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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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기략은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경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역사서로, 편자와 본래 서명은 불분명하다. 일본사기략, 일본사략, 일본사류 등으로도 불리며, 육국사에서 발췌한 내용과 독자적인 기술을 포함한다. 후지와라노 타네츠구 암살 사건 등 정치적 이유로 삭제된 기록을 담고 있으며, 우다 천황부터 고이치조 천황까지의 기록은 편찬자가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사찬 국서로 인식되며, 사료 비판적 관점에서 내용을 해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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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기략 | |
|---|---|
| 개요 | |
| 유형 | 역사서 |
| 언어 | 한문 |
| 제작 시기 | 헤이안 시대 |
| 편찬 | 미상 |
| 분량 | 30권 |
| 내용 | 일본서기 이후의 역대 천황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 |
| 상세 정보 | |
| 특징 | 일본서기의 내용을 요약 및 보완 귀족들의 생활상 묘사 |
| 전승 상태 |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지 않음 일부 내용만 단편적으로 남아 있음 |
| 참고 문헌 | 육국사 일본서기 |
2. 편찬
『일본기략』의 정확한 성립 시기와 편찬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대략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본래의 서명 또한 명확하지 않아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2. 1. 성립 시기 및 편찬자
성립 시기는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경으로 추정되지만 불분명하다. 편찬자도 알 수 없다. 본래 서명도 명확하지 않으며, 『'''일본사기략'''』, 『'''일본사략'''』, 『'''일본사류'''』 등으로도 불렸다.2. 2. 서명
본래 서명도 명확하지 않다. 『'''일본사기략'''』, 『'''일본사략'''』, 『'''일본사류'''』라고도 불렸다.3. 내용
『일본기략』의 내용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광효 천황 시대까지의 기록으로, 기본적으로 육국사의 중요 내용을 발췌하여 구성하였다. 그러나 단순한 요약본은 아니며, 편찬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수정되거나 육국사에는 없는 독자적인 기록이 추가되기도 했다. 특히 후지와라노 타네츠구 암살 사건처럼 정치적인 이유로 다른 역사서에서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기록이 포함되어 있어 사료로서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또한 일부 내용이 사라진 『일본후기』의 기록을 보완하는 역할도 한다.
두 번째는 우다 천황부터 고이치조 천황 시대까지(887년~1036년)의 기록으로, 이 부분은 육국사를 따르지 않고 편찬자가 독자적으로 기술하였다. 『신국사』(新國史) 등의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된 날짜에 오류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3. 1. 육국사 발췌 부분
『일본기략』의 제20권 전반부, 즉 광효 천황 시대까지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육국사에서 중요 부분을 발췌하여 수록하고 있다. 다만 단순한 요약본은 아니며, 편찬 과정에서 자구를 수정한 부분이 있어 육국사의 기록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특히 주목할 점은 육국사에는 없는 독자적인 기록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후지와라노 타네츠구 암살 사건과 사와라 친왕 제거 과정에 대한 서술은 『속일본기』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삭제되었던 내용으로 추정되는데, 『일본기략』이 이를 기록하고 있어 사료로서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이는 권력에 의해 은폐되었을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현재 일부 내용이 소실된 『일본후기』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도 『일본기략』이 중요한 도움을 준다.
3. 2. 독자적인 기술 부분
우다 천황부터 고이치조 천황까지, 즉 887년부터 1036년까지의 기술은 육국사를 발췌한 것이 아니라 『일본기략』의 편찬자가 독자적으로 기술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신국사』(新國史) 등을 참고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내용상 날짜 기록에 오류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4. 의의 및 평가
시대가 흐르면서 육국사가 담당했던 기능이 귀족이나 관인 등 개개인의 일기로 나뉘면서, 『일본기략』이나 『백련초』와 같이 일기를 이용하여 편찬된 한문 편년체 사서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서들은 칙찬(勅撰) 방식으로 편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찬'''(私撰) 국사"로 인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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