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국사
1. 개요
육국사는 일본에서 편찬된 6개의 역사서를 통칭한다. 아스카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 전기까지의 역사를 다루며, 편찬 체제, 주요 내용, 한계 등의 특징을 갖는다. 육국사 목록에는 일본서기, 속일본기, 일본후기, 속일본후기, 일본문덕천황실록, 일본삼대실록이 시대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후 신국사, 대일본사료와 같은 역사서 편찬에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사 연구, 특히 삼국사기, 삼국유사와의 비교 연구 및 임나일본부설 비판에 활용된다.
| 이름 | 육국사 |
|---|---|
| 로마자 표기 | Rikkokushi |
| 일본어 표기 | 六国史 |
| 설명 | 일본의 나라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 초기까지의 역사를 편찬한 여섯 권의 국사 |
| 편찬 기간 | 요로 4년 (720년) - 엔기 원년 (901년) |
|---|---|
| 편찬 주체 | 찬국사소 |
| 이전 역사서 | 천황기, 국기 |
| 이후 역사서 | 신국사, 본조세기, 메이지 정부의 수사 사업, 대일본사료 |
| 종류 | 편년체 역사서, 국사, 실록, 일본사 |
|---|---|
| 언어 | 한문, 상대 일본어(선명) |
| 권수 | 6서 190권 + 계도 1권 |
| 목록 | '#육국사 목록' |
| 일본서기(720년) | |
| 속일본기(797년) | |
| 일본후기(840년) | |
| 속일본후기(869년) | |
| 일본문덕천황실록(879년) | |
| 일본삼대실록(90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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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키모노는 일본의 두루마리 형태 그림으로, 그림과 서예 텍스트를 결합하여 이야기나 일화를 담고 있으며, 내용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분류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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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기
《고사기》는 712년 오노 야스마로가 편찬한 일본 최초의 역사서이자 문학작품으로, 신화 시대부터 스이코 천황까지의 역사를 다루며 일본 황실의 기원과 정통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의 신빙성에 대한 논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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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일본서기》는 720년에 사인 친왕이 편찬한 신대부터 지토 천황까지의 일본 역사를 기록한 편년체 역사서로, `帝紀`와 `旧辞` 등의 사료를 활용하여 30권으로 구성되었으나 일부 내용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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뇨보
뇨보는 일본 헤이안 시대부터 궁중에서 윗사람을 모시던 궁녀를 지칭하는 용어로, 시대에 따라 역할과 의미가 변화했으며 현대 일본어에서는 아내를 뜻하는 단어로도 사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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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연주의 문학
반자연주의 문학은 19세기 말 자연주의 문학의 결정론과 과학 만능주의에 반발하여 등장한 문학 사조로, 일본에서는 개인주의 윤리 추구와 다양한 경향이 나타났으며, 유럽에서는 신비주의, 상징주의 등과 결합하여 근대 희곡 발전에 기여했고, 다양한 갈래로 전개되었다.
2. 육국사의 성립 배경
육국사는 일본에서 아스카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 전기에 걸쳐 국가적 사업으로 편찬된 6개의 관찬 사서를 말한다. 이는 당시 일본의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 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천황의 권위를 높이고 통치 이념을 정립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추진된 것으로 이해된다.
2.2. 아스카 시대 ~ 헤이안 시대 전기
일본에서 국가 사업으로서의 사서 편찬은 아스카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 전기까지 이루어졌으며, 이 시기에 편찬된 6개의 사서를 묶어 육국사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단순히 국사라고 하면 육국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일본서기》가 편찬되기 이전에도 《천황기》, 《국기》 등의 편찬 기록이 존재하지만, 이 책들은 산문으로는 현존하지 않는다. 또한 육국사 이후에도 "신국사"라고 불리는 국사 편찬 계획이 있었으나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육국사 이후 시대를 대상으로 사서 편찬이 계획되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대신 《대일본사료》가 편찬되었다.
육국사는 중국 정사의 기전체 형식 중 본기(本紀)만을 독립시킨 형태로 시작되었다. 처음에 만들어진 《일본서기》에는 열전(列傳)이 없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어, 《속일본기》 이후부터는 '훙졸전(薨卒伝)'이라 불리는 개인 전기(傳記)가 실리게 되었다. 그러나 훙졸전은 원칙적으로 5위 이상의 귀족이 사망했을 경우에만 작성되었고, 대부분은 고인의 간략한 이력만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다.
3. 육국사의 내용 및 특징
일본에서 국가 주도로 편찬된 역사서 중 아스카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 전기에 걸쳐 완성된 6개의 사서를 통틀어 육국사(六国史)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단순히 국사(国史)라고 하면 육국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육국사는 중국의 정사(正史) 형식을 따라 기전체(紀傳體)로 구성되었으나, 실제로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본기(本紀) 위주로 서술된 특징을 보인다. 첫 번째 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인물 전기인 열전(列傳)이 없었으나, 이후 편찬된 《속일본기》(続日本紀)부터는 '훙졸전'(薨卒伝)이라는 형태로 개인의 전기가 추가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역시 제한적인 형태로 포함되었다.
