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티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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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드워드 B. 티치너는 1869년에 태어나 1927년에 사망한 미국의 심리학자로, 빌헬름 분트의 구조주의 심리학을 미국에 도입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고전학을 전공하고,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분트에게 심리학을 배운 후 코넬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구조주의 심리학을 발전시켰다. 티치너는 의식의 구성 요소를 분석하기 위해 내성법을 사용했으며, 감각의 특징을 연구했다. 그는 '공감'이라는 용어를 영어로 처음 사용했으며, 실험 심리학회 창설에 기여했다. 티치너의 구조주의는 사후에 쇠퇴했지만, 그의 제자들을 통해 심리학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에드워드 티치너는 서식스 명문가 출신 어머니와 서기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고 가세가 기울어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으나, 할아버지의 도움과 장학금 등으로 말번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옥스퍼드에서 고전학과 생물학, 생리학을 공부하며 빌헬름 분트의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분트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892년 미국 코넬 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구조주의 심리학을 발전시켰다. 1894년 소피 베드로 켈로그와 결혼하여 네 자녀를 두었으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어머니를 평생 부양했다.[2]
(내용 없음 - 하위 섹션에서 상세히 다룸)
2. 생애
2. 1. 교육 및 초기 생애
에드워드 티치너는 앨리스 필드 하빈과 존 티치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1869년 도피 결혼을 했고, 이로 인해 어머니는 서식스 명문가에서 의절당했다. 아버지 존 티치너는 서기 또는 회계 관련 직책을 여러 번 맡았으나, 1879년 결핵으로 사망했다. 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가족에게는 딸 넷과 아들 하나, 총 다섯 명의 자녀가 있었으며, 이 시기 동안 최소 열 번 이상 이사를 다녔다. 티치너는 9살 때 아버지 쪽 조부모와 두 이모와 함께 살도록 보내졌다. 그의 이름을 딴 할아버지는 성공한 변호사이자 투자자였고, 치체스터의 전 시장이기도 했다. 할아버지 덕분에 티치너는 처음에는 개인 교습을 받았고, 이후에는 문법 학교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1881년 할아버지의 투자가 실패했고, 몇 달 후 사망하면서 집안의 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후 티치너의 교육은 장학금, 유급 고용, 그리고 기업가적 활동 등을 통해 지원되었다.
티치너는 더 프레벤달 학교와 말번 칼리지를 다녔으며, 1885년부터 1890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브래스노즈 칼리지)에 다녔다. 그는 1889년 고전학에서 희귀한 '더블 퍼스트'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의 관심사는 생물학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옥스퍼드 재학 시절 티치너는 빌헬름 분트의 저서를 처음 읽기 시작했고, 분트의 저서 《생리 심리학 원리》 제3판 제1권을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했다. 그는 1890년 옥스퍼드에서 1년을 더 보내며 생리학자 존 버든-샌더슨과 함께 과학적 방법론을 배웠다.
1890년 가을, 티치너는 분트와 함께 공부하기 위해 독일 라이프치히로 갔다. 그는 1892년 양안 시력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같은 해 여름, 그는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와 버든-샌더슨과 함께 옥스퍼드 서머 스쿨에서 가르쳤다.
1892년 가을, 티치너는 코넬 대학교의 세이지 철학 학교(Sage School of Philosophy)에 비정년직 강사로 합류하여 철학과 심리학을 가르쳤다. 그는 심리학 연구실을 개발하고 편집 직책을 얻었으며, 1895년에는 종신 재직권, 정교수직, 그리고 세이지 학교로부터의 독립을 얻었다. 그는 코넬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분트의 사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구조주의 형태로 가르쳤다.
