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 (고려 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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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고는 고려 중기의 무신으로, 고려 의종의 숭문천무 정책에 반발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과 함께 무신정변을 일으킨 인물이다. 1170년 의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옹립했으며, 무신정권 수립에 기여했다. 이후 권력욕을 드러내며 반란을 꾀하다가 이의방에게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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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 (고려 중기)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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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한글 이름 | 이고 |
한자 이름 | 李高 |
로마자 표기 | I Go |
관직 정보 | |
주요 관직 | 위위경(衛尉卿) 대장군(大將軍) |
기타 관직 | 응양용호군중랑장 |
추가 정보 | 벽상공신 |
생애 정보 | |
출생 | 미상 |
사망 | 1171년 1월 |
가족 정보 | |
아버지 | 이씨(李氏) |
배우자 | 미상 |
자녀 | 미상 |
활동 정보 | |
재위 기간 | 1170년 ~ 1171년 |
종교 | 불교(佛敎) |
기타 정보 | |
가문 | 미상 |
매장지 | 미상 |
능릉 | 미상 |
묘호 | 미상 |
시호 | 미상 |
전임자 | 정권 성립 |
후임자 | 이의방(李義方) |
2. 생애
이고는 고려 의종 (재위: 1146년 - 1170년)이 문신만 우대하고 무신은 천대하는 숭문천무 정책에 강한 불만을 품었다.
2. 1. 무신정변 주도
의종이 문신만 우대하고 무신은 천대하는 데 분개하여, 1170년 의종이 보현원에 행차했을 때 이의방, 정중부, 채원 등과 함께 많은 문신을 죽였다.[1] 이어 의종을 몰아내고 명종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1]1170년 (의종 24년) 8월, 의종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보현원을 방문했을 때, 이고는 정중부와 이의방과 함께 거병하여 많은 문신들을 살해하고 추방했다. 그리고 의종과 그의 아들이자 왕세자인 효령태자를 유배 보내고, 의종의 동생인 명종을 왕위에 앉혔다. 경인년의 난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이후 1270년까지 100년 동안 이어진 무신정권의 시작이었다.
이듬해 무신들 사이에 분열이 생기자, 최고 권력자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현소 등 여러 무뢰배들과 함께 난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채원이 이의방에게 이고의 반란 소식을 고발했고, 1171년 1월에 이의방은 채원과 함께 궁문 뒤에서 이고 일당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이고를 철퇴로 때려죽였다고 전해진다.[1] 이고는 자신이 국왕이 되기 위한 반란을 법운사의 승려인 수혜와 개국사의 승려인 현소 등과 일으키려 했으나, 사전에 이의방에게 발각되어 이의방에 의해 살해되었다.
2. 2. 권력 투쟁과 최후
의종이 문신만 우대하고 무신은 천대하는 데 분개하여, 1170년 의종이 보현원에 행차했을 때 이의방, 정중부, 채원 등과 함께 많은 문신을 죽였다.[1] 이어 의종을 몰아내고 명종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1] 이듬해 무신들 사이에 분열이 생기자, 최고 권력자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현소 등 여러 무뢰배들과 함께 난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채원이 이의방에게 이고의 반란 소식을 고발했고, 1171년 1월에 이의방은 채원과 함께 궁문 뒤에서 이고 일당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이고를 철퇴로 때려죽였다고 전해진다.[1]그의 어머니도 피살되었으나, 그의 아버지는 본래 이고와 의절하고 있었으므로 죽음은 면하고 유배되었다. 1171년(명종 원년), 이고는 자신이 국왕이 되기 위한 반란을 법운사의 승려인 수혜와 개국사의 승려인 현소 등과 일으키려 했으나, 사전에 이의방에게 발각되어 이의방에 의해 살해되었다.
3. 평가
고려 왕조는 문신을 중시하고 무신을 경시하는 숭문천무 정책을 펼쳤다. 이고는 고려 의종(재위: 1146년 - 1170년)의 숭문천무 정책에 강한 불만을 품었다.[1]
1170년 정중부, 이의방과 함께 거병하여 많은 문신들을 살해하고 추방했으며, 의종과 왕세자 효령태자를 유배 보내고 명종을 왕위에 앉혔다.[1] 경인년의 난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1270년까지 100년 동안 이어진 무신정권의 시작이었다.[1] 이고는 대장군 위위경에 봉해졌으며, 정중부, 이의방과 함께 정권을 장악했다.[1]
1171년 법운사의 승려 수혜, 개국사의 승려 현소 등과 함께 국왕이 되기 위한 반란을 일으키려 했으나, 사전에 이의방에게 발각되어 살해되었다.[1]
4. 대중문화
2003년부터 2004년까지 KBS TV 드라마 《무인시대》에서 박준규가 이고를 연기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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