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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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자운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세종의 총애를 받은 윤회의 손자이며 신숙주의 처남이다. 1444년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이조, 사간원 등을 거쳐 수양대군 즉위 후 좌익공신에 책록되었다. 병조판서,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사신은 윤자운이 성질이 편협하고 재능이 부족하며, 이시애의 난 때 도적에게 굴복하고 어머니를 제대로 봉양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세종의 총애를 받은 집현전학사 윤회의 손자이며 신숙주의 처남이다.[1] 1444년(세종26)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1위로 급제해 집현전, 이조, 사간원, 응교 등에서 벼슬을 지냈다. 그 뒤 동부승지와 도승지를 거쳐 수양대군이 즉위하자 좌익공신 3등에 책록되고 이어서 병조판서와 예조판서, 공조판서, 이조판서 등의 벼슬을 지낸 뒤 우참찬, 좌참찬, 우찬성, 좌찬성 등을 두루 거쳐 우의정이 되고 좌의정으로 승진한 뒤 영의정에 올랐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윤자운은 성질이 편협하고 다른 재능(才能)이 없는데, 두 번이나 정승으로 들어가서 건명(建明)한 바가 없었고, 이시애(李施愛)의 난에 도적이 조정을 속이고자 하여 위서(僞書)를 지어서 협박해 서명(署名)하게 하니, 윤자운이 머리를 숙이고 그대로 따랐으며, 매양 도적을 대하여 반드시 대인(大人)이라고 일컬으니, 듣는 자가 비루하게 여겼다. 아침 저녁으로 일찍이 어머니의 집을 지나면서 보살피지 아니함이 많았으므로, 그 마을 사람이 서로 이르기를, ‘이 할머니는 아들이 없다.’고 하였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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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운 선생의 묘소 및 신도비에 대해서는 윤자운 선생 묘 및 신도비 문서를 참고하라.
2. 생애
3. 평가
3. 1. 긍정적 평가
사신(史臣)은 윤자운은 성질이 편협하고 다른 재능이 없는데, 두 번이나 정승으로 들어가서 건명(建明)한 바가 없었다고 평했다. 이시애의 난 때 도적이 조정을 속이고자 위서(僞書)를 지어 협박해 서명하게 하니, 윤자운이 머리를 숙이고 그대로 따랐으며, 매양 도적을 대할 때 반드시 대인(大人)이라고 일컬어 듣는 자가 비루하게 여겼다고 한다. 아침 저녁으로 일찍이 어머니의 집을 지나면서 보살피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그 마을 사람이 서로 이르기를, ‘이 할머니는 아들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3. 2. 부정적 평가
사신(史臣)은 윤자운에 대해 성질이 편협하고 다른 재능이 없으며, 두 번이나 정승의 자리에 올랐으나 건명(建明)한 바가 없었다고 평했다. 이시애의 난 때는 도적이 조정을 속이고자 위서(僞書)를 지어 협박하자 머리를 숙이고 그대로 따랐으며, 매양 도적을 대인(大人)이라고 불러 듣는 자들이 비루하게 여겼다고 한다. 또한, 아침 저녁으로 어머니의 집을 지나면서도 보살피지 않는 경우가 많아 마을 사람들이 그를 아들이 없는 사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4. 가족 관계
5. 묘소
6. 관련 작품
6. 1. 드라마
2011년부터 2012년까지 JTBC에서 방영한 드라마 인수대비에서 박규점이 윤자운 역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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