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시어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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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엑셀시어 프로젝트는 1958년 미 공군이 고고도에서 비상 탈출 시 조종사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시작한 연구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다단계 낙하산 시스템을 개발하여 고고도에서 안정적인 하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조셉 키팅거 대위는 세 차례의 시험 낙하를 수행했으며, 1960년 엑셀시어 III에서 31,333m 상공에서 뛰어내려 자유 낙하 최고 기록을 세우며 성공적으로 착륙했다. 이 프로젝트는 고고도 탈출 기술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키팅거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하몬 트로피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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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시어 프로젝트 | |
---|---|
프로젝트 개요 | |
명칭 | 프로젝트 엑셀시어 |
영문 명칭 | Project Excelsior |
종류 | 미국 공군 낙하산 실험 프로젝트 |
기간 | 1959년–1960년 (3회 강하) |
장소 | 성층권, 뉴멕시코주 사막 상공 |
목적 | 고고도 낙하용 낙하산 테스트 |
수단 | 헬륨 기구, 개방형 곤돌라 (기압복 착용) |
참가자 | 조 키팅거 (미국 공군 대위) |
기록 (최종 강하, 1960년 8월 16일) | |
고도 | 19.47 마일 (31.38 킬로미터) |
속도 | 614 mph (988 km/h) |
지속 시간 | 13분 45초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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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950년대 제트기의 성능 향상으로 비행 고도와 속도가 높아지면서, 미 공군은 고고도 비상 탈출 시 조종사 안전 문제에 대해 우려했다. 인체 모형 실험 결과, 높은 고도에서 자유 낙하하는 인체는 분당 최대 200회까지 회전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11]
이 문제를 해결하고 고고도 탈출 시 안정적인 하강을 위한 낙하산 시스템 개발을 위해 1958년 엑셀시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오하이오주 라이트-패터슨 공군 기지의 프랜시스 뷰프레는 다단계 낙하산 시스템을 고안했다. 이 시스템은 고고도 회전 방지용 2m 크기의 안정화 낙하산과, 저고도 하강용 8.5m 크기의 주 낙하산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타이머와 고도계가 부착되어 적절한 고도에서 자동으로 낙하산이 펴지도록 설계되었다.[2]
낙하산 시험을 위해, 85000m3 용량과 61m 높이의 헬륨 기구를 제작하여 성층권까지 도달시킬 곤돌라를 매달았다. 1959년부터 1960년까지 총 3번의 시험 낙하가 있었다.
2. 1. 배경
1950년대 제트기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비행 고도와 속도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미 공군은 고고도에서 비상 탈출 시 조종사의 안전 문제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했다. 인체 모형을 이용한 실험 결과, 높은 고도에서 자유 낙하하는 인체는 분당 최대 200회까지 회전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11]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고고도 탈출 시 안정적인 하강을 위한 낙하산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1958년 엑셀시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오하이오주 라이트-패터슨 공군 기지의 기술 부사관 프랜시스 뷰프레는 다단계 낙하산 시스템을 고안했다. 이 시스템은 고고도에서의 회전을 방지하기 위한 2m 크기의 작은 안정화 낙하산과, 낮은 고도에서의 하강을 위한 8.5m 크기의 주 낙하산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타이머와 고도계가 부착되어 있어 적절한 고도에서 자동으로 낙하산이 펴지도록 설계되었다.[2]
낙하산 시험을 위해, 85000m3 용량과 61m 높이의 헬륨 기구를 제작하여 테스트 파일럿을 성층권까지 도달시킬 곤돌라를 매달았다.
2. 2. 시험 낙하
1959년 11월 16일에 실시된 첫 번째 시험(엑셀시어 I)에서 조셉 키팅거는 23300m 고도에서 뛰어내렸다.[3] 안정 낙하산이 너무 일찍 펴져 키팅어의 목을 감아 분당 120회전으로 회전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의식을 잃었으나, 3000m 고도에서 주 낙하산이 자동으로 펼쳐져 목숨을 구했다.3주 후인 1959년 12월 11일에 두 번째 시험(엑셀시어 II)이 진행되었다. 키팅거는 22800m 고도에서 뛰어내려 주 낙하산을 펼치기 전 17000m를 자유 낙하했다.[12][3]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시험(엑셀시어 III)은 1960년 8월 16일에 진행되었다. 상승 중 키팅거의 오른쪽 장갑에 압력 밀봉 파손이 발생하여, 극심한 저압으로 인해 손이 심한 고통을 받았다. 그는 시험 중단을 우려해 지상 승무원에게 알리지 않고, 오른손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상승하여 31333m 고도까지 올라갔다.[13][4] 이는 1시간 31분이 걸렸으며, 1957년 맨하이 프로젝트에서 데이비드 G. 시몬스 소령이 세운 이전 유인 기구 고도 기록 30942m를 경신했다.[5] 키팅거는 12분 동안 최고 고도에 머물면서 기구가 착륙 목표 지점으로 이동하기를 기다린 후 곤돌라에서 내려 강하를 시작했다.
작은 안정 낙하산이 성공적으로 펼쳐졌고 키팅거는 4분 36초 동안 낙하하여[13][4] 가장 긴 자유 낙하 세계 기록을 세웠다. 5330m 고도에서 주 낙하산을 펼치고 뉴멕시코 사막에 안전하게 착륙했으며, 전체 하강에는 13분 45초가 걸려 가장 높은 낙하산 점프 세계 기록을 세웠다.[14][7] 하강하는 동안 키팅어는 -70°C까지의 온도를 체험했고, 자유낙하 단계에서 그의 속력은 최대 시속 988km/h였다.[14]
엑셀시어 III 곤돌라 문 아래에는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발걸음입니다"라는 표지가 부착되어 있었다.