2. 2. 개인적인 삶
티치너는 1894년 메인 출신의 공립학교 교사인 소피 베드로 켈로그와 결혼했다. 그들은 네 명의 자녀(딸 셋, 아들 하나)를 두었다. 티치너는 코넬 대학교에 자리를 잡은 후 남은 생애 동안 어머니를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어머니와 여동생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했으며, 여동생들은 고아원에서 시간을 보낸 후 가정부로 일했다.[2]
3. 주요 사상
3. 1. 구조주의 심리학
티치너의 정신 작용 방식에 대한 생각은 분트의 의지주의 이론과 그의 연합 및 통각(의식 요소의 수동적 및 능동적 조합) 개념에 큰 영향을 받았다. 티치너는 화학자가 화학 물질을 구성 요소로 분해하는 방식, 예를 들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나누는 것처럼, 정신의 구조를 기본 요소로 분류하고자 했다. 그에게 있어 감각과 사고는 마치 화학에서의 수소와 산소처럼 정신의 기본 구조였다. 즉, 수소와 산소가 화학 화합물의 구조이듯, 감각과 사고는 마음의 구조라고 생각했다. 티치너에 따르면[3], 감각은 강도, 질, 지속 시간, 범위라는 네 가지 뚜렷한 특성을 가졌다. 이 특성들은 각각 자극의 해당 특성과 관련이 있었지만, 어떤 자극은 감각의 특정 측면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는 또한 특정 유형의 감각을 구분했는데, 예를 들어 청각 감각을 "음조"와 "소음"으로 나누었다.[4] 티치너는 아이디어와 지각이 감각들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으며, "관념적 유형"이란 아이디어가 기반하는 감각의 종류(예: 소리, 시각, 말, 글자 등)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5]
티치너는 마음의 기본 구성 요소를 정의하고 분류할 수 있다면, 정신 과정과 더 높은 수준의 사고 구조를 밝혀낼 수 있다고 믿었다. 마음의 각 요소가 무엇인지, 이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티치너가 마음의 구조를 탐구하기 위해 사용한 추론의 핵심이었다.
3. 2. 내성법
의식의 다양한 구성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티치너가 사용한 주요 도구는 내성법이었다.[6] 이는 분트가 사용한 내성법과는 달리, 티치너는 내성적 분석 보고에 대해 매우 엄격한 지침을 적용했다. 예를 들어, 피험자에게 연필과 같은 물체를 제시하고 그 특징(색상, 길이 등)을 보고하도록 했다. 이때 피험자는 객체의 이름('연필')을 말해서는 안 되었는데, 이는 경험하는 원시 데이터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티치너는 이러한 오류를 '자극 오류'라고 불렀다.
티치너는 자신의 저서 "실험 심리학: 실험실 실습 매뉴얼"에서 내성법의 절차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이 매뉴얼이 모든 실험 심리학을 포괄하기를 의도했지만, 실제로는 내성법에 초점을 맞추었다. 티치너는 내성법 외에는 유효한 심리적 실험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학생들을 위한 지침" 섹션에서 "심리적 실험은 표준 조건 하에서 이루어진 내성 또는 일련의 내성으로 구성된다"고 정의했다.[7]
이 매뉴얼은 학생들에게 착시, 베버의 법칙, 시각적 대비, 잔상, 청각 및 후각 감각, 공간 지각, 아이디어 및 아이디어 간 연관성에 대한 실험 절차를 자세히 안내했다. 또한 실험 중 적절한 행동 지침과 심리적 개념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도 포함했다. 티치너는 심리적 현상도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연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정신 현상의 측정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발전시킨 구스타프 페히너의 연구에 큰 영향을 받았다.[8]
