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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노쓰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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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바노쓰보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유모로, 에도 막부 오오쿠에서 권세를 누린 인물이다. 남편은 가와무라 시게타다로, 이마가와 가문, 호조 씨, 다케다 씨 등을 섬겼다. 히데타다의 유모가 된 후, 시녀의 아들 호시나 마사유키를 양육하고 후견했으며, 1608년 이케가미 혼몬지 오중탑 건립을 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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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노쓰보네
인물 정보
이름오바노쓰보네 (大姥局)
다른 이름다이노오모토 (大方殿)
생몰년도생년 미상 ~ 게이초 18년 음력 2월 17일 (1613년)
신분센고쿠 시대 ~ 에도 시대의 여성, 도요토미 가문의 유모
출신오미국 이누카미군 마에다 (현재의 시가현 히코네시 마에다)
씨족불명
가계
아버지불명
어머니불명
남편불명
자녀불명
생애
주요 활동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 마쓰노마루를 섬김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유모 역할
오사카 전투 이후 처형

2. 생애

남편 가와무라 시게타다는 처음 이마가와 가문을 섬기며 인질 시절의 어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돌본 인연이 있었다. 이마가와 가문 쇠퇴 후에는 고호조 씨, 다케다 씨 휘하의 아나야마 씨 등을 섬겼다. 남편 사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선으로 생모 사이고노 쓰보네를 일찍 여읜 도쿠가와 히데타다유모로 발탁되어 도쿠가와 가문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하마마쓰성으로 부름을 받았고 이후 에도 성으로 옮겨 오오쿠 초창기에 상당한 권세를 누렸으며, 무사시국 내에 2천 석의 화장령(化粧料)을 받았다.

도쿠가와 히데타다정실 스겐인을 의식하여 공식적인 측실을 두지 못했으나, 오바노쓰보네의 시녀였던 시즈(후의 조코인)를 임신시켰다. 오바노쓰보네는 시즈를 비호하여 무사히 출산하도록 도왔는데, 이때 태어난 아이가 훗날 아이즈 마쓰다이라 가문의 시조가 되는 호시나 마사유키이다.

법화종 신도로서 1608년(게이초 13년) 도쿄도 오타구의 이케가미 혼몬지에 유명한 오층탑(중요문화재) 건립을 발원하고 기증했다. 법명은 正心院日幸尼|쇼신인 닛코니일본어이다.

이케가미 혼몬지 오층탑. 오바노쓰보네의 발원으로 건립되었다.


자녀로는 혼다 마사시게 등과의 싸움으로 사망한 아들 가와무라 쇼하치, 우에스기 겐신의 옛 가신 오이시 나가쓰구에게 시집간 딸, 그리고 후쿠이 번의 가로 집안인 오카베 분고 가문의 시조가 된 오카베 나가오키(아들로 추정) 등이 있다.

2. 1. 초기 생애와 배경

남편 가와무라 시게타다川村重忠|가와무라 시게타다일본어는 처음 이마가와 가문을 섬겼으며, 이마가와 가문의 인질이었던 어린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도쿠가와 이에야스일본어(당시 마쓰다이라 모토야스)를 돌보는 역할을 맡았다. 이마가와 가문이 쇠퇴하자 남편과 함께 오다와라의 고호조 씨를 섬겼고, 이후에는 가이의 다케다 씨 휘하에서 스루가국駿河|스루가일본어 방면을 담당하던 아나야마 씨에 소속되었다.

남편 시게타다가 사망한 후에는 잠시 스루가 오카베에서 살았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일본어의 부름을 받아 자녀들과 함께 교토로 상경했다. 당시 상황을 들은 히데요시의 요청에 따라, 생모 사이고노 쓰보네를 일찍 여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도쿠가와 히데타다일본어유모(양육 담당)로서 도쿠가와 가문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하마마쓰성浜松城|하마마쓰성일본어으로 부름을 받았고, 이후 에도 성江戸城|에도성일본어으로 옮겨가 초기 오오쿠大奥|오오쿠일본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화장령(化粧料) 명목으로 무사시국 내에 2천 석의 영지를 받았다.

법화종(法華宗) 신자였던 것으로 보이며, 도쿄도 오타구에 위치한 이케가미 혼몬지池上本門寺|이케가미 혼몬지일본어의 유명한 오층탑(일본 중요문화재)은 1608년(게이초 13년) 오바노쓰보네(당시 오카베노 쓰보네)의 발원과 기증으로 건립되었다.

법명은 쇼신인 닛코니正心院日幸尼|쇼신인 닛코니일본어이다.

