 절도 혐의로 체포되었다.[4] 이 체포로 B 가의 친족들은 X로부터 해방되었지만, B의 넷째 아들의 셋째 아들 M은 X와의 양자 관계를 해소하지 않고 공동 생활을 계속했다.3. 3. C·D 가 찬탈 사건 (2002년경~2003년 10월)
C는 거액의 빚을 지고 있던 중학교 동창 I을 통해 I의 사실혼 관계인 아내 X와 알게 되었다. X는 C와 그의 가족, D 가를 협박하고 금전을 요구하며 지배하기 시작했다.2003년 8월, 함께 학대를 받던 전 남편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한 D는 와카야마현의 한 호텔에서 숙박 업소 종업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차를 구입하기 위해 주민등록지를 옮긴 탓에 X 일당에게 위치가 발각되었다. 2007년 12월, X, K, I, M, J, D의 장녀, N, L은 호텔 직원 기숙사에 들이닥쳐 D를 협박한 후 X의 집으로 납치했다.[9][24]
이 사건으로 X, H, I, M, J, K, L, D의 장녀(피해자의 장녀), N(피해자의 차녀) 등 9명이 신체에 해를 가할 목적으로 D를 아마가사키로 납치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미 사망한 X와 D의 장녀를 제외한 7명이 생명·신체 가해 약취 혐의로 체포되었다. I, M, J, K, N이 이 죄로 기소되었고, H는 공범으로 기소되었으며, L은 "종속적인 입장이었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기소 유예)을 받았다. 또한, 이미 사망한 X, D의 장녀 등 2명이 가해 목적 약취 혐의로 서류 송치되었다.
3. 3. 1. C의 모친 사망·시체 유기 사건 (2003년 3월)
C의 어머니는 1924년에 태어났다. C의 어머니는 자택 맨션에서 학대와 폭행을 당하다가 급사했다. C의 어머니의 시신은 다카마쓰시의 D 가옥에 인접한 창고의 마룻바닥 밑에 유기되었다.[9]3. 3. 2. 다시 다카마쓰로 (2003년 5월)
X는 D의 전 남편에게 D를 데려오라고 전화했고, D의 전 남편이 D를 다카마쓰로 데려오자, X는 D의 장녀와 차녀 N을 데리고 D의 집에 들이닥쳤다. X는 다시 금전을 요구하고, 폭력과 학대를 가했다.[1]3. 3. 3. D 남편의 형 사망 (2004년 1월)
D의 남편의 형은 아마가사키시 자택 맨션에서 학대와 폭행을 받은 끝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신은 C 가의 어머니 집 마룻바닥 아래에 유기되었다.[3]3. 3. 4. A 가 장남 살인·보험금 사기 사건 (2005년)
A의 장남은 1953년에 출생했다.[4] A와 그녀의 세 자녀는 한때 부모님의 집에서 방을 빌려 살았으며, 1980년대 중반까지 네 식구가 함께 살았다. A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사망의 성격으로 인해 기각되었다. 이후 A는 맏아들, 둘째 아들, 맏딸의 살인 및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었다.[4]3. 3. 5. D 상해치사 사건 (2008년 3월~2009년 6월)
K는 D의 머리를 심하게 흔드는 등의 폭행을 가해 D에게 상해를 입혔고, D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4]3. 3. 6. D 가 장녀 사망·시체 유기 사건 (2008년 12월)
F의 장녀는 2008년 10월 30일 새벽, 차 안에서 X와 E에게 얼굴을 여러 차례 맞고 담뱃불로 지지는 등 심한 폭행을 당했으며, 손발이 테이프로 묶인 채 원룸 아파트에 감금되었다. F의 장녀는 감시역 E가 잠든 틈을 타 손발의 테이프를 끊고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도주했다. 오사카 시내 호텔에서 며칠간 묵은 뒤, 11월 3일 오사카 시내 파출소로 달려가 자신이 받은 폭력과 F가 사망한 사실을 경찰에 이야기했고, 오사카부 경찰은 효고현 경찰에 연락했다.사건 발각을 두려워한 X는 E에게 유서를 쓰게 하고, E의 전 부인과 차녀와 함께 차를 타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키려 했다. 11월 4일 저녁, E의 전 부부와 차녀는 아마가사키 시내 슈퍼마켓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 있었다. X와 K는 자살을 지켜보기 위해 나란히 세워진 차에 있었다. 그곳에 효고현 경찰이 들이닥쳐 3명을 보호했고, X와 E는 F의 장녀에 대한 상해 혐의로 체포되었다.[1]
