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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필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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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티필로스는 기원전 322년 라미아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이끈 장군이다. 알렉산더 3세의 죽음 이후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도시들이 마케도니아의 지배에 반기를 들면서 라미아 전쟁이 발발했다. 안티필로스는 레오스테네스의 뒤를 이어 연합군을 지휘했으며, 테살리아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크란논 전투에서 마케도니아 군에게 패배했다. 이후 안티파트로스의 외교 전략으로 동맹이 와해되면서 전쟁은 마케도니아의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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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필로스

2. 라미아 전쟁의 전개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3세의 사망을 계기로 아테나이 등 그리스 도시들이 마케도니아 왕국의 지배에 맞서 라미아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스 연합군의 초기 총사령관은 아테나이 장군 레오스테네스였으나, 그는 기원전 322년 라미아 공성전 중 전사하였다.[6] 후임으로는 장군으로서 능력이 뛰어나고 주전파였던 안티필로스가 임명되었다.[7][8]

2. 1. 초기 전투: 레오스테네스의 활약과 죽음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3세가 사망하자, 아테나이를 비롯한 그리스 도시들은 마케도니아 왕국의 지배에 반발하여 라미아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아테나이 장군 레오스테네스는 당시 그리스를 통치하던 마케도니아 장군 안티파트로스와 맞서 싸워 그를 테살리아라미아에 몰아넣고 포위했다. 레오스테네스는 맹렬한 공격으로 라미아를 거의 함락시킬 뻔했으나[6], 기원전 322년 공성전 도중 안타깝게 전사했다. 뛰어난 장군이자 강경파였던 안티필로스가 레오스테네스의 뒤를 이어 총사령관직을 맡게 되었다.[7][8]

이후 안티파트로스를 돕기 위해 온 레온나토스의 군대를 메논이 이끄는 테살리아 기병대가 격파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안티파트로스는 포위된 라미아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레온나토스의 군대를 흡수한 뒤 라미아에서 물러났다. 한편, 안티필로스는 테살리아에 머물며 적의 동태를 살폈다.

2. 2. 테살리아 전투: 레온나토스의 패배

기원전 322년 레오스테네스가 전사하자, 장군으로 우수하며 주전파였던 안티필로스가 그의 후임이 되었다.[7][8] 이후 라미아에 포위된 안티파트로스를 구원하기 위해 레온나토스가 원군을 이끌고 왔다. 그러나 테살리아에서 메논이 이끄는 그리스 연합군 기병대가 레온나토스의 군대를 격파하고 그를 전사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편, 안티파트로스는 라미아에서 탈출에 성공하여 레온나토스의 남은 군대를 흡수하고 후퇴하였다. 안티필로스는 테살리아에 머물며 적의 동태를 살폈다.

2. 3. 크란논 전투: 그리스 연합군의 패배

안티파트로스레온나토스 군을 흡수하고 라미아에서 물러난 후, 다시 그리스 연합군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이전 전투의 승리로 인해 마케도니아 군을 얕보던 그리스 연합군 중 일부는 이미 각자의 도시로 해산하여 돌아간 상태였고, 수적으로 크게 불리한 상황에서 마케도니아 군과 맞서야 했다. 당시 그리스 연합군은 보병 25,000명과 기병 3,500기였던 반면, 마케도니아 군은 보병 40,000명, 기병 5,000기로 병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양군은 크란논에서 격돌하였다. 기병 간의 전투에서는 그리스 연합군의 테살리아 기병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정예 병력으로서 우세를 보였다. 그러나 보병 팔랑크스 간의 전투에서는 수적으로 월등한 마케도니아 군이 그리스 연합군 팔랑크스를 압도하여 후퇴시켰다. 이 기세에 밀려 그리스 연합군 기병도 함께 퇴각하면서 결국 그리스 연합군은 전투에서 패배했다. 전투 다음 날, 안티필로스와 메논은 추가 지원군을 기다려 전투를 계속할지, 아니면 강화를 제의할지를 논의한 끝에 강화를 결정했다.[9]

3. 전쟁의 결과 및 영향

라미아 전쟁은 결국 마케도니아의 승리로 끝났다. 크란논 전투 패배 이후, 안티파트로스의 외교 전략으로 인해 반 마케도니아 동맹은 와해되었고, 아테네는 고립되었다.[10] 이는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도시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