대부분의 실험은 '관찰자'(''O'')와 '실험자'(''E'')로 역할이 나뉜 두 명의 훈련된 연구자가 함께 수행했다. 실험자는 실험을 준비하고 관찰자가 수행한 내성 과정을 기록했다. 첫 실험 후에는 역할을 바꾸어 실험을 반복했다. 티치너는 이 과정에서 두 연구자 간의 조화와 의사소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데, 관찰자의 건강 상태나 감정 상태가 실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주의 심리학에서 사용된 내성법과 같은 방법들은 이후 새로운 접근 방식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9]
3. 3. 주의 (Attention)
에드워드 B. 티치너는 주의에 대한 7가지 기본 법칙을 공식화했다. 그중 네 번째 법칙인 선행 진입의 법칙(law of prior entry영어)은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대상보다 더 빨리 의식에 나타난다"고 가정한다. (Titchener, 1908, p. 251) 선행 진입의 법칙은 지난 세기 동안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이 법칙의 진실성에 대한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최근까지 주의가 지각 수준에서 작동한다는 강력한 증거를 생성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주의를 기울인 자극의 지각 속도를 연구한 행동 연구는 선행 진입의 법칙이 사실임을 시사한다. 최근의 뇌 영상 연구는 주의가 지각적 뇌 활성화를 가속화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4. 영향 및 유산
티치너는 카리스마 넘치고 강력한 연설가였으며, 그의 구조주의는 그가 활동하는 동안 번성했으나 그의 사후에는 지속되지 못했다.[12] 그는 분트의 구조주의를 일부 수정하여 미국에 도입했으며, 의식의 기본 요소를 식별하는 데 집중했다.[13] 또한 1909년 독일어 단어 Einfühlungsvermögende을 번역하여 영어 단어 '공감(empathy)'을 만들었다는 점으로도 기억된다.[14]
심리학 역사에서 티치너의 영향력은 부분적으로 그의 제자들을 통해 이어졌다. 에드윈 보링은 그의 저서 ''실험 심리학의 역사''를 통해 티치너의 업적을 알리는 데 기여했으며,[15][16] 또 다른 제자인 체베스 웨스트 페키는 정신적 심상과 시각적 지각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페키 효과를 발견하여 티치너 연구실의 명성을 높였다.[17] 보링의 기록에 따르면 티치너는 21명의 여성을 포함하여 총 56명의 박사 과정 학생을 지도했다.[2]
티치너는 하버드 대학교, 클라크, 위스콘신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심리학회의 창립 멤버였다. 그는 퀼페의 심리학 개요 및 기타 작품을 번역했고, 1894년 ''마인드''의 미국 편집자, 1895년 ''아메리칸 저널 오브 사이콜로지''의 부편집자가 되었으며,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1904년에는 '실험주의자(Experimentalists영어)'라는 그룹을 창설했는데,[18] 이 그룹은 오늘날 '실험 심리학회(Society of Experimental Psychologists영어)'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1906년 미국 철학회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19] 티치너의 뇌는 사후 코넬 대학교의 와일더 뇌 컬렉션에 기증되었다.
4. 1. 구조주의의 쇠퇴

티치너는 카리스마 넘치고 강력한 연설가였다. 그러나 그의 구조주의는 그가 살아있고 옹호하는 동안 번성했지만, 그의 사후에는 살아남지 못했다. 티치너에 대한 몇몇 현대적 고찰은 그의 심리학의 좁은 범위와 그가 용납할 수 있다고 여긴 엄격하고 제한된 방법론을, 티치너의 사후 구조주의 몰락의 주요 설명으로 간주한다.[12] 그 모든 것은 티치너의 정확하고 신중한 지시에 얽매여 있었고, 그가 없이는 이 분야가 흔들렸다. 구조주의는 분트의 의지주의와 함께 효과적으로 도전받고 개선되었지만, 오늘날 많은 심리학 학파에 영향을 미쳤다.