3. 3. 7. 여성 G 감금·사망 (2008년 11월)
G는 X의 손녀에게 폭언을 했다는 이유로 감금되었고, 이후 사망했다. G의 유해는 C가 모친의 집 마룻바닥 아래에 유기했다.[4]3. 4. E·F 가 찬탈 사건 (2009년 4월~2011년 11월)
E는 당시 사철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X가 E에게 불만을 제기하면서 E 가와 F 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3. 4. 1. A 가 차남 사망·시체 유기 사건 (2011년 7월)
X 등은 A의 차남을 폭행하여 사망하게 하고, 시신을 오카야마현 비젠시의 해상에 유기했다.[4]3. 4. 2. F 가 모친 사망·시체 유기 사건 (2011년 9월)
F는 학대와 폭력을 받다가 사망했고, 시신은 드럼통에 콘크리트가 채워진 채 창고에 방치되었다.[4]3. 4. 3. F 가 장녀 도주·X 등의 체포 (2011년 11월)
F의 장녀는 X와 E에게 폭행을 당하고 감금되었다가 탈출하여 경찰에 신고했다. X와 E는 F의 장녀에 대한 상해 혐의로 체포되었다.[4]4. 사건 발각 및 수사
2011년(헤이세이 23년) 11월, 효고현 경찰은 아마가사키시의 한 임대 창고에서 F의 시신이 들어있는 드럼통을 발견했다.[3] 이 사건으로 F의 장녀가 상해 혐의로 체포되었고, F의 사망 사건이 발각되었다.
2012년 8월, 효고현 경찰은 가명을 쓰며 잠복해 있던 C를 발견했다. C의 증언과 H의 자백으로 일련의 살인·사체 유기 사건이 드러났다. 10월에는 D의 장녀, D의 형부, G의 시신이 아마가사키시에 있는 C의 어머니 집 마룻바닥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12월 3일, C의 어머니 시신은 다카마쓰시의 농기구 창고에서 발견되었고, 12월 5일에는 X와 다른 7명이 A의 차남 감금 및 살인 혐의로 재체포되었다. 12월 30일, A의 차남 시신이 오카야마현의 바다에서 발견되었다.[3]
이후, 종범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효고현, 가가와현, 오키나와현 경찰의 합동 수사본부가 사건을 수사했다.[7] 2014년 3월 수사본부는 해산되었고, 확인된 8명의 사망자 중 6명에 대해 X와 그 친족 등 11명이 기소되었다.[8]
이 사건은 수많은 대량 살인 사건 중에서도 체포 및 서류 송치된 인원이 17명으로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주범 X는 사소한 약점을 이용해 가족을 지배하고, 폭력을 강요하거나, 음식과 수면을 제한하는 등 학대했으며, 재산을 빼앗거나 가정 파탄에 이르게 했다.
4. 1. X의 자살 (2012년 12월 12일)
2012년 12월 12일, X는 효고현 경찰 본부 유치장에서 자살했다.[4] X는 의사 가족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하고,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처벌했다.[4] 또한 그들을 여행이나 외출에 데려가기도 했는데, 몇몇은 이 기회를 틈타 도망치려 했지만 끈질기게 추적당해 다시 끌려왔다.[4]5. 재판
F 사망·시체 유기 사건, J, L, H·I·M, K, N 등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다.
; F 사망·시체 유기 사건 관련 재판
- 1심 (2013년 9월 25일 ~ 2013년 10월 31일): 고베 지법에서 E 전 부부, F의 장녀 등 3명에 대한 재판원 재판이 열렸다. 변호 측은 피고인들이 심신 상실 상태였다고 주장하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기각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 E: 징역 3년 6개월
- E의 전 부인: 징역 2년 집행 유예 3년
- F의 장녀: 징역 3년 집행 유예 4년
- 항소심 (2014년 7월 2일 ~ 2014년 10월 3일): 오사카 고등법원은 F의 장녀와 E의 전 부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E에 대해서는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3년 집행 유예 5년으로 감형했다.
