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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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백사 사건은 조조가 지인인 여백사의 가족을 살해한 사건으로, 여러 역사 기록과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다르게 묘사된다. 《위서》, 《세어》, 《잡기》 등 역사 기록에서는 조조가 여백사의 가족을 죽인 이유가 다르게 나타나며,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여백사의 가족을 오해로 몰살하고, 이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대사로 묘사되어 조조의 잔혹한 면모를 부각한다. 이 사건은 조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소설 속 묘사는 인물 조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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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백사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인물 정보 | |
| 이름 | 여백사 |
| 원어 이름 | 呂伯奢 |
| 시대 | 후한 말기 |
| 직업 | 조조의 지인 |
| 사망 | 190년 (추정) |
| 사인 | 조조에게 살해당함 (추정) |
| 상세 정보 | |
| 가족 관계 | 아들 (이름 미상) |
| 관련 인물 | 조조 |
| 등장 작품 | 삼국지연의 |
2. 역사적 기록
여백사 가족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위서(魏書)》, 《세어(世語)》, 《잡기(雜記)》의 세 가지 역사적 기록이 전해진다. 이 기록들은 조조가 여백사의 가족을 죽였다는 점은 공통적으로 다루지만, 사건의 동기와 과정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1][2][3]
2. 1. 《위서(魏書)》
조조는 동탁이 멸망할 것을 예견하고 동탁의 임명을 거부한 후 고향으로 도망쳤다. 그는 몇 명의 기병과 함께 여정을 떠나 성고현(현재 허난성 싱양시 일대)을 지나갔다. 그곳에는 조조의 지인인 여백사가 살고 있었다. 여백사는 당시 집에 없었고, 그의 아들들과 다른 손님들이 조조의 말과 소지품을 빼앗으려 하자 조조는 그들 중 몇 명을 죽였다.[1]2. 2. 《세어(世語)》
조조는 여백사의 집을 지나갔다. 여백사는 외출 중이었지만 그의 다섯 아들이 집에 있었다. 그들은 조조를 손님처럼 환영하고 그를 위해 연회를 열었다. 조조는 당시 동탁에게 쫓기는 신세였고, 그들이 그를 해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의심했다. 그는 그날 밤 여덟 명을 죽이고 도망쳤다.[2]2. 3. 《잡기(雜記)》
조조는 조리 도구(아마도 칼) 소리를 듣고 여백사의 가족이 자신을 해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의심하여 그날 밤 그들을 죽였다. 그 후 가슴 아프게 "차라리 내가 남을 배신할지언정 남이 나를 배신하게 할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후회했다.[3]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14세기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여백사 사건이 더욱 극적으로 묘사된다. 이 소설에서 여백사는 조조의 아버지 조숭의 의형제이기 때문에 조조는 그를 삼촌으로 여긴다.[4] 조조는 동탁 암살에 실패하고 낙양에서 도망쳐 고향으로 가는 길에 여백사의 집에 들르게 된다.[4]
여백사는 조조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연회를 위해 물품을 사러 마을로 간다. 여백사는 하인들에게 손님을 잘 대접하라고 지시했지만, 조조는 칼 가는 소리와 하인들의 대화를 오해하여 여백사 일가를 몰살하는 실수를 저지른다.[4] 이후 돌아온 여백사마저 죽이고, "차라리 내가 세상을 배신할지언정, 세상이 나를 배신하게 하지는 않겠다"라는 말을 남긴다.[4]
3. 1. 줄거리 요약
조조는 동탁 암살에 실패하고 낙양에서 도망쳐 고향으로 가던 길에 아버지 조숭의 의형제인 여백사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4] 여백사는 조조를 환대하며 연회를 준비하기 위해 마을로 떠났고, 그 사이 조조는 하인들이 칼을 가는 소리와 "먼저 죽일지 아니면 묶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엿듣는다.[4] 조조는 여백사가 자신을 해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오해하여, 진궁과 함께 여백사의 가족들을 몰살한다.[4]나중에 하인들이 연회를 위해 돼지를 잡으려던 것이었음을 알게 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4] 조조와 진궁은 즉시 짐을 챙겨 여백사의 집을 떠난다.[4] 돌아오는 길에 여백사를 만난 조조는 그에게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묻고, 여백사가 뒤돌아보는 순간 그를 죽인다.[4]
이에 진궁이 "방금 당신은 실수였지만 지금은 고의가 아니오?"라고 묻자, 조조는 "만약 여백사가 집에 돌아와 가족들이 모두 죽은 것을 본다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겠소? 군사를 이끌고 추격해 오면 우리는 큰 곤경에 처할 것이오."라고 답한다.[4] 진궁이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큰 죄입니다."라고 하자 조조는 "나는 차라리 세상이 나를 배신하게 둘지언정, 내가 세상을 배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寧教我負天下人,休教天下人負我)라고 말한다.[4] 진궁은 아무 말 없이 그날 밤 조조를 떠난다.[4]
3. 2. 진궁(陳宮)과의 관계
《삼국지연의》에서 여백사는 조조의 아버지 조숭의 의형제이므로 조조는 그를 삼촌으로 여긴다. 조조와 진궁은 조조가 동탁 암살에 실패한 후 낙양에서 도망쳐 고향으로 가는 길에 여백사의 집을 지나게 된다. 여백사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연회를 위해 더 많은 물품을 사러 마을로 가는 동안 그의 가족과 하인들에게 손님들을 잘 대접하라고 지시한다.[4]여백사의 집에 머무는 동안 조조는 칼을 가는 소리와 여백사의 하인들이 "먼저 죽일지 아니면 묶을지"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다. 그는 여백사가 실제로는 그를 해칠 음모를 꾸미면서 그에게 호의를 베푸는 척한다고 의심한다. 그와 진궁은 밖으로 뛰쳐나가 여백사의 집안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 나중에 그들은 하인들이 실제로 연회를 위해 돼지를 잡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4]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기에, 조조와 진궁은 즉시 짐을 챙겨 집을 떠난다. 가는 길에 그들은 여백사를 만나는데, 그는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백사가 그들에게 머물라고 하자 조조는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묻는다. 여백사가 뒤돌아보자 조조는 뒤에서 그를 찔러 죽인다. 충격을 받은 진궁은 조조에게 "방금 당신은 그 사람들을 죽일 때 정말 실수했소. 하지만 지금은요?"라고 묻는다. 조조는 "만약 여백사가 집에 돌아와 그의 가족들이 모두 죽은 것을 본다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둘 것 같소? 만약 그가 군사를 이끌고 우리를 추격해 온다면 우리는 큰 곤경에 처할 것이오."라고 대답한다. 진궁은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큰 죄입니다."라고 말한다. 조조는 "나는 차라리 세상이 나를 배신하게 둘지언정, 내가 세상을 배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寧教我負天下人,休教天下人負我)라고 말한다. 진궁은 대답하지 않고 그날 밤 조조를 떠난다.[4]
4. 분석
역사 기록과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여백사 사건에 대한 묘사는 차이를 보인다. 나관중은 소설에서 조조가 여백사의 가족을 죽인 후 한 말을 "다른 사람들"(人)에서 "천하 사람들"(天下人)로 바꾸어, 조조의 냉혹함을 강조했다. 샤먼 대학 교수 이중톈은 나관중이 조조의 악당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단어를 변경했다고 분석했다.
4. 1. 나관중(羅貫中)의 각색
나관중은 14세기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조조가 여백사의 가족을 죽인 후 한 말을 왜곡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다른 사람들"(人)을 "천하 사람들"(天下人)로 바꾼 것이다. 샤먼 대학 역사 교수 이중톈은 조조가 여백사의 가족을 실수로 죽인 후 후회하는 어조로 말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려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중톈은 나관중이 "세상" (일반적인 의미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특정한 의미의 사람들)보다 더 큰 비중을 가지기 때문에, 조조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단어를 변경하여 소설에서 조조의 악당 이미지를 강화했다고 믿었다.4. 2. 이중톈(易中天)의 해석
샤먼 대학 역사 교수인 이중톈은 조조가 여백사의 가족을 실수로 죽인 후 후회하는 어조("가슴 아프게 말했다")로 말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려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중톈은 나관중이 "세상" (일반적인 의미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특정한 의미의 사람들)보다 더 큰 비중을 가지기 때문에, 조조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반영하기 위해 인용구의 단어를 의도적으로 변경하여 소설에서 조조의 악당 이미지를 강화했다고 믿었다.5.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여백사 사건은 한국에서 《삼국지연의》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참조
[1]
서적
Wei Shu annotation in Sanguozhi vol. 1
Wei Shu
[2]
서적
Shiyu annotation in Sanguozhi vol. 1
Shiyu
[3]
서적
Zaji annotation in Sanguozhi vol. 1
Zaji
[4]
서적
Sanguo Yanyi ch. 4
Sanguo Yan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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