티치너는 분트의 구조주의 심리학의 일부를 약간의 수정을 거쳐 미국에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빌헬름 분트가 의식 요소 간의 관계를 강조한 반면, 티치너는 기본 요소 자체를 식별하는 데 집중했다. 그의 교과서 ''심리학 개요'' (1896)에서 티치너는 44,000개 이상의 의식 경험의 기본 자질 목록을 제시했다.[13]
티치너는 또한 1909년 독일어 단어 "Einfühlungsvermögende"을 번역하여 영어 단어 "공감"을 만들었다는 점으로 기억된다. 이는 주로 테오도르 립스가 19세기 말에 탐구한 새로운 현상이었다. "Einfühlungsvermögende"은 나중에 "Empathiede"로 다시 번역되었으며, 독일어에서는 여전히 그 방식으로 사용된다. 티치너는 "공감"이라는 용어를 개인적인 방식으로 사용했으며, 내성이라는 그의 방법론적 사용과 엄격하게 얽혀 있으며, 최소한 세 가지 구별 가능한 현상을 지칭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14]
심리학 역사에서 티치너의 영향은 교실에서 가르쳐지는 바와 같이 부분적으로 그의 제자인 에드윈 보링의 작품이었다. 보링의 실험 연구는 대체로 별로 주목할 만한 것이 없었지만, 그의 저서 ''실험 심리학의 역사''는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으며,[15] 결과적으로, 그의 스승인 에드워드 티치너를 포함한 다양한 심리학자들에 대한 묘사도 그러했다. 보링이 티치너의 기여를 자세하게 설명한 분량(동시대의 휴고 뮌스터베르크는 보링의 관심의 약 10분의 1 정도만 받았다)은 오늘날 심리학 역사에서 티치너에게 부여된 영향력이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16] 보링은 티치너가 21명의 여성을 포함하여 56명의 박사 과정 학생을 지도했다고 기록했다. 다른 두 명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정식으로 졸업하지 못했다.[2]
티치너의 연구실에 주목을 가져온 또 다른 제자는 1910년 "바나나 실험"을 수행한 미국의 심리학자 체베스 웨스트 페키(1874–1940)였다. 이 실험은 정신적 심상과 시각적 지각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페키 효과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 페키의 연구는 "심상에 관한 문헌에서 일종의 고전적이고 신화적인 지위를 획득했다."[17]
티치너 교수는 하버드 대학교, 클라크 대학교,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국 심리학회의 창립 멤버가 되었고, 오스왈드 퀼페의 심리학 개요 및 기타 작품을 번역했으며, 1894년 ''마인드''의 미국 편집자, 1895년 ''아메리칸 저널 오브 사이콜로지''의 부편집자가 되었고,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1904년 그는 "실험주의자"라는 그룹을 창설했으며,[18] 이 그룹은 오늘날 "실험 심리학회"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1906년 미국 철학회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19] 티치너의 뇌는 코넬 대학교의 와일더 뇌 컬렉션에 기증되었다.
4. 2. 심리학 발전에 대한 기여
분트의 의지주의 이론과 그의 연합 및 통각 개념은 티치너의 정신 작용 방식에 대한 생각에 큰 영향을 주었다.[3] 티치너는 화학자가 화학 물질을 기본 요소(예: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것처럼, 정신의 구조를 기본 요소로 분류하고자 했다. 그에게 감각과 사고는 마치 화학에서의 수소와 산소처럼 마음의 기본 구조였다. 티치너는 감각에 강도, 질, 지속 시간, 범위라는 네 가지 뚜렷한 특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는 자극의 특성과 관련이 있지만, 모든 자극이 감각의 특정 측면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청각 감각을 '음조'와 '소음'으로 나누는 등 특정 감각 유형을 구별했다.[4] 아이디어와 지각은 감각으로 형성되며, '관념적 유형'은 아이디어가 기반하는 감각의 종류(소리, 시각 등)와 관련된다고 보았다.[5]티치너는 마음의 기본 구성 요소를 정의하고 분류하면, 정신 과정과 고차 사고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각 요소가 무엇인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왜 그렇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밝히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티치너는 카리스마 있는 연설가였지만, 그의 구조주의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번성했고 사후에는 지속되지 못했다. 현대의 일부 연구는 티치너 심리학의 좁은 범위와 그가 고집했던 엄격하고 제한적인 방법론이 구조주의 몰락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12] 구조주의는 티치너 개인의 지도력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그가 없이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구조주의가 분트의 의지주의와 함께 도전을 받고 개선되었지만, 오늘날 많은 심리학 학파에 영향을 미쳤다.