- 상고심 (2015년 10월 13일): 최고 재판소는 F의 장녀와 E의 전 부인의 상고를 기각하여 1심 판결이 확정되었다.
; J 관련 재판
- 1심 (2014년 11월 19일 ~ 2015년 3월 18일): 고베 지방 법원은 J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검찰과 변호인 모두 항소하지 않아 1심 판결이 확정되었다.
; L 관련 재판
; H, I, M 관련 재판
6. 경찰 대응 문제
이 일련의 사건, 특히 앞서 언급한 3건의 가족 납치 사건과 관련하여, 피해자, 그 친족, 인근 주민 등으로부터 총 50건에 달하는 경찰 신고 및 상담이 있었으나, 대부분 가족 간의 금전 문제나 폭행 등의 사건으로 취급되어 사건성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적절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76][77]
사건 발각 후 이러한 점이 문제시되어, 가가와현 경찰과 효고현 경찰은 당시의 경찰 대응을 검증하고, 부적절한 점이 있었음을 인정하여 관계자에게 사죄했다.[76][77]
7. 사진 오보 문제
일련의 사건 발각 후 2012년 10월 하순, X로 특정되는 얼굴 사진이 여러 텔레비전과 신문, 잡지 등에서 보도되었으나, 후에 다른 사람임이 밝혀져 사과와 정정이 이루어졌다.[78][79]
그 후, 2012년 11월 7일에 효고현 경찰이 X의 얼굴 사진을 보도 각사에 공개했는데, 그 당시 설명에서는 "얼굴 사진 공개로 새로운 피해 신고나 정보 제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잘못 보도된 분의 명예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라고 하며 오보 문제를 사진 공개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80]
또한, TBS에서는 D가의 차녀 N으로 사건과 무관계한 다른 사람의 얼굴 사진을 한때 보도한 적이 있어 사과했다.[81]
8. 결론 및 사회적 함의
아마가사키 사건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폭력과 착취,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늦은 대응이 빚어낸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도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주요 용의자 X는 혈연 관계가 아닌 사람들과 효고현 아마가사키시 남동부에서 유사 가족을 형성했다.[3] X는 이들을 통제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재산을 빼앗고, 가족을 해체하도록 강요했다. 많은 피해자들이 강압적인 폭력에 시달리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한당했으며, 범죄에 연루되도록 강요받았다.
2011년 11월, 감금되었던 여성이 탈출,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2012년 10월, 별개 사건으로 체포된 공범이 범행을 자백하면서 다른 사건들도 밝혀졌다. 그러나 X는 2012년 12월 효고현 경찰서 유치장에서 자살했다.
가가와현, 오키나와현 경찰의 합동 수사는 2014년 3월 해산되었고, X와 친족을 포함한 11명이 기소되었다. X가 사망했기 때문에 친족 10명에 대해서만 재판이 진행되었다.
이 사건은 기소된 사람이 17명에 달한다는 점에서 일본의 다른 대량 살인 사건과 구별된다. 이는 X가 "가족 납치" 동안 사소한 약점과 협박 전술을 이용하여 가족 전체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관점: 더불어민주당은 이 사건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 엄중하게 대처해야 하며,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위한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한,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교육 및 홍보 활동을 강화하고, 관련 법률 및 제도를 정비하여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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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さん死亡で再逮捕 傷害致死容疑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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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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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神戸新聞
2011-12-17
[41]
뉴스
Tシャツの両袖を首に巻いて…「どうやったら死ねるのか」と漏らす
http://sankei.jp.msn[...]
2012-12-12
[42]
뉴스
(主犯女X)容疑者が死んだ「理由」 贖罪意識は…
http://sankei.jp.msn[...]
201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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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自殺示唆22回、共有せず 兵庫県警「対応不適切でない」
http://sankei.jp.msn[...]