3.1. 편찬 체제
육국사의 편찬 형식은 중국 정사(正史)의 기전체 형식 중 본기(本紀) 부분만을 독립시킨 것과 유사하다. 처음 편찬된 《일본서기》에는 개별 인물의 전기인 열전(列傳)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이 문제로 여겨져, 이후 편찬된 《속일본기》부터는 '훙졸전'(薨卒傳)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전기가 추가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훙졸전은 원칙적으로 5위 이상의 귀족에 한해서만 작성되었으며, 대부분은 사망한 인물의 간략한 이력을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3.2. 주요 내용
일본에서 국가 사업으로 편찬된 아스카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 전기까지의 여섯 사서를 통칭하여 육국사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단순히 국사라고 하면 육국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육국사는 신대(神代)부터 고코 천황 시대인 887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서술 형식은 중국 정사의 기전체 형식 중 본기(本紀)만을 독립시킨 형태에 가깝다. 다만, 첫 번째 사서인 《일본서기》에는 열전(列傳)이 없었으나, 이후 편찬된 《속일본기》부터는 훙졸전(薨卒伝)이라 불리는 개인 전기(傳記)가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 훙졸전은 원칙적으로 5위 이상의 귀족에 한정되었으며, 대부분 고인의 간략한 이력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육국사를 구성하는 여섯 사서는 다음과 같다.
| 명칭 | 시대 | 연대 | 권수 | 완성 연도 | 편찬자 | 비고 |
|---|---|---|---|---|---|---|
| 일본서기 | 신대부터 지토 천황까지 | ?? - 697년 | 30권 | 720년 (양로 4년) | 도네리 친왕 | 30권 외에 계도 1권이 있었지만 유실됨 |
| 속일본기 | 몬무 천황부터 간무 천황까지 | 697년 - 791년 | 40권 | 797년 (연력 16년) | 스가노 마미치・ 후지와라노 쓰구타다 등 | |
| 일본후기 | 간무 천황부터 준나 천황까지 | 792년 - 833년 | 40권 | 840년 (승화 7년) | 후지와라노 후유쓰구・ 후지와라노 오쓰구 등 | 10권만 남음 |
| 속일본후기 | 닌묘 천황 연간 | 833년 - 850년 | 20권 | 869년 (정관 11년) | 후지와라노 요시후사・ 하루스미노 요시타다 등 | |
| 일본문덕천황실록 | 몬토쿠 천황 연간 | 850년 - 858년 | 10권 | 879년 (원경 3년) | 후지와라노 모토쓰네・ 스가와라노 고레요시・ 시마다노 요시오미 등 | |
| 일본삼대실록 | 세이와 천황부터 고코 천황까지 | 858년 - 887년 | 50권 | 901년 (연희 원년) | 후지와라노 도키히라・ 오쿠라노 요시유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등 |
《일본서기》 이전에도 《천황기》, 《국기》 등의 편찬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들은 현존하지 않는다. 또한 육국사 이후에도 "신국사"라고 불리는 국사 편찬 계획이 존재했지만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육국사 이후를 대상으로 사서 편찬이 계획되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대신 《대일본사료》가 편찬되었다.
4. 육국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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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시대 | 연대 | 권수 | 완성 연도 | 편찬자 | 비고 |
|---|---|---|---|---|---|---|
| 일본서기 | 신대부터 지토 천황까지 | ?? - 697년 | 30권 | 720년(양로 4년) | 도네리 친왕 | 30권 외에 족보(系図) 1권이 더 있었다고 전하나 실전됨 |
| 속일본기 | 몬무 천황부터 간무 천황까지 | 697년 - 791년 | 40권 | 797년(연력 16년) | 스가노노 마미치・ 후지와라노 츠구타다 등 | |
| 일본후기 | 간무 천황부터 준나 천황까지 | 792년 - 833년 | 40권 | 840년(승화 7년) | 후지와라노 후유츠구・ 후지와라노 오츠구 등 | 10권만 남음 |
| 속일본후기 | 닌묘 천황 연간 | 833년 - 850년 | 20권 | 869년(정관 11년) | 후지와라노 요시후사・ 하루스미노 요시타다 등 | |
| 일본문덕천황실록 | 몬토쿠 천황 연간 | 850년 - 858년 | 10권 | 879년(원경 3년) | 후지와라노 모토츠네・ 스가와라노 코레요시・ 시마다노 요시오미 등 | |
| 일본삼대실록 | 세이와 천황부터 고코 천황까지 | 858년 - 887년 | 50권 | 901년(연희 원년) | 후지와라노 토키히라・ 오오쿠라노 요시유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등 |
5. 육국사 이후의 역사서 편찬
일본의 국가 주도 역사서 편찬은 육국사 이후에도 시도되었다. 헤이안 시대에는 '신국사' 편찬이 계획되었고, 메이지 유신 이후 메이지 정부 역시 육국사 이후의 역사를 다루는 사서 편찬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완성에 이르지 못하거나 다른 결과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