티치너는 분트의 구조주의를 일부 수정하여 미국에 도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분트가 의식 요소 간의 관계를 강조한 반면, 티치너는 기본 요소 자체를 식별하는 데 집중했다. 그의 교과서 『심리학 개요』(1896)에서는 44,000개 이상의 의식 경험 기본 자질 목록을 제시하기도 했다.[13]
또한 티치너는 1909년 독일어 단어 Einfühlungsvermögendeu을 영어 단어 '공감(empathy)'으로 번역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는 19세기 말 테오도르 립스가 주로 탐구했던 개념이다. 티치너는 '공감'이라는 용어를 자신의 내성법과 밀접하게 연관시켜 독자적인 방식으로 사용했으며, 이는 최소 세 가지 다른 현상을 지칭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14]
심리학사에서 티치너의 영향력은 그의 제자인 에드윈 보링의 저술에 의해 부분적으로 형성되었다. 보링의 실험 연구 자체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의 저서 『실험 심리학의 역사』는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고,[15] 이 책에서 티치너를 비롯한 여러 심리학자에 대한 묘사 역시 큰 영향을 주었다. 보링이 티치너에게 할애한 분량(동시대 휴고 뮌스터베르크의 약 10배)을 고려할 때, 오늘날 심리학사에서 티치너에게 부여된 영향력이 과장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16] 보링은 티치너가 21명의 여성을 포함하여 총 56명의 박사 과정 학생을 지도했다고 기록했다.[2]
티치너 연구실에 주목을 가져온 또 다른 제자는 미국의 심리학자 체베스 웨스트 페키(1874–1940)이다. 그는 1910년 '바나나 실험'을 수행하여 정신적 심상과 시각적 지각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페키 효과(Perky effecteng)를 발견했다. 페키의 연구는 이후 "심상에 관한 문헌에서 고전적이고 신화적인 지위"를 얻게 되었다.[17]
티치너는 하버드 대학교, 클라크, 위스콘신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국 심리학회의 창립 멤버였으며, 퀼페의 심리학 개요 등 여러 저작을 번역했다. 또한 1894년에는 『마인드』의 미국 편집자, 1895년에는 『아메리칸 저널 오브 사이콜로지』의 부편집자가 되었고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1904년에는 '실험주의자(Experimentalistseng)'라는 그룹을 창설했는데,[18] 이 그룹은 오늘날 '실험 심리학회(Society of Experimental Psychologistseng)'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1906년 미국 철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19] 티치너의 뇌는 사후 코넬 대학교의 와일더 뇌 컬렉션에 기증되었다.
4. 3. '공감' 개념의 도입
티치너는 1909년 독일어 단어 Einfühlungsvermögende을 번역하여 영어 단어 "공감(empathy영어)"을 만든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는 주로 테오도르 립스가 19세기 말에 탐구한 새로운 현상이었다. Einfühlungsvermögende은 나중에 Empathiede로 다시 번역되었으며, 독일어에서는 여전히 이 방식으로 사용된다. 티치너는 "공감"이라는 용어를 개인적인 방식으로 사용했으며, 이는 그의 방법론인 내성과 엄격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최소 세 가지 구별 가능한 현상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14]4. 4. 제자 양성
티치너는 총 56명의 박사 과정 학생을 지도했으며, 이 중 21명은 여성이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정식 졸업하지 못한 학생도 2명 있었다.[2]심리학 역사에서 티치너의 영향력은 부분적으로 그의 제자인 에드윈 보링의 저술 활동 덕분에 알려졌다. 보링의 실험 연구 자체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의 저서 ''실험 심리학의 역사''는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15] 이 책에서 보링은 스승 티치너의 업적을 상세히 다루었는데, 동시대의 다른 심리학자 휴고 뮌스터베르크에 비해 약 10배나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심리학 역사에서 티치너에게 부여된 중요성이 과장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기도 하다.[16]
티치너 연구실의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제자로는 미국의 심리학자 체베스 웨스트 페키(1874–1940)가 있다. 페키는 1910년 소위 "바나나 실험"을 수행하여 정신적 심상과 시각적 지각 사이의 연관성을 밝히는 페키 효과를 발견했다. 페키의 이 연구는 이후 "심상에 관한 문헌에서 일종의 고전적이고 신화적인 지위"를 획득한 것으로 평가받는다.[17]
5. 비판
(내용 없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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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lato.sta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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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earch.amphi[...]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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