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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니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 미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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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니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 미노르는 로마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182년에 집정관을 지낸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수라 마메르티누스와 결혼했다. 콤모두스 황제 시대에 남편, 아들, 시동생, 동서가 처형당했으나, 그녀는 살아남아 루키우스 디디우스 마리누스와 재혼했다. 페르티낙스 재위 기간에는 그와 불륜 관계를 가졌으며, 212년 카라칼라의 명령으로 아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카시우스 디오는 그녀가 죽기 전 유언을 남겼다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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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니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 미노르
기본 정보
안니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 미노르의 조각상 (오스티아 안티카 고고학 박물관)
출생160년
출생 장소로마, 이탈리아
사망212년
배우자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수라 마메르티누스
아버지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어머니파우스티나 미노르
왕조네르바-안토니누스

2. 생애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는 로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녀는 182년에 집정관을 지낸 아프리카계 로마 정치인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수라 마메르티누스와 결혼하여 아들 페트로니우스 안토니누스를 두었다. 그녀의 가족은 180년 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사망했을 당시 겨울 숙영지에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그녀의 오빠 콤모두스는 190년과 192년 사이, 정치적 숙청을 단행하여 코르니피키아의 남편, 아들, 시댁 식구들을 처형했다. 코르니피키아는 이 숙청에서 살아남았고, 이후 여러 속주에서 프로쿠라토르를 지낸 기사 계급 출신의 루키우스 디디우스 마리누스와 재혼했다.

193년 페르티낙스 황제의 짧은 재위 기간 동안에는 그와의 스캔들에 연루되기도 했다. 결국 212년, 50대에 접어든 코르니피키아는 카라칼라 황제의 명령으로 아들과 함께 처형되었다.[1][2] 이로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파우스티나 미노르의 직계 자녀는 모두 생명을 잃게 되었다.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는 그녀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딸로서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을 기록으로 남겼다.

2. 1. 결혼과 가족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는 로마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이후 182년에 로마 집정관을 지낸 아프리카 출신 로마 정치인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수라 마메르티누스와 결혼했다. 173년 이후 어느 시점에 부부는 페트로니우스 안토니누스라는 아들을 두었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180년 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했을 당시 겨울 숙영지에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녀의 오빠 콤모두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고, 190년에서 192년 사이 어느 때에 코르니피키아의 남편, 아들, 시동생, 동서의 처형을 명령했다. 코르니피키아는 콤모두스의 정치적 숙청에서 살아남았고, 이후 여러 속주에서 프로쿠라토르를 지낸 강력한 기사 계급 출신의 로마 귀족 루키우스 디디우스 마리누스와 재혼했다. 그는 나중에 세금 징수관이자 첫 번째 친위 코호르트의 트리부누스가 되었다.

페르티낙스의 짧은 재위 기간(193년) 동안, 그녀는 황제와의 불륜 스캔들에 연루되기도 했다. 212년, 그녀가 50대였을 때 카라칼라 황제는 그녀와 그녀의 아들에 대한 사형을 명령하여[1][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파우스티나 미노르 사이에 남은 마지막 자녀를 제거하였다.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는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그녀의 마지막 말은 "불쌍하고 불행한 내 영혼, 부적절한 육신에 갇혔으니, 가서 자유로워져라, 그들에게 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딸임을 보여주어라!"였다. 그리고 그녀는 장신구를 벗고, 마음을 가다듬고, 정맥을 열고 죽었다.

2. 2. 콤모두스 시대의 시련

그녀의 오빠 콤모두스가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후, 190년에서 192년 사이 어느 시점에 코르니피키아의 남편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수라 마메르티누스, 아들 페트로니우스 안토니누스, 그리고 시댁 식구들의 처형을 명령했다. 이는 콤모두스 치하에서 벌어진 정치적 숙청의 일환이었으나, 코르니피키아는 이 비극적인 사건에서 살아남았다.

이후 코르니피키아는 로마의 강력한 기사 계급 출신 귀족인 루키우스 디디우스 마리누스와 재혼했다. 마리누스는 여러 속주에서 프로쿠라토르를 역임했으며, 세금 징수관과 초대 친위대 트리부누스를 지낸 인물이었다.

페르티낙스 황제의 짧은 재위 기간(193년) 동안, 그녀는 황제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결국 212년, 코르니피키아가 50대에 접어들었을 때, 황제 카라칼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소 파우스티나 사이의 마지막 생존 자녀였던 그녀와 그녀의 아들에 대한 사형을 명령했다.[1][2]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는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부적절한 육신에 갇혀있던 나의 가련하고, 불행한 영혼이 몸을 떠나, 자유로워져, 당신들에게 내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딸이었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하며 장신구를 벗어버렸고, 혈관을 갈라 사망하였다.

2. 3. 페르티낙스와의 관계

페르티낙스의 짧은 통치 기간(193년) 동안,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는 황제 페르티낙스와 스캔들에 연루되었다. 그녀는 오빠 콤모두스 황제가 190년에서 192년 사이에 남편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수라 마메르티누스 등을 처형한 정치적 숙청에서 살아남은 후였다. 이후 그녀는 기사 계급 출신의 루키우스 디디우스 마리누스와 재혼한 상태였다.

페르티낙스와의 스캔들 이후 시간이 흘러 212년, 그녀가 50대였을 때, 황제 카라칼라는 그녀와 그녀의 아들의 사형을 명령했다.[1] 이로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파우스티나 미노르의 마지막 생존 자녀가 제거되었다.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는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그녀의 마지막 말은 "불쌍하고 불행한 내 영혼, 부적절한 육신에 갇혔으니, 가서 자유로워져라, 그들에게 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딸임을 보여주어라!"였다. 그리고 그녀는 장신구를 벗고, 마음을 가다듬고, 정맥을 열고 죽었다.

2. 4. 카라칼라 시대의 죽음

페르티낙스 황제의 짧은 재위 기간(193년) 동안, 코르니피키아는 황제와의 불륜 스캔들에 연루되기도 했다. 이후 212년, 그녀가 50대였을 때 카라칼라 황제는 그녀와 그녀의 아들에 대한 사형 명령을 내렸다.[1] 이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파우스티나 미노르 사이에 남아있던 마지막 자녀를 제거하려는 의도였다.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는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그녀의 마지막 말은 '불쌍하고 불행한 내 영혼, 부적절한 육신에 갇혔으니, 가서 자유로워져라, 그들에게 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딸임을 보여주어라!'였다. 그리고 그녀는 장신구를 벗고, 마음을 가다듬고, 정맥을 열고 죽었다.

참조

[1] 서적 Caracalla, a Military Biography Pen & Sword Books Ltd. 2017
[2] 서적 Caracalla, a Military Biography Pen & Sword Books Ltd.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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