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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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군 선하는 무가 정권 수장이 천황으로부터 장군으로 임명받는 의식을 의미한다.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수장이 권력과 정통성을 인정받는 과정으로, 가마쿠라 시대에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세에는 조정의 권위가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도쿠가와 쇼군 가문조차 장군 선하를 통해 지배의 정통성을 확보했으며, 의식 절차와 함께 천황과 장군의 위계질서가 존재했다. 에도 시대에는 칙사가 에도 성을 방문하여 장군에게 선하했지만, 막말에는 천황의 권위가 높아지면서 칙사가 상석에 앉는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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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선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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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선하 | |
개요 | |
정의 | 장군에 임명될 자에게 천황의 명령을 전달하는 의식 |
역사적 의미 | 무가 정권의 수장으로서 권위를 인정받는 절차 |
절차 | |
선하 과정 | 사자 파견: 천황이 장군 임명 사자를 무가 수장에게 파견 명령 전달: 사자가 천황의 명령을 구두로 전달 장군 취임: 무가 수장이 장군으로서의 직무를 시작 |
영향 | |
정치적 안정 | 권위 부여: 천황의 권위를 빌려 무가 정권의 정당성 확보 지배 강화: 무가 세력의 공고화 |
쇼군 센게 (将軍宣下) | |
일본어 | 쇼군센게 (しょうぐんせんげ) |
의미 | 장군 선하의 일본어 표현 |
2. 장군 선하(將軍宣下)
무가 정권의 수장은 자신의 군사력으로 정권을 획득하고, 봉건 제도적인 토지 소유와 법률에 의한 지배를 실시했다. 하지만, 그 정권 및 그 수장으로서의 공인은 아직 중앙 권력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천황에 의한 장군 선하에 의해 현실적인 권력과 귀종성의 승인을 통해 처음으로 확립될 수 있었다.[1]
가마쿠라 시대에서는 원칙적으로 장군 선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당시, 선하라는 수속 자체가 교토 이외에 거주한 자에 대해 행해진 사례가 없고, 가마쿠라에 살았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이하 가마쿠라 막부의 역대 장군은 제목에 의해 보임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제목에 의해 임명되는 관직은 원칙적으로 관위 상당이 존재하고, 또한 집권호조 씨에 의해 교토에서 새롭게 맞이하게 된 궁 장군은 장군 선하를 받은 점이 주목된다.[2][3]
근세에 들어서면서 조정의 권위가 실추되고, 대신 금중 및 공가 제법도 등으로 조정조차 지배권을 미쳐 "공의" 체제와 "봉건왕"적인 지위를 획득한 도쿠가와 종가조차 그 지배의 정통성은 천황에 의한 장군 선하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실, 도쿠가와 종가 당주가 가독을 상속한 직후에는 단지 "상님"으로 불렸고, 장군 선하에 의해 처음으로 세이와 겐지라는 권문의 수장인 자격을 증명하는 겐지 장자의 지위를 공인받고, 동시에 국가적 수권 행위가 행해짐으로써 "공방님" 혹은 "장군님"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로는 "봉건왕"으로서 조정조차 지배했던 도쿠가와 장군조차, 장군 선하와 상락 참내 시에는 천황을 "왕", 장군을 "패자"로 하는 질서에 따랐다.
에도 시대의 대부분을 통해, 에도 성에 칙사가 방문하여, 장군이 상석, 칙사가 하석에 서서 선하를 행했지만, 막말기에는 황실・공가의 권위가 존왕 사상의 영향으로 회복을 이루었기 때문에, 도쿠가와 이에모치 이후, 칙사가 상석, 장군이 하석이 되었다.
2. 1.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2. 2.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2. 3. 에도 시대(江戸時代)
근세에 들어 조정의 권위가 실추되고, 금중 및 공가 제법도 등으로 조정조차 지배권을 미치게 한 "공의" 체제와 "봉건왕"적인 지위를 획득한 도쿠가와 종가조차 그 지배의 정통성은 천황에 의한 장군 선하에 의존해야 했다. 사실, 도쿠가와 종가 당주가 가독을 상속한 직후에는 단지 "상님"으로 불렸고, 장군 선하에 의해 처음으로 세이와 겐지라는 권문의 수장인 자격을 증명하는 겐지 장자의 지위를 공인받고, 동시에 국가적 수권 행위가 행해짐으로써 "공방님" 혹은 "장군님"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는 "봉건왕"으로서 조정조차 지배했던 도쿠가와 장군조차, 장군 선하와 상락 참내 시에는 천황을 "왕", 장군을 "패자"로 하는 질서에 따랐다.도쿠가와 이에노부의 정이대장군 사령(선지) 예시는 당시 의식 절차를 보여준다. (「게츠도 견문집」 참조)
'''정이대장군의 사령(선지)의 예''' (도쿠가와 이에노부) (「게츠도 견문집」)
권대납언 미나모토 아손 이에노부
오, 중변 겸 춘궁 대진 후지와라 아손 마스미쓰 전선
권대납언 후지와라 아손 모토카쓰 선
칙을 받들어 해당인을 마땅히 정사대장군으로 삼을지어다
호에이 6년 4월 2일 수리 동대사 대불 장관 주전두 겸 좌대사 오쓰키 스쿠네 쇼코 봉
(훈독문)
권대납언 미나모토 아손 이에노부(도쿠가와 이에노부, 정이위)
오, 중변 겸 춘궁 대진 후지와라 아손 마스미쓰(우라미쓰 마스미쓰, 정오위상) 전하여 선포
권대납언 후지와라 아손 모토카쓰(소노 모토카쓰, 종이위) 선포
칙령을 받들어, 해당인을 마땅히 정사대장군으로 삼을지어다
호에이 6년(1709년) 4월 2일 수리 동대사 대불 장관 주전두 겸 좌대사 오쓰키 스쿠네 쇼코(미부 쇼코, 정오위상) 받들어 올림
장군 선하 시에는, 에도 시대의 대부분을 통해, 에도 성에 칙사가 방문하여, 장군이 상석, 칙사가 하석에 서서 선하를 행했지만, 막말기에는 황실・공가의 권위가 존왕 사상의 영향으로 회복을 이루었기 때문에, 도쿠가와 이에모치 이후, 칙사가 상석, 장군이 하석이 되었다.
3. 한국 역사와의 비교
참조
[1]
문서
[2]
문서
[3]
서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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