3. 실험 결과 및 영향
엑셀시어 프로젝트에서 키팅어는 높은 고도에서 비행사가 탈출하여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5]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키팅어에게 이 공로를 치하하여 하몬 트로피를 수여했다. 키팅어는 이외에도 수훈 비행 십자 훈장에 오크 잎 훈장을 받았고, J.J. 제프리스 상, A. 레오 스티븐스 낙하산 메달, 그리고 윙풋 라이터-댄-에어 소사이어티 공로상을 받았다.
키팅거의 엑셀시어 프로젝트는 고고도에서 탈출한 후 승무원이 안전하게 하강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5]
1950년대 제트기가 더 높고 빠르게 비행하면서, 미 공군은 고고도에서 탈출해야 하는 비행 승무원의 안전에 대해 점점 더 우려하게 되었다. Operation High Dive에서 모형 인형을 이용한 실험은 고고도에서 자유 낙하하는 인체가 분당 최대 200회전(초당 약 3.3회전)의 속도로 플랫 스핀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잠재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었다. 엑셀시어 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고고도 탈출 후 안전하고 통제된 하강을 가능하게 하는 낙하산 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해 1958년에 시작되었다.
키팅어는 세 번의 실험을 통해 최고 고도 낙하산 점프, 최장 자유 낙하 기록을 세웠다.
키팅어가 세운 최고 고도 낙하산 점프, 최장 자유 낙하 기록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2012년 10월 14일, 펠릭스 바움가르트너가 레드 불 스트라토스 프로젝트에서 키팅어의 기록을 경신했지만, 키팅어는 여전히 최장 드로그 낙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4. 조셉 키팅어
조셉 윌리엄 키팅어 2세(Joseph William Kittinger II, 1928년 7월 27일 ~ )는 미국의 공군 조종사이다.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태어나 플로리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미국 공군에 입대했다. 엑셀시어 프로젝트의 책임자이자 테스트 파일럿이었다.
키팅거는 고고도 기구 실험에 참여한 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A-26 및 F-4 조종사로 복무했다. 1972년에는 격추되어 포로가 되어 하노이 힐튼에 수감되기도 했다. 1978년 대령으로 전역한 후에는 마틴 마리에타에 입사했다.
1984년에는 기구를 이용한 단독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하는 등 기구 경기에서도 활약했다. 2007년부터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거주하며 항공 관련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컨설팅을 했다.
2008년에는 레드불 스트라토스 프로젝트의 자문으로 취임했으며,[10] 2012년 10월 14일, 이 프로젝트를 통해 펠릭스 바움가르트너가 키팅거가 보유하고 있던 고도 및 최고 낙하 속도 기록을 경신하게 되었다.
5. 비판 및 교훈
프로젝트 맨하이와 엑셀시어 프로젝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조지프 키팅어가 NASA에 제안한 두 가지 안전 관련 제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키팅어는 훗날 독일 방송국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이 제언들이 받아들여졌다면 아폴로 1호 화재와 챌린저호 폭발 사고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키팅어가 NASA에 제안한 두 가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6. 대중문화
일렉트로니카 그룹 보드 오브 캐나다는 엑셀시어 프로젝트에서 촬영된 영상을 [https://www.youtube.com/watch?v=lrBZeWjGjl8 〈Dayvan Cowboy〉]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에 삽입했다.
드라마 스킨스 두 번째 시즌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크리스의 장례식에 키팅어의 엑셀시어 3호 점프에 관한 이야기가 사용되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 프로듀서이고 아울 시티(Owl City)로 많이 알려진 아담 영(Adam Young)은 2016년 8월 Adam young Scores에 이 프로젝트를 주제로 [https://web.archive.org/web/20160822083556/http://www.ayoungscores.com/scores/project-excelsior/
참조
[1]
웹사이트
World Record Jump ! Red Bull Stratos
http://www.redbullst[...]
2012-10-17
[2]
웹사이트
Dressing for Altitude ! NASA
http://www.nasa.gov/[...]
NASA
2012
[3]
뉴스
Kittinger's long, lonely leap
2002-08-12
[4]
뉴스
"'Hero of Aviation' speaks about record-setting free fall"
2003-12-15
[5]
웹사이트
Space Men: They were the first to brave the unknown (Transcript)
https://www.pbs.org/[...]
PBS
2016-03-01
[6]
웹사이트
Speed Skydiving ! World Air Sports Federation
https://www.fai.org/[...]
2017-08-15
[7]
뉴스
Out of thin air His free fall from 32 km (20 mi) put NASA on firm footing
1998-08-18
[8]
뉴스
The Long, Lonely Leap
1960-12
[9]
뉴스
超音速」ダイビングに成功、史上最高の高度3万8000mから
https://jp.reuters.c[...]
ロイター
2012-10-15
[10]
웹사이트
ミッション
http://www.redbull.j[...]
[11]
문서
현재는 Wright-Patterson 공군기지
[12]
뉴스
Kittinger's long, lonely leap
2002-08-12
[13]
뉴스
"'Hero of Aviation' speaks about record-setting free fall"
2003-12-15
[14]
뉴스
Out of thin air His free fall from 32 km (20 mi) put NASA on firm footing
1998-08-18
[15]
뉴스
The Long, Lonely Leap
196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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