자녀
이름설명
가와무라 쇼하치河村庄八|가와무라 쇼하치일본어 (오카베 쇼하치)1597년(게이초 2년) 혼다 마사시게, 토다 타메하루와의 싸움으로 사망.
딸 (오카베노 쓰보네)우에스기 겐신의 옛 가신 오이시 나가쓰구에게 시집가 아들 시게히사를 낳았고, 시게히사를 양자로 삼아 오카베 가문을 잇게 함.
오카베 나가오키岡部長起|오카베 나가오키일본어 (추정)어머니의 성을 따라 오카베 씨를 칭함. 후쿠이 번 가로 오카베 분고 가문의 시조. 유키 히데야스, 마쓰다이라 타다나오를 섬김. 오사카 전투 후 번의 군율 문란 책임을 지고 요시다 요시히로와 함께 투신 자살. 장남은 전사, 차남이 가문 계승.


2. 2. 히데타다의 유모와 오오쿠 권력

남편인 가와무라 시게타다는 과거 이마가와 가문을 섬기며 인질 시절의 어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돌본 인연이 있었다. 이마가와 가문이 쇠퇴한 후에는 남편과 함께 호조 씨 등을 섬겼다. 남편 사후 스루가국 오카베에서 지내던 중, 생모를 일찍 여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 도쿠가와 히데타다유모로 발탁되어 하마마쓰성으로 부름을 받았고, 이후 도쿠가와 가문에 속하게 되었다.

그 후 에도 성으로 옮겨가 초창기 오오쿠에서 권세를 떨쳤으며, 무사시국 내에 화장료(化粧料) 명목으로 2천 석의 영지를 받았다.

도쿠가와 히데타다정실 부인인 스겐인(오다 노부나가의 조카딸)을 매우 의식하여 공식적으로는 측실을 두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히데타다는 오바노쓰보네의 시녀였던 시즈(후의 조코인)를 임신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알게 된 오바노쓰보네는 시즈를 적극적으로 비호하여 스겐인 측의 압력으로부터 보호하고 무사히 출산하도록 도왔다.

이때 태어난 아이 고마쓰(훗날의 호시나 마사유키)는 오바노쓰보네와 친분이 있던 겐쇼인(다케다 신겐의 딸이자 아나야마 바이세쓰의 정실)에게 보내져 양육되었다. 고마쓰는 나중에 히데타다에게 은밀히 인지되었으나 도쿠가와 가문에 머물지는 못하고, 겐쇼인의 연고로 옛 다케다 가문의 가신이었던 다카토 번의 호시나 씨 가문에 양자로 들어가 가문을 계승했다. 이후 이복형인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에게 그 존재가 알려져 중용되었으며, 에도 시대 초기의 명재상으로 평가받는 호시나 마사유키(아이즈 마쓰다이라 가문의 시조)가 바로 이 인물이다.

법화종 신도였던 오바노쓰보네는 1608년(게이초 13년) 이케가미 혼몬지의 유명한 오층탑(일본 중요문화재) 건립을 발원하고 기증하였다. 법명은 쇼신인닛코니(正心院日幸尼)이다.

2. 3. 호시나 마사유키 양육과 후견

도쿠가와 히데타다정실오에(崇源院) 몰래 오바노쓰보네의 시녀였던 시즈(후의 정광원)를 임신시켰다. 당시 에도 막부의 쇼군이었음에도 공처가였던 히데타다는 부인 오에 때문에 측실을 두기 어려웠다고 전해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바노쓰보네는 오에 측의 압력으로부터 시즈를 보호하고 숨겨주어 무사히 출산하도록 도왔다. 이때 태어난 아이가 幸松|고마쓰일본어이며, 오바노쓰보네는 친분이 있던 겐쇼인(다케다 신겐의 딸)에게 아이를 맡겨 양육하게 했다.

고마쓰는 나중에 히데타다에게 비밀리에 아들로 인정받았지만, 도쿠가와 가문에서 지낼 수는 없었다. 겐쇼인의 주선으로 옛 다케다 가문의 가신이었던 다카토 번의 호시나 씨 가문에 양자로 들어가 가독을 이었다. 이후 그의 존재가 이복형인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에게 알려지면서 중용되어 막부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에도 시대 초기의 명재상으로 높이 평가받는 호시나 마사유키이며, 아이즈 마쓰다이라 가문의 시조가 되었다.

2. 4. 신앙 활동과 죽음

법화종法華宗|홋케슈일본어 신도였으며, 이케가미 혼몬지池上本門寺|이케가미 혼몬지일본어의 유명한 오층탑五重塔|고주노토일본어 (중요문화재)은 게이초 13년(1608년) 오바노 쓰보네의 발원과 기증으로 건립되었다. 법명은 正心院日幸尼|쇼신인 닛코니일본어이다.

