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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 (치천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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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건(치천정왕)은 전한 시대의 제후국인 치천나라의 왕이다. 원광 6년(기원전 130년)에 아버지 유지(치천의왕)의 뒤를 이어 치천왕이 되었으며, 원삭 2년(기원전 127년)에는 제나라 왕 유차창의 자살로 인해 제도혜왕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치천정왕 20년(기원전 110년)에 사망했으며, 아들 유유(치천경왕)가 뒤를 이었다.

2. 생애

아버지 치천의왕의 뒤를 이어 치천왕이 되었으며,[1][2][3] 재위 기간 중 제나라제도혜왕 제사를 승계하게 되었다.[3] 20년간 재위한 후 사망하였고, 아들 치천경왕 유유가 왕위를 계승하였다.[1][2][3]

2. 1. 치천왕 즉위

원광 6년(기원전 130년)에 아버지 치천의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치천왕이 되었다.[1][2][3]

원삭 2년(기원전 127년), 제나라 왕 유차창이 자살하고 봉국이 폐지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제나라 시조 제도혜왕의 자손에게 세워준 제후국은 망한 제나라 외에 교서나라·교동나라·제북나라·치천나라·성양나라 다섯 나라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중 교서, 교동, 제북 세 나라에는 이미 제도혜왕의 후예가 끊겨 다른 왕가가 들어섰으므로, 남은 제도혜왕의 자손은 치천나라와 성양나라 두 왕가뿐이었다. 그 중 치천나라가 제나라에 더 가까웠으므로, 치천나라가 제도혜왕의 무덤을 둘러싼 임치 동쪽 지역을 받아 제도혜왕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3]

2. 2. 제도혜왕 제사 승계

원삭 2년(기원전 127년), 제나라 왕 유차창이 죄를 짓고 자살하면서 제나라의 봉국이 폐지되었다.[3] 당시 제나라의 시조인 제도혜왕의 후손이 세운 제후국으로는 폐지된 제나라 외에 교서나라, 교동나라, 제북나라, 치천나라, 성양나라 다섯 나라가 있었다. 그러나 교서, 교동, 제북 세 나라는 이미 제도혜왕의 후예가 끊기고 다른 왕가가 들어선 상태였으므로, 실제로 제도혜왕의 제사를 이을 수 있는 후손은 치천나라와 성양나라의 왕가뿐이었다.[3]

두 나라 중 치천나라가 옛 제나라의 중심지와 더 가깝다는 점을 고려하여, 치천나라가 제도혜왕의 무덤이 있는 임치 동쪽 지역을 넘겨받아 제도혜왕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3]

2. 3. 사망

치천정왕 20년(기원전 110년), 치천정왕은 죽고 아들 치천경왕 유유가 뒤를 이었다.[1][2][3]

3. 가계



치천정왕의 아들들은 왕위를 계승한 치천경왕을 제외하고 모두 원정 원년(기원전 116년) 7월 신묘일에 후작으로 봉해졌다.[4]

참조

[1] 서적 사기 (역사서)
[2] 서적 한서
[3] 서적 한서
[4] 서적 한서
[5] 문서 여나라가 도중에 제천나라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유명 (제천왕)이 봉해진 진류군|제천나라와는 연관이 없다.
[6] 문서 작위만 추증된 것으로, 봉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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