201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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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主犯女X)容疑者の遺体火葬 引き取り手なく神戸市が
http://sankei.jp.msn[...]
201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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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共謀じゃなく服従関係」と無罪主張、ドラム缶遺体事件の3被告
https://web.archive.[...]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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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発覚から1年 暴力、監禁、絶食…公判で明かされる元被告の家族支配
https://web.archive.[...]
201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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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虐待は過酷で無慈悲」ドラム缶遺体事件の長女ら3被告に懲役4~5年求刑、検察側が心神喪失否定
https://web.archive.[...]
201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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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息する以外、指示に従った」 尼崎変死、3被告に求刑
http://www.asahi.com[...]
201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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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娘2人に猶予判決、元夫には実刑 ドラム缶遺体事件で裁判員裁判(1/2ページ)
http://sankei.jp.msn[...]
201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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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連続変死事件、長女ら3被告に有罪判決
http://osaka.yomiuri[...]
201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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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被告が即日控訴
http://sankei.jp.msn[...]
201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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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さん傷害致死事件で次女が控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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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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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さん傷害致死事件で長女控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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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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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被告側、改めて無罪主張 尼崎変死・ドラム缶事件控訴審初公判 大阪高裁
https://web.archive.[...]
201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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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1審の実刑を破棄 控訴審は3被告とも猶予付き判決
https://www.sankei.c[...]
201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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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兵庫・尼崎の連続変死:○○さん事件 ドラム缶に遺体、2被告が上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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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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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2人の執行猶予判決確定へ 最高裁
https://www.sankei.c[...]
201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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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元被告次男 「企ていない」初公判で殺人罪を否認
https://www.sankei.c[...]
201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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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S被告に懲役17年の判決 尼崎連続変死事件
https://www.asahi.co[...]
201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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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殺人行為していない」(主犯女X)元被告の同居人、一部否認
https://www.sankei.c[...]
201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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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過酷な虐待」に懲役15年 ○○元被告の同居男に神戸地裁
https://www.sankei.c[...]
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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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殺そうとも死んでもいいとも思ったことない」(主犯女X)被告義妹ら3人初公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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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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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3被告に懲役21年 神戸地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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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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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尼崎連続変死 2被告が控訴
読売新聞
201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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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尼崎連続変死、(主犯女X)元被告の義妹の懲役21年確定
https://www.asahi.co[...]
201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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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主犯女X)元被告の長男が控訴取り下げ 9月に1審で懲役21年の判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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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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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尼崎連続変死 I被告 懲役21年が確定へ
読売新聞大阪本社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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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尼崎連続変死 ○○被告初公判 検察側「犯行の中心担当」
https://www.kobe-np.[...]
201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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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尼崎連続変死事件 K被告に無期懲役判決 神戸地裁
https://www.kobe-np.[...]
201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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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尼崎連続変死公判 ○○被告が控訴 無期懲役不服
https://www.kobe-np.[...]
201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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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主犯女X)元被告いとこ、二審も無期=尼崎連続変死-大阪高裁
https://www.jiji.com[...]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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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尼崎連続変死事件公判 K被告の無期確定へ 最高裁が上告棄却 尼崎連続変死
https://www.kobe-np.[...]
神戸新聞社
20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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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被告容疑の大半否認 尼崎連続変死事件、初公判
https://www.kobe-np.[...]
201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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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被告に懲役23年 尼崎連続変死で神戸地裁判決
201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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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N被告の刑確定へ
201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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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相談36回」事件化せず…香川県警、家族に謝罪 調査結果発表
http://sankei.jp.msn[...]
201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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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尼崎連続変死 相談9件「対応不適切」兵庫県警
http://osaka.yomiuri[...]
201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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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主犯女X)被告の写真取り違え 各メディアがおわび
http://sankei.jp.msn[...]
201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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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尼崎事件・顔写真取り違え検証】15媒体が掲載、放映
http://sankei.jp.msn[...]
201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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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主犯女X)容疑者の写真公開 「今回は例外」と兵庫県警
http://sankei.jp.msn[...]
201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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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TBSが○○被告の顔写真取り違え、謝罪
http://sankei.jp.msn[...]
201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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