3. 1. 안티파트로스의 외교 전략과 동맹 와해

크란논 전투에서 패배한 후 안티필로스와 메논은 강화를 결정했다.[9] 그러나 안티파트로스는 전쟁에는 서툴렀지만 노회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그리스 연합 전체와의 포괄적인 강화 조약을 거부하고, 각 도시와 개별적으로 강화 협상을 진행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특히 먼저 강화를 맺는 도시에게는 더 관대한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에, 반 마케도니아 동맹의 도시들은 빠짐없이 마케도니아와 강화를 하게 되었다. 이 전략은 효과를 거두어 동맹은 결국 와해되었고, 아테네는 동맹 도시들로부터 버림받은 꼴이 되었다.[10] 그 결과 라미아 전쟁은 마케도니아의 승리로 끝났다.

4. 주요 인물

라미아 전쟁에는 여러 주요 인물들이 관여했다.

인물소속 및 주요 역할
그리스 연합군
안티필로스아테나이의 장군, 레오스테네스의 뒤를 이은 연합군 총사령관
레오스테네스아테나이의 장군, 연합군의 초대 총사령관. 라미아 공성전 중 전사.
메논테살리아의 지도자, 그리스 연합군 기병 지휘관. 레온나토스 군대 격파에 기여.
마케도니아 왕국
안티파트로스마케도니아의 장군, 그리스 지역 통치자. 라미아에서 포위되었으나 탈출.
레온나토스마케도니아의 장군. 안티파트로스를 구원하려 했으나 전사.
알렉산더 3세마케도니아의 왕. 그의 죽음이 라미아 전쟁 발발의 계기가 됨.


4. 1. 그리스 연합군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3세가 사망하자, 아테나이를 비롯한 그리스 도시들은 마케도니아 왕국의 지배에 맞서 라미아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는 아테나이의 장군 레오스테네스가 임명되었다. 그는 마케도니아의 장군 안티파트로스와 싸워 그를 테살리아라미아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그리스 연합군은 라미아를 함락시키기 위해 맹공을 퍼부었으나[6], 기원전 322년 공성전 도중 레오스테네스가 전사하고 말았다. 그의 뒤를 이어 장군으로서 능력이 뛰어나고 전쟁 지속을 주장했던 안티필로스가 새로운 총사령관이 되었다.[7][8]

이후 안티파트로스를 돕기 위해 온 레온나토스의 군대를 테살리아의 메논이 이끄는 기병 부대가 격파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안티파트로스는 라미아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레온나토스의 남은 군대를 흡수한 뒤 라미아에서 물러났다. 한편, 안티필로스는 테살리아에 머물며 적의 움직임을 살폈다.

4. 2. 마케도니아 군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3세가 사망하자, 아테나이를 비롯한 그리스 도시들은 마케도니아 왕국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라미아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그리스 지역을 통치하던 마케도니아의 노련한 장군 안티파트로스는 그리스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테살리아라미아에 포위되었다.[6] 그리스 연합군은 라미아를 함락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나, 기원전 322년 공성전 도중 연합군 사령관 레오스테네스가 전사하면서 전황이 바뀌었다. 레오스테네스의 후임으로는 안티필로스가 임명되었다.[7][8]

한편, 안티파트로스를 구원하기 위해 레온나토스가 원군을 이끌고 왔으나, 테살리아에서 메논이 이끄는 그리스 기병대에게 패배하고 전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티파트로스는 이 혼란을 틈타 라미아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레온나토스가 이끌고 온 군대를 흡수하여 전력을 보강한 뒤 라미아에서 물러났다.

참조

[1] 서적 디오도로스, XVIII. 13
[2] 서적 ibid, XVIII. 15
[3] 서적 プルタルコス, 「フォキオン」, 24
[4] 서적 디오도로스, XVIII. 17
[5] 서적 ibid, XVIII. 17
[6] 서적 디오도로스, XVIII 13
[7] 서적 ibid, XVIII 15
[8] 서적 플루타르코스, “포키온” 24
[9] 서적 디오도로스, XVIII 17
[10] 서적 ibid, XVIII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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