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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외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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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른스트 외픽은 에스토니아 출신의 천문학자이다. 그는 백색 왜성의 밀도 계산, 혜성의 기원 이론 제시, 야르코프스키 효과 재발견, 달과 화성의 크레이터 수 예측 등 소행성, 혜성, 유성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다. 1932년에는 혜성이 명왕성 궤도 밖의 오르트 구름에서 기원한다는 이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외픽은 아머 천문대 소장을 역임했으며, J. 로렌스 스미스 메달, 영국 왕립 천문학회 금메달 등을 수상했다.

2. 생애

에른스트 외픽


레네-빌 현의 쿤다 출신으로, 탈린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대학에서 수학했다. 1916년 타슈켄트 천문학부 학부장이 되었고, 1921년부터 타르투 천문대에서 연구했다. (1930년부터 1934년까지는 하버드 대학교 천문대에 체류) 소련이 에스토니아를 점령하자 독일 함부르크로 피신했고, 이후 북아일랜드 아머로 옮겨 아머 천문대에서 일하며 1950년부터 1981년까지 천문대 소장을 역임했다. 1956년부터는 메릴랜드 대학교 객원 교수를 겸임했다. 1985년 북아일랜드 방고어에서 사망했다.[1]

주요 연구 분야는 소행성, 혜성, 유성, 행성 대기 등이다. 백색 왜성 밀도 계산(1915년), 오르트 구름 기원 혜성 이론 발표(1932년), 야르코프스키 효과 재발견, 크레이터를 통한 지구 운석 충돌 비율 계산, 화성 크레이터 수 예측 등의 업적이 있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1893-1923)

외픽은 당시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던 에스토니아 쿤다 (비르란트 현, 에스토니아 관구)에서 태어났다. 탈린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모스크바 대학교에 입학하여 소행성, 혜성, 유성과 같은 작은 천체의 연구를 전공했다. 1916년에 타슈켄트의 천문학부 학부장이 되었고, 1921년부터 (하버드 대학교 천문대에 체류한 1930년부터 1934년까지 제외하고) 타르투의 타르투 천문대에서 연구했다. 1923년 타르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 2. 천문학 연구 활동 (1916-1944)

1916년에 그는 시각 이중성 별의 밀도를 추정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백색 왜성 ο2 에리다니 B를 사용하여 밀도를 태양의 25,000배로 결정했지만, 그 결과는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1922년에는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를 추정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별이 회전하는 총 질량에 따라 달라지는 관측된 은하의 회전 속도와 단위 질량당 광도가 우리 은하와 같다는 가정에 기반한 새로운 천체물리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거리를 결정했다. 그는 거리가 450 kpc라고 결론 내렸다. 그의 결과는 당시의 다른 추정치(100~1000 kpc)와 잘 일치했고, 허블의 결과(275 kpc)보다 최근의 추정치(778 kpc)에 더 가까웠다. 그의 방법은 여전히 널리 사용된다.

1922년에 그는 우주 탐사선이 발견하기 훨씬 전에 화성에 있는 충돌구의 빈도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1932년 그는 태양계에서 혜성의 기원에 관한 이론을 제기했다. 그는 혜성이 명왕성 궤도 훨씬 바깥을 도는 구름에서 기원했다고 믿었다. 이 구름은 현재 오르트 구름 또는 그를 기려 외픽-오르트 구름으로 알려져 있다.

1931년 10월부터 1933년 7월 말까지 외픽, 할로 섀플리, 사무엘 L. 부스 로이드는 애리조나 유성 탐험대를 이끌었고, 약 22,000개의 유성을 감지했다. 그는 또한 유성 연구를 위한 로킹 카메라를 발명했다.

1951년에는 삼중 알파 과정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여, 적색 거성의 중심에서 헬륨-4탄소-12로 연소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 업적은 외픽의 논문이 영국과 미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에드윈 살페터의 동일한 주제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었기 때문에 종종 간과된다.

2. 3. 망명과 북아일랜드에서의 활동 (1944-1985)

1944년, 외픽은 진격해오는 붉은 군대에 대한 에스토니아인들의 공포심으로 인해 조국을 떠났다. 독일에서 난민으로 생활하면서 망명 중인 발트 대학의 에스토니아인 총장이 되었다. 그는 난민 수용소에서 생활했다. 1948년, 아르마에서 직책을 제안받았고, 미국에서 더 많은 보수를 제안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머물렀다. 1950년부터 1981년까지 아머 천문대 소장을 역임했다.[1] 1956년부터는 메릴랜드 대학교의 객원 교수도 역임했다.[1]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일반적으로 한 학기 동안 매년 방문했다. 항공 여행이 더 흔해짐에 따라 비행을 거부한 그는 아르마에서 미국으로 가는 것이 점차 더 어려워졌고, 결국 연례 행사를 중단했다. 1985년에 북아일랜드의 방고어에서 사망했다.[1]

2. 4. 사망

에른스트 율리우스 외픽은 1985년에 북아일랜드 방고어에서 사망했다.

