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자운
1. 개요
윤자운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세종의 총애를 받은 윤회의 손자이며 신숙주의 처남이다. 1444년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이조, 사간원 등을 거쳐 수양대군 즉위 후 좌익공신에 책록되었다. 병조판서,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사신은 윤자운이 성질이 편협하고 재능이 부족하며, 이시애의 난 때 도적에게 굴복하고 어머니를 제대로 봉양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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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송 윤씨 -
윤회 (조선)
윤회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태종과 세종의 신임을 받으며 이조정랑, 예문관제학, 집현전제학 등을 역임했고 훈민정음 창제와 《자치통감훈의》 편찬에 기여했으며 청백리이자 문장가로 이름을 떨쳐 사후 문도라는 시호를 받았다. -
무송 윤씨 -
윤세주
윤세주는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김원봉과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 밀양 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의열단, 조선혁명간부학교, 조선의용대 등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다 태항산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그의 공훈으로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1416년 출생 -
크리스토페르 3세
크리스토페르 3세는 1440년부터 덴마크, 1441년부터 스웨덴, 1442년부터 노르웨이의 국왕을 겸하며 칼마르 동맹을 통치했으나 귀족 세력과의 권력 균형 속에서 제한적인 권력을 행사했고 후사 없이 사망하여 칼마르 동맹의 불안정을 심화시켰다. -
1416년 출생 -
피에로 디 코시모 데 메디치
피에로 디 코시모 데 메디치는 15세기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일원으로, 아버지 코시모 데 메디치의 뒤를 이어 은행을 운영하며 가문의 재산을 관리하고 르네상스 문화 발전에 기여했으며, 아들 로렌초를 후계자로 육성하여 메디치 가문의 번영을 이끌었다. -
좌익공신 -
신숙주
신숙주는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언어학자, 외교관, 정치인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세조 즉위 후 주요 관직을 역임하며 외교와 국방에 기여했으며, 《해동제국기》, 《동국정운》 등의 저술을 남기고 영의정을 지냈다. -
좌익공신 -
윤사흔
윤사흔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정희왕후의 동생이자 왕족 및 사대부와 인척 관계를 맺었으며, 음보로 관직에 입문하여 계유정난과 성종 옹립에 공을 세워 공신에 책록되고 영돈녕부사에 이르렀으나 훈척으로서 병권 운영에 대한 비판을 받았고 우의정, 영경연사를 역임 후 사망하여 양평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2. 생애
세종의 총애를 받은 집현전학사 윤회의 손자이며 신숙주의 처남이다. 1444년(세종26)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1위로 급제해 집현전, 이조, 사간원, 응교 등에서 벼슬을 지냈다. 그 뒤 동부승지와 도승지를 거쳐 수양대군이 즉위하자 좌익공신 3등에 책록되고 이어서 병조판서와 예조판서, 공조판서, 이조판서 등의 벼슬을 지낸 뒤 우참찬, 좌참찬, 우찬성, 좌찬성 등을 두루 거쳐 우의정이 되고 좌의정으로 승진한 뒤 영의정에 올랐다.
3. 평가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윤자운은 성질이 편협하고 다른 재능(才能)이 없는데, 두 번이나 정승으로 들어가서 건명(建明)한 바가 없었고, 이시애(李施愛)의 난에 도적이 조정을 속이고자 하여 위서(僞書)를 지어서 협박해 서명(署名)하게 하니, 윤자운이 머리를 숙이고 그대로 따랐으며, 매양 도적을 대하여 반드시 대인(大人)이라고 일컬으니, 듣는 자가 비루하게 여겼다. 아침 저녁으로 일찍이 어머니의 집을 지나면서 보살피지 아니함이 많았으므로, 그 마을 사람이 서로 이르기를, ‘이 할머니는 아들이 없다.’고 하였다." 하였다.
3.1. 긍정적 평가
사신(史臣)은 윤자운은 성질이 편협하고 다른 재능이 없는데, 두 번이나 정승으로 들어가서 건명(建明)한 바가 없었다고 평했다. 이시애의 난 때 도적이 조정을 속이고자 위서(僞書)를 지어 협박해 서명하게 하니, 윤자운이 머리를 숙이고 그대로 따랐으며, 매양 도적을 대할 때 반드시 대인(大人)이라고 일컬어 듣는 자가 비루하게 여겼다고 한다. 아침 저녁으로 일찍이 어머니의 집을 지나면서 보살피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그 마을 사람이 서로 이르기를, ‘이 할머니는 아들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3.2. 부정적 평가
사신(史臣)은 윤자운에 대해 성질이 편협하고 다른 재능이 없으며, 두 번이나 정승의 자리에 올랐으나 건명(建明)한 바가 없었다고 평했다. 이시애의 난 때는 도적이 조정을 속이고자 위서(僞書)를 지어 협박하자 머리를 숙이고 그대로 따랐으며, 매양 도적을 대인(大人)이라고 불러 듣는 자들이 비루하게 여겼다고 한다. 또한, 아침 저녁으로 어머니의 집을 지나면서도 보살피지 않는 경우가 많아 마을 사람들이 그를 아들이 없는 사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4. 가족 관계
wikitable
| 관계 | 이름 |
|---|---|
| 할아버지 | 윤회 |
| 아버지 | 윤경연(尹景淵) |
| 어머니 | 연안 이씨 - 이백인의 딸, 판전의감사 이량의 손녀, 공조전서 이계손의 증손녀 |
| 아들 | 윤한(尹瀚) |
| 손자 | 윤화명(尹化溟) |
5. 묘소
윤자운 선생의 묘소 및 신도비에 대해서는 윤자운 선생 묘 및 신도비 문서를 참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