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길
1. 개요
안길은 1907년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태어나 중국 길림성 훈춘현으로 이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여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했으며,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했다. 광복 후에는 북한에서 조선공산당 함경북도당 책임비서, 평양학원 원장, 조선로동당 중앙위원 등을 역임했으나 1947년 사망했다. 1968년 기념상이 세워졌으며, 소련의 정찰 사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위치 | 중국 저장성 후저우 시 |
|---|---|
| 면적 | 1886 제곱킬로미터 |
| 인구 (2020년) | 579,180 명 |
| 지역 번호 | 0572 |
| 하위 행정 구역 | 3개 가도, 8개 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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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파 -
김일성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통치했으며, 한국 전쟁을 일으키고 주체사상을 내세워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정치인이다. -
빨치산파 -
김영주 (1920년)
김영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김일성의 동생이자 김정일의 삼촌이며, 한때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김정일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났고, 7·4 남북 공동 성명 당시 북측 대표, 국가부주석 등을 역임했다. -
빨치산 -
최룡해
최룡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
빨치산 -
류락진
류락진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남로당, 통일혁명당, 구국전위 사건 등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으며, 서예가로 활동하다 2005년에 사망했다. -
동북항일연군 관련자 -
김일성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통치했으며, 한국 전쟁을 일으키고 주체사상을 내세워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정치인이다. -
동북항일연군 관련자 -
김책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 투쟁가이자 북한의 군인, 정치인인 김책은 만주에서 항일 투쟁 후 소련에서 김일성과 함께 활동했으며, 해방 후 북한 건국에 참여하여 부수상 겸 산업상, 한국 전쟁 전선사령관을 역임했고 사후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
2. 생애
안길은 1907년 함경북도 경원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길림성 훈춘현 경신향으로 이주하였으며, 용정의 대성중학교를 중퇴하였다. 중등 교육 수준의 지식을 가진 목사였으나, 이봉수에 발탁되어 항일 무장 투쟁에 참가하였다.
1927년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입당하였고, 1932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33년 금구구위원회 서기를 역임하고 훈춘현 유격대에 입대하였다. 1939년 항일 유격대인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3방면군 제14단 정치위원이었다. 1940년 10월 제1로군 제3방면군 참모장이 되었고, 같은 해 11월 말 소련으로 이동하였다. 1941년 2월 남야영 회의에서 제1로군 월경 부대를 제1지대로 편성하면서 안길은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1942년 제88여단 제1대대 정치위원을 거쳐 1944년 2월부터 제3대대 정치위원이었다.
1945년 광복 이후 소련군 푸가초프호를 타고 9월 19일 원산에 상륙, 조선공산당 함경북도당 책임비서를 역임했다. 1946년 7월 평양학원 원장, 8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 9월 보안간부훈련대대 참모장을 역임하였다.
1947년 12월 13일 40세로 병사했다. 1968년 안길의 기념상이 세워졌다.
2.1. 초기 생애 및 항일 무장 투쟁
1907년, 함경북도 경원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길림성훈춘현 경신향으로 이주하였다. 용정의 대성중학교를 중퇴하였다. 중등 교육 정도의 지식을 가진 목사였으나, 지하 공작을 하던 이봉수에 발탁되어 항일 무장 투쟁에 참가하였다.
1927년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입당, 1932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33년 금구구위원회 서기를 역임하고 훈춘현 유격대에 입대하였다.
2.2. 동북항일연군 활동
1939년 항일 유격대인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3방면군 제14단 정치위원이었다. 1940년 10월 제1로군 제3방면군 참모장이 되었고, 같은 해 11월 말 소련으로 이동하였다. 1941년 2월 남야영에서 열린 회의 결정에 따라 제1로군 월경 부대를 제1지대로 편성, 안길은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1942년 제88여단 제1대대 정치위원을 거쳐 1944년 2월부터 제3대대 정치위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