3. 주요 연구 업적



외픽은 소행성, 혜성, 유성 분야와 행성 대기 등을 주로 연구했다. 1931년부터 1933년까지 할로 섀플리 등과 함께 애리조나 유성 탐험대를 이끌며 약 22,000개의 유성을 관측했고, 유성 연구를 위한 로킹 카메라를 발명하기도 했다.

그의 주요 연구 업적은 다음과 같다:


  • 백색 왜성의 밀도 계산 (1915): ο2 에리다니 B의 밀도를 태양의 25,000배로 계산했으나, 당시 과학적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 추정 (1922): 새로운 천체물리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거리를 450kpc로 추정했으며, 이는 당시 다른 추정치나 허블의 결과보다 최근 추정치에 더 가깝다.
  • 혜성의 기원 이론 (1932): 혜성이 명왕성 궤도 훨씬 바깥의 오르트 구름에서 기원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 야르콥스키 효과 재발견: 이반 오시포비치 야르콥스키가 발견한 이 효과가 태양계에서 유성체를 이동시키는 데 중요할 수 있음을 논의했다.
  • 달과 화성의 크레이터 수 예측: 우주 탐사선 발견 이전에 화성충돌구 빈도를 정확하게 예측했으며, 의 크레이터 개수로부터 지구로의 운석 충돌 비율을 계산했다.
  • 삼중 알파 과정 연구 (1951): 적색 거성 중심에서 헬륨-4탄소-12로 연소되는 과정을 설명했으나, 에드윈 살페터의 논문 발표와 겹쳐 주목받지 못했다.

3. 1. 백색왜성의 밀도 계산 (1915)

1916년, 외픽은 시각 이중성 별의 밀도를 추정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백색 왜성 ο2 에리다니 B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그 밀도가 태양의 25,000배에 달한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이러한 결과는 당시 과학적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3. 2.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 추정 (1922)

1922년, 외픽은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를 추정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별이 회전하는 총 질량에 따라 달라지는 관측된 은하의 회전 속도와 단위 질량당 광도가 우리 은하와 같다는 가정에 기반한 새로운 천체물리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거리를 결정했다. 그는 거리가 450kpc라고 결론 내렸다. 그의 결과는 당시의 다른 추정치(100kpc~1000kpc)와 잘 일치했고, 허블의 결과(275kpc)보다 최근의 추정치(778kpc)에 더 가까웠다. 그의 방법은 여전히 널리 사용된다.

3. 3. 혜성의 기원 이론 (1932)

1932년에 외픽은 태양계에서 혜성의 기원에 관한 이론을 제기했다. 그는 혜성이 명왕성 궤도 훨씬 바깥을 도는 구름에서 기원했다고 믿었다. 이 구름은 현재 오르트 구름 또는 그를 기려 외픽-오르트 구름으로 알려져 있다.

3. 4. 야르콥스키 효과 재발견

이반 오시포비치 야르콥스키가 발견한 야르콥스키 효과는 우주에서 회전하는 물체가 받는 일주기 가열이 작은 물체, 특히 유성체와 소행성의 궤도에 장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외픽은 1909년경 야르콥스키의 팜플렛을 읽고 수십 년 후, 야르콥스키 효과가 태양계에서 유성체를 이동시키는 데 중요할 수 있다고 논의했다.

3. 5. 달과 화성의 크레이터 수 예측

1922년에 그는 우주 탐사선이 발견하기 훨씬 전에 화성에 있는 충돌구의 빈도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는 의 크레이터 개수로부터 지구로의 운석 충돌 비율을 계산했고, 화성의 크레이터 수를 탐사선이 도달하기 전에 계산했다.

3. 6. 삼중 알파 과정 연구 (1951)

외픽은 1951년에 삼중 알파 과정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여, 적색 거성의 중심에서 헬륨-4탄소-12로 연소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 업적은 외픽의 논문이 영국과 미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에드윈 살페터의 동일한 주제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었기 때문에 종종 간과된다.

4. 수상 경력

상 이름기관수상 연도
J. 로렌스 스미스 메달미국 국립 과학원1960년[1]
프레데릭 C. 레너드 기념 메달유성학회1968년[1]
케플러 금메달미국 과학 진흥 협회 & 유성학회1972년[1]
영국 왕립 천문학회 금메달영국 왕립 천문학회1975년[1]
브루스 메달1976년[1]


5. 기타

오르트 구름은 때때로 "외픽-오르트 구름"이라고 불린다. 혜성 요격기의 혜성을 위한 광학 잠망경 이미저(OPIC) 장비는 유럽 우주국의 과학 임무에 대한 에스토니아의 첫 번째 기여를 기념하기 위해 에른스트 외픽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소행성 2099 외픽과 화성의 위성 포보스에 있는 외픽 크레이터 역시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1]

그는 원자 물리학자 우노 외픽의 아버지였다. 그의 손자 렘비트 외픽은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웨일스의 몽고메리셔에서 자유민주당 소속 영국 의회 국회의원을 지냈다.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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