아들 가와무라 쇼하치(오카베 쇼하치)는 게이초 2년(1597년)에 혼다 마사시게와 싸움을 벌여 혼다와 토다 타메하루에게 살해되었다. "히데타다 유모의 아들"을 살해한 두 사람은 사건 후 도쿠가와 가문을 떠나 도망쳤다.

딸(오카베노 쓰보네)은 우에스기 겐신의 옛 가신 오이시 나가쓰구에게 시집갔으며, 그의 아들 시게히사를 양자로 삼아 오카베 가문을 잇게 했다.

후쿠이 번의 가로(家老) 직을 대대로 세습한 17가문 중 하나인 岡部豊後|오카베 분고일본어 가문의 시조 오카베 나가오키 역시 오바노 쓰보네의 아들로 여겨진다. 나가오키는 어머니의 성인 오카베 씨를 따랐고, 후쿠이 번사로서 유키 히데야스와 그의 아들 마쓰다이라 타다나오를 섬겼다. 그러나 오사카 전투 당시 후쿠이 번 군의 무단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쟁 후 요시다 요시히로와 함께 天満川|덴마가와일본어에 투신하여 자살했다. 그의 장남 역시 전투에서 사망했으나, 차남이 가문을 이었다.

2. 5. 가족 관계

남편인 가와무라 시게타다는 처음에는 이마가와 가문을 섬겼으며, 이마가와 가문의 인질이었던 어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돌보는 역할을 맡았다. 이마가와 가문이 쇠퇴하자 남편과 함께 호조 씨를 섬겼고, 이후에는 다케다 씨 휘하의 아나야마 씨에 소속되어 스루가국 방면을 담당했다. 남편 시게타다가 사망한 후 오바노쓰보네는 잠시 스루가 오카베에서 살았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름으로 자식들과 함께 상경했고, 생모를 일찍 여읜 도쿠가와 히데타다유모로 도쿠가와 가문에 들어가 하마마쓰성으로 소환되었다. 이후 에도 성으로 옮겨가 오오쿠 초창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도쿠가와 히데타다오다 노부나가의 조카딸인 고우를 정실로 맞이한 후 측실을 두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오바노쓰보네의 시녀였던 시즈(조코인)를 임신시켰다. 오바노쓰보네는 이 사실을 알고 시즈를 스겐인 측의 압력으로부터 보호하여 무사히 출산하도록 도왔다. 이때 태어난 아이 고마쓰는 오바노쓰보네와 친분이 있던 겐쇼인(다케다 신겐의 딸)의 양자가 되었다가, 훗날 다카토 번 호시나 씨의 양자가 되어 가문을 이었다. 이 아이가 바로 아이즈 마쓰다이라 가문의 시조가 되는 호시나 마사유키이다.

오바노쓰보네는 법화종 신도로서, 이케가미 혼몬지의 유명한 오중탑(일본 중요문화재) 건립을 1608년(게이초 13년)에 발원하고 기증했다. 법명은 쇼신인 닛코니(正心院日幸尼)이다.

'''오바노쓰보네의 가족 및 주요 관련 인물'''
관계이름설명
남편가와무라 시게타다처음에는 이마가와 가문 소속으로 인질 시절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돌봄. 이후 고호조 씨, 다케다 씨(아나야마 씨) 등을 섬김.
아들가와무라 쇼하치 (오카베 쇼하치)1597년(게이초 2년) 혼다 마사시게, 토다 타메하루와의 싸움으로 사망.
이름 미상 (오카베노 쓰보네)우에스기 겐신의 옛 신하 오이시 나가쓰구에게 시집감.
외손자 (양자)오이시 시게히사딸의 아들. 외가인 오카베 가문을 이음.
아들 (추정)오카베 나가오키후쿠이 번 가로 오카베 분고가의 조상. 어머니의 성인 오카베 씨를 따름. 유키 히데야스와 마쓰다이라 타다나오를 섬겼으며, 오사카 전투 후 군의 무단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요시다 요시히로와 함께 자살. 차남이 가문을 이음.
유모 대상도쿠가와 히데타다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 에도 막부 2대 정이대장군. 오바노쓰보네가 유모 역할을 함.
피보호자 (시녀)시즈 (조코인)오바노쓰보네의 시녀. 히데타다의 아이(호시나 마사유키)를 임신하자 오바노쓰보네가 비호함.
피보호자 (히데타다의 아들)호시나 마사유키히데타다와 시즈의 아들. 오바노쓰보네의 도움으로 태어나 호시나 씨의 양자가 됨. 훗날 아이즈 마쓰다이라 가문의 시조이자 명재